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에게 상속 50%가 진보적?

쬐끔 멀리 갔다가 돌아와 보니 없는 사이에 참 많은 일이 있었구나...싶다. 그 중 요 며칠 사람 머리 아프게 하는 것이 지난 주 공청회를 했다는 민법개정안. 개정안에서 다루어지는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이혼숙려제도", 다른 하나는 "배우자 상속분 50% 규정".

 

이혼숙려제도는 우려했던 것만큼 위험한 내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다. 약간 껄끄러운 부분이 없지 않은데 좀 더 매끄럽게 다듬는다면 애초 우려했던 것처럼 사적자치의 영역을 국가가 개입한다는 비판은 받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그 외에 다른 이야기도 있지만 이혼숙려제도에 대해선 요기까정.

 

그런데 자꾸 행인의 골머리를 앓게 만드는 것은 배우자 상속분 50% 규정이다. 법무부 홈피나 토론회 자료를 보더라도 이 제도는 상당히 선진적이고 진보적인 내용이라고 선전되고 있다. 물론 이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마다 제각각의 입장에 따라 환영하기도 하고 반발하기도 하지만...

 

행인의 마빡에 피가 쏠리게 하는 것은 이 개정안이 상속을 받는 배우자에게 정말 선진적이고 진보적인 효과를 가져오게 하는 것이냐 이거다. 아니, 더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면 과연 이게 제대로 된 산수를 한 것인가 하는 거다. 즉 이 법률안의 지금 형태라면 솔직히 더하기 빼기가 제대로 진행이 되지 않고 뒤죽박죽이 된다.

 

물론 보다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한다면 과연 '상속'이라는 것이, 그것도 금전 및 부동산의 소유권 일체를 자신의 피붙이에게 고스란히 넘겨주는 제도가 과연 바람직한가라는 논의를 필요로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까지 가면 넘 복잡해진다. 차라리 다른 기회에 논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이므로 여기선 패스.

 

산수가 안 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현재 법무부의 민법개정안만으로 본다면 죽는 사람은 재산 상속분 가운데 절반을 배우자에게 상속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죽은 사람이 상속할 수 있는 재산이라는 것은 어떤 건가? 아주 간단하게 이야기해서 그거 지 혼자 벌어모아 마련한 재산일까?

 

마침 이와 관련한 기사가 하나 떴다. 행인이 머리가 아팠던 이유가 꽤 비슷하게 설명되어 있으므로 관심있으시면 이걸 함 보시는 것이 좋을 것이다. 행인은 여기에 더해서 산수가 왜 안되는지를 좀 볼라고 한다.

 

예를 들어 유산이 12억인 사람이 사망을 한다. 법무부 안 대로라면 배우자가 50%인 6억, 자녀들 몫으로 6억이 돌아간다. 자녀가 한 명 있으면 그 자녀가 6억 먹는 거고 자녀가 둘이면 각각 3억, 자녀가 셋이면 각각 2억 먹는 거 되겠다. 이런 쉬운 산수가 어딨냐?

 

근데, 유산 12억의 내용이 어떤 건가를 살펴보면 꼬이기 시작한다. 예컨데, 이 두 부부가 사전에 평등의식이 강하고 상대방의 재산권에 대한 충분한 인정이 있는 경우 또는 정 반대로 두 부부가 허구헌 날 재산문제로 머리 터지게 쌈박질을 하다가 지쳐 법원으로부터 재산분할에 대한 결정을 이미 받아 놓은 상태를 가정해보자.

 

공유재산이 이미 반땅으로 확정된 후라면 위 12억의 재산에서 이미 각 배우자의 몫으로 6억씩이 분할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다가 배우자 일방이 사망하게 되면 자신의 재산인 6억에서 상속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그 6억 중 50%인 3억을 생존한 배우자가 받고 나머지 3억을 비로소 자녀들에게 배분하는 것이 맞다. 자녀가 한 명 있으면 지 혼자 3억 먹는 거고 둘이면 1억 5천만원씩, 셋이면 1억씩 가지게 되는 거다.

 

원래는 어떤 부부든 이렇게 되어야 한다. 상속할 것은 자기 재산 분에서 하는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타방배우자의 몫까지 재산으로 쳐서 한꺼번에 계산질 할 것이 아니라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미리 재산분할이 결정되어 있지 않은 부부의 재산에 대해서는 어떠한 대응책도 없이 기냥 상속분 50%가 툭 튀어나오고 있다. 이 사람들은 우째야 하나? 법무부의 안 대로 자기가 재산형성에 얼마나 공이 있는지 여부는 완전히 차치하고 기냥 주는 50%만 먹고 떨어지라는 이야긴가? 부부 두 사람이 서로 만들어 놓은 재산인데 유산상속을 하는 시점이 되어서는 왜 갑자기 사망하는 배우자 한 사람의 재산인 것처럼 이야기가 될까? 위에 링크한 기사는 특히 각 언론사의 보도를 인용하면서 "왜 죽는 사람은 모두 남편일까?"라는 질문을 하고 있다. 의미 있는 질문이다.

