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승 - “세대, 계급, 위계 – 386 세대의 집권과 불평등의 확대” : 세대론의 여전한 한계
경향신문 기사 중에 눈에 띄는 기사가 있어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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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 김에 이철승 교수의 “세대, 계급, 위계 – 386 세대의 집권과 불평등의 확대”(한국사회학 53집 제1호, 2019)를 들여다보았다. 많은 공부가 되었고, 논거가 되는 각종 지표들과 통계는 다양한 차원에서 의미하는 바를 검토할만 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이 세대론이라는 것은 이를 분석하고 검토하는 효용이 얼마나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이 교수는 결론 부분에서 “세대 간 연대의 과실이 특정 세대의 특정 네트워크 집단에 의해 독점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써, 민주화가 제도적으로 공고화된 바로 그 시점에 세대 간 정치권력의 분배는 가장 불평등해졌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세대 간 연대”만이 아니라 “세대 내 연대”, 즉 동일한 세대로 분류되고 있는 구성원들 내부에서의 관계마저도 “민주화가 제도적으로 공고화된 바로 그 시점에” 불평등해졌음을 강조할 필요가 있겠다.
다시 말해 ‘386’이라도 같은 ‘386’이 아니라는 거다. 이미 그 안에서조차 지방과 서울, 대졸자와 고졸 이하자, SKY와 지잡, 대기업과 중소기업, 임노동자와 자영업자 간 간극이 있었고, 그 간극은 경제호황 상황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다가 IMF를 맞으면서 확연하게 드러났다.
물론 이 교수는 이러한 세대 내부의 불평등을 간과하지는 않는다.
“세대 네트워크 내부에 속한 386 세대 상층 리더들과 그에 속하지 못하는 동세대 하층 및 다른 세대들 간의 정치‧ 경제적 권력자원의 갭이 커지면서 세대 내, 세대 간 불평등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세대 내 불평등은 달리 말하면 계급 간 불평등일 뿐이며, 그 계급 간 불평등은 당연히 세대 내부뿐만이 아니라 “내부자들의 연공제 담합구조에 진입하지 못한 주변부의 외부자들-청년세대-에게 돌아가야 할 기회와 보상”을 축소하는 원인이 된다.
이 교수는 논문의 결론부분에서 지금까지 불평등 구조를 해소하기 위해 노동계급이 주도했어야 할 몇 가지 의제를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면 노동계급정치를 조직해내지 못하는 대공장 조직 노동자들의 조합주의의 한계라든가 강고한 연공서열에 안주함으로써 새로 임노동자가 되는 세대보다 더 큰 지위를 향유하면서도 이를 해소하려 노력하지 않는 문제 등을 언급하는 것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결국 이것은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여전히 계급의 문제다. 계급적 각성에 이르지 못한 노동계급의 한계는 따끔하게 지적할만하지만, 그것이 기득권을 독식한 세대의 구성원으로 안주한 결과라고 치부한다면 문제의 본질과는 멀어지게 될 터이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또다시, 모든 세대론은 결과론이며 계급모순에 대한 접근을 회피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더 강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