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어른한테 반말 찍찍하고~!!
* 이 글은 현근님의 [내가 그렇게 나이들어 보이나..] 에 관련된 글입니다.
가끔은 나이보다 훨씬 늙어보이는 사람이 있다. 친구넘 중에 하나도 그런 넘이 있었다. 이넘은 20대 후반에 이미 40대와 맞먹는 얼굴형태를 하고 있었는데, 주름살이 많거나 뭐 그런 종류가 아니라 생김 자체가 나이 많이 먹었다는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그런 얼굴이었다. 하루만 지나면 시커멓게 변하는 구렛나루와 반쯤 까진 마빡, 진하면서도 긴 눈썹, 약간의 새치까지... 술배가 튀어나와 있는 등 아무튼 그런 넘이었다.
이넘은 사실 돌사진만 봐도 어릴 때부터 나이 많이 먹어보이는 스타일이었던 거 같다. 기저귀만 걸친 알몸의 어린 넘인데 얼굴만 늙어보이는 어처구니 없는 사진을 보면서 같이 웃기 했던... 술을 무진장 좋아하고, 게다가 노가다에 일가견이 있어서 행인과 궁합이 잘 맞았던 그런 친구였다. 일하러 자주 같이 다니고 뭐 그런 사이였다. 공부도 같이 하고...
할 일 없이 빈둥거리고 놀다가 몸이 굳는 거 같기도 하고, 술값도 좀 필요하고 해서 노가다 없냐고 전화를 했더니 마침 노가다 있다고 같이 가잖다. 얼싸 좋다 하고 그넘 집으로 갔는데, 하필 그날 일거리가 없어서 결국 둘이 새벽 인력시장으로 갔다. 신새벽부터 많은 사람들이 나와있었는데, 봉고 한 대 오더니 집짓는데 인부 몇 사람 필요하단다. 서로 간다고 그러고 있는데, 봉고차 타고 온 사람이 친구넘을 바로 찍어버렸다. 친구는 봉고를 탔는데 행인은 간택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사람이 차고 봉고차로 달려들었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졌는데, 봉고차 문이 다시 열리더니 이넘이 행인더러 빨리 타란다. 잽싸게 튀어가 탔더니만 지가 말을 잘 해서 같이 일하게 되었다는 거다.
그렇게 해서 일하게 된 곳은 서울 변두리에 몇 층짜리 '빌라'를 짓는 것이었다. 오래 끌 일이 아니라서 며칠 잘 일하고 용돈이나 벌어볼 요량으로 매일 그곳으로 출근을 하게 되었다. 벼라별 일을 다 했다. 뭐 노가다라는 거이 다 그런 거 아닌가... 암튼 일한 거 자체야 뭐 노가다판에서 일상 있는 일이라 별로 이야기할 거리가 없고, 한 열흘 일하고 나니 우리가 할 일이 다 끝났다. 매일 벌어지는 술판이었지만 어쨌든 모든 일 다 '시마이'하고 마시는 술이라 또 그게 꿀맛인 거다.
담에 또 기회 있으면 같이 일하자는 둥 어쩌구 덕담도 오고 가고, 이런 저런 사는 이야기 왔다 갔다 하면서 술잔이 오고 갔다. 노가다꾼들이 2차 3차 갈 돈은 없으니 계속 삼겹살 사다 구우면서 동네 구멍가게 소주짝을 비우고 있었다. 얼마나 술을 마셨는지 모르겠지만 노가다꾼들의 입담 또한 걸찍한 것이 많아 재미가 있었고, 그들의 고단한 삶이 남의 일 같이 여겨지지 않아서 같이 맞장구도 치고 뭐 그랬던 거 같다.
문제는 술이 취한 다음부터다. 노가다 뛰는 분들, 가슴에 맺힌 게 많다. 예를 들자면, 자기가 지은 집이 전국 곳곳에 있고, 아파트도 가는 자리마다 손이 닿은 것이 보이는데, 정작 노가다 30년을 해도 월세방 신세라는 뭐 이런 거다. 걸진 욕설도 나오고 또 누구누구 씹는 이야기도 나오고, 힘 좋은 양반들 술 취한 후 벌이는 멱살잡이 말리느라고 정작 내가 마신 술은 다 깨고 그런 일들이 계속 이어졌다. 자리가 좀 평정되고 갈 사람 가고, 더 마실 사람 남아 작업 현장 휑한 건물 앞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소주를 들이붓고 있었다.
