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의 양심불량

미디어 다음에 난 기사를 보신 분들이 있을 것이다. "여당의원, 일본법 그대로 베껴 법안 발의"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 되었다. 기사 그대로 이 의원께서는 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지난 연말까지 불과 8개월이 채 못되는 기간동안 30개가 넘는 법안을 발의했으며,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법률안을 만들어 놓았다고 자랑했다. 지난 16대 국회 당시 4년간 48건의 법안을 발의한 조웅규 의원의 기록은 불과 10개월 정도 의정활동을 한 이 의원에 의하여 깨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만 그렇게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결과가 삑사리로 이어지고야 말았으니 이 아니 통탄할 노릇인가...

 

열린우리당 정성호 의원이 그 당사자이다. "법률제조기"라는 별명에 걸맞게 2004년 의정활동 중 법안을 가장 많이 발의한 의원으로 언론으로부터 많은 칭찬을 받은 바 있다. 열심히 한 만큼 칭찬 받는 거, 그거 당연한 일이다. 국회의원이 해야할 3대 책무가 국정의 감사, 예산, 입법활동인데 그 중 하나인 입법활동을 왕성하게 한다는 것은 매우 권장할만한 일인 것이다. 그러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아주 우습다는 것이 문제다. 어찌나 우스운지, 행인의 안테나에 걸려들게 되었고, 그래서 지난번에 이 의원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하겠다는 이야기를 얼핏 블로그에 올렸을 정도였다("매우 재밌는 기사" 참조)

 

정성호의원이 행인의 안테나에 걸린 결정적 계기는 지적재산권 관련 법안의 "친고죄 ⇒ 비친고죄" 개정사건이었다. 특허법, 의장법, 온라인디지털콘텐츠법,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 저작권법 등 무려 5개의 법률을 한꺼번에 개정발의하는 엄청난 작업을 이 의원께서 하신 거였다. 지적재산권 침해에 대한 구제를 왜 친고죄로 했는지에 대해서는 진보블로그 안에서도 다룬 사람들이 상당히 많으므로 별도의 설명을 하지 않겠지만, 사업자들의 투정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그 불만을 법안으로 바로 상정하는 정성호의원의 센스는 실로 발군의 그것이었다. 그래서 각각의 법률개정안을 들여다본 결과, 내용은 매우 불만스러운 것이었다. 전직 변호사 출신의 이 법률전문가는 왜 지적재산권 관련 법들이 친고죄규정을 두고 있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도 없이 개정안을 만들었음이 눈에 확 보였고, 게다가 개정 내용이라는 것이 조문의 삭제 내지는 단어 하나 변환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변호사출신이라는 전문성이 무색하게, 이 의원의 개정안은 반의사불벌죄와 친고죄를 혼동하기까지 하고 있었다.(이에 대해서도 미디어 다음이 기사로 다루었다.)

 

다른 법률들도 죄다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밥을 먹었으면 설겆이 하는 사람도 있어야하는 법. 반드시 고쳐야할 법률을 고치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잘못된 것이 없다. 그러나 기왕 고치려면 제대로 고쳐야 한다. 국회의원이 법률안을 올려 그 법률이 통과되면, 그 때부터 모든 국민들은 해당 법률에 따라 자신의 생활방식을 결정해야 한다. 국민의 복리민복에 기여하지 못하는 법률을 만들어내면 그 때부터 고생하는 사람들은 국민뿐이다. 법이 개판으로 만들어져 국민들이 피해를 입어도 어느 국회의원 하나 지금까지 지가 만든 법에 책임을 지고 사과하는 놈 하나도 본 적이 없다. 사과하고 싶지 않으면 그런 쓰레기같은 법들을 만들어내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성호라는 의원, 이런 원칙적인 부분에는 관심이 없이 컨베이어벨트에서 제품 조립하듯 법안을 만들어왔다. 워낙 바쁘셔서 원칙이니 뭐니 하는 잡다한 것에까지 신경쓸 경황이 없으셨던듯 하다.

 

그러다가 결국 대박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일본의 개인정보보호법을 그대로 베껴 법률안을 만들었다는 거였다. 사실 이 부분에서 행인은 크게 자존심을 상할 수밖에 없었다. 행인을 비롯해서 수많은 활동가와 전문가들이 달라붙어 4년간 작업을 하고, 법 조문을 만드는데만도 1년을 꼬박 바쳐 밤샘회의를 일주일마다 한 번씩 하면서 만든 개인정보보호법을 민주노동당 노회찬의원 발의로 국회에 들여보냈는데, 발의를 위한 공청회를 한지 불과 2달만에 생판 개인정보보호법에 관해 법률작업을 한다는 소문조차 없었던 한 의원실에서 같은 규모의 법률안이 나왔다는데야 경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거다. 도대체 그 의원실에는 천재들만 있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수년 전부터 개인정보보호법을 준비해왔단 말인가?

