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거야???

웹서핑하다가 "주옥"같은 글을 발견하면 마치 보물을 얻은 양 횡재한 기분이 들기 마련이다. 게다가 사진이나 그림 같은 것에 재주가 없어 블로그를 휘황찬란하게 꾸밀 주제도 되지 못하는 행인의 입장에서는 글 하나로 진면목을 발휘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확인할 때마다 한편 주눅이 들면서도 한편 희망을 가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웹서핑을 하다가 "주접"같은 글을 발견하면 아주 기분이 ?x하다. 뭐 이런 글을 볼 때마다 혹시 내 글이 이렇게 주접같은 글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뜨끔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지만, 어쨌든 그런 글을 보면 어쩔때는 막 화가 날 때도 있다. 혹은 아주 웃겨서 어이가 없을 때도 있긴 하다. 오늘 그런 글 하나를 보게 되었다.

 

자유기업원 홈페이지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거기 홍보팀장이라는 사람이 쓴 "X파일과 프라이버시"라는 글이 눈에 띄었다. 직업병은 속일 수가 없는지라 냉큼 그 글을 클릭해서 읽게 되었는데, 도대체 자유기업원이라는 돈 많고 잘나가는 자본가들의 씽크탱크에서 그것도 거창하게 홍보팀장까지 하고 계신 분이 이렇게 허접한 글을 쓸 수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유기업원에 펀드 제공하고 계신 여러분들, 자신들이 제공한 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잘 확인하실 일이다. 노동자들 쌔빠지게 굴려서 번 돈으로, 이데올로기 재생산을 위해 피눈물을 흘려가며 알토란 같은 그 돈을 투자할 양이면 좀 그럴싸한 곳에 투자를 해야 본전생각은 덜 나지 않겠는가 말이다.

 

사실 이런 글에 평을 해야하는지는 좀 의심스럽다. 그냥 웃고 넘길 수도 있겠으나, 행인은 그야말로 이럴 때는 한 번 씹어주고 싶어서 시간과 정렬을 남겨놓는 사람이므로 몇 마디 말을 좀 해줘야 겠다. 그 사이트에 답글이라도 남길까 하다가 어차피 보는 사람도 별로 없는듯 해서 그냥 이쪽에 올린다.



이 친구, 연애인 X파일 이야기 쭉 하다가 뜬금없이 질문을 던진다. "과연 프라이버시보호가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막연히 프라이버시 보호를 좋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하면서 던진 질문이다. 뭐 사실 이것은 근본적인 질문일 수도 있다. 이 질문은 곧 "프라이버시권은 절대적 권리인가?"하는 질문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홍보팀장씩이나 된 사람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인식 수준은 Warren-Brendeis의 논문이 발표되었던 1890년대의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다. 은닉의 권리, 혹은 '홀로 있을 권리(the right to be let alone)'로 정의된 제1세대 프라이버시권의 이념은 물론 현재에도 유효하다. 새롭게 정의되었던 프라이버시권에 관련된 이후의 논의들은 기본적으로 이 '홀로 있을 권리'의 형태가 어떤 식으로 사회변화에 적응되어야 하는가의 논의들이었기 때문이다.

 

예의 그 필자는 프라이버시에 관한 논란을 "사생활에 관한 정보를 숨기거나 찾는 것에 대한 논란"이라고 정의해버린다. 정의 자체를 이렇게 내려버리고 나자 이후 논의되는 개인정보의 보호나 자기정보통제권 같은 곳에서 삑사리를 내고 만다. 현대에 들어와서 프라이버시권은 정보에 대한 통제관할권을 누가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로 전환된다. 단지 한 쪽은 숨기고 다른 한 쪽은 찾고하는 숨바꼭질 놀이가 아니라 프라이버시권은 권력의 문제로 부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필자, 권력에 대한 논의는 아예 자신의 생각범주에서 제외시켜버렸다.

 

전제를 이렇게 형성시켜놓고 나면 프라이버시를 보호하자고 하는 사람들은 과거로 회귀하는 사람들이라는 결론이 쉽게 나와버린다. 필자 역시 이러한 논리전개를 그대로 답습한다. "전통적으로 프라이버시는 개인의 인신과 재산권의 보호선상에서 보호되었다"는 그의 판단은 단지 과거의 현상만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프라이버시에 대한 단상을 그대로 읊어놓은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문제의 포인트를 잘 못 짚고 있다. 그가 이야기한 "전통"은 현재에도 미국의 프라이버시보호 논의의 핵심이 되어 있고,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법률체계에서조차도 "개인의 인신과 재산권"의 차원에서 프라이버시권 보호를 주로 여기고 있는 곳이 미국이다. 그런데 이러한 관점과 법률체계로는 도저히 더 버틸 수 없다는 판단이 강력하게 힘을 얻고 있고, 더구나 실제적으로 이러한 관점과 법률체계로 해결할 수 없는 개인정보유출사건들이 속출하고 있어 미국에서도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연방차원의 통합입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판국이다. 하물며 미국이 이러한 정도인데, 프라이버시권 보장과 개인정보보호에 있어서 그동안의 논의구조가 미국과는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재에서 필자와 같은 전제를 세운다는 것은 별로 적절해보이지 않는다.