그래도 다만 몇 십만원이지만 손에 쥘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그 친구넘 덕이었기 때문에 술자리 파하면 맥주는 내가 사마 어쩌구 하면서 이 친구와 이야기하고 있던 시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눈에 불이 번쩍하면서 몸이 한 쪽으로 넘어가는 것을 느꼈다. 아이구야, 이게 뭔 일인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번에는 몸이 번쩍 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비명 지를 염도 못내고 이게 무슨 일인가 하니까 그동안 같이 일하던 아저씨 한 분이 행인의 멱살을 잡고 끌어올리고 있는 거였다.
아저씨 왜 이러십니까 하고 항의를 하는데, 이 아저씨, 별다른 이유제시는 없이 그저 이 뭔 시키 뭔 시키, 싸가지 어쩌구 하면서 난리가 났다. 친구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이 나서서 겨우 멱살을 풀도록 하고 둘을 떼어놓았는데, 주먹으로 맞았는지 손바닥으로 맞았는지 뺨이 얼얼한 것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내뱉은 침에 피까지 섞여 있었고... 어이가 없어서 이냥반을 쳐다봤더니 째려본다면서 또 방방 뜬다. 왜 그러는 거냐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주변사람들 역시 "아니 멀쩡히 있다가 갑자기 왜 이 소동이여?"하고 따지기 시작했다.
이 아자씨, 분을 못 이긴듯 씩씩 거리면서 행인을 향해 사자후를 날린다.
"에라, 이 못 배워 처먹은 넘아~!"
"그래 너보다 한참 윗사람 한테 허구헌 날 반말 짓거리여~!"
답답한 행인, 도대체 내가 이 아저씨 또는 다른 윗분들에게 언제 말 한마디 깐적이 있었던가, 궁금해하면서 억울하기 짝이 없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아니 저이가 언제 그랬다고 그래, 자네에게 뭐 버릇없이 굴기라도 했나?" 하고서 묻고 있었다. 그러자 그 아저씨.
"아니, 나한테 그런 게 아니라 저기 X씨한테 말이여. 가만히 보고 있었더니 지난 열흘 내내 그러잖아. 그러더니 오늘도 술먹는 내내 반말하고 욕지거리 하고. 저 X씨 마음이 좋아서 허허 웃는 거지, 나같으면 벌써 머리통을 부셨을거여. 에라, 이 "*$@*& 같은 넘아" 뭐 이렇게 욕을 한다.
그 문제의 X씨... 다름 아니라 행인의 친구넘이었다. 이 골때린 넘이 노가다판에서 어른들에게 꿀리는게 싫어 나이를 열살 넘게 올려치길 했던 거다. 문제는 같이 일하던 양반들이 그 말에 한치의 의구심도 가져보질 않았다는데 있다. 세상에... 그리하여 행인은 이 세상에서 아주 아주 싸가지도 없는 인간말종이 되어버린 거다. 지보다 열살 이상 더 먹었을 사람에게 허구헌 날 반말 찍찍하고 욕지거리 하고, 가끔 뒤통수도 갈기는 그런 넘...
사태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친구넘, 넉살 좋게 "아 뭐 그런 걸 가지고 그래. 당사자인 나도 참는데~!" 하고는 지가 소릴 버럭 지르더니, "야, 뭐하냐, 그냥 가자. 글구 임마 너도 좀 조심해야지!"하면서 나한테까지 주접을 싸더니 휘적 휘적 공사판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어이 없는 건 둘째치고 이 넘이 이렇게 까지 시건방을 떨다니... 하면서 쫓아가 "너, 이게 이젠 아주 친구를 가지고 노냐?" 하고 성질을 냈다. 이 넘 들릴락 말락한 목소리로 "야, 그냥 가자. 여기서 니 나이 내 나이 까봐야 별로 좋을 거 없단 말야"하곤 후다닥 걸어가 버리는 거 아닌가...
이 친구넘, 희한한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얼굴 형태가 달라지지 않아 이제쯤 제 나이와 같은 수준의 대접을 받는다는 거다. 아무튼 그 때 생각하면, 지금도 어이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어쨌거나 그 때 그 아자씨들, 아직도 행인이 진짜 싸가쥐 없는 넘이었다고 기억하고 있을텐데... 에효...
[별도의 얘기지만] 현근님, 그렇게 늙어보이지 않는뎁쇼... 딱 그 나이 수준이던데... 힘내세요~~!! *^^*
크하하.
진짜 시트콤이야, 시트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