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노사문화의 표본

2004년 한 해, 정말 다사다난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사건과 사고가 많았던 해였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거니와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2004년은 꽤나 다채로운 내용으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될 것 같다.

 

이 다사다난한 사건의 종지부를 노동부가 찍고야 말았다. 노동부가 KT를 '신노사문화대상' 수상자로 선정한 것이다. 역사에 길이 남을 노사관계의 혁신적 변화를 증명하는 사건이다. 대한민국 노사, 드디어 새로운 노사관계의 표본을 가지게 되었다.

 



주로 노사화합이라는 표현으로 치장되며 사회적으로 알려지게 되는 현상에는 몇 가지 표준이 있다.

 

첫째, 분규가 없을 것. 당연한 이야기다. 화합이라는 것은 서로 잘 지낸다는 이야긴데 분규가 있다면 애초부터 화합이라는 단어가 성립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둘째, 전에는 분규가 있었을 것. 그렇다. 허구한 날 화합하고 있는 회사는 별로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다. 사용자와 노동자가 중구장창 박터지게 싸움질을 하다가 문득 상호간 대오각성이 이루어져 무쟁의 선언이라도 할 판이면 그림 좋은 기사거리가 된다.

 

셋째, 사회적 파장이 있을 것. 이게 기사의 조건이다. 저기 구로공단(이게 요즘 구로디지털단지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만, 그건 별론으로 하고) 어느 귀퉁이에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려지지 않은 공장에서 무쟁의 선언 해봐야 별로 기사거리가 되지 않는다. 소위 장사거리가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강성노조가 있었던 곳에서 이런 선언이 나온다면 언론의 플래쉬는 쉴 새 없이 터진다. 새로운 노사관계의 형성이라는 그럴싸한 타이틀이 붙으면서.

 

그러나 이러저러한 기준이 있다고 할지라도 어쨌든 노사화합은 노사가 서로 악수라도 하는 제스쳐가 있어야 한다. 최소한 지금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오늘부로 이러한 표준은 그닥 중요한 것이 아님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렇다. 새로운 노사관계의 표본은 사용자가 얼마만큼 노동자들을 감시통제하며 정신병까지 유발할 정도의 밀착된 애정관계를 표시하느냐를 묻는다. KT가 어떤 곳이었는가? 노동자들에 대한 개별감시를 사업장 안에서는 물론 사업장 밖에서도 취하면서, 감청, 인터넷 감시는 기본이고 아예 미행추적까지 해가면서 노동자들을 감시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기준에 따라 항상 협박 공갈을 일삼았다. 그 결과 KT에서 일하던 노동자들 중 상당수가 언제나 등 뒤에서 누군가 자신을 보고있다는 노이로제 증세를 가지게 되었고, 특히 일부의 노동자들은 정신병 치료까지 받는 등의 피해를 입었다.

 

바로 이것이 새로운 노사문화의 조건이다. 노동자들이 정신병에 시달릴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 그래, 뭐 어차피 제정신 가지고 살기 힘든 세상, 아예 맛이 가버리면 되려 맘편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역설. 이처럼 노동자들의 정신건강까지 염려해주는 회사측의 무차별 감시와 통제.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21세기 신노사문화의 찬란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여기서는 노동자와 사용자가 악수를 하는 그림이 필요 없다. 오히려 예전이라면 그 그림이 들어가 있었을 자리에, 노동자들을 확실하게 감시할 수 있는 첨단장비의 사진이 대신 들어가 앉는다. 노사화합은 오직 노동자들이 까라면 까는 아름다운 복종의 정신을 가짐으로서 완성된다. 이것은 단지 자본가가 가지고 있는 노동시장에 대한 관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이러한 자본가의 정신에 손을 들어준다. 아예 공인해준다.

 

대한민국 노동부가 이 일을 했다. 장하다, 대한민국 노동부. 신 노사문화의 이정표를 새로 낸 노동부에게 영광을. KT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감시와 통제를. 바벨탑같은 이윤의 탑을 쌓고 그 탑 꼭대기에 CCTV를 설치한 후 더욱 가혹하게 더욱 정밀하게 노동자들을 감시하라. 그 감시의 기술이 향상되고 노하우가 집적될 수록 신 노사문화는 더욱 창대히 빛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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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17 14:49 2004/12/17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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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노동부가 '사용자부'로 변한지 오래 되었어요...
    세월이 갈수록 그 정도가 더 심해져 가니까 답답하죠..

  2. 그러게요... 왜~ 노동부이름도 바꿔버리지... ㅡ.,ㅡ; 갑갑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