말바꾸기? 혹은 사기치기??

노무현이 방송출연해서 "국보법 폐지하겠다"고 하자 대한민국 공인 공주 그네공주가 '발끈해'가지고 한마디 했다. "내 모든 것을 걸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막겠다~!" 불과 며칠 전의 일이다.

 

원래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노름판에서 뻥카 지르면서 거기다가 판돈도 외상이란다. 노름의 도를 벗어난 일이다. 애초부터 그네공주, 판에 질러 넣을 무엇이 없었다. 즉, "내 모든 것"이라는 실체가 처음부터 묘연한  것이었다. 도대체 그네공주가 걸 것이 뭐였단 말인가?

 

결국 판돈도 없이 뻥카 질렀던 약발이 다 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안다. 그러다보니 한 발 물러서는 제스처를 보일 수밖에 없다. 국가보안법 제2조의 '참칭' 부분을 삭제하는데 동의할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보안법이라는 법률 이름의 자구에도 얽매이지 않겠단다.

 

반응은 극단으로 갈린다. 열우당은 환영한다고 난리 법석이다. 그네공주는 그 말 뒤에 빼먹지 않고 안보확보를 위한 수단 강구를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열우당의 입장에서는 그 뒤의 이야기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닌 듯 하다. 그런 의미에서 열우당의 반응은 오바의 극치다.

 

극단의 한 쪽에는 김용갑류 애국자들이 있다. 성명씩이나 발표하면서 그네공주의 널뛰기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코메디다. 김용갑류가 꼴갑을 떠는 모습은 국민을 갑갑하게 만든다. 지들이 언제 그렇게 대한민국 안보에 힘을 기울였나? 불쌍한 군바리들 복지증진을 위해 뭐 한 거 하나라도 있나? 개뿔이나...



한나라당 내부에서 "모든 것을 다 걸고"라는 말이 나온 후에 보여진 우왕좌왕은 바칠 것 없는 사람이 비단 그네공주 한 사람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심증을 굳게 한다.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전선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며 달려나가던 원희룡이 그네공주 앞에서 제대로 좀 하자고 삑사리를 냈다. 살아있는 사회유기체론의 대가 이문열이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배신해가면서 국가보안법이라는 이름에 얽매이지 말 것을 한나라당에 요구했다. 대한민국 최대 지하조직 지하철노조를 유순한 양으로 만들어버린 배일도가 한나라당 안에도 국보법 폐지를 원하는 의원들이 있다고 커밍아웃을 했다. 그리고 그 과정의 정점에서 그네공주가 참칭조항 없앨 수도 있다는 발언을 하고야 말았다.

 

이들이 정말 바칠 것이 있었다면, 그 바칠 것을 지키기 위해 절대적으로 국가보안법 철폐논의와 정면대결을 할 수밖에 없었다면, 이들의 입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없다. 초지일관 "안 돼!"를 외치는 것이 정답이지. 그런데 정작 그들이 신성시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국민들도 헷갈리고 지들도 헷갈리고 도무지 정신이 없다. 정말 그들이 신성시 하는, 그래서 국가보안법을 끝까지 지켜서라도 간직해야할, 그래서 국가보안법이 없어진다면 차라리 다 버려도 좋을 그런 것이 무엇이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것이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다. 그네공주? 그네공주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 입지, 그거 지가 만든 것이 아니다. 부모를 모두 총탄에 잃은 그래도 안타까운 그이의 가계를 뒤지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모친의 빈자리에서 모친의 역할을 대신한 통에 얻은 것이 그네공주의 정치적 입지일 뿐, 아버지의 그림자 없는 그네공주의 오늘날은 아무도 그려내지 못한다.

 

성공한 연예인 2세들이 아버지의 후광이 아닌 스스로의 노력을 봐달라고 요청하는 경우, 우린 그 요청을 충분히 들어줄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실력은 허당인데 꾸준히 전파를 타고 나오는 몇 몇 2세들에게 별다른 관심이 돌아가진 않는다. 아니 오히려 짜증이 난다. 그네공주, 바로 이 경우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이 옆에 서 있을 때의 그와 어줍잖은 홀로서기 끝에 "모든 것을 다 걸"겠다는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아니다. 뭐 그런 의미에서는 언급된 다른 사람들도 역시 마찬가지다.