 

정보주체에게 자기정보통제권을 강력하게 부여하려는 것도 그 이유에서이다. 자기정보통제권의 성격은 얼핏 보아 문제의 책임에서부터 해결까지를 본인에게 부여하도록 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으나, 정보통신사회에서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자기정보통제권의 강화는 별도의 맥락을 가진다. 즉, 사회적으로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형태의 정보유통과정을 보장하겠다는 의지의 다른 모습인 것이다. 급속하게 정보가 유통되는 현대에서 자기정보통제권을 보장한다는 것은 정보주체를 둘러싼 사회 전반에서 물적, 법적으로 그러한 보장이 이루어질 수 있는 제반요건이 갖추어질 것을 요구한다. 바로 이 부분에서 현대의 프라이버시권은 단지 개인에게 전속된 일신상의 인신권 내지는 재산권의 한계를 넘어 사회적 차원에서 보호해야하는 사회권의 일종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리하여 침해의 구제형태는 민사상의 배상 뿐만 아니라 침해행위를 한 자에 대한 공권력을 동원한 처벌로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 필자, 자기정보통제권을 부여하면 엉뚱한 일이 발생한다고 한다. 즉, 개인이 자기정보통제권을 강하게 가지고 있을 경우 "고용계약을 체결할 때 과거 범죄 기록이나 건강에 대한 정보 등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를 숨기려고 할 것"인데 이것은 "상품판매에 사기를 허용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 정보가 제대로 반영되었다면 고용주는 피고용인에게 낮은 임금을 제공하거나 고용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필자도 인정하고 있다. 불리한 정보를 감추고 싶은 것은 당연히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기업이 채용을 함에 있어서 왜 범죄기록이나 건강기록을 확인해야할까? 특수한 직종의 고용인 경우, 예를 들어 유독개스나 분진 등이 많이 발생하는 사업장이기에 어쩔 수 없이 폐질환 등의 병이 있는 사람을 채용할 수 없다고 한다면 건강기록을 확인할 필요가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병력사항을 굳이 회사가 알아야할 이유가 뭘까? 전과자를 채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무장한 업체라면 몰라도 굳이 업체가 전과사실을 알아야할 이유는 뭔가?

 

당연히 그것은 그들의 불리한 정보를 바탕으로 고용주는 피고용인에게 낮은 임금을 제공하거나 고용계약을 체결하지 않기 위함이다. 고용계약이 부당하게 체결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약점을 잡혀서 그 약점으로 인해 고용과정에서 차별을 받는 것은 당연한 걸까? 필자는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나보다. 이런 사고방식으로는 시국사범 이명박을 채용해서 30대에 이사자리까지 쥐어준 정주영의 경영방식은 벤치마킹 할 수 없다. 정주영은 굴지의 현대 왕회장이 되었고, 이 필자는 그래서 자유기업원의 홍보팀장에 머물게 된다. 자유기업원 정도에서 홍보팀장이 될 정도라면 자본가들이 돈이 되면 뭐든 한다는 사실을 몰랐을리 없다. 그넘이 전과자건 뭐건 간에 이윤확보에 득이 되는 인간이라면 누구든 자본가는 그를 채용하는 거다. 거기에 전과기록이니 뭐니 하는 것은 별로 의미있는 정보가 아니다.

 

여기까지도 이상하게 논리를 전개하던 이 필자, 연예인들의 개인정보를 불법으로 수집한 한 기업에 대해 옹호논리를 전개하기 시작한다. 연예인들의 사생활이 "광고기획사와 광고주의 이익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연예인에 대한 정보 수집이 잘못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이 필자의 주장이다. 자기정보통제권을 부당한 것으로 보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자기정보통제권을 중요한 것이라고 보는 입장에서는 광고기획사가 연예인들의 민감한 사생활 정보를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은밀하게 수집한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이건 연예인 개인의 사생활로 인하여 발생할지 모르는 향후 자기 업체의 손실을 사전 보상하겠다는 행위인데, 마치 아직 발생하지 않은 범죄의 증거를 모으기 위해 미리 모든 국민의 열손가락 지문을 채취하는 대한민국 정부의 발상과 똑같은 행위이다. 누가 광고기획사에게 그런 권한을 주었나?

 

수집행위에 대하여 광고기획사에 면죄부를 부여한 이 필자는 문제를 명예훼손쪽으로 몰고간다. 유감스럽게도 이 홍보팀장께서는 형법상 명예훼손의 개념을 매우 혼동하고 계신다. "명예훼손인지 아닌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 보고서에 기재된 연예인들의 정보가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구분해야한다. 물론 이 정보들이 진실이라면 이 사건은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한다. 웃기는 소리다. 몇 줄 짜리 글을 쓰더라도 지가 하는 말의 근거가 맞는지 틀린지는 좀 확인해보고 써야 한다. 형법상 죄를 구성하는 명예훼손이 어떻게 되는지 한 번 보자.

