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다음날 아침...

* 이 글은 망상妄想님의 [2004_10_04_월]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아, 먼저 밝힐 것은 원래 계획상 이 글은 군대 갔다와서 복직한 후의 사건이라 앞으로도 한참 후에 나올 것이었다는 거다. 그런데 밤샘 불질하다가 발견한 글을 보며 꼬~~옥 트랙백을 걸고 싶어 오늘 이 대목에서 써버린다. 흠흠...] 복직을 했는데, 입대 전에 근무하던 곳에서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났다. 공장 건설 TFT였다. 전에 근무하던 공장 바로 옆에 짓는 화학 세제공장이었다. 1년간 건설현장에서 작업을 했고, 몇 개월간 시운전에 공장정상화에 눈코 뜰 새가 없었다. 중노동의 강도가 가중될 수록 퍼먹는 술의 양이 비례해서 늘어났다. 그렇게 시간이 지난 후 생산과에 배속되어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때부터 상당한 기간 동안 슬럼프 비스무리한 현상을 경험하게 되었다. 감정의 기복도 갈수록 커졌고,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는 현상들이 발생하게 되었다. 굉장히 심각한 증세였다.


어느날 부터인가, 공장에서 돌아와 기숙사로 들어오면 아무 것도 보이는 것이 없었다. 두려웠다. 이대로 사라질 것 같은 기분. 잠이 들면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니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일어나지 못할까봐 두렵기도 하면서 반대로 영영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교차하는 그런 나날들이 계속 되었다. 하루는 기숙사 방으로 들어가는데 방문 옆에 붙어있는 거울을 바라보게 되었다. 매일 보는 내 얼굴인데, 그 거울 안에 있는 존재는 내가 아니었다. 방에 불을 환하게 켜놓았는데도, 거울 속의 나는 주변이 완전한 어둠에 쌓여 있었다. 거기에 서있는 사람에게는 미래가 없었다. 거울 속 공간이 자신의 모든 세계인 낯선 이방인일 뿐이었다. 그가 보기 싫었다. 미래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회색빛 얼굴. 탈출구를 찾고 있는듯한, 그러나 보이지 않는 탈출구로 인해 절망하고 있는듯한 그의 눈빛이 싫었다. "넌 누구냐?" 물어보았지만 대답이 없다. 저런건 싫어... "넌 누구냐?"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배경 안에 축 쳐진 어깨를 늘어트리고 있는 그는 그저 떨고 있었다. 화가 났다. 그래서 그녀석을 힘껏 때렸다. 그놈은 산산히 가루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수백개, 아니 수천개의 복제물이 되어 곳곳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뛰어왔다. 피가 흐르는 내 손을 붙잡고 한마디씩 한다. 그러나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수백개, 아니 수천개의 그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려웠다. 이런 일이 몇 차례 반복되었다. 이런 날은 어김없이 혼자 틀어박혀 술을 마신다. 얼마나 마시는지 모른다. 마시다보면 자명종이 울린다. 기상시간이다. 출근해야한다. 그렇게 일어나 출근을 한다. 불을 끄면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러나 방바닥에 누워 불켜진 천장을 바라보면 천장은 암흑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깜깜하다. 불을 켜놓아는데... 왜 깜깜할까... 그럴수록 더 슬퍼진다. 힘들다. 어느날 결심을 했다. 영원히 잠들어보자고. 영원히 잠들면 이 답답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지. 그래, 함 해보는 거야. 그리고서는 "자살록"을 만들었다. 어떻게 죽으면 가장 깨끗하고 고통없이 죽을 수 있을까? 두꺼운 대학노트 하나에 생각나는 대로 끄적이기 시작했다. 약을 먹을까? 고통스럽다던데... 목을 걸어? 음... 언젠가 본 교수형 사진에서 시체의 혀가 가슴까지 늘어진 걸 봤다. 끔찍했다. 그건 싫어... 바다에 뛰어 들까? 불은 시체 위로 해삼이며 조개며 이런 것들이 들러붙어 있는 모습은 답답했다. 컨테이너박스를 매달고 그 밑에 들어가서 스위치를 눌러버릴까... 쥐포가 되겠지. 그건 좀 심하다. 그 외에 벼라별 생각을 다했다. 그러나 결론은 가장 일반적인 것. 그래 약을 먹는 거다. 청산가리는 아플거야. 수면제가 가장 낫겠지. 시내 나갈 때마다 약국을 돌아다니며 수면제를 샀다. 조그만 커피통만한 약병에 하나 가득 모을 때까지. 그렇게 하다보니 어느새 병이 다 찼다. 병이 다 찼다는 것은 더 이상 약을 사러 돌아다닐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영원히 잠들 시간이 되었음을 동시에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소주병을 꺼냈다. 소주 한 모금에 안주로 약 몇 알, 그렇게 한 병, 두 병, 세 병 들이키다가 어느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필름이 끊겼다. 