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의 통신

바로 직전 포스팅에서 미네르바와 관련하여 간략하게 언급했던 부분이 있었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미네르바에게 적용된 전기통신기본법의 해당 조문은 아예 "허위통신"이라는 범죄사실이 뭘 말하는 건지조차 명확하지 않고, 이것을 허위사실유포로 본다 하더라도 지나치게 포괄적이어서 헌법의 한계를 넘어선다.

 

전기통신기본법 상 "허위의 통신"이 뭘 말하는 것인지에 대해 지금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허위사실 유포"와는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언급한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 민주당 이석현 의원이 이와 관련하여 미네르바의 무죄를 주장하면서 검경은 물론 구속영장을 발부한 법원까지도 이 "허위의 통신"을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애초 검찰이 긴급체포라는 무리수를 둬가면서 미네르바를 전기통신기본법 위반 혐의로 구속까지 하는 과정에서 적용된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제1항의 "허위의 통신"은 매우 엄격하게 해석해야할 부분이 있는 규정이었다. 검경은 이 조항을 미네르바에게 적용하면서 "허위사실 유포죄"라는 죄목을 밝혔는데, 실제 이 조항의 "허위의 통신"이 "허위사실 유포"를 이야기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렇게 "허위의 통신"을 "허위사실 유포"와는 전혀 다른 개념으로 보아야만 하는 근거는 다름 아니라 바로 같은 조의 다른 항에 있다.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의 제2항과 제3항을 보면 검찰의 논리가 매우 엉뚱하다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이다.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①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 자기 또는 타인에게 이익을 주거나 타인에게 손해를 가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③ 제2항의 경우에 그 허위의 통신이 전신환에 관한 것인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전기통신업무에 종사하는 자가 제1항 또는 제3항의 행위를 한 때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제2항의 행위를 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3항을 보면 특히 "그 허위의 통신이 전신환에 관한 것인 때"라는 표현이 있다. 전신환이라는 것은 주로 우체국에서 소액환의 형태로 이용되는 송금영수증의 일종인데, 현재는 은행에서 외환거래 등에도 이용되고 있다. 이 규정에서 전신환에 대하여 '허위의 통신'을 했을 때는 가중처벌이 이루어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전신환"이라는 거래형태가 "허위사실유포"로 전환될 수 있는 것인가?

 

"허위사실 유포"라는 것은 말 그대로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서 자기 이외의 다른 사람들(복수임을 명심하자)에게 전파하는 행위이다. 하지만 전신환이라는 것은 진짜가 아닌 것을 가짜로 꾸밀 수는 있어도 이것이 "허위사실 유포"에 해당하는 전파행위처럼 이루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허위의 통신"은 허위사실 유포와는 질적으로 다른 뭔가라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제2항의 규정을 보면 "자기 또는 타인에게 이익을 주거나 타인에게 손해를 가할 목적으로"라는 주관적 구성요건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행행위의 양태가 "허위사실의 유포"가 아니라 "허위의 통신"이라고 되어 있는 부분을 보더라도 과연 이 조항이 "허위사실의 유포"를 처벌하기 위해 마련된 조항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더불어 제4항의 경우, 본 조항이 허위사실의 유포를 처벌하기 위한 것이라면, 구태여 전기통신업무에 종사하는 자라 하여 가중처벌을 하는 것에 대해 납득할만한 설명이 불가능하다. 오히려 전기통신업무를 직접 담당하는 자가 "허위의 사실"을 유포하려하는 것이 아니라 전기통신의 기술적 측면을 이용하기 쉬운 자신의 위치를 이용하여 뭔가 다른 짓을 한 때에 이를 가중처벌하는 것이라는 추측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게 된다.

 

그러면 "허위사실의 유포"와 다른 "허위의 통신"의 성격이 뭔가가 문제가 된다. 형벌을 규정한 법률은 다른 어떤 법률보다도 그 구성요건이 명확해야 하고 법률의 근거가 확실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왜 본 규정이 명확한 용어로 "허위사실의 유포"라고 하지 않고 "허위의 통신"이라고 했는지가 문제다. 이 "허위의 통신"은 뭔가?

 

우리 법률에서 "허위의 통신"이라는 키워드로 법률검색을 하면 몇 가지 법규정을 확인할 수 있는데,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군용전기통신법

제19조(통신취급의 거절 및 허위통신죄) 군용통신사무에 종사하는 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통신의 취급을 하지 아니하거나 이를 지연시켰을 때 또는 허위의 통신을 행하였을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전파법 시행령

제70조(전파감시) 법 제49조제2항제6호에서 "대통령이 정하는 사항"이란 다음 각 호의 사항을 말한다.