 

형법 307조 제1항에는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제 2항에는 "공연히 허의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되어 있다. 진실이건 사실이건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 필자가 왜 자꾸 거짓인지 사실인지가 중요하다고 하는 걸까? 그건 다름 아니라 거짓과 사실 여부가 종국에 "이들과 계약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이익을 창출"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결론은 바로 이거다. 모든 행위는 그것이 이익을 창출하게 되면 선이고, 그렇지 않으면 악이다. 연예인들의 개인정보는 그것이 허리하학적인 민감한 성적 사생활에 관한 것일지라도 기업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공개되어야 한다. 이것이 자유기업원의 홍보팀장인 필자의 주장인 것이다. 그 주장의 끝에 필자의 입장에서는 가장 타당한 결론이 도출된다.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적은 양의 (개인)정보보다는 보다 많은 양의 정보가 유통될 때 훨씬 더 바람직할 것이다. 이런 사실을 고려할 때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프라이버시 보호의 확대가 반드시 사회적으로 이롭다고 단언할 수 없다"

 

자유기업원 홍보팀장 하느라 힘든 건 알겠는데, 정말 충심에서 우러나오는 충고 한마디 해야겠다. 댁들이 그렇게 울궈먹는 "자유"가 뭔지 좀 더 알아보라는 거다. 적어도 부르주아지적 "자유" 이데올로기에 충실한 자라면, 그 이데올로기로서의 "자유"가 도대체 어디서 출발했는지는 좀 알고 떠들어주어야 한다. 사실 진보주의자 또는 좌파가 프라이버시보호운동까지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 운동 해야하는 당위를 이데올로기적 함의에서 확인하는 작업, 이거 매우 골치아픈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이야말로 사실은 프라이버시보호운동에 진짜 적극적으로 뛰어들 여지가 충분하다. 왜? 그들이 주장하는 "자유"가 바로 개인의 자유요 인신의 자유요 구속을 거부하는 운동의 구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자유주의자들의 상징과 같은 자유기업원의 홍보팀장이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부정하는 이러한 "평등주의적 발상"을 하는 것이 자못 놀랍기 그지없다. 정보를 다 나눠쓰자는 것, 이거 정말 소중한 이야기다. 단, 조건이 있다. 자유롭게 나눠쓸 수 있는 정보는 개인정보가 아니다. 그것은 기업의 정보이고 국가행정의 정보이다. 노동자들에게는 일체의 정보도 나누어주지 않으면서, "노동자들이 기업경영에 끼어드는 것은 부당한 것"이라는 주장만 하고 자빠져 있는 대한민국의 "자유" 기업들, 국민세금으로 행정하면서 행정정보를 감추는데만 급급한 "자유민주주의" 정부, 진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나누어야할 곳은 바로 이 기업과 정부이다. 쓸데없이 개인의 은밀한 사생활까지 너도 먹고 나도 먹고 다 함께 나누어먹자고 주장하는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자들이 "자유기업원"이라는 이름을 걸고 활동하고 있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그러니까 대한민국 기업들, 돈 열심히 벌어 국익을 창출하기 위해 불철주야 애쓰고 있는데도 욕이나 처먹고 있는 거다. 홍보팀장님, 열심히 사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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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04 00:03 2005/03/04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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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커헉 이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눈이 썩을 것 같아요;; 제말이 그 말이에요! 사회운동에서 정보운동같은 거는 당연히 자유주의자들의 소임이 아닌가! 암튼 눈 썩겠습니다-_-;;

  2. 앗~! 덩야님... 정말 올만에 저의 집에 납시었군요~~ ^^
    요즘도 글 잘 보고 있답니다. 아... 덩야님 집에 갈 때마다 만화가 보고시포요... ㅜㅜ

  3. 앗 덧글을 정말 올만에 쓴 거였군요 글은 다 읽는데^^;;
    바빠서 만화책 못 보시는 거예요? 빌리러 갈 여유가 없으신 건가요?
    제가 갖고 있는 만화책 중에 보고 싶은 거 있으심 빌려드릴께요~ 말씀만 하세요.
    근데 확실히 별로 없으실 듯-ㅅ-;;

  4. 자유기업원에는 시장의 원리가 아직 덜 적용돼서 저런 글을 써도 살아남을 수 있군요... +_+
    어서 빨리 자유기업원에도 철저한 능력 중심의 시장 원리가 도입돼서 저런 수준의 사람들은 퇴출되야 타의 모범이 될텐데 말이죠.

  5. 덩야/ 감사함돠~~!! *^^*
    조커/ 완전히 엉망진창이죠. 능력중심의 시장원리를 입에 달고 사는 자유기업원인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도 않은가봐요. 열심히 일하던 남들 퇴출시키는 것은 그렇게 쉽게 하면서도 지들은 저러고도 살아남네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