 

10000명이 넘는 노인네들을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으로 끌고 왔던 어떤 인간들, 그 자리에 나와서 원로대접 받고싶어 안달이 났던 김동길, 나라 살리는 길은 조선일보 보는 일이라고 설레발이 쳤던 조갑제, 국가보안법 글자 한 자도 바꿀 수 없다던 정형근... 얘들이 걸 것이 뭐가 있을까? 걔들이 뭘 걸었다가 다 잃었을 때 대한민국에 어떤 손해가 있을까? 5000만 남한 국민들에게 무슨 아픔이 있을까?

 

모든 것을 다 거는 것은 이런 거다. 가슴을 뚫고 나오는 에어리언을 아기처럼 부둥켜 안고 리플리는 용광로로 뛰어든다. 물론 에어리언 시리즈의 상업성을 충분히 알고 있던 영화제작자들은 행성에 흩어진 리플리의 체세포를 수집해서 시리즈의 4편을 만들어내지만. 아무튼 리플리는 자신의 모든 것, 즉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던졌다. 알에서 부화하는 대신 인간의 자궁을 빌려 성체로 자손을 번식시키려던 에어리언의 욕망은 이렇게 저지된다. 그리하여 인류의 멸망은 4편이 나올 때까지 잠깐 연기된다.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행여 이 아이큐 모자란 한나라당 계두(鷄頭 : 닭대가리)들이 누구 하나 죽으라는 소린 줄 알고 먼저 죽을 놈 사다리라도 타면 큰일인지라 목숨 내놓으라는 소리가 아님을 분명히 밝혀둔다. 바칠라면 이렇게 해야한다는 거다. 첫째, 진짜 무엇을 위해 바칠려고 하는지 그 목적이 분명해야한다. 둘째, 진짜 바칠 것이 있어야 한다.

 

쥐뿔이나 뭘 위해 뭘 바치겠다는 건지도 막연한데 어떤 정신나간 청춘이 바짓가랭이를 잡고 눈물을 뿌리겠나? 할배들이 10000명이나 와서 국보법 폐지 결사반대를 외치고 간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그래 고 사이에 자세를 홱 바꾸나? 개과천선해서? 쑈 좀 그만 했으면 싶다. 본색 감추느라 진땀을 빼고 있는 열우당이나 패 깔 것도 없으면서 까겠다고 호언장담하는 한나라당이나...

 

아, 샛길로 빠지다가 결정적으로 하고잪은 이야기를 빼먹을 뻔 하였도다. 박근혜가 왜 말을 바꾸었는가? 이렇게 의심하거나 놀란 사람 별로 없으리라고 본다. 원래 바칠 것도 없었다. 게다가 바꾼 말도 없었다. '안보' 이야기 빼먹지 않고 집어 넣었고, 기왕에 국가보안법에는 '참칭'이라는 내용이 있지만 형법에는 '참절'에 관한 내용이 있다. 그래서 빼나 그냥 놓나 별반 달라질 말이 없었던 거다. 괜히 현재 형법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이야기들 하겠는가? 이걸 그네공주가 여직 몰랐을리도 없고, 알면서도 뺑끼를 치자니 뒷심이 받쳐주질 못하는 거다.

 

사기는 자기보단 좀 어수룩한 사람에게 쳐야한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지보다 어수룩한줄로 알고 있는 한 이런 류의 말바꾸기형 뒤로 돌진 행위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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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20 23:02 2004/09/20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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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행인님 30대 과제중 하나가 올해엔 꼭 결판나기를 바랍니다.
    국가보안법 폐지.. 정치권의 힘보다는 행인님이 그동안 일구어논 실천활동이 모태입니다. 닫힌당과 딴나라당은 말할 것도 없구.... 국가보안법 폐지는 지금 활동하고 있는 국폐모의 성과입니다.
    꼭 건승하시기를... 끝장토론이 더이상 없기를 오산 다솜공부방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기원합니다. 투쟁보다는 투정~~~~^^

  2. 3대 악법투쟁이었는디요... 30대라고 하시면... 제 나이가 30대... ㅠㅠ
    암튼 국보건 주민법이건 이게 막판에 가니까 더 힘이 드네요.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이토록 저항이 거세다니... 수구는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오타맨의 오타'투정' 거울 삼아서 끝까정 밀고 나가렵니다. 건 그렇고 푹 쉬시면서 찬찬하게 많은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부럽기도 하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