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네들 없음 무슨 재미로 사나...

사회과학이라는 것이 진짜 믿을 수 없다는 것,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정설인 듯 하다. 가끔은 '사회' 뒤에다가 왜 '과학'을 붙여놓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특히 사회과학적으로 어떤 개념이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된다고 하는데 현실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을 경우, 헷갈림으로 인한 짜증이 쯔나미처럼 밀려온다.

 

대표적으로 '우익'이라는 말이 그러하다. 개별적 분야에서의 좌익과 우익은 그 포지션에 따라 다른 분야의 좌익과 우익에 그대로 비견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사회과학'적인 용어로서의 '우익'은 현재상황의 방어를 기본으로 하는 다분히 보수적 위치의 집단을 이야기한다. 국가차원에서 볼 때, 우익의 정체성 발현의 형식은 민족주의적 감수성, 국가에 대한 신뢰, 전통의 보존, 도덕윤리의 숭상 등으로 구성된다. 실상 우익이라는 말은 이러한 정체성 발현의 형식을 가진 집단을 그렇지 않은 집단과 구별하기 위해 붙여놓은 레떼르에 불과하긴 하지만.

 

아무튼 사회과학이라는 그럴싸한 포장지를 뒤집어 쓴 채 이러한 개념의 구분을 요구해오는 일단의 아카데미즘에 대해, 거개의 먹물들이 그렇듯이 이러한 개념은 담론을 위한 일종의 전제로 배치된다. 그래서 누가 말하든 '우익' 또는 '좌익'에 대한 개념설정은 논쟁의 시기마다 달리 전치적 규정설정작업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사회에서만큼은 도저히 '일반적'이라고 생각되는 이 '우익'의 개념은 전혀 쓸모가 없어진다. 요컨데, 사회과학의 '과학성'은 21세기 남한사회에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검증이 불가능한 개념의 설정, 정의의 구성... 이것이 어찌 '과학'이 될 수 있겠는가?

 



근자, 대한민국 '우익'들, 스스로의 정체성에 엄청난 혼란을 겪고 있다. 그로 인하여 그 '우익'들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조차 자신이 서 있는 범주가 어디 있는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2005년 3월 들어서만도 대한민국 대표'우익' 두 분이 지들이 '우익'인지 '조익(鳥翼)'인지, 아님 그보다도 못한 '계익(鷄翼)'인지 좀처럼 분간을 못하는, 아니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분간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한승조 명예교수(사퇴한다고 한다)와 지만원 시스템 연구소 소장... 이 두 사람, 친일에 대한 평가를 달리 하면서 일제의 공을 높이 평가하는 위치에 자신을 갖다 놓는다. 역사에 대한 해석이야 역사책 붙들고 앉아 있는 모든 사람들의 숫자만큼 다양할 수 있겠지만 이들의 해석은 다양성의 범주를 떠나 매우 독특할 정도다. 보통 학계에서 이단으로 불리는 매우 기발한 학술적 관점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으나, 이들의 독특함은 한반도 내에서만 독특할 뿐 반도 저편 태평양 서쪽에 위치한 열도 위에서는 꽤 많은 지지자를 확보하고 있는 이론이다. 아니, 사실은 거기서 건너온 것이 맞다고 하겠다. 어쨌든.

 

이들은 민족주의적 감수성, 국가에 대한 신뢰, 전통의 보존, 도덕윤리의 숭상 등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우익의 존재형식과 전혀 다른 차원의 논리를 전개하면서도 우익의 감투를 쓰고 있다.

 

이들은 매우 이질적인 '민족주의적 감수성'을 내비치는데, 자신들의 DNA와 상당한 차별을 보이고 있는 바다 건너 미국 또는 DNA의 유사성과는 별도로 매우 적대적 감정을 가지고 있는 일본과 같은 나라들에 대해, 그들의 핏속에 '반만년 유구한 역사'를 거쳐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곰 여인의 혈통보다 높은 가치를 두고 있다. 그래서 31만세운동의 기념식장에 성조기로 수를 놓고, 이렇게 독립만세가 외쳐졌던 계절에 욱일승천기를 가슴에 아로새긴다.

 

이들이 보여주는 '국가에 대한 신뢰' 역시 매우 독특하기 짝이 없다. 자신들의 '민족적 정체성'의 원류인 미국과 일본을 배신하는 국가는 매우 위험하고 위태로운 국가로 낙인찍는다. 그것이 자신들의 '조국'이라 해도 상관 없다. 지들이 하늘처럼 받드는 미국과 일본의 국가지상주의는 역시 자신들의 그것이 되는데, 그리하여 지들이 하늘처럼 받드는 '국가'가 미국과 일본이 되어버린다. 이 희한한 가치관은 결국 아주 요사스러운 결론을 만들어내는데, 즉 한국이라는 나라는 미국과 일본의 덕분에 이만큼 잘 살게 된 것이므로 미국과 일본에 감사해야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한국사람들은 '빨갱이'들이다라는 것이다.

