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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고졸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 등록일
    2004/12/16 10:35
  • 수정일
    2004/12/16 10:35
학벌주의와 신자유주의, 두 괴물에 눌린 우리 자화상 '청년실업'이란 단어는 다소 식상한 메뉴다. 최근엔 '구조적 청년실업'이란 말도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더 이상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란 얘기다. 누구나 동의하는 바, 참으로 심각한 사회문제다. 그런데 신문이나 TV에 잡히는 '청년'들의 면면을 보면 어찌된 셈인지 죄다 대학생들 일색이다. 아무리 한국의 대학진학률이 높다지만, 이건 좀 기이하다. 그 많던 '고졸'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올 하반기 통계를 한번 보자.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체 실업자 수는 78만 7천명이다. 그중 고졸 이하는 55만 8천 명. 무려 70%에 달한다. 청년실업자 수를 30만 명이라고 할 때, 그 중 60% 이상이 고졸 이하 학력이다. 구직포기 등으로 인한 유휴인력의 규모로 봐도 압도적이다. 대졸 유휴인력이 22만명인데 반해 고졸 유휴인력은 89만명에 달한다. 이런 현실은 고졸청년층의 실업과 고용문제가 청년실업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을 웅변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 엄청난 수의 '비대졸자'들이, 대한민국에서는 투명인간이다. 많은 사람들이 서울대의 기득권을 문제삼고, 명문대와 지방대의 차별을 성토하면서도 정작 '고졸'과 '대졸' 사이에 놓인 거대한 취업장벽에 대해서는 좀체 입을 열지 않는다. 설마 청와대에 계신 분이 '고졸'이어서?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선 숨죽이고 있던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일 것이다. "차라리 전쟁이나 터져라"


"차라리 전쟁이나 확 터지면 좋겠네." 전상규(가명) 씨가 씹어뱉듯 던진 말이다. 전쟁이 터지면 좋겠다고? 미 대선 이후 가뜩이나 심란한 요즘, 이 무슨 망언인가. 어이없어하는 기자에게 눈을 맞추지도 않은 채, 그는 씩 웃으며 한 마디 덧붙였다. "전쟁 나면 예비군들 소집할 거 아니에요. 고졸이건 대졸이건 똑같이 끌려가는 거지 뭐." 낯은 웃는데, 말 속에 뼈가 있다. 전상규 씨는 지금 '백수'다.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해 '프리터'다(프리터(freeter)는 '프리 아르바이터'의 준말로 아르바이트나 시간제로 돈을 버는 청년층을 뜻한다). 그는 현재 PC방 '알바'를 하고 있다. 전 씨는 작년까지 컴퓨터 조립업체의 '사장님'이었다. 사장님이라곤 하지만 직원은 동갑내기 친구와 그, 단 두 명이었다. 그러나 '고졸' 학력의 두 청년이 살아남기엔 서울은 너무 잔인한 곳이었다. 불황 속에서 악전고투하던 전 씨는 카드 다섯 개를 '돌려막기'하다 신용불량자가 되었고, 친구는 고향으로 내려가 버렸다. 그에게 공장 같은 데 취업을 해 볼 생각은 없느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안간다"라는 대답이 곧바로 튀어나온다. "제대하고 바로 취직했었거든요. 관심있던 IT업체 여러 곳에 원서를 넣어봤지만 대부분 아예 고졸을 뽑질 않아요. 하는 수 없이 안산에 있는 공장에 취업했죠. 한 3년 일했나? 오래 했죠. 이젠 알바를 하면 했지 공장에는 다신 안갑니다. 거기 다닌다고 제대로 된 기술을 배울 수도 없고, 계속 몸만 망가지더라구요. 일을 하더라도 뭔가 앞으로 잘 될거라는 거, 그런 게 있어야 하는데…." 전상규 씨에게는 아직도 빚이 많이 남아있다. 그는 한 2년 '빡세게' 알바해서 남은 빚을 다 갚고 나면 다시 사업을 시작할 거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고졸들의 살길은 장사라는 게 전 씨가 짧은 인생을 통해 터득한 '지혜'다. 물론 전상규 씨도 아무나 장사를 하는 게 아니란 것쯤은 겪어봐서 안다. 하지만 이 희망만이 그를 버티게 하는 유일한 힘이다. "민노당원들도 만나면 학번부터 물어본다" "민주노동당원들 중에 고학력자들이 많습니다. 저를 만나면 학번부터 물어봅니다. 그럼 전 87학번이라 대답하죠. 1987년도에 고등학교에 입학했거든요." 씁쓸하게 웃는 김성호 씨(가명). 그와 만난 건 토요일 새벽 6시 무렵이었다. 호텔에서 야간에 접시를 닦는 그를 만나려면 퇴근한 뒤인 그 시각이 적당하다. 민주노동당원이라는 그는 지금은 당 활동이 조금 뜸하지만, 2002년 대선 당시 정말 열심히 뛰어다녔다고 한다. 김씨는 힘들었지만 인생에서 가장 보람있었던 때였다며 추억에 잠겼다. "얼마 전까지도 당 상근자가 되려고 지구당들에 원서를 많이 냈어요. 