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한량의 삶이라는 거 쉽지 않아
내 ★이 백수한량인데, 지금 일하는 게 얼추 5개월 남짓 남았으니 그 ★을 이룰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다만, 내 형편을 아는 사람들은 도대체 쥐뿔 암 것도 없는 구라쟁이가 뭔 수로 백수한량의 삶을 살겠다고 주접을 싸는 거냐고 힐난한다. 밥은 누가 꽁으로 먹여준다냐? 술은 안 처먹을 거냐? 벌이는 해야지, 암 것도 안 하고 누구 등처먹어가며 날건달로 살 거냐? 아니, 등처먹을 거시기들이나 있긴 하냐?
아, 이들 팩력배들의 날선 질타가 귓구녕을 쌔리 파 들어오는 통에 결국 중이염이 낫질 않고 요새 귀에서 물이 줄줄 흐른다만, 나도 ★이 있다고! ★을 이룰 권리가 있다고! 그렇게 걱정되면 님들이 날 먹여 살리든가.
하지만 나라고 걱정이 없는 건 아니다. ★도 뭘 먹어야 꾸는 거지, 뱃가죽이 등가죽에 달라 붙으면 ★이고 나발이고 골로 간다는 건 나도 안다. 손가락만 빨고 살 수는 없는 거, 그거 누가 모르겄냐.
근데 돈이라는 게 있으면 있는만큼 쓰게 되고, 없으면 또 없는 대로 굴러간다. 그걸 뭐 먹고 살겠다고 아등바등 돈벌이에 전전긍긍해봤자 버는 족족 털리고 텅장텅장 들여다보며 어디 돈나올 구멍 없는지 짱구 굴리고 앉았으면 그건 백수한량의 자세가 아니다.
그렇게 살려면, 사실 물욕을 버려야 한다. 다행인 건 난 혼자 있을 땐 배부르고 등따시면 뭐 별로 아쉬운 게 없다. 하등 먹고 눕는데 소용 없는 것들에 대해선 그다지 욕심이 없다. 컴터도 워딩하고 인터넷 검색하고 가끔 지뢰나 찾고 프리셀이나 뒤집을 정도면 충분하다. 책은... 좀 많이 쌓아두면 좋긴 하겠다만, 있는 책 2회독 들어가도 앞으로 평생 읽을 수 있을 정도니 그것도 크게 욕심을 낼 일은 아니겠고.
다들 이렇게 살면 그래도 인류가 절멸할 날은 좀 멀어지려나. 근데 그게 되겠냐고. 상대적 소유 구조에서 살면서, 타인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세계에서, 좀 더 나은 무엇에 대한 열망을 없앨 수 있을까? 적어도 저이와 같은 수준의 것을 욕망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스마트폰 시리즈의 연번을 더 이상 늘리지 않을 수 있을까? 신형 자동차를 소유하고자하는 사람은 어떻게 할까? 더 넓은 아파트...보다도 프리미엄이 더 많이 붙을 수 있는 아파트를 찾는 사람들은? 실체도 없는 코인에 매달리면서 떡상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탈성장만이 현존의 세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사람들이 인식하게 되었지만, 그 이해와는 별개로 과연 탈성장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난 좀 의문이다. 지구에서 살아가는 80억 인구 중에 몇 명이 탈성장의 세계관을 삶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을까? 얼마나 이렇게 되어야 지속가능한 세계를 실감할 수 있을까? 이 세계관을 부정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맺음을 해야 할까?
생각해보면, 나 혼자 백수한량으로 사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을 거 같다. 모든 사람이 백수한량으로 살게 되면 그것도 괜찮을 거 같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