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취한 것들이다...

술마시다가 자는 버릇, 꽤 흔한 술버릇이다. 술자리에서 그냥 취해 쓰러지면 동료들이 집이고 여관방이고 운반해준다. 특히 행인처럼 별로 덩치가 크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에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편안하고 안락한 휴식의 공간으로 이동시켜줄 수 있다.

 

그런데, 행인의 술버릇이 문제였던 것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 들어가서 퍼질러 잔다는 점이다. 왠만해서는 좀체로 찾을 수 없는 그런 곳으로 들어가 잠을 자기 때문에 지금까지 벌어졌던 음주후 취침과정에서 행인이 친구들에게 발견되어 안전한 곳으로 운반된 사례는 극히 드물다.



회식이 있는 날이었다. 간만에 주간근무과정에서 걸린 회식이라 지체없이 회식장소에 참석을 했다. 신났다. 음주가무는 기본이고, 벼라별 엽기로운 일들이 휘황찬란하게 벌어졌다. 암튼 술자리에서는 항상 제일 신나서 설치는 행인인지라 그날도 분위기 잡고 기분 좋게 놀았던 것까지는 기억한다.

 

당시 흔하게 회식자리를 가졌던 곳은 동인천 역 근처 신포시장 입구의 삼겹살집이었는데, 거기서 먹다가 2차, 3차 옮겨가며 신나게 술을 마신 것은 좋았다. 역시나 그날도 갑작스레 필름이 끊겼고, 비몽사몽 취생몽사간에 행인, 어디론가 자리를 옮겼던 것이다.

 

귓전을 때리는 시끄러운 경적소리 때문에 잠에서 깼다. 그 왜 폭주족들이 즐겨 애용하는 경적 "빠라바라바라바라밤~~"하는 그 요사스런 소리 있잖은가? 그 소리가 귀 바로 옆에서 나는 소리처럼 우렁차게 들려오는 통에 덜컥 잠에서 깨고 만 것이다. 눈을 떴는데 아무 것도 보이는 것이 없었다. 사방이 깜깜했고, 해서 잠도 덜 깬 김에 "어, 쒸 깜딱 놀랐네..." 하고선 다시 드러누워 잠이 들려고 했다.

 

그런데 잠을 자고 싶어도 자꾸만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 거다. 아주 묘한 냄새... 뭔가 썩는 듯 한 냄새에 약간은 기름냄새도 좀 나고, 공기도 굉장히 축축한 것이 영 기분 이상해지는 그런 거... 술 취한 김이라 왠만하면 그냥 자겠는데, 이건 좀 과한 정도라서 잠을 더 이상 잘 수가 없었다.

 

그래, 도대체 여기가 어딘가 싶어서 일어나 앉아 사방을 둘러봤다. 그런데 진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거다. 한참을 실눈을 뜨고 들여다 봐도 뭐가 보이는 것이 없었다. 주머니를 뒤적거리면서 라이터를 찾아봤는데, 그놈의 라이터도 술집에서 빠트렸는지 영 만져지질 않았다. 아 이거 뭐 보여야 뭘 하지...

 

가만히 있자니 귓전으로 무슨 소리가 들리는데,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도 들리고 뭔가가 바스락 거리면서 돌아다니는 소리도 들린다. 발치에 뭔가가 왔다 갔다하는 느낌도 들고 영 심상치가 않은 분위기였다. 뭐가 뭔지 통 모르겠고, 머리는 뽀개질듯이 아파오는데 잠은 더 이상 오질 않고 답답하기 이를데가 없었다.

 

술이 점점 깨가면서 뭔가 눈에 희무끄레 하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동굴? 동굴같은 곳이었다. 사방이 둥근 원통으로 되어 있었고, 어디선가 희미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아직 보이는 것은 없는데, 암튼 뭔가 둥근 구조물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 때 발밑에 뭔가가 돌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파란 것이 반짝반짝 하는데, 뭔가 하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건 다름 아닌 쥐였다...

 

화들짝 놀라서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하고 빛이 들어오는 곳을 찾아 기기 시작했다. 잠시 후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의 정체를 알게 되었는데, 그건 물이 맞았다. 그것도 시궁창 물이었다. 그랬다. 행인이 자던 곳은 하수구였던 것이다...

 

이런 초난감한 일이 있나싶어서 밖으로 나가려고 무진장 노력을 하는데 도대체 어느 구멍으로 들어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컴컴한 통로를 계속 돌아다니는데 이게 왔던 길을 다시 돌아다니는 건지도 모르겠고, 빛이 보이다가 금새 보이질 않고 해서 완전히 사람 미치게 만드는 거다.