번번이 미끄러졌습니다. 면접 때마다 '왜 대학을 안갔냐'고 물어보는데 참 대답하기가 막막하더군요. 대학 안간 것을 후회했던 순간이었죠. 아직도 운동에 미련이 많나봐요." 김성호 씨는 이른바 '고운세대'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운동을 했다. 그리고 남들이 한창 대학에 다닐 20대 내내 그는 지방을 떠돌아다니며 일했다. 그의 첫 직장은 현대 중공업이었다.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석유시추선에서 일했다. 물론 정규직이 아니라 하청노동자였다. 김 씨는 뾰족한 기술도 경험도 없었던 자신이 그곳에 오래 있기는 무리였다고 털어놨다. 그 다음 직장도 역시 석유관련업체인 유공이었다. "10년 전에 월급 150만원을 받았으니 꽤 대우가 좋았죠. 그런데 문제는 울산에서 혼자 지내야했다는 겁니다. 전 고향이 전라도 쪽인데 음식도 입에 안맞고 무엇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운동을 했던 터라 지방에 홀로 떨어져서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는 고립감이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결국 그는 유공도 그만두고 김포공항에 취직한다. 대한항공 하청노동자였다. 항공기 예비부품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월급은 50만원에 불과했고 정규직이 될 희망도 좀체 보이지 않았다. 답답하고 고통스런 나날이었다. 그러다 결국 그곳마저 그만두고 주유소 등을 전전하며 아르바이트를 했다. 2002년 친구와 학원을 차렸다 빚만 잔뜩 진 채 망해버렸던 경험도 있다. 영등포의 한 영세업체에서 고압호스를 만드는 일을 하기도 했지만, 빚쟁이들이 직장까지 쫓아오는 바람에 그마저도 그만두어야 했다. "그래도 아직 꿈은 있어요. 노무사가 되는 겁니다. 노동법 공부를 하는데 파견근로를 마음대로 하는 회사에 대해서 제대로 된 규제가 없다는 걸 알고 참 놀랐습니다. 왜 저희같은 비정규직들이 양산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이 없어요. 일 하면서 공부한다는 게 만만치가 않더군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전태일을 떠올린 게 과연 기자만의 생각이었을까. 직업에 귀천 없다는 거짓말 고졸 여성들의 취업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전체 취업여성의 73%가 비정규직이라는 사실에다, 학력이라는 변수가 더해져 고졸여성들은 실제로 직업선택의 자유를 거의 누리지 못하고 비슷비슷한 직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은행에서 근무하는 이은주 씨(가명)는 멀쩡히 정규직으로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된 후, 똑같은 직장에 계약직으로 다시 채용됐다. 그녀는 "계약직은 그야말로 시한부 인생, 파리목숨"이라고 자조한다. 계약기간이 6개월 심하게는 3개월 또는 1개월 단위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13년 경력의 '베테랑'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경력의 대졸 남성 노동자의 3분의 1수준의 임금을 받는다. 심지어 3년차 대졸사원보다도 월급이 적다. 최영미 씨(가명)의 경우, 첫 직장은 백화점이었다. 정규직이었고 일도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고졸여성인 그녀는 IMF 직후 인원삭감의 대상이 됐고, 이후로 정규직이 된 적은 한번도 없다. 지금은 대기업 빌딩의 안내데스크에서 일하고 있지만, "나이를 먹어가는 게 점점 부담스러워" 다시 이직을 준비중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대학에 가지 않은 것을 별로 후회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생각이 바뀌었다. 김정아 씨(가명)는 전화상담으로 판매영업을 하는 텔레마케터 일을 하고 있다. 올해는 그녀가 고향인 경남에서 상경한 지 딱 10년 째다. 여상을 나와 서울에서 첫 직장을 얻은 후 지금까지 세 번의 이직을 경험했다. 10년간의 사회생활 중 '고졸'이어서 차별을 느낀 부분은 뭐니뭐니 해도 급여였다. 두 번째 얻은 직장은 건설회사였는데, 5년 경력의 그녀가 받는 임금은 전문대학을 졸업한 사회초년생보다 적었다. "1년 만에 그만두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죠. 업무능력과 아무 상관도 없이 졸업장만으로 임금이 결정되어버리는 구조였거든요. 납득할 수 없었어요." 그리고 차별은 내내 이어졌다. "최근에 텔레마케터 채용공고를 낸 어느 생명보험회사에 원서를 냈었죠. 그런데 면접응시 기준이 전문대졸 이상이었어요. 거 참…. 