3. 전파통신에 지장을 초래하는 혼신방해통신, 불요통신, 허위통신의 감시 및 조치

 

이들 규정에서 보면 "허위의 통신"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데,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허위사실의 유포"와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각 법률이 정하고 있는 "허위의 통신"은 "허위사실의 유포"가 아니라 발신자를 오인하도록 하는 것, 즉 통신의 주체가 가짜일 때를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각 법률이 이야기하고 있는 "허위의 통신"은 위장통신 혹은 가장통신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석현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 위장통신 혹은 가장통신이라는 것은 예를 들자면,  "전경련에서 보내는 것을 기획재정부가 보내는 것"처럼 위장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이번 사건과 관련지어보자면, 미네르바가 공문의 형식으로 글을 올리면서 마치 미네르바 개인의 의견이 아닌 기재부가 발송한 공식적 문건의 형식으로 글을 올리게 되었을 때, 이를 주체의 가장 즉 "허위의 통신"으로 볼 수 있게 되는 거다.

 

특히 이 법이 만들어진 당시 제39조로 되어 있었던 본 규정의 "허위의 통신"에 대해서 법안발의과정이나 검토과정 및 의결과정에서 별다른 논의가 없었던 점이라던가, 모법이었던 전기통신법의 제정이 온라인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던 1960년대에 이루어졌다는 점을 보면 "허위의 통신"이라는 행위는 전화등 유선상으로 신분사칭 등을 하는 행위를 처벌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임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이러한 법 해석에 따르자면 미네르바를 체포한 검찰과 구속영장을 발부한 법원은 법규의 내용도 파악하지 못한 채 법집행을 했다는 결과가 된다. 어차피 미네르바를 구속한다고 난리법석을 피운 자체가 코메디였지만, 이렇게 법해석까지 잘못했다는 것으로 문제가 비화될 경우 미네르바를 체포한 검찰이나 구속영장을 발부한 법관이나 모두 옷을 벗어야 할 정도의 문제가 되버린다.

 

문제는 검찰이 미네르바에게 법적용을 달리 하여 다시 수사를 할 경우다. 즉 기존의 "허위사실 유포죄"를 "허위통신죄"로 전환할 경우 미네르바가 처벌될 수 있느냐이다. 미네르바의 글은 비록 공문의 형태를 띄고 있었으나 글을 올린 아이디가 미네르바 본인이었고, 따라서 미네르바가 올린 글을 보는 사람들이 이것이 정부기관의 공식문서로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냐는 것은 의심스럽다. 정부의 눈치를 보는 법원의 입장에서 행위의 표면적인 형태만을 가지고 유죄로 판단할 가능성이 있다는 데서 현실의 슬픔이 존재하지만, 어쨌든 미네르바의 글 자체가 "허위의 통신"인지를 판단할 수 있을지 여부도 의심스럽다.

 

더불어 미네르바의 행위가 "허위의 통신"이라고 할지라도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제1항을 적용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여전히 문제다. "허위사실의 유포"와 마찬가지로 "허위의 통신"이라는 행위 역시 과연 그 주관적 구성요건을 "공익을 해할 목적"이라는 포괄적인 형태로 규제할 수 있는가가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통신상에서 이루어지는 가장통신 또는 위장통신을 규제하는 법률적 실익은 분명 존재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전화나 팩스나 문자메시지나 이메일이나 기타 등등 전기통신의 방법으로 위장통신이나 가장통신이 수도 없이 행해졌을텐데 왜 지금까지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의 규정으로 처벌된 일이 없는가를 봐야 한다. 그건 예를 들어 신분사칭이나 이를 통한 사익의 추구 등은 형법상 사기나 위조 혹은 공무원사칭죄로 처벌하는 등 다른 방식으로 처벌이 되는 터여서 굳이 전기통신기본법의 본 규정까지 찾아들어갈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위장통신이나 가장통신을 처벌할 실익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미 다른 법률들을 통해 충분히 이러한 행위를  처벌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볼 때,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제1항처럼 구성요건도 포괄적인 규정을 굳이 적용할 일이 없다. 미네르바 건은 다른 법률로는 도저히 처벌이 불가능한 사람을 어떻게 해서든 처벌하려다 보니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1항을 검찰이 발견한 것이고, 이를 해석도 제대로 해보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적용부터 한 엽기코메디이다.

 

문제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걱정은 되는 것이 법원이 과연 이러한 해석을 받아들일지가 의문이라는 거다. 지금까지 검찰과 법원은 본 사건을 "허위사실 유포죄"로 보아 왔다. 만일 "허위의 통신"을 지금까지 설명한 대로 적용한다면,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해당 검사와 법관은 옷을 벗어도 그 쪽팔림을 감당하기 어렵게 된다. 이 상황에서 면쪽을 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취할 수 있는 가장 그럴듯한 방법은 두 가지 중 하나다. 하나는 죽으나 사나 "허위사실 유포죄"라고 우기는 거, 다른 하나는 미네르바의 죄목을 다시 "허위통신죄"로 변환하는 거. 전자는 계속해서 자신들의 뻘짓이 옳다고 우기는 결과가 될 것이고, 후자는 지금까지 했던 지들의 행위가 전부 뻘짓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될 거다.

 

이러한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함으로써 판단의 책임을 헌재로 넘겨버리는 거다. 일은 검찰과 법원이 치고 뒷수습은 헌재가 하고. 정치적부담까지 헌재가 홀라당 져버리고.

