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이문열의 노래

날씨도 오락가락 하고 마음도 싱숭생숭한데 한 필발 하는 작가 이문열이 또 여러사람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한 일간지에 쓴 시평이 그것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이 시평을 좀 씹어봐야겠다.

 

 

[중앙 시평] 슬픈 남반부의 노래

 

  우리 한반도 남반부는 갈수록 이상한 경기에 휩쓸려 들고 있는 듯하다. 심판도 없고 관중도 없고 그저 갈라선 두 팀과 그들의 이상한 코칭스태프만 있다. 거기다가 경기규정은 애매하고 가끔은 종목조차 무시되지만, 맞서는 두 편의 투지만은 유례없이 뜨겁다.

- 뭔 소린지 잘 모르겠다. 지금 남반부에 전 스포츠종목 혼합 타이틀매치라도 벌어지고 있었나? 전 국민이 종합 이종격투기 대회라도 참여하고 있다는 말인가?

 

심판이 없어진 것은 근년 우리 경기장을 오염시킨 질 낮은 네거티브 문화 때문이라 한다. 존중해야 할 권위나 보장되어야 할 전문성은 오래 전에 지워졌고, 경청할 만한 교훈이나 준수해야 할 판정도 없어졌다. 교훈이나 판정이 내게 유리하면 우리 편이고, 상대편에 유리하면 적일 뿐이다. 충고나 조정도 들어설 자리가 없다. 이해에 따라 우리 편과 적이 있을 뿐이다.

- 이상한 관전법이다. 지가 해설을 하려면 딱 부러지게 자기는 이러한 생각이 있다고 이야기하면 그뿐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때문이라 한다고 남에게 주어들은 이야기하듯 말을 풀고 있다. 누가 그러던데? 누가 그러더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존중해야할 권위는 뭐고 보장되어야 할 전문성이라는 건 또 뭔가? 경청할만한 교훈이나 준수해야 할 판정은 어떻게 생겨먹은 건가? 충고와 조정은 누가 하나? 동서고금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이해에 따라 우리 편과 적이 갈리지 않은 시대가 있었나? 뭘 이야기하려는 걸까?

 

  관중이 없어진 까닭은 흔히 두 가지로 본다. 그 하나는 어설픈 평등이론에 홀린 관중 자신들의 반칙이다. 선수만 뛰라는 법이 어디 있느냐며, 나도 선수 하겠다고 저마다 사제 유니폼 만들어 입고 경기장에 난입한 탓이라고 한다. 다른 하나는 이상하다 못해 고약한 양쪽 감독과 코치에게서 찾는다. 경기장에 난입한 관중을 말리기는커녕 제 편으로 모셔가기에 급급하고, 때로는 스탠드의 관중까지 선동하여 편을 갈라놓고 있다고 한다.

- 애초 이문열의 관전법이 이렇게 삑사리를 내게 되는 것은 정치라는 장에 참여하는 주체들을 선수, 코칭스태프, 심판, 관중 이런 식으로 분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원래 정치는 사회구성원 전체의 문제이며, 따라서 사회구성원 전체가 고루 참여하고 갑론을박 다툼을 가지는 것에서 그 발전이 도모된다. 오히려 정치라는 이 묘한 생물이 살아있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관중이라는 것이 없어져야 마땅하다. 신체오장육부가 밥을 한 끼 먹을 때도 위와 장은 선수, 간은 코칭스태프, 쓸개는 심판, 손발은 관중 이렇게 구분이 되나? 사회유기체설의 독보적 선두주자 이문열이 자신의 이데올로기조차 배신하는 칼럼을 쓴다는 것이 좀 거시기 하다.

 

 

  경기규정이 애매해진 까닭은 집행부의 교체 때문일 것이다. 명문화된 규칙은 아직 그대로지만 해석을 다르게 해버리니 뜻이 애매해지고, 때로는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종목이 무시되는 것도 집행부 교체와 무관하지 않다. 선거에 근소하게 이긴 걸 무슨 대단한 혁명에 성공한 것쯤으로 착각하는 집행부가 다시 개혁과 혁명을 혼동하고 있기 때문이란 풀이다.