 

동시에 좀 답답한 것은 산수가 제대로 되는 법률조항은 단지 '아내'된 배우자만을 위한 '선진적'이고 '진보적'인 대안이 아니라는 거다. '남편'된 사람들 역시 그로 인해 자기에게 돌아오는 부분이 더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우찌된 일인지 '남편'이거나 '남편'이 될 가능성이 있는 남성들, 입이 댓발은 나오는 거 같다. 왜? '마누라'가 죽으나 사나 뭐 당연히 그 재산은 내꺼, 내가 죽으면 당연히 그 재산은 '상속', 이런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법무부가 이런 사고방식에 슬쩍 묻어가면서 산수 안 되는 법률안을 만들어 놓고 앗싸~ 선진적이에요, 앗싸~ 진보적이에요 이러고 앉았는 거다.

 

이러한 법률조항이 나오게 되는 배경에는 현행 민법상의 부부별산제가 있다. 그런데 부부별산제는 기본적으로 누구라도 해당 재산이 배우자 중 어느 쪽의 것인지가 확인되는 한에서만 유효하다. 동산처럼 소유권이 불분명한 재산이나 공동으로 벌어모아 마련한 것이지만 한 명의 이름으로 등기되어있는 부동산 같은 것은 그게 공통의 재산으로 별도 배분해야할 재산이라고 주장하기 어렵게 되어 있는 거다. 대부분은 아직까지 경제적으로 돈을 벌어오는 입장에 많이 서 있는 남편의 명의로 이런 등기가 대부분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최순영의원실에는 이미 부부공동재산제를 전제로 하는 민법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아직 계류 중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재산의 완전공유제를 택하는 경우 부부의 일방이 개인적으로 부담한 채무에 대해서도 부부의 공동재산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문제가 생긴다"는 비판을 가한다. 당연히 그런 문제점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 현실에서는 그런 문제가 안 생기고 있나? 특히 여성들의 경우 남편명의로 되어 있는 집 한채, 땅 몇 평 등 마음대로 처분하지 못하는 반면 남성들은 지들 명의로 등기된 부동산 기냥 갖다 퍼붓고 그 채무로 인한 고통은 부부가 공통으로 지는 일들 비일비재 하다. 물론 같은 사안에 대해서 쏟아지는 사회적 비판 역시 남성과 여성은 천지 차이다. 남자에 대해선 무한한 관용이, 여성에 대해선 "집구석에서 살림이나 하지 여자가 무슨..."이라는 서두가 붙은 처절한 응징이...

 

암튼 산수나 좀 잘 하자 이거다. 법무부의 법안을 좀 더 검토해보아야하겠지만 아무래도 이 문제가 계산기를 두드려야할 만큼 복잡한 문제는 아니다. 간단한 거 괜히 복잡하게 하지 말고 좀 깔끔하게 하면 어디 덧나나?

 

덧 : 그리고 이 참에 재산상속하는 거 이거 좀 어떻게 사회적으로 문제제기가 되었으면 한다. 왜 그토록 재산의 혈통적 승계에 집착하는 걸까? 뭐 받아먹을 유산도 없고 넘겨줄 유산 만들고 싶은 생각도 없는 행인만 하는 생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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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05 15:20 2006/07/05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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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acked from
    • At 2006/07/07 02:19

    행인님의 [배우자에게 상속 50%가 진보적?] 에 관련된 글. 저 얘기가 나왔다는건 들었는데, 관련기사를 찾아서 읽지는 않았다. 다만 저 뉴스에 대한 인터넷에서의 황당한 반응들을 전해듣기

  1. 와~~~~~~~~~~~~~~~~~ 완전 "강추!"임다..
    백만스물두번제곱의제곱 공감!! '산수를 잘하자!!'ㅎㅎ

  2. 이 문제 상당히 어려운데, 마지막 부분에서 남편 명의의 부동산 마구 파는 것은 제동장치가 있습니다. 부인이 주거하고 있는 부동산은 아무리 남편 명의라고 하더라도 못팔고, 팔더라도 부인이 취소시킬 수 있습니다. 너무 복잡한 이야기여서 저는 판단이 확실히 서지 않지만, 이 부분만큼은 고려하시고 비판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3. 헤헤, 행인님이 오긴 오셨구나, 이리 민감한 문제를 떡허니 건드리시고...생각할 꺼리를 주셔서 감사!

  4. 역시 >_< 내공이 틀리다는 걸 또 느끼는 크 >_<; 배울꺼 많군요. 그나저나 남녀평등, 여남평등은 역시 의식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는 걸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_<

  5. marishin/ 이번 법무부 안에 따르면 신설 제831조의2 제1항에 "다른 일방이 거주하는 주거용 건물" 또는 대지의 소유권과 또는 그 건물 및 그 대지에 부속한 권리를 부부 일방이 함부로 양도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신설규정의 취지는 부부일방, 즉 쉽게는 남편이 각 권리의 처분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 아니라 다른 일방-부인이 되겠죠-의 "거주권"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조항입니다.

    다만 처분에 있어서 동의를 구하도록 하는 조항들을 삽입해 놓았는데 현실적으로 그러한 동의권 요구가 이번 법무부 안의 재산분할청구권 보전을 위한 사해행위취소권(안 제839조의3)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 이상 많이 개선되리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더불어 사해행위취소권의 경우에도 기간의 제한이 있어 이혼 등 극단적 사례가 발생하기 전 가정의 평온이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효용성이 있을지도 의문이구요.

    무엇보다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부부재산공유제가 실현되는 것이 가장 적절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멒/현현/에밀리오/ 법률에 대한 감시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다 같이 해보자구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