 

이석현의 주장이 그의 선의와는 달리 오히려 미네르바의 죄목을 더욱 명확하게 하는 쪽으로 흘러갈 개연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이 대목에서 "허위의 통신"이라는 죄목의 성격을 명확히 하는 것은 미네르바사건과는 별개로 처벌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의 규정이 얼마나 정확해야 하는 것인가를 새삼 일깨워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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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8 17:08 2009/01/28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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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드디어 글을 쓰셨군요. : )

    '허위의 통신'에 관한 해석론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다만 여전히 '허위의 통신'이란 무엇인가, 허위의 통신이기 위해서는 어떤 요건이 충족되어야 하는가라는 점은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본문을 읽으면 '허위통신'(이라고 하는 발화자가 이야기한 발설한 의사, 그 내용)이 문제된다기 보다는 허위통신 하는 범죄 주체가 그 신분(특히 공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공무원이라는 특수한 신분)을 가장한다는 점을 주목하시는 것 같습니다만...

    이렇게 보더라도 비신분자가 신분자임을 위장하거나 사칭하는 행위를 필요로 하는 바, 그 사칭행위가 '공문서가 있었다'고 단지 (과장해서) '주장'했을 뿐인 미네르바 건에서 그 요건(신분사칭)을 충족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저로선 말미에 말씀하신 법원에서 제정신으로(?) 위헌법률을 제청하는 수순을 밟기를 바랄 뿐이네요.

    추.
    통화중에 전화가 끊어졌더라구요.
    아마도 배터리 때문인 것 같은데 말이죠.. ^ ^;

  2. 민노씨/ 아휴... 죄송합니다. 배터리가 간당간당한 때였는데, 그만 통화중에 나가버리네요...

    기본적으로 "허위의 통신"은 통신주체가 자신의 신원(신분)을 가장 또는 위장하는 거라고 해석해야할 것으로 봅니다. 군용전기통신법에서 잘 나타나는 것인데, 예컨대 사병이 통신기기를 이용하여 통신을 하면서 "나 사단장인데..."라고 하는 것을 보면, 그 통신내용의 진위여하를 문제로 하기 전에 허위의 통신이 된다는 겁니다. 더 명확한 개념을 도출하기 위해선 좀 더 학술적인 논의가 되어야겠죠.

    미네르바 건에 대해서, 제 견해로는 그가 '공문'이라는 형태로 글을 올렸더라도 그걸 '허위의 통신'으로 보긴 어렵다는 건데요. 적어도 온라인상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죠. 무수한 패러디 중에는 마치 관공서에서 나온 것처럼 보이는 기사가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상당히 많이 있죠. 예를 들어서 지난 번 어떤 신문에서 경제부처 수장이 미네르바를 등용하기 위해 은밀하게 만났다던가 어쨌다던가 하는 기사를 냈는데, 그건 현재 경제부처의 좌충우돌을 비꼬기 위한 패러디였죠. 미네르바의 소위 '공문'이라는 것도 이정도 수준에서 봐야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런데 법원을 믿을 수가 없다는 거죠. 제가 보기에, 그리고 민노씨께서 보기에도 미네르바의 소위 '공문'이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제1항의 '허위의 통신'죄를 구성할 수 있는 요건이 되지 않는다고 보지만, 검찰이 주장한 "허위사실의 유포"까지도 인정해주는 마당에 법원이 오히려 허위사실의 유포보다는 더 법해석에 적절하게 접근한 죄목인 '허위의 통신'죄를 인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때문에 걱정인 겁니다. 그래서 차라리 헌재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허위사실유포죄로 기냥 왈가왈부하게 두는 편이 나을 듯 싶어서 조용히 있었던 것인데, 기왕에 이석현이 저런 해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발표한 터라 이런 의견이 있다는 것을 보이고자 한 거구요.

    물론 어떤 법해석을 적용하든 간에 검찰과 법원의 짓거리가 웃음거리라는 점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번 사건은 처음부터 검찰이 헛짓을 하지 않았어야 하는 사건이었죠. 결국 자승자박인 꼴인데, 검찰과 법원이 어디까지 이 웃기는 짓거리를 끌고 갈지가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3. 아, 이런! 역시 이래서 포스트는 빨리 올려야한다는것이지요... 제가 요즘 찬찬히 준비하고있는 미네르바 관련 팟캐스틍 내용중에 이 논점 '허위의 통신' 의 의미 문제를 가지고 힘을 주려고 잔뜩 벼르고 있었는데 미네르바 게시물 다~~~읽고 만들겠다고 질질끌다가 이슈를 놓쳤네요~ ^^;;;
    어쨌든 이렇게 짚고넘어가주셔서 감사합니다.

  4. SadGagman/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엄청난 블로그 잘 보고 왔습니다. 자주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

  5. 두 분 만나면 참 잘 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말이죠. : )
    언제 자리가 마련되면 좋겠네요.

  6. 이 무삼 뻘 짓인지.. ㅠ..ㅠ

  7. 민노씨/ SadGagman님의 팟캐스트는 입이 딱 벌어질 정도더군요. 목소리도 완전 방송타입이시던데요. 암튼 민노씨 덕분에 어마어마한 블로거들을 알게 되더니 이번에도 대박이네요. 부럽기까지 했다능...

    fessee/ 그러게 말입니다.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