- 역시나 헛다리다. 지금 경기규정 자체가 없는 게임이다. 아닌 말로 애매해진 경기규정의 원본은 그럼 어디 있나? 명문화된 규칙을 운운하는 것으로 보았을 때는 국가보안법을 규칙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지금 이문열 정신을 딴 데 놓고 있는 거다. 현재 진행중인 박진감 넘치는 스포츠 종목은 국가보안법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이지 국가보안법을 명문의 규칙으로 삼고 있는 어떤 다른 스포츠를 하는 것이 아니다. 종목이 뭔지도 모르고 이문열은 스포츠 중계방송 해설을 하고 있는 거다. 그러다보니 기껏 문제의 근원을 짚는다는 것이 집행부 운운하는 거다. 언젠 뭐 제대로 집행부가 섰었나? 이승만 집행부, 박정희 집행부, 전두환 집행부... 얘네들 집행부처럼 개혁과 혁명을 혼동하고 있었던 집행부가 또 있나? 예를 들어 박정희 집행부. 이 천치들은 쿠데타와 혁명까지 혼동을 했다. 그런데 뭘 새삼스럽게 집행부 교체가 문제의 원인이라고 설레발이를 치는 걸까?

 

 

  하지만 그 어떤 현상보다 걱정스러운 일은 시간이 지날수록 불을 뿜는 쌍방의 투지다. 우리가 언제나 일치하고 조화로웠던 것은 아니나, 근래 몇 년 쌍방이 거침없이 드러낸 적개심과 부정의 의지는 해방공간과 한국전쟁 전후를 연상시킬 만큼 섬뜩한 데가 있었다. 실제 겪어보지 못했는데도, 내전심리가 어떤 것인지 짐작될 듯하다.

- 쌍방의 투지 이거 정말 오랜만에 본다. 문제는 그 넘치는 투지가 아니라 투지의 방향이다. 적개심이 발현하는 양상이 시덥잖은 것이 문제라는 거다. 그 시덥잖은 투지의 전형을 우리는 지난 탄핵사건에서 보지 않았던가? 적개심 참 엉뚱하게 발현된 사태였다. 그 덕분에 적개심 함부로 해소하려고 했다가는 쪽박찬다는 사실을 조순형, 최병열 콤비가 적나라하게 가르쳐 줬다. 이런 엉뚱하게 발현되는 적개심은 문제지만 지금 국가보안법 가지고 다투는 거 상당히 고무적인 현상이다. 그래서 행인은 보수우익 역시 제대로 된 논리 계속 생산하면서 끝까지 애국애족 한 길에 나서주기를 바란다. 진보와 보수가 그렇게 제대로 한 판 붙어보는 사회, 이런 사회가 오히려 가장 안정된 사회다. 별 것도 아닌 것에 내전심리 짐작까지 하고 있는 이문열 새가슴이야 뭐 상당히 두렵고 떨리겠지만서두... 에이구... 나이를 어디로 먹은 건지...

 

 

그런데 우리가 요즘 빠져 있는 그 이상한 경기를 가장 실감 있게 보여주는 게 보안법을 둘러싼 여야의 힘겨루기가 아닌가 한다. 보안법 개폐를 둘러싼 논의의 본질은 인권과 안보의 충돌이었다. 재야 시절 그 때문에 인권을 침해당한 경험이 있는 여당 의원들이 주축이 되어 보안법 폐지를 들고 나오자, 야당은 그래도 아직은 유효한 안보 논리로 맞섰다.

