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한 세상
※ 들어가기 전에 : 자뻑이란 고스톱 용어로서 쌀 것이 분명한 쾌에 쌀 패를 내놓는 경우를 이야기한다. 물론 패 두 장을 들고 있으면서 일부러 이렇게 하는 것을 흔히 일컬어 자뻑이라고 하나, 여기서는 자충수의 다른 말로 자뻑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왜? 자충수보다는 자뻑이라는 말이 현재의 상황을 설명하는데 훨씬 유용한 용어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참 신기한 일이 많다. 뻔히 어떻게 될 것을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뻑을 두는 경우가 심심찮게 발견되는데, 이게 참 왜 이리 신기한지 모르겠다. 가장 대표적인 자뻑이야 역시 연초의 탄핵사태. "남철, 남성남"의 인기를 한 순간에 과거의 추억으로 되돌려버렸던 최병렬, 조순형 명 콤비의 자뻑쑈가 그것이다. 지 무덤 파는 자, 영원히 잊혀질 것이다... 이 자뻑쑈의 한 축을 담당했던 홍사덕. 어디서 뭐하고 있을까나... 백수로 빌빌거리느니 차라리 지 뱉어놓은 이야기 줏어담을 셈치고 이라크 가서 호떡이나 만들어 주지...
근데 얘네들 뿐만이 아니다. 정치인들의 속성은 영원한 자뻑의 향연인지도 모르겠다. 자뻑과 자뻑 속에 해가 뜨고 해가 진다. 이놈의 자뻑이 어디까지 갈지 정말 궁금하다. 그런데 탄핵의 경우에는 자뻑쑈의 결과가 명확하게 끝이 났는데, 현재 벌어지고 있는 자뻑은 이놈이나 저놈이나 동시다발적으로 벌이고 있기 때문에 그 결과가 어디로 튈지 아무도 예상을 하지 못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국보법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천정배의 자뻑쑈, 한나라당의 자뻑쑈가 그것이다.
국가보안법 법사위 상정을 위한 치열한 전투의 와중에 열우당의 한 의원이 손바닥으로 단상을 내려치며 법사위 상정선언을 한 일이 있었다. 한나라당 의원, 열우당 의원, 그들의 보좌관들이 생 난리 버거지를 치면서 이종격투기의 신기원을 이룩했던 그날, 열우당쪽에선 만세소리가 나왔고 한나랑쪽에선 욕설이 튀어나왔다. 한나라당이 울분을 토할 이유는 충분했다. 그동안 지들이 전매특허처럼 휘둘러왔던 날치기 신공에 이렇게 당할 줄을 예전에는 생각이나 해봤겠는가?
그런데 단상 때린 손바닥의 얼얼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천정배, 자뻑 향연의 개회를 선포한다. 기껏 그렇게 통과시켜놓고서 바로 다음날 국보법 개정을 연내에 추진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전날 그 화려한 전과로 인하여 열우당에 대한 기대가 한껏 높아진 그 순간 벌어진 천정배의 이 삽질은 열우당에 대한 기대를 다시 지피려던 시민사회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어 버렸다. 물론 그 와중에 폭행시비에 휘말릴 것을 감수하고 운동화신고 달려갔던 민주노동당 노회찬은 졸지에 낙동강 오리알이 되어 버렸다.
전날, 법사위 손바닥 상정 사건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제 올라갔다며 희망을 가지는 모습 속에서 행인은 되려 미치고 환장할 것 같은 심정을 느꼈다. 왜냐고? 법사위 손바닥 상정은 아무리 열우당이 근거를 갖다 붙여도 그거 완전 날치기다. 이 기회에 한나라당, 정작 국보법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법사위 상정 처리과정의 불법성을 물고 늘어질 수 있었다. 그러다보면 결국 열우당은 적법절차였다고 소리지르고 한나라당은 날치기라고 소리지르다가 국보법은 이야기도 나오지 않고 유야무야 해넘겨버릴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우당의 버라이어티하고 박진감 넘치는 쑈는 일순 국보법 폐지를 열망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었다는데 긍정적인 평가가 가능했다. 그걸 천정배, 만 하루도 지나기 전에 손바닥 뒤집듯 뒤집었던 것이다. 손바닥으로 흥한 자, 손바닥으로 망하리라? 이게 뭔 삽질인가 말이다. 자뻑도 이정도면 가히 수준급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어디 가만 있겠는가? 열우당이 수준급 자뻑쑈를 보여줬다면 한나라당은 자뻑이 뭔지 그 백미를 보여줄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그리하여 벌어진 자뻑쑈, 이철우 간첩사건. 이거 완벽한 자뻑의 극치다. 한나라당, 시대가 변한 것을 모르고 있다. 이런 자뻑쑈가 박정희 전두환이때는 통했는지 모르지만, 인터넷이 광속으로 정보를 전달해주고 있는 오늘날 이런 자뻑쑈는 장사 종치는 행위일 뿐이다.
철지난 빨간칠놀이를 계속해가는 한나라당. 바로 그 빨간칠놀이 때문에 국보법 폐지투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깜빡 했다. 그 건망증의 결과로 이철우가 간첩이라는 자뻑사태가 벌어진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의 사람들이 아, 이놈의 국보법 그냥 놔두면 계속 이런 일이 벌어지겠구나 하는 각성을 하게 된다. 이건 한나라당이 바라던 바와 정반대의 결과다. 그런데 이 한나라당의 의원들이 정말 이런 사태전개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까?
이렇게 자뻑쑈들이 벌어지고 있는 그 자체도 신기한 일이지만 정작 신기한 것은 이렇게 자뻑쑈를 벌이고 있는 넘들이 아무런 문제도 없이 잘 처먹고 잘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을까.... 주고 받는 자뻑쑈, 오고 가는 상부상조! 뭐 이런 건가? 누가 자뻑을 하던 어차피 줏어먹을 개평 딴 넘이 가져가는 거 아니고 지들끼리 알아서 나눠먹을 수 있다는 그런 판단들인가?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자뻑쑈 플레이어들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분위기다. 예를 들어 정형근. 간첩제조기로 명성을 떨친 정형근같은 인간이 계속해서 국회의원을 해먹을 수 있는 나라. 이거 제정신이 아닌 나라임이 분명하다. 독재자 아버지를 모시고 독재정권의 한 가운데서 퍼스트 레이디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던 박근혜. 이런 인간이 제1야당 당 대표를 역임하면서 자뻑쑈를 진두지휘하는 나라. 이거 흥해가는 나라라고 봐야하나 망해가는 나라라고 봐야하나?
이런 인간들이 자뻑쑈로 망하는 것이 아니라 되려 그런 자뻑쑈로 흥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다름 아니라 저들이 입만 열면 이야기하는 "국민", 그놈의 "국민"들이 사실상 이 문제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남경필이 TV에서 버젓이 "아니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4대 법안이 민생과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라고 얼뜨기 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데도, 정작 이 법률안들이 경제문제가 중심이 된 민생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이야기를 못하고 있는 운동집단들.
국가보안법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기 위해서는 우선 북한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야하는지를 이야기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철지난 민족내부관계론이나 주절거리고 있는 이 상황. 이 상황이 애매모호하게 계속 흘러가고 있기 때문에 국보법을 가지고 저 어처구니 없는 자뻑쑈가 연일 벌어지고 있는데도 자뻑쑈의 주인공들을 그냥 두고 볼 수밖에 없어지는 것이다.
암튼 신기한 나라임은 분명하다. 이 땅덩어리 위에서는 항상 신기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