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

* 이 글은 간장 오타맨...님의 [그 많던 고졸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에 관련된 글입니다.

몇 해 전에 어떤 모임에서 마침 그 자리에 참석한 전교조 선생님들과 언성을 높인 적이 있었다. 행인이 제기했던 문제가 그닥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던 것이 이유였다. 다른 것들도 있었지만 크게 두 가지 문제제기였다. 첫째, 초중고 12년의 과정 중에 과연 노동법이나 노동관련 제도에 대해 얼마나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는가? 둘째, 실업계 또는 특수 학교의 학생들에 대해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93년인지 94년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데, YS 정부가 실업계 고등학생들의 취업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소위 "2+1" 제도라는 것을 도입했다. 실업계 고등학교 학생들이 2학년까지는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3학년에 올라가면 현장에 실습을 나가 실무경험을 쌓도록 한다는 것이다. 어떤 인간이 책상머리에 앉아서 이런 신기한 생각을 했는지 몰라도 그 기사를 보자마자 어이가 없었다. 실업계 학교, 특히 공고의 특수성을 전혀 간과한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전까지 공고생들은 1학기 중순경부터 취업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여러 회사에서 원서가 들어오고 학생들은 자신의 전공에 따라, 자신의 적성에 따라 입사를 시작한다. 빠른 학생들은 여름방학이 되기 전에 취업을 하는 수도 있고, 대부분 웬만한 회사들은 11월 중순 경까지 취업생들을 받는다. 취업을 하게 된 학생들은 학교의 학생인 동시에 각 회사의 수습사원이 된다. 보통 3개월의 수습 기간을 거친 후 정식 발령을 받게 되고, 이후 회사생활을 계속하게 된다.

 

얼핏 보면 "2+1"과 별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결정적 차이가 있다. 수습사원일지라도 해당 회사에서 그 학생은 사원과 똑같은 처우를 받게 된다. 앞에 '수습'이라는 딱지만 붙었을 뿐 정식사원과 전혀 다른 바가 없는 것이다. 물론 3개월간은 정식사원들보다 20~30% 정도 적은 월급을 받게 되지만, 기타 다른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차별을 받지 않을 수 있었고,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부여받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2+1"이라는 제도에서 학생들은 학생도 아니고 노동자도 아닌 이상한 지위로 전락하고 만다. 취업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거의 알바생 취급을 하게 되고, 따라서 월급은 물론이려니와 복지 등에 있어서도 전혀 보장을 받을 수가 없다. 게다가 실습생의 위치에서는 학생으로서의 대우도 받지 못한다. 정규 실습과정이 이수되지 않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불이익때문에 학교에서는 될 수 있는 대로 학생들이 현장부적응으로 인해 학교로 복귀하는 것을 기피하게 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2+1" 이전에 취업을 나갔던 공고생들과 제도시행 이후 소위 '실습'을 나갔던 학생들은 전혀 다른 사회경험을 하게 된다. 물론 그 이전이라고 해서 고졸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적 대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인정받으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학생들과, 있으나 없으나 하등 문제가 되지 않은 존재로 취급되면서 사회생활을 한 학생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인식의 간극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리고 결국 보호의 사각지대에 내팽겨쳐졌던 공고 후배들 사이에서 비참한 소식이 전해져 왔다. 선반과를 다니던 후배가 실습을 나간 곳은 선반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던 어느 시골 구석의 밥상공장이었다. 안전시설도 되어 있지 않은 곳에서 밥상을 만들기 위해 목재를 다듬는 일을 하던 그넘은 채 몇 달이 되지 않아 손목이 날라갔다. 그러나 회사고 학교고 어디에서고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았다. 산재처리를 하는 방법조차 알려주지 않았고, 물어물어 산재처리를 해달라고 요청한 기관에서는 고용계약이 어쩌구 하는 이야기만 줄창 하다가 대충 돌려보내고 말았단다.

 

월급 제대로 못받는 애들이 천지에 쏟아져 나오고, 실습기간 채울만 하면 내쫓겨 다시 학교로 돌아와 어영 부영 시간 때우는 넘들 쌔고 쌨다는 이야기가 후배들의 입에서 튀어나올 때마다 가슴 한 구석이 쓰라리다 못해 갈갈이 찢기는 고통을 느껴야 했다. 공고졸업의 학력으로 인해 이루어졌던 그 많은 차별을 잊지 못하고 있었던 시기고(물론 지금도 그걸 잊을 수는 없다만), 그런 아픔보다도 훨씬 더 큰 아픔을 겪어야 했던 우리 후배들의 일이 남일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당시 이 제도를 내놨던 한 실무담당자(이 사람이 노동부 사람이었는지 교육부 사람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가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2+1"에 대한 설명을 한 일이 있었다. 사회자가 댁의 아이도 공고를 보내겠느냐고 물었다. 당황한 듯한 음성으로 이 담당자는 자식이 원하면 보내주겠다는 말로 얼버무렸다. 그 방송을 듣다가 코웃음을 치고 말았다. 웃기지 마라. 내가 공고나왔지만 내 자식이 공고간다면 내 그넘자식 다리몽댕이를 분질러 평생 끼고 사는 일이 있더라도 공고 안보낸다.

