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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행인[투명인간] 과 좀 다른 측면에서 관련된 글입니다.

공고생, 상고생들의 아픔이란 거 이거 참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그래도 한 때, 공고생 상고생들이 대접받던 때가 있었다. 학력인플레이션이 시작된 이래, 공고생과 상고생이 앉아있던 자리가 전문대졸들의 자리로 슬쩍 넘어가더니 이젠 상당한 업종이 4년제 대졸자들로 채워지고 있다. 이게 바람직한 현상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서도, 적어도 이러한 현상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4년제 대학은 나와야 한다는 이상한 등식을 성립시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전문대학원제의 확산도 역시 마찬가지다. 건축전문대학원, 의과전문대학원, 환경전문대학원 등등이 세워지더니 이젠 법과전문대학원, 행정전문대학원, 경영전문대학원 등이 설립될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학력인플레이션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이렇게 전문대학원까지는 나와야 또 사회에서 일자리라도 기웃거릴 수 있는 자격이 생기게 될 모양이다.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불과 10년 정도 지나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기본적으로 전문대학원까지 졸업해서 취업을 하려면 최소 27세가 되어야 한다. 징병제의 올가미를 벗어날 수 없는 남성들의 경우에는 30 가까이 되어야 사회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렇게 나이를 상당히 먹어서야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면, 그동안 학비며 기타등등의 부대자원이 솔찮히 들어가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40대 캥거루 족도 낯선 일이 되지 않을지 모른다. 혹자는 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방법으로 학제의 고도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이건 개인적인 생각으로 완전히 "개구라"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다음 기회가 있을 때 하기로 하고....

 



원래 교육은 어느 과정을 마치던지 세상 사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대한민국을 예로 들자면, 준 의무교육 구조인 고등학교 졸업까지 하면 사회생활을 하기에 애로사항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이라는 것에 목매달고 12년을 달려오는 우리의 청소년들에게는 남의 나라 이야기같이 들리겠지만서도.

 

그런데 교육 역시 양극화를 겪는다. 고등교육, 즉 대학 이상의 교육을 받고자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는 반대편에는 고등학교만 나와서 사회생활을 하고 싶어도 제대로 교육이 되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연말을 떠들썩하게 했던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도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대한민국 직업교육이 가지고 있는 극한의 폐단을 알 수 있게 된다. '재미로' 성폭행을, 그것도 집단으로 행한 그들을 변호할만큼 행인은 마음이 너그럽지 못하다. 그러나 동시에 학생들을 학생이 아닌 자들로 만들어버린 대한민국 교육시스템에 대해서 역시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사건을 저지른 학생들은 밀양출신들이었다. 지역 내 학교를 다니던 이 학생들은 고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직업 교육을 위해 창원의 직업훈련원을 다니고 있었고, 거처 역시 창원지역이었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던 학생 중 진학 대신 취업을 선택한 학생들은 고등학교 3학년 과정을 직업훈련원에서 보내게 된다. 물론 모든 학생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의 학생들이 이 과정을 겪고 있다. 지역에서는 가족을 떠나 외지에서 교육받는 것도 흔한 일이다. 사건을 저지른 학생들 역시 이런 케이스였다.

 

그런데 직업훈련원에서의 교육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기술 교육 이외에 아무 것도 없다. 이들은 학교에서 배우던 인성교육이라던가 전인교육이라던가 하는 것과는 완전히 격리되게 되고, 오직 기계의 일부가 되기위한 '훈련'을 받게 된다. 이제 18세밖에 되지 않은 청소년들이 말이다. 이들은 학생도 아니고 직장인도 아니다. 청소년 보호법도 이들을 보호하지 않고 노동법도 이들을 보호하지 않는다. 좀 더 격렬하게 이야기하자면 이들은 버려진 아이들이다. 사회적 보호프로그램은 이들을 위해 가동되지 않는다.

 

얘네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집떠나 외지에 나가 직업훈련을 받는다. 가족은 떨어져 있고, 학생대접도 받지 못한다. 학교에서는 관리관할권이 없다고 할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직업훈련원이 그 책임을 떠맡지는 않는다. 직업훈련 받고 나가봐야 사실 제대로 된 직장에 들어간다는 보장도 없다. 결국 애들 입장에서 갈데까지 가는 현상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학생들 끝까지 잘 참고 견딘다. 그러나 참고 견딘다고 해서 문제의 본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직업훈련원의 청소년 문제가 창원 한 곳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경우와 상황은 달라도 직업훈련원의 청소년들이 탈선의 유혹에 빠질만한 환경은 어디에서나 존재하고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이들에 대해 책임져야할 무엇인가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저 대학을 준비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은 이렇게 방치되어도 무방하다는 것인가? 도대체 '교육의 정상화'를 운운하는 사람들의 시선은 어떤 교육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말인가?

 

한 쪽에서는 전문대학원체제를 도입해 교육의 정상화를 도모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근거가 없는 이야기다. 행인이 판단할 때, 전문대학원체제를 도입함으로서 이익을 얻는 집단은 오직 하나, 교수직군 뿐이다. 이들은 자신의 나와바리 확장을 통해 영구불변한 철밥그릇을 보장받을 수 있다. 자, 이거 외에 과연 전문대학원체제가 얻을 수 있는 실익이 무엇이 있는지 설명해주라. 누가 설득 좀 해주란 말이다.

 

교육정상화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보다도 실제 현장에서 학생들이 어떻게 탈선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지부터 이야기해보자. 가출청소년들, 그저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장땡이 아니다. 그들이 왜 가출했는지, 그들이 가출할 정도로 힘에 겨워했던 부분들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 사회적 도움을 줄 수 있는지부터 생각해보자. 직업훈련원을 그저 기술 가르치면 그만인 곳으로 치부하지 말고, 학교와 어떻게 연결을 지을 것인지, 직업훈련을 받는 학생들이 긍지와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할 방법은 없는지부터 고민하자.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차별받지 않으면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보자.

 

물론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청소년들의 범죄가 청소년들을 방치한 사회적 범죄를 무마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해야한다. 죄지은 녀석들, 처벌하자. 좋다. 처벌하잔 말이다. 그러나 그 처벌만으로 모든 책임을 다했다고 착각하지는 말자.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뭔가 해야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도 좋다. 더 많은 소를 잃지 않으면 되잖는가? 문제의 원인을 방치하면 방치할 수록 다음번에는 더욱 충격적인 뉴스가 지면을 장식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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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21 01:05 2004/12/21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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