 

암튼 그렇게 기어 기어 가고 있는데, 순간 눈 앞이 환하게 밝아졌다가 다시 어두워졌다. 결국 밖으로 나가는 통로를 찾은 것이다. 기어나와보니 그곳은 현재 인천 제일제당 제1공장 담벼락을 끼고 흐르는 개천 옆의 하수구였다. 당시 그곳이 공사중이었는데 그 공사중인 하수구에 기어들어가 잠을 퍼질러 자고 있었던 거다. 이런 환장할 일이... 도대체 동인천 역 앞에서부터 여기까지 어떻게 온 것인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눈앞이 환해졌던 것은 도로를 지나는 차량의 헤드라이트가 공사장 입구에 서있던 표지에 반사가 되어서였다. 그나마 그 빛이라도 봤으니 다행이지, 취한 정신에 다시 기어들어갔으면 어쩔 뻔 했나??

 

밖으로 나와서 보니 시간이 벌써 새벽 4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얼마나 그 안에서 퍼질러 잤던 것일까? 옷 이곳 저곳에 시궁창 냄새가 배어 내 몸에서 나는 냄새를 내가 맡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기숙사까지 가려면 걸어서 30분은 족히 가야할 거린데, 덜 깬 술로 인해 몸이 비틀거리는 것은 둘째치고 몸에서 나는 냄새로 인해 가다가 내가 기절할 것 같았다.

 

택시를 타려고 보니 주머니에 들어 있는 돈이 달랑 50원. 이놈의 50원은 그 이후에도 술퍼먹고 뭔가 사고가 생길 때마다 주머니에 남아 있더라... 암튼 방법이 없어서 걸어가자고 결심하고 제일제당 1공장 정문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정문 앞에 왠 군바리 하나가 쪼그리고 앉아서 푹 눌러쓴 모자 아래로 행인을 째려보고 있는 것이었다. 오밤중에 시궁창에서 나온 것도 쉣한 일인데 군바리까지 사람 업신여기나 싶어서 같이 째려보고 가는데 이 자슥이 슬슬 일어나는 거다. 오냐, 잘 걸렸다. 안그래도 기분 거지같은데 살풀이나 한따까리 하자, 이런 생각으로 우뚝 서서 그넘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선 이넘이 "야, 아무개야"하고 행인의 이름을 불러제꼈다. 어라, 이게 누구야? 하고 그제서야 자세히 바라보니 말년휴가 나온다던 K였다. 제주도 출신으로 고등학교 동창에다가 사회 나와서도 같은 회사에 근무하게 되었고 군대도 얼추 비슷한 시기에 함께 다녀온 웬수 중의 상 웬수였다.

 

알고보니 이넘도 휴가나와 술퍼마시다 돈떨어져 아는 형님한테 전화걸어 차 좀 보내달라고 하고선 그 차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단다. 잘 됐다. 둘이 서서 군바리 군초 뺏아피우다 보니 얼추 시간이 흐르고 왠 자동차 한대가 와서 친구넘과 행인을 태웠다. 그 형님이라는 사람이 보낸 차였다.

 

운전하던 친구는 행인의 친구를 보면서 연신 형님이라고 했고, 졸지에 행인도 형님소리를 듣게 되었다. 하여튼 조폭들은 문제가 있다. 아무나 보고 형님이다.... 그런데 어쨌거나 한참 가는데 이 친구넘이 염장을 지르고 말았다.

"야, 이게 무슨 냄새냐?"
"어, 그게..."
"너 어디 시궁창에 들어갔다 나왔냐?"
"어, 뭐 그럴 수도 있고"
"아, 이거 완전히 거지쉑기 아녀?"
"..."

 

그랬다... 오밤중에 술퍼먹고 시궁창 들어가서 자빠져 자면 그게 거지지 달리 거지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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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09 20:02 2004/12/09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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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술 끊을 만 하군요... 앞으로도 계속 끊으세요..

  2. 러시아에 사는 언니가 형부랑 주로 싸우는 이유가 그거랍니다. 특히나 요즘같이 추운 때는 러시아는 술집들도 일찍 문을 닫는대요.너무 추워서.그러면 형부가 집에 안들어오면 뜬눈으로 밤을 새운답니다.술취해서 자다가....얼어죽을까봐요.행인은 한국에 살아서 정말 다행이어요. 그런데 이 글을 쓰다보니까 우리 언니가 너무 불쌍해요. 흑흑

  3. 산오리/ 웃.... 이거 스물 네살 때 이야깁니다. 진짜 20대 넘어가면서 그런 버릇 없어졌다니까요... ㅠㅠ
    rmlist/ 얼어죽을뻔한 일 숱하게 많았는데요... 그거 귀소본능이 없어서 그래요. 즉, 집안에서 사랑받지 못한 자의 슬픔이라고나할까... ㅠㅠ 하지만 언니와 형부 행복하게 알콩 달콩 잘 살겠죠. 힘내시라고 전화함 해주시면 좋겠네요~~~~ *^^*

  4. hi/정말 술 끊을 만 하네요. 근데요. 저 한 이틀 전에 행인님을 꿈에서 봤어요. 무슨 회의를 같이 하고 있었는데 신기하죠? 예지몽인가? 근데 거기 꿈에선 뭐랄까 전형적이 워크홀릭의 모습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