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말, 제주에서
1.
어찌 하다가 제주에서 1년 살이를 하는 부부, 몇 년째 올레길과 연계된 일을 하는 분, 기타 사정으로 제주에 상당기간 체류했던 또는 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이들은 제주에서 가능한 한 발을 붙이고 살아가고픈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데, 그럴 마음을 접었거나 앞으로 별로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심정을 이야기한다.
1년 살이 하고 있는 부부는 한 1년 살아본 후 정착을 할지 여부를 결정할 심산이었다고 한다. 엔간한 문제는 다 어떻게든 정리할 수 있다고 하는데, 힘든 건 제주의 '괸당' 문화였다. 결국 이들은 제주에 정착하고자 하는 마음을 접었단다.
몇 년 째 제주에서 일을 하고 있는 분께서는 여전히 제주가 어렵다고 한다. 이래저래 다양한 관계를 가지게 되었고, 그 관계 속에서 제주 내에서도 일정하게 인정받고는 있으나 그것은 의례적이거나 공식적인 것일 뿐, 사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만드는 건 십여년이 지났는데도 어렵다고 한다. 아니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단다.
이전에 상당기간 제주에 머물렀던 사람은 아직도 기회만 닿으면 제주에 정착하고픈 생각을 버린 것은 아니지만, 경험한 바 '괸당'의 폐쇄성이 힘겹고, 꽤나 시간이 흘러 많이 약해진 듯해도 여전히 그 강고한 습성은 큰 변화가 없어 고민이란다.
이들은 나름 제주의 선주민들 속으로 녹아들어가 그들과 함께 살아가고픈 의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다보니 어쩌면 시간이 흘러도 속마음을 거의 내보이지 않는 주변의 선주민들이 야속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할 법하다.
2.
또 어찌하다가, 잠깐 제주에 살다가는 이, 놀러온 이, 정착을 위해 온 이 등등 많은 외지인(그들 말로는 "육지 것")을 겪어본 제주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제주에서 정치활동을 하는 사람, 대학에 재직 중인 사람, 자영업을 하는 사람, 그리고 원래는 제주민이 아니었는데 혼인관계가 원인이 되어 제주에 정착하게 된 사람 등과 이야기를 하였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외지인에 대한 신뢰를 그다지 하지 않았다. 우선 외지인들은 잠시 머물렀다 가는 사람 정도의 인식이 있었고, 외지인들이 선주민들의 문화와 습속을 이해하려 하지 않으면서 자신들이 살아가던 뭍의 방식을 전제로 제주민을 평가하는 것에 대한 노여움이 있었다.
뭍에서 온 자들이 재력을 가지고 뭔가 그럴싸하게 일을 벌리는 것에 대해 한편으로는 부러움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서러움이 있다. 또는 그럴싸한 것도 없는 외지인들이 들어와 알맹이만 빼먹고 튀는 것에 대한 분노도 있고. 관광객들을 유치하고 많이 오도록 한들 실제 제주민들의 삶이 더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 그러다보니 믿을 놈은 한정되어 있고 섣부르게 낯선 이들에게 마음 줄 이유가 없다.
'괸당'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던, 아니 삶을 이어가기 위한 노력 속에 저절로 형성된 '괸당'의 틀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부정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단다. 제주민과 결혼하여 정착한 사람은 자기 자신이 그 경계선 어디쯤에서 계속 부유하는 존재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제주의 선주민들과 깊숙히 동화되지도 않으면서 동시에 외지인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제주민만큼이나 강하게 작용한다고 한다.
듣는 입장에서는 제주의 역사가 이러한 틀거리를 만들 수밖에 없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솔직히 많은 부분에서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찌 이해가 되겠는가? 그들의 아픔을 알지도 못하는데. 텃세 부림에 기분은 나빴을지언정 그들의 텃세라는 것이 왜 작동하는지에 대해서 얼마나 생각을 해봤겠는가?
3.
'육지것'과 선주민들을 만나면서, 경계라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이 경계라는 것이 어쩌면 어디 살든 어떤 환경에서 살든 간에 언제나 내 주변에 공기처럼 흐르면서 내 행동을 제약하는 어떤 것이 아닐지 모르겠다. 제주는 그러한 경계의 곤란함을 실물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공간일 수도 있겠고.
그런 저런 생각도 하면서, 다랑쉬굴을 찾아보고 왔다. 본의 아니게 제주를 올 때마다 dark tourism을 경험하게 된다. 하긴 제주라는 공간이 가진 한맺힌 역사가 어쩔 수 없이 제공하는 한계이기도 하겠지만. 아무튼 다랑쉬굴을 보게 되었는데, dark tour를 할 때마다 느꼈던 그 감정을 다시금 끌어올리게 된다.
과연 '용서와 화해'라는 것은 어디까지 가능한 것일까? 인간은 어디까지 인간성을 던져 버릴 수 있는가?
아무리 봐도 누군가가 훼손한 듯한 저 표지판이 서러웠던 건 세월이 지나도 그 원한의 고리는 여전히 끊어지지 않았다는 걸 실감하게 되었기 때문이리라. 억울하게 간 원혼들을 달랠 수 있게 되기를. 4.3 70주기를 맞이하여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