 

그러나 그 때 공고생들을 위한 사회적 프로그램은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전교조가 이야기는 하는 '참교육'은 언제나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인문계 고등학생들을 위한 것이었다. 설령 실업계 고등학교의 문제점이 얼핏 나오다가도 입시철만 되면 마치 그런 이야기는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하물며 선생님들도 버린 애들임에랴... 그날 행인의 언성이 높아진 것은 그것 때문이었고, 전교조 선생님들의 언성이 높아진 것은 자신들이라고 해서 노력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는 항변때문이었다.

 

그리고 오늘날, '청년 실업'을 걱정하는 목소리 가운데 '고졸 실업'에 대한 우려는 실종되었다. '고졸 실업자'들은 그저 대학 못간 재수생일 뿐이다. 대학을 목표로 하지 않았던, 혹은 대학을 목표로 할 수 없었던 수많은 고졸자들은 이 땅에서 말 그대로 '투명인간'일 뿐이다. 공고를 나오고 상고를 나와 하릴 없이 거리를 방황해야하는 사람들은 그 중에서도 가혹한 처지다. 말 그대로 살기 위해서는 재수라도 해야할 판이다. 하긴 대한민국이 재수생들을 실업자로 인정해준 역사가 있었는지도 의문이다만은....

 

책상머리에 앉아 학교 현장에 대해서는 쥐뿔 생각도 없이 그저 업적쌓기의 한 방편으로 마련되었던 "2+1"제도로 인해 졸지에 노예가 되고,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렸던 우리 후배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녀석들도 낼 모레면 서른이라는 나이를 훈장처럼 달게 될텐데, 20대도 들어가기 전에 사회에서 버림받았던 그녀석들, 그래도 이 사회 어느 한 구석에서 힘겹게 살아나가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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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18 02:47 2004/12/18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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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acked from
    • At 2004/12/19 00:54

    * 이 글은 행인님의 [투명인간] 에 관련된 글입니다. 그래, 잊혀졌다. 아니, 잊었다. 공부로부터 버림받은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물론 이미 잊어버린 내 친구들도 대부분 그랬다.

    • Tracked from
    • At 2004/12/21 01:05

    * 이 글은 행인의 [투명인간] 과 좀 다른 측면에서 관련된 글입니다. 공고생, 상고생들의 아픔이란 거 이거 참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그래도 한 때, 공고생 상고생들이 대접받던 때가 있었다.

  1. 산재문제로 고생하였던 병역특례노동자들이 떠오릅니다.
    고등학교를 공고나 상업고를 졸업하지 않았지만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직업훈련소(일명 직훈)에서 훈련받고 현장에 간 수 많은 노동자들 또한 투명인간임이 분명합니다.
    글 잘 읽고 갑니다. 늘 글 읽으면서 배우고 있으니 좋습니다.
    몸 건강하시죠. 언제 논문은 쓰나.... 내년에도 과연 쓸수 있으려나... 쉬엄쉬엄 걸어가셔요. 또 문은 잘 지내죠. 함 문과 함께 내려오셔요. 시간되면...^^

  2. 흐음... 동생도 공고를 나왔는데, 결국 회사 여기저기 전전하다가 수능봐서 공고생 특별전형으로 대학을 갔습니다. 그리고는 스스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나마 졸업장이라도 또 생긴다고... 이런 사회에서 정말 뛰어난 사람아니면 어찌 살아야 하나요? 그냥 열심히 살다보면 다 잘되겠지 하며 살아야 하는건가? 흐음... ;; - 리플달다보니 신세한탄이-_-; 뭐 근데 이런 고민들은 이미 사회적인 거니까 부정하지는 않을께요^^;;

  3. 저또한 상고실습생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말이 실습이지 학교에서 배운 학과와는 전혀다른 실습(!)이였죠. 노동자이나 노동자로서의 권리는 무시된채 일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도 비참했던 기억이 납니다. 실습생문제는 생각보다 아주 심각한 문제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경험적으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