 

허겁지겁 정성호의원실에서 나왔다는 법안을 검토한 것이 지난 12월이었다. 내용을 보니 이건 도저히 법률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정도였을 뿐만 아니라, 조문의 문장구조나 사용된 단어가 매우 생소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일본법안을 들여다보았더니 아뿔사... 이건 일본법의 재판이었다. 목적과 정의, 원칙의 부분은 일본법을 그대로 베꼈고, 위원회의 구성은 국가인권위원회법을 그대로 베끼고, 분쟁조정위원회부분은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을 그대로 베꼈다. 도대체 일관성 없이 법률의 구조가 엉망진창이 되어있었는데, 처음에는 보고 그냥 웃었지만 검토가 거듭될 수록 화가나기 시작했다. 만일 다른 법률들이 올라오지 않은 상황에서 개인정보보호법을 조속히 마련하라는 여론에 밀려 이 법이 의결되고 시행되었다면 어떤 일이 발생했을까...

 

노회찬의원이 발의한 개인정보보호법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참여자들은 의도적으로 일본법을 배제하기 위해 노력했었다. 우선 일본의 개인정보보호법은 언론사 등의 이해에 얽매여서 본래의 취지를 잃게 되었고, 현존하는 행정기관에 그대로 개인정보보호기능을 주고 있는 바람에 그다지 법률의 제정을 통한 효과를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성호 의원, 자신의 잘못에 대해 사과를 하기 보다는 일본법이 선진법이라서 많이 차용했다는 어색한 변명을 하고 있다. 일본법에 대해 검토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제품이 잘못되면 리콜이라도 한다. 그런데 이 법률제조가께서는 지 제품에 대해 책임도 지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국민의 세금을 받아먹으면서, 정작 하는 짓이 국민들을 힘들게 만드는 일이라면 그런 정치인들은 주어터져도 할 말이 없다. 정성호의원의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수많은 사람들이 글을 올렸었는데, 한 때 관리자가 항의성 글들을 왕창 삭제했다. 그런데 현재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항의를 하고 있고, 게시판 글 삭제에 대해 기사가 나가다 보니 관리자가 손을 대지 않고 있는듯 하다. 국회의원이 고스톱 쳐서 따먹은 자리가 아니라면 그에 대한 책임을 가지지 바란다. 그거 자신 없으면, 조용히 4년 보내다가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주는 것이 오히려 국민을 위해서라도 바람직하다. 괜히 설치다가 지는 세비 다 받아 챙기고 사라진 그 자리에서 환장할 심정으로 정신 심란해지는 국민만 남게 된다.

 

[여담] 한국의 법률체계는 원천적으로 일본법체계를 그대로 계수했고, 해방 이후 지금까지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해야했다. 그런데 21세기가 도래한 지금 또다시 외국법률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가져와 우리 법처럼 써먹으려고 한다는 발상 자체가 국적을 가진 국회의원이 할 짓이 아니다. 더구나 그 법률이 정말 없어서는 안 되는 그런 법률도 아니고, 지 나라에서조차 만신창이가 된 법률이었다면 이건 더 할 말도 없다. 언제까지 실정에 맞는 적확한 법률체계에 대한 고민 없이 남의 것만 가져다가 베껴먹을려고 하는가? 세상 모든 일이 그렇지만 언제나 날로 먹으려는 심뽀 때문에 여러 사람 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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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21 08:11 2005/02/21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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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말도 많고 탈도 많은 "개인정보보호법"의 탄생비밀이 그거였다니..충격이야~ 충격~
    누리꾼들이 우르르 법안통과 반대운동이라도 벌여야하겠지요? 암암~

  2. 계속 그렇게 한다면 국회의원에게 지급되는 엄청난 세비가 넘 아까우니 민사소송이라도 해야되지 않겄습니까?
    제대로 된 검토 한 번 없이 의원 실적용으로 만들어 놓은 법안이 넘쳐나고 있는 속에서 만약 국회가 제대로 작동된다면 국회법에 의거해서 해당 의원을 제명했으면 더욱 좋을 것을...ㅜㅜ

  3. 미갱/ 사회인권단체들인 준비한 법안이 노회찬의원 발의로 올라가 있습니다. 이게 통과가 되어야겠죠.
    bto/ 이거 면책특권이 적용되는 부분인지라 소송이 원천적으로 안 될 겁니다. 거기다가 당사자 적격을 인정받기도 사실상 어렵구요. 의원제명같은 기능이 살아있었다면 이런 넘들이 발을 붙이기도 어려웠겠죠... ㅡ.ㅡ+

  4. 정성호...그나마 괜찮은 정치인이라 생각했었는데...쯧쯧 참 신물나게 하네요

  5. 에이즈예방법의 신고, 보고체계도 일본이랑 참 닮았는데 쯧. ㅡ.ㅡ;;
    근데 안 좋은 거 찾아서 고치는 건 일본이 먼저 하더라구요.

  6. 수고 ^^

  7. 낯선~~!!!! 도대체 주소가 어디여????

  8. 라이브 블로그와 함께 열리는 제2회 블로기 어워드에, 행인님께서 블로그 디자인상 포탈 부분의 최종 후보 3인중의 한명으로 선정되셨습니다.

    시상 여부는 행사 당일에 발표되게 되지만, 후보에 오르신 모든 분들이 행사장을 찾아주셨으면 해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참석이 불가능하시다면, 저의 블로그의 메일 주소로 전화번호를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수상시에 행사장에서 전화연결을 할 예정입니다.

    축하드리구요, 행사장에서 뵐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