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전화...

민원에 관련된 전화가 많이 들어온다. 사실 정책연구원이라는 자리가 민원업무 처리하는 곳이 아니지만 기왕 받은 전화, 항상 친절하게, 혹시 또 좋은 이야기거리라도 있을까 하면서 잘 받을려고 노력한다(그렇더라도, 안내 데스크에서 이런 민원성 전화는 좀 알아서 처리해주기 바란다. 가끔은 업무마비도 일어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고 전화를 중간에 끊어버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전화 받다보면 황당한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최근 전화주셨던 분 중 하나는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분야를 망라한 이분의 관심도에는 높은 평가를 드릴만 하겠지만. 관심과는 별개로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계속 하는 것(아마도 신문이나 언론에 나온 이야기를 읽고 하는 이야기인듯...)과 잘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엉뚱한 신변잡기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하는 판이라 답답하기 이를데가 없다. 주변 연구원들 중 대부분이 이분의 전화를 한 번씩은 다 받아 보았는데, 매우 난감해하긴 마찬가지다. 사실은 좀 치료를 요하는 수준이라고 보인다...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전화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다른 사람이 전화를 받았는데, 한 노인네가 민주노동당은 호주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길래, 당연히 폐지방침이라고 이야기를 했겠다. 대뜸 이 노인장이, 그럼 여자들도 다 군대 보내고, 요즘 애도 잘 낳지 않고 부모봉양도 안 하겠다고 하는데 그런 거 처벌하는 법도 만들고 그래야 하지 않느냐고 항의를 하셨단다. 지난 연말에는 "국보보호법을 없애면 어떻게 하느냐?? 우리 문화재는 뭘로 보호하느냐???"는 격렬한(^^) 항의를 받은 바도 있다. 국보보호법이라는 법이 있었나....

 

그러나 가끔은 가슴이 짠한 사연들이 있다. 오늘 걸려온 전화도 그런 거였다. 전화를 한 분은 대뜸 "고비처 관련법이 제정 되었습니까?" 하는 거다. 약간 당황해서 "제가 담당하는 분야는 아니라서 확실하게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했더니 그거 어떻게 되는 건지 꼭 알아야겠다는 거다. 그래서 고비처 논의는 문제가 많아서 물 건너 갔고, 그게 공수처라는 이름으로 다시 논의는 되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통과가 된 것은 아닌 것으로 안다 등등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그 법률이 통과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아쉬워하면서 민주노동당 같은 정당이 그런 부처를 만들어야하지 않느냐는 거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그런 부처 백날 만들어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그보다는 다른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이렇게 이야길 했다.

 

전화하면서 참 뭔가 내막이 있는 거 같다는 궁금증이 일었는데, 이 분이 이야기 하기를 자기가 당한 억울한 사정이 고급공무원들과 관련이 있다는 거다. 대충 정리해보면 어떤 사건이 있어서 검찰에 고발을 했는데, 검찰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고, 재고발 했지만 또 역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얼마후 새로운 증거를 찾아서 다시 고발을 했지만 고검에서 이미 무혐의 처분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수사를 하지 않는다. 접수는 해줬단다. 국가인권위원회와 법원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하고, 시민단체에서는 뾰족한 방법을 내주지 못한단다. 답답한 노릇일 거다. 그 답답함이 전화기를 넘어 행인까지 답답하게 했다.

 

이런 전화를 받을 때마다 무능력함에 가슴 아프다. 물론 내가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래도 가슴이 아픈 거는 어쩔 수 없다. 정치인들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만드네 못만든네 싸우는 고비처니 공수처니 하는 것들을 민중들은 혹시 저런 것이 마련되면 자신들의 억울한 사정을 풀어줄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난 후 그런 기구들이 자신들의 억울한 사정과는 전혀 상관 없는 정치적인 일들만 판판히 벌려놓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힘없는 자의 설움은 배가 되고 좌절과 절망으로 치닫게 된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희망을 주는 정치... 이런 거 하겠다고 모인 사람들 틈바구니에 섞인 행인은 오늘도 답답한 마음에 전화 한 통을 한 어떤 분에게 희망을 주기 보다는 또다시 답답한 마음만 가득하게 만들었다. 그 답답함을 같이 하긴 했지만, 나는 오늘 또 누구에게 어떤 희망을 줄 수 있는지, 정말 그럴 수 있는지 많은 의문이 드는 그런 하루가 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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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28 17:18 2005/02/28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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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읽고 있자니...'참 어렵구나. 이렇게 찔금찔끔 어느 세월에...' 라는 생각이 드네요...근데 고비처, 공수처가 뭐에요?

  2. 고비처 => 고위공무원비리조사처
    공수처 => 뭐 그게 그거임.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뭐 대충 이런 이름으로...

  3. 저도 사무실에 있다보면 하루에도 몇 통씩 그런 전화받는데요.
    그러지말아야지 하면서도,
    자꾸 같은 얘기 되풀이하시는 분들한테 짜증만 부린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