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래서 술을 마셨다

* 이 글은 해미님의 [술을 빌미로 노동자를 통제하라!?] 에 관련된 글입니다.

#1

그 냥반, 평상시에 별로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특히 부서가 다른 직원들과는 굉장히 낯을 가려서 안면트기가 매우 어려운 사람이었다. 연세는 행인보다 십여년 위였는데, 노동자로 살아온 날들이 나이테처럼 얼굴의 주름으로 박혀있었던 사람이었다.

 

원료 분쇄기에 그의 손이 말려들어갔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공장은 난리가 났다. 절단기 같으면 잘린 손가락이라도 들고 가 봉합수술이라도 했겠는데, 분쇄기에 들어간 손은 가루가 되어 산산히 흩어졌기 때문에 찾을 손가락도 남아있질 않았다. 손바닥 가운데서부터 위쪽부분, 한쪽 손은 그렇게 사라졌다.

 

공장은 이 사건으로 인해 무재해목표달성이 깨진 것을 안타까워했다. 보상절차를 밟고 계속 근무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선에서 끝내려고 했으나 워낙 큰 사고라 그렇게 하기 어려웠었던가 보다. 그리하여 무재해 시간 탑은 내려지게 되었고, 그분이 근무하던 파트는 무슨 대역죄를 진 사람들처럼 가라앉게 되었다.

 

사건이 나던 날, 몸조심 하자면서 우린 술을 마셨다. 산재처리 과정에서, 노동자의 손은 그저 공장의 기계와 별 차이가 없는 거라는 사실을 느끼면서 우린 술을 마셨다. 취하지 않고서는 다음날 그 공장에서 괴물처럼 돌아가고 있을 그 분쇄기를 볼 염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술을 마셨다.

 

 

#2

복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에 근무하던 공장의 포장반 어르신 한 분이 돌아가셨다. 원래는 이 공장의 정규직원이었으나 구조조정 과정에서 인력용역업체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정규직원으로서 하던 일을 용역업체 직원이 되어 하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월급은 적어졌고, 고용불안도 높아진 터라 정년퇴직을 몇 년 앞둔 사람으로서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들벌 되는 사람들하고 일을 하면서도 항상 묵묵하게 자기 일을 충실히 하던 그런 분이었다.

 

야간 교대반과 업무교대를 마치고 퇴근버스를 타기 위해 옷을 갈아입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퇴근버스를 타기 위해 같이 옷을 갈아입던 동료들은 돌연한 사태를 맞이하여 당황했고, 구급대가 올 때까지 손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쓰러졌던 그 냥반은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후송되던 도중 사망했다.

 

공장은 이 사건을 보상금 지급을 하는 선에서 매듭지었다. 산재는 없었다. 그는 그저 근무시간과 무관하게 사망한 것이었다. 더구나 정규직원도 아니고 용역업체 직원이었음에랴! 공장의 무재해 시간 탑은 계속해서 무재해 몇 시간을 찍고 있었다. 뒤에 '달성'이라는 두 글자를 함께 붙여놓고.

 

끝내 볼 수 없게 된 한 용역업체 직원을 추모하며 우린 술을 마셨다. 일을 하다 죽어도 일을 하다 죽은 것으로 인정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숙명인 것처럼 그렇게 여기며 술을 마셨다. 부서가 달라져 그 냥반이 일하던 곳으로 갈 일이 없어지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그저 술을 마시고 있을 뿐이었다.

 

 

#3

특공여단에서 복무한 그넘은 원래 허리가 아파서 일하는 것도 버거워하던 입사동기였다. 애초부터 몸이 별로 좋지 않았는데, 무슨 조환지 특공여단으로 차출되어 지 말로는 30개월을 점프만 하다가 왔단다. 의가사를 하려 했다가 되려 뒈지지 않을만큼 뚜드려맞고 그 덕에 만기 제대를 했다. 등뼈는 완전히 뒤틀려 있는 상황이었다.

 

일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 하루 종일 서서 제품 포장상황을 점검하거나 지가 직접 포장을 해야하는 일이었다. 근무부처를 좀 편한 곳으로 바꿔 주길 원했으나 공장은 항상 오늘 내일 하면서 부처변경을 허락하지 않았다. 기숙사에서는 밤마다 이넘이 신음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허리의 통증을 잊기 위해 그넘은 술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복직한지 겨우 1년 반이나 지났을까, 결국 이넘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도저히 근무를 할 수 없는 정도로 몸이 악화된 것이다. 쥐꼬리만큼한 월급받아서 고향 집에 부쳐주기는 커녕, 지 약값이며 진료비로 다 들어가던 그녀석, 결국 회사 때려 치고 집에 돌아가 부모님으로부터 병구완이라도 받으면서 장사를 하는 것이 훨씬 낫겠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만 24살이 다 지나가던 겨울에 그넘을 보내면서 우리는 술을 마셨다. 뭘 할거냐는 물음에 그넘, 호떡장사할 거란다. 자리도 봐뒀단다. 허리 많이 아플 거라고 걱정을 했더니, 여기서 일하는 거보다는 낫지 않겠냐고 웃는다. 그넘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술을 마셨다. 앞길이 구만리 같은 청춘이 몸 다버린 후 손에 아무 것도 쥔 것 없이 귀향을 하던 그 날 그넘과 우린 취하도록 술을 마셨다.

 

 

#4

그렇게 우리는 술을 마셨다. 산재가 벌어지던 그 전날, 분쇄기에 손이 말렸던 양반은 원래 집에 일찍 들어가던 양반이라 술마실 일이 없었다.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그분, 평상시 술을 마시지 않는 분이었다. 허리 뒤틀린 행인의 동기, 소주 몇 잔 마시면 그냥 골로 가는, 술에는 거의 젬병에 가까운 넘이었다.

 

술이 산재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산재가 술을 불러들였던 사고들... 그렇게 몸을 상했고, 심지어 죽어갔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 세상은 그냥 돌아가는 거다. 산재는 일어나고 술은 팔리고.

 

노동자를 위하는 척하는 그 구역질 나는 위선만 없다면, 그래 그냥 그렇게 그러려니 하고 살아가겠다. 산재예방을 위해 음주측정을 하고, 노동자를 위해 관리프로그램을 도입한다고? 웃기지 마라. 욕나온다. 그렇게 술마시게 하고 그렇게 취하게 만들어놓고 혼미한 정신을 이용해 노동자를 착취해왔던 그 방법이 이제는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인가? 그리하여 이제 남은 술마실 기운까지도 착취하기 위해 무엇인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이야긴가? 그동안의 착취로도 모자랐다는 말인가....

 

술을 끊었기에 망정이지, 아마 예전같았으면 이 기사 보자마자 소주 짝으로 갖다놓고 마셨을 것이다. 그렇게 니들이 마시게 만든 술로, 올해 소주 팔아 세입한 돈 어마어마 하다던데, 그걸로 모자랐던가? 또 얼마나 더 빨아마실 궁리를 하고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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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13 16:20 2004/12/13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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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음이 아프네요. 화두 나구요.

  2. 사람보다 목표달성이 우선이라니...진짜 글읽다 저도 욕이 목까지 올라왔다 사망하셨다는 글에 할말을 잃어버리고...
    아시아국가의 행복지수가 전반적으로 낮다는 얘기가 다시 떠오르면서...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내서 건강하게 일해야 할텐데...아자!

  3. 산재...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넘들은 보상조차 제대로 안해주고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넘들은 엉뚱한 처방을 내려대고... 이래저래 부서져가는 노동자의 몸. 숙연해지네요...

  4. 그 분들에게, 노동자에게, 술잔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