- 드디어 본론이 나오고야 말았다. 하고 싶은 말을 빙빙 돌려서 하려다 보니까 위의 문장들처럼 삑사리를 내고 마는 거다. 그냥 요 얘기부터 시작했으면 별로 어려울 것도 없는데, 자신의 글발을 재삼 만방에 과시하고 싶다보니 자꾸 딴소리만 하느라 힘들고 욕은 욕대로 처먹는 거다. 보안법 개폐의 본질이 인권과 안보의 충돌이란다. 이문열은 아무래도 책 읽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할 모양이다. 보안법 개폐의 본질은 인권과 안보의 충돌이 아니라 수구보수의 기득권 유지 욕구와 진보변혁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열망의 충돌이다. 수구의 주장처럼 보안법이 아무 역할도 하지 않고 있는 사회라면 수구논객 이문열이 인권문제를 들고 나올 필요가 없다. 어차피 보안법은 국가보안을 위한 법이 아니라 정권보안을 위한 법이기 때문에 이문열이 이야기하는 안보와도 별 관계가 없다. 근데 이문열, 구색맞추기에 전념을 다한 결과 만들어낸 현재의 문제점 진단이 기껏 인권과 안보의 충돌이란다. 경기종목이 뭔지 전혀 갈피를 못잡고 있다. 이 주제에 관중찾고 심판찾고 선수에 고칭스태프까지 찾고 난리다.

 

 

  하지만 야당은 곧 독소조항 폐지를 골자로 하는 개정 논의로 물러나 인권수호의 대의를 인정했다. 몇몇 의원을 빼고는 폐지를 당론으로 삼았던 여당도 대통령의 발언을 전기 삼아 안보의 대의를 인정했다. 형법을 개정하여 부실한 안보를 보완하겠다는 것으로, 이렇게 되면 본질적으로 보안법 논의는 여야의 일치를 본 셈이다.

- 경기종목을 모르다 보니 해결의 방법을 안보에서 찾게 된다. 이문열은 끝까지 국가보안법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일부러 외면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안보문제로 자꾸 끌고 가려는 것은 우리 사회에 아직까지 팽배하게 남아있는 안보불안감을 계속해서 울궈 먹겠다는 발상에서 출발한다. 전후 반세기가 지날 동안 세대를 거쳐 유전되고 있는 빨간색 혐오증 내지는 공포증을 재생산하는 것이 국가보안법을 존치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이문열은 파악하고 있는 것일게다. 그러나 아주 유치하다. 이걸 위해서 그토록 많은 말을 해야하나? 관중, 심판, 선수, 코칭스태프 동원하면서?

 

 

  이제 남은 일은 그 일치를 보여주는 형식이다. 형법을 고쳐 부실한 안보를 강화하고 보안법을 폐지해 인권침해의 소지를 없앨 것인가, 보안법은 그대로 두고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는 독소조항만 삭제 또는 개정할 것이냐의 차이만 남았다.

  그런데도 국회 표결을 앞둔 양쪽은 그야말로 건곤일척(乾坤一擲) 패자필사(敗者必死)의 승부를 앞둔 것과 같은 각오와 결의로 맞서고 있다. 그리고 각기 설득 아닌 선동을 해대니 국민도 덩달아 두 패로 나뉘었다. 자칫하면 정신적 내전에 들어갈까 겁난다.

이와 같은 난판이라 심판이나 조정이 끼어들 틈은 전혀 없어 보인다. 대법원의 판결도 어느 한편에 대한 편들기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되고, 추기경의 고언도 '우군의 지원'이거나 '보수골통의 망발' 쯤으로만 여겨진다. 결론을 달리하는 재야 원로의 권유나 조정도 또한 마찬가지 대접을 받을 것이다.

- 정신적 내전은 이문열 스스로 고민할 일이다. 자기 정신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전이나 고민해보길 바란다. 이게 안보의 문제인지 권력의 문제인지조차 헷갈리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기껏 이야기한다는 것이 조잡한 안보확보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자기 머릿속의 상상력 부재를 탓해볼 일이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박이 터지게 싸움이 벌어지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 그동안 이정도만큼이라도 사회 속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본 적이 있나? 보수 우익들이 언제 이런 이야기를 터놓고 하도록 국민에게 보장해본 적이 있는가 말이다. 보수우익들도 이 기회에 토론하고 논쟁하는 법을 좀 배워야 한다. 그런 배움의 기회가 없었으니 문제의 본질파악도 못하고 있는 거 아닌가?

