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의 계두지행

(민주사회를 위한 변론 1월호에 실린 컬럼입니다)

 

 

노동부의 계두지행(鷄頭之行)

 

가끔은 대한민국 정부부처의 이름이 제대로 붙여져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각 부처의 이름과 그들이 하는 일이 별로 어울리지 않아서이다. 대표적인 예가 노동부. “근로조건의 보호, 고용보험 및 산재보상보험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곳이라고 자임하는 그곳에서 종종 격에 맞지 않는 일들을 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2004년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고용불안정을 가속화할 수 있는 비정규직 법안을 내놓은 것은 약과에 속한다. 노동3권을 보장하는데 어느 부처보다도 앞장서야할 노동부가 공무원노조 탄압의 선봉에 섰다. 장기분규사업장에 대한 관리감독의 소홀은 여전하고, 국정감사에서까지 지적을 받은 대기업의 고강도 노동착취에 대한 조사도 흐지부지 결말을 맺지 못하고 있다. 지적하자면 한두 건이 아닐 것이다.

 

노동부가 ‘근로조건의 보호’라는 본연의 업무는 팽개친 채 사용자의 이익보장에 앞장서는 듯한 모습은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바람직하지 못한 짓을 하고 있을까? 사회 전반의 정치경제적 사정이 노동부로 하여금 근로조건의 보호보다는 근로조건의 악화를 조장하도록 만든 것인지, 혹은 그 외의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항상 그것이 의문이었다. 그런데 이 의문을 단번에 해소시켜주는 사건이 발생했다. 노동부가 12월 16일 배포한 ‘2004년 신노사문화 대상기업’을 선정하여 포상하겠다는 보도자료가 그 단서였다. 노동부가 ‘신노사문화 대상기업’으로 선정한 10개 기업의 면면을 살펴보던 중 왜 노동부가 그동안 사용자의 이익보장에만 앞장서게 되었는지를 알게 된 것이다. 결론은 개념이 없다는 것이다.

 

노동부가 소위 ‘근로조건’이라는 현장노동자들과 가장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는 단어의 개념만 제대로 알고 있었더라도 오늘날과 같이, 시쳇말로 ‘뻘짓’은 하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마구 솟구친다. 노동부가 생각하고 있는 ‘근로조건’과 일반이 알고 있는 ‘근로조건’은 그 의미 자체가 달랐던 것이다. 일반이 알고 있는 ‘보호’되어야할 ‘근로조건’이라는 것은 노동자가 노동을 함에 있어서 최적의 환경을 제공받고, 더불어 보장된 권리를 모두 향유할 수 있는 그런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노동부가 생각하고 있는 ‘보호’되어야할 ‘근로조건’은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앞당기고 사용자의 이윤을 극한으로 성장시키는데 방해가 되지 않을 최적의 조건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정보인권과 관련하여, 노동자 감시의 표본으로 2004년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기업이 바로 KT였다. 지난 12월 14일 발표된 ‘KT 상품판매 전담팀 인권침해백서’에 따르면 KT에 근무하던 노동자들 상당수가 감시, 미행, 소외 등의 원인으로 인해 우울, 긴장, 긴장, 공포, 신경과민, 피해의식 등 정신적인 고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2003년 한 해 동안 무려 5505명의 명예퇴직자를 양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다. 이처럼 극한의 노동자탄압과 감시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사회인권단체들이 공동으로 KT문제해결을 위해 행동했던 바가 있으며, 회사측의 감시와 미행 등으로 인하여 결국 정신질환을 얻어 산재판정 승인을 받기까지 한 사례가 있었다.

 

그런데 이같은 극단의 노동자 인권탄압을 자행한 기업이 노동부의 ‘신노사문화 대상기업’ 대통령상 대상에 선정되었다. “노사갈등의 대명사가 신노사문화 선도기업으로” 재탄생했다는 것이 선정 사유였다. 98년, 00년의 대규모 파업을 겪은 후, ‘노사불이(勞使不二)’의 정신으로 2001년 이후 무분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노사협력관계 개선을 위한 공동기구를 설치하여 상생의 노사문화를 구축하고 있단다. 그러므로 KT는 “대립적 노사관계를 협력적 노사관계로 전환시킨 대표적인 모델케이스로 우리나라의 협력적 노사분위기 확산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기까지 한단다.

 

노동부는 KT의 무분규 상태 유지가 노동자들을 정신이상자로 만들만큼 가혹한 노동자 감시와 탄압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KT 상품판매 전담팀 인권침해백서’가 발간된 것은 12월 14일이었다. 그런데 노동부가 ‘신노사문화 대상기업’을 발표한 날은 그로부터 딱 이틀이 지난 12월 16일이었다. 워낙 큰 사안이었기 때문에 노동부가 KT 노동자들에 대한 백서의 발간을 몰랐을 리가 없다. 인권단체연석회의는 백서의 발간에 대해 보도자료를 배포하였고 노동부에도 그 사실을 알렸다. 그런데 이러한 정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부는 불과 이틀이 지나 ‘노동탄압’의 대명사를 ‘신노사문화’의 대명사로 자리매김 한 것이다.

 

결국 이러한 상황을 점검해볼 때 대한민국 노동부는 제정신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온다. 노동자 감시와 탄압이 ‘신노사문화’이며, 노동자를 정신질환자로 양산해내는 기업이 신노사문화의 ‘대표적인 모델케이스’라고 생각하는 노동부의 도착증은 정밀한 정신감정이 필요한 수준이다. 노동부의 이러한 태도의 원인은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의도적으로 이러한 짓을 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진짜 개념이 없어서거나. 전자라면 노동부 관료들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사기행각을 벌이고 있는 거대 사기집단이다. 이들의 범법행위를 추상같이 다스려야할 것이다. 후자라면, 미안하지만 약도 없다. 양계장에서 주는 사료만 받아먹으며 생계를 영위하는 특정조류와 동일한 뇌구조를 가진 이들에게 무슨 방법이 필요할 것인가?

 

KT뿐만 아니라 ‘신노사문화 대상기업’으로 선정된 ‘하이닉스 반도체’와 ‘LG 석유화학’은 그동안 노동자 탄압이 이야기될 때 빼놓지 않고 거론되던 사업장들이다. 이들 사업장의 행태가 ‘신노사문화’의 표본으로 선정되는 대한민국에서 노동자의 권익은 그저 죽지 않을 권리로 한정된다. 노동자의 권익을 내팽개치는 것을 새로운 노사문화의 양식으로 판단하고 있는 노동부는 차제에 이름을 바꿀 필요가 있다. 사람을 이윤생산을 위한 자원 정도로 생각하는 ‘교육부’가 ‘교육인적자원부’로 이름을 바꾼 것처럼 노동부도 그 본질에 걸맞는 이름을 가지기 바란다. 예를 들자면 ‘노동착취보장부’ 또는 ‘사용자이익보장부’ 등과 같이 보다 본질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이름으로 바꾸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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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6 01:49 2005/02/16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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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계두지행' 사자성어를 쓰니 웬지 달라 보이나, 이 글의 제목은 '닭대가리 노동부 쉐뀌' 되겠습니다. ㅋㅋ

  2. 오래전에 '노동탄압부'로 바뀌었는데, 아직 모르셨어요?ㅋㅋ..

  3. 푸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