전문대졸이나 고졸이나, 하는 마음에 고졸이라도 잘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면서 기회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못마땅하다는 듯 마지못해 면접을 보러 오라더군요." 하지만 그 회사는 그녀를 불러주지 않았다. 업무능력만 있으면 인정받을 수 있다는 당연한 명제가 현실의 벽 앞에서 얼마나 철저하게 무력한지 깨달을 수 있었다. 기업들은 여전히 대졸과 전문대졸과 고졸을 줄 세우고 있는 것이다. 김씨는 여성 비정규직의 비애도 털어놓았다. 똑같은 일을 하고도 절반에 불과한 임금을 받고, 법에서 보호되는 생리휴가, 출산휴가는 꿈도 못꾸는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공장에서는 일손이 없어서 아우성이라는데, 보수언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젊은이들이 배가 불러서""쉽게 돈을 벌고싶어서" 그런 건 아닐까. 김정아 씨의 대답은 이랬다. "되려 제가 묻고 싶습니다. 당신 같으면 그곳에서 일하고 싶겠냐고. 외국처럼 블루컬러도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임금도 충분히 받는다면 왜 일하지 않겠어요? 사람들이 왜 이민을 떠나는지 알아야 합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구요? 천만에. 한국에는 분명 직업의 귀천이 있어요." 학력별 임금격차 세계최고 위의 사례들은 고졸청년계층이 우리 사회에서 겪어야 하는 고통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그러나 이 '고졸'청년들의 증언 속에는 한국노동시장의 구조적 모순들이 고스란히 숨어있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김유선 소장은 "대졸 청년실업 문제가 대두되고 있지만, 그 못지않게 주목해야할 게 바로 고졸 등 저학력 실업"이라 강조했다. 고졸 이하 청년층의 실업과 취업형태가 한국에서 양질의 일자리가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는 중대한 하나의 '신호(sign)'라는 것이다. 김 소장은 학력별 임금격차가 우려할 만한 수준으로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표, 고졸대비대졸자 급여수준) "임금소득 불평등도가 OECD 국가 중 1위입니다. 악명높은 미국조차 1998년 앞질러 버렸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가장 큰 피해를 받는 집단이 누구겠습니까? 바로 비정규·저학력 노동자들이지요." 실제로 고졸학력자에 대한 고용의 질적 수준도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구인구직 전문 사이트인 인크루트가 자사에 이력서를 등록한 구직자를 학력별로 분류해 본 결과에 따르면 고졸자 채용 공고에서 파견직이나 계약직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고졸자를 원하는 계약직 채용공고는 2001년 1020건에서 2003년 4073건으로 299.3%나 증가했고, 파견직 채용공고도 2001년 1120건에서 2003년 1만 3580건으로 무려 1112.5%나 증가했다. 2000년부터 2003년까지 고졸자의 구직자 수 증가율은 대졸자 증가율에 비해 훨씬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그 기간동안 고졸자 구직자 수는 208.3%나 증가했는데, 같은 기간 4년제 대졸 구직자 증가율은 148.2%에 그쳤고, 전체 구직자 증가율 175.6%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상대적으로 청년세대가 많이 참여하는 '청년집약산업'에 고졸인력이 얼마나 흡수되는지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왜냐하면 유럽 등 선진국에서 1980년대 청년실업이 큰 사회문제가 되었을 때, 이런 청년집약산업에서 먼저 고용이 감소했고 그것이 곧바로 극단적인 청년실업률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정보통신, 문화, 오락, 교육, 금융 등의 이른바 '신산업' 분야에서 젊은 세대의 취업률이 높은데, 이 부문에서 청년층 고용증가율은 해마다 크게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과 한국의 청년실업이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청년집약산업'의 고속성장에도 불구, 고졸 이하의 계층은 소외되고 있다는 점이다. 고졸의 경우 전체 취업자 증가율이 1993년∼2000년 8.1%인데 반해, 청년집약산업에서는 5.6%에 머물고 있다. 반면 전문대졸 이상의 경우, 같은 기간 57%의 취업증가율을 보였다. 무려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 학력별로 청년층 노동시장 분절이 극대화되고 있음이 증명된 것이다. 지식기반경제니까 어쩔 수 없다? 