 

 

  하지만 주제넘은 줄 알면서도 하나 제안을 하자. 여당은 먼저 형법의 어떤 조항을 어떻게 개정하여 보안법 없이 안보의 공백을 메울지를 제시하라. 인권을 확보했으면 안보의 우려도 해소해주는 게 마땅하지 않은가. 그리고 야당은 여당의 형법 개정안이 우리 안보를 담보할 수만 있다면 보안법 폐지에 선선히 동의해주라. 법의 이름이야 어떠하건 안보란 실질만 확보하면 되지 않는가.

- 진짜 주제넘은 제안이다. 안보의 우려 그만큼 했으면 족하다. 뭘 또 여기서 더 안보의 우려 해소를 위한 방안이 필요한가? 코딱지만한 땅덩어리에 남반부만 병력이 백만이다. 가지고 있는 무기의 수준만 비교해도 북한은 게임이 되지 않는다. 국방비의 차이도 현저한데다가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북한군과 비교해도 남한의 군사들, 떡을 치게 훈련하고 있다. 훈련을 실전같이, 실전을 훈련같이 말이다. 어찌나 열심히 훈련을 해서 전투기계들이 되었는지 귀신같이 이라크에 잠입하여 비밀임무까지 수행하고 있다. 이문열은 자이툰이 이라크에서 뭐하고 있는지 알고 있나? 모르지? 그만큼 뛰어난 우리의 병사들이 국방을 담당하고 있다. 방구석에 처박혀서 짱구나 굴리고 있는 주제에 국방까지 걱정해주면 군인들은 뭐 뻘로 월급받냐? 안보라는 실질 이미 확보되어 있다. 형법보완 운운하지 말고 앞으로 소설이나 좋은 거 좀 쓰기 바란다. 맨날 되도 않는 한문실력으로 평역질하지 말고 말이다. 사람의 아들 속편 같은 거 안쓰냐?

 

 

다른 경기와는 달리 이 정치란 종목에서는 양쪽 모두 이기는 수도 있다.

- 정치라는 종목은 관중, 심판, 선수, 코칭스태프 나눌 수 있는 경기종목이 아니다. 경기 종목에 따른 경기 양상이나 룰 정도는 알고 해설질 하기 바란다. 이문열 요새 엄청 심심한가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4/09/16 15:10 2004/09/16 15:10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hi/trackback/107
  1. 글씨가 넘 작아요. 카피해서 봐야지.. 나이를 먹었더니.눈이 침침.. ㅋㅋㅋ

  2. 글씨보다 더 급한 건, 위의 그림을 바꾸는 겁니다. 큰 그림이 겹쳐 있어서 글의 가장 앞 부분이 잘 보이지 않아요.

  3. 아마도 이문열씨를 시평계의 신문지로 임명해주어야 할듯합니다.

  4. 사실 저도 그얘기 하고 싶었는데... 글씨 작은거랑, 그림 큰거랑...ㅋㅋㅋㅋ 객들이 참 말이 많조..ㅋㅋㅋ

  5. 글씨는 키웠는데요... 문제는 뒤에 배경그림을 없앨려고 했는데 없어지질 않네요...ㅠㅠ 어떻게 하면 없앨 수가 있나요? 위의 그림도 없앨라고 했는데 없어지질 않아요... 흑흑....

  6. 그림넣는 부분에 스페이스바를 넣고 확인버튼 눌러주세요. 그럼 없어진답니다.

  7. 행인님 글을 향한 팬들의 애정이 느껴지는군요^^ 팬클럽창단이라도 하면 저도기꺼이 동참하겠슴돠~
    블로그만든지 한달정도되어가는데 맬 글쓰기가 어찌나 힘든지..며칠째 글쓰기흥미를 잃어서리..행인님의 글쓰기는 어려운 주제를 흥미롭게 풀어가는 재주가 탁월한듯함돠~여튼 매일매일 글 잼있게 읽고 있는 진보블로거중 한명이었슴돠^^

  8. 달군/ 감사합니다. 확 고쳤습니다. 이젠 좀 빨라지겠죠?
    rivermi/ 쑥스... ^^;;; 저도 rivermi 님 글 좋아한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