 

신기한 것은 이들은 자신들의 '우익'성을 이데올로기적 정체성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좌익'의 주장에 대한 반대논리에서 찾고 있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 헷갈림은 대한민국 언론이 조장한 측면이 강한데, 객담이지만서도 사회에 대해서 고민하고자 하는 분들, 찌라시 스트레이트 기사만 붙잡고 있지 말고 제발 철학개론서라도 읽어주길 바라는 맘 간절하다. 아무튼 조선찌라시 같은 찌라시나부랭이의 스트레이트 기사에서 보여주는 착각이 오늘날 대한민국 우익의 뇌에 '보톡스 효과'를 일으켜버린 것이다. 뇌의 주름을 좍좍 펴주는 뇌 보톡스 대한민국 찌라시...

 

예를 들어 '조국과 민족'을 위해 자신의 한 몸 헌신짝처럼 던져버리고 있는 통일운동의 전사들에게 이 찌라시들은 '좌익'의 타이틀을 부여한다. 이유는 딱 하나다. 북한과 친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럼 왜 북한과 친하면 좌익인가? 이 역시 단순명쾌한 이유로 설명된다. 북한은 사회주의 정권이기 때문이다. 누가 북한을 사회주의정권이라고 규정하는가? 그건 당연히 이 찌라시들과 북한 정권이다. 북한정권을 사회주의 정권이라고 함부로 이야기하다가는 욕을 먹게 된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혹시 시간 나면 나중에 다시 설명하기로 하고(사실 뭐 다 아는 이야기 아닌가?), 어쨌든 북한정권의 정체성에 대한 규정이라든가 이러한 북한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구국의 강철대오'와 '불패의 애국대오'를 좌익으로 만들어버리는 대한민국 찌라시들, 이 찌라시를 성경인양 옆구리에 끼고 있는 대한민국 '우익'들, 이러저러한 연결고리들이 결국 이상한 뇌 구조를 가지고 있는 자들을 '우익'의 반열에 합류시킨다.

 

결국 한승조나 지만원 같은 이들은 일반이 인정하는 '우익'의 이데올로기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익'이라고 이야기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경로로든지 '좌익'이라는 레떼르가 붙은 집단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만으로 '우익'의 입지를 유지하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한승조 지만원 류의 행태는 자신들 스스로가 내세울 만한 것이 쥐뿔도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가끔 지들도 내세울 것이 있다, 또는 지지세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김홍도 목사같은 같은 류의 돌덩어리들을 동원할 때도 있다. 그래봐야 거기서 거기지만...

 

암튼 대한민국 우익들 이래 저래 재밌는 인간들의 모임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 재미가 지들만 재밌고 말면 괜찮은데, 남들 신경질나게 만드는 재미라 거시기하긴 하다만, 가끔은 그런 생각도 한다. 바로 이런 이들이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만들어주는 사람들이 아닐까하는 그런 생각. YS가 잊을만하면 사람들에게 아무 생각할 필요도 없는 웃음거리를 안겨주듯이, 이들은 다른 이들에게 한 순간 분노라는 감정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갑다. 오래도록 사셔야할텐데... 이런 재밌는 분들이 갑자기 사라지면 좀 거시기 하지 않을까? 화낼일이 없어지면 그거 좀 심심하지 않을까??? 풋~!

 

[덧붙여] 한승조... 해명 겸 사과문을 언론사에 보냈다길래 봤더니, 이건 다른 사람들에게 사과한 것이 아니라 고대에게 사과한 거였구만... 그걸 고대 총장과 이사장에게만 보내면 되지 왜 언론사에는 뿌렸을까??? 하긴 30년 넘게 봉직하도록 해주고, 퇴직한 후에도 명예교수씩이나 안겨주면서 먹고 살 길 보장해준 학교에 미안하기도 했겠다만, 이렇게 되면 열받은 국민들을 두 번 엿먹이는 거잖아... 아무튼 참 노인네 성격도 괴팍하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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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07 11:06 2005/03/07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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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무리봐도 한승조, 지만원을 위시한 양반들. 쾌나 심심했나 봅니다. 자기네들이 떠들어도 별 신경을 세상이 안써주니 그래서 투정부리는 어린아이의 심정으로 한 것 같아요. 이래서 나이들면 애처럼 변한다는 말이 그리 뻥은 아닌듯한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