갑자기 눈이 번쩍 뜨였다. 자명종이 울리고 있었다. 그 순간 머리속을 스치는 어떤 생각. 만일 그 생각이 전혀 다른 생각이었다면 아마 지금 나는 이 곳에 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갑자기 머리속에 들었던 그 생각은... '출근해야 하는데... 늦었다' 바로 그거였다. 허겁지겁 세면장으로 가서 이빨을 닦았다. 이빨을 열심히 문지르는데, 갑자기 속이 느글거리면서 오바이트가 쏠렸다. 저 창자 끝에서부터 무엇인가가 뱃속을 관통하여 목구멍으로 모든 것을 밀어 올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뱃속이 한 번 뒤집어지는 기분이 들더니 세면장 바닥으로 뱃속에 있던 물건이 죄다 쏟아져 나왔다. 말간 물과 하얀 알갱이들... 넘어 오면서 목에 걸리기도 하고, 그러면 재채기가 동반되어 코로 술이 품어져 나오고... 몇 십알인지 알 수가 없었다. 셀 정신도 없었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간밤에 수면제를 안주삼아 소주를 마셨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그리고 그 때부터 배가 엄청나게 아프기 시작했다. 겨우 겨우 방으로 들어갔다. 방 바닥에는 소주 두어병과 털다 만 수면제 병이 놓여 있었다. 거진 반통이 없어진 채로... 배가 아프기 시작하더니 곧장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왔다. 너무나 아팠다. 무엇인가로 누르는 것처럼... 출근하던 동기를 복도에서 불러 월차를 내달라고 했다. 그리고 방구석에 드러누워 통증을 이기지 못하고 굴러다녔다. 구르고 굴렀다. 하루 종일... 정신을 차리고 나서 가만히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죽을려고 했던 놈이 자살 미수 직후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이 출근이라니... 간헐적으로 밀려 오는 통증을 느끼면서도 어이가 없어 피식 피식 웃고 말았다. 왜 그때 출근을 해야한다는 생각을 했을까? 왜 약 먹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하루를 그렇게 뒹굴다가 그놈의 "자살록"과 약병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자살록은 곱게 곱게 태웠다. 한 장 한 장 뜯어낸 노트를 하나씩 하나씩 태워나갔다. 꽤 두꺼웠던 그 노트는 다 태우는데만도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 했다. 아직 연기가 솔솔 피어오르는 잿더미 위로 수면제를 털어냈다. 반이나 털어먹었는데, 아직 반이나 남아있었다. 수면제 알약이 다 떨어진 다음, 병을 던져 깨버렸다. 삶은 지독한 것이지만 그것이 내 맘대로 어찌할 수 없는 거라는 것을 알았다. 아니,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어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 그것은 나에게는 일종의 깨달음이었다. 그 다음날부터 우울함은 완전히 사라졌다. 직장을 그만두는 날까지 아무도 내가 그렇게 잠들려고 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건 다행이었다. 괜한 구설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난 살아있다. 삶이란 것은, 그래, 한번쯤 그렇게 살아보는 것도 필요한 그런 것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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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05 04:08 2004/10/05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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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 깜빡 했는데, 어린이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절대로 따라하지 마세요...

  2. 전 꼬마 때 자살기도를 꽤 여러번 했었는데,
    정로환 한 병을 먹으면 죽을거라고 생각했었죠 ;
    현관 계단에서 구르면 목이 부러져 죽을 거라고 생각하고.
    옷걸이에 스카프로 목을 매달기도 하고. 크..
    10살 짜리의 자살기도란..

  3. 깨달음의 과정치고는 넘...여튼 좋은 날만 있을껌돠~ 팬들모아놓고 팬관리라도 함 하시는게 좋지 않겠어요? 담주에 술이나 한잔해요^^

  4. 전 솔직히 한번도 자살시도를 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짠 합니다. 외로울까봐. 한번 후배가 약을 먹고는 무서워서 절 찾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참 놀랐지만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절 찾아줘서요. 자살은 주변의 사람을 참 외롭게 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