입시경쟁에서 탈락했다는 이유로, 혹은 집안형편상 학업을 포기한 청년들은 만성적인 실업에 시달리거나 묵묵히 저임금을 감내하며 살아가야 하는 걸까. 너도나도 '지식기반경제'를 외쳐대는 한국에서 이것은 자연스러운 일로 치부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그러나 이런 주장에 대해 미심쩍은 시선을 보낸다. 우리나라의 직업구조가 이렇게 많은 대졸자들을 포괄할 정도로 첨단산업이 많은지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인 것이다. 이들은 학력인플레와 사회구조적 요인에 의한 하향취업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전북대 사회학과 남춘호 교수는 "과연 지금 대졸자 중 하층을 이루는 계층이 과거 우수한 실업계 고등학교 졸업자들보다 능력이 뛰어난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1995년까지는 고졸자와 대졸자가 취업시장에서 능력을 경쟁하는 체제가 있었지만, 지금은 경쟁 자체가 안된다"고 말한다. 그는 또 "독일의 경우 68혁명 세대가 사회의 중추를 담당하면서 블루컬러가 자긍심가지고 일할 수 있는 사회구조를 만들어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현대나 포항제철에서 블루컬러로 10년 일하면 중산층이 누릴 수 있는 것들, 즉 차 한 대와 집 한 채가 마련됐다는 것이다. 그게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직업성취모델이 됐다. 실제로 1995년까지는 지속적으로 학력별 임금격차가 줄어들기도 했다. 남 교수는 "한국 역시 점차 그런 사회로 변화해가는 중이었지만, 신자유주의 개혁으로 이런 경향은 급격히 꺽여버렸다"고 말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주목해야할 점은 한국에서 소위 '구산업'인 제조업의 생산성과 수익성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유선 소장은 고졸청년실업이 이른바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한 지식기반경제로 산업구조가 재편되는데 따른 결과로만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말한다. "IMF 이후 은행과 공공기업들 구조조정 했지만 그때 잘라낸 인력들을 얼마 후 다시 고용했습니다. 여전히 필요한 인력들이었기 때문이죠. 물론 다시 쓸 때는 비정규직이었습니다. 그리고 제조업체에서는 대량생산과 단순반복작업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반면 아웃소싱 붐과 함께 영세하청 제조업체들이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어 고졸자들이 경쟁에서 밀려난 건 그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학벌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두 괴물 불과 10년 사이, 한국의 노동시장은 고졸청년들에겐 '지옥'으로 변해버렸다. 정규직 비율을 보면 대졸자의 경우는 60.3%, 전문대졸 50.15 고졸 실업계 35.5%, 고졸 일반계 29.2%, 고교중퇴 10.1%로 드러난다.(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2001년) 학력에 따라 철저하게 정규직 비율이 결정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취업경쟁에서 가장 탈락할 확률이 높은 계층은 일반계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계층이었다(전병유·이상일, 「고졸미진학청년층의 고용·실업현황과 정책과제」). 고졸청년들의 고용·실업대책에 정답은 없다. 참고할만한 것은 대부분 앞서 청년실업을 경했던 서구의 정책들이다. 특히 프랑스에서 고졸 이하 청년층만을 대상으로 한 TRACE(Access Route to Employment) 프로그램이나 영국의 뉴딜프로그램(New Deal for Young People) 등은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청년실업정책을 보면 대부분 전문대졸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거나 고졸자를 대상으로 한 인턴제의 경우에도 홍보가 턱없이 부족하고 실효성에도 의문부호가 찍히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서구와 한국의 상황이 너무나 다르다는 점이다. 즉, 극단적인 학벌문화가 만연해있고, 가족 외에 누구에게도 기댈 곳 없는 한국의 고졸청년들과 사회안전망이 발달한 서구의 고졸청년들은 선 자리가 다른 것이다. 학벌주의와 신자유주의라는 두 괴물에 짓눌린 우리의 자화상을 이젠 직시할 필요가 있다. 박권일 기자 kipark@digitalm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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