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쿠버의 집회

현지 날짜로 6월 24일. 다운타운 남서쪽 BURRARD Bridge 건너에 위치하고 있는 Seaforth Peace Park에는 이번 World Peace Forum에 참가하는 사람들과 뱅쿠버지역 시민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었다. 이번 포럼의 사실상 시작(정규 포럼은 이미 전날부터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집회시위가 시작될 참이었다. Seaforth Peace Park에서 집결하여 다운타운 일대를 이리저리 돌다가 최종적으로는 다운타운 서쪽에 위치한 Sunset Beach에서 마무리가 되는 Peace Walk and Festival-'NO WAR NOWHERE' 프로그램이었다.

 

일본에서 실내에서 있었던 집회에 참석했던 것이 외국에서의 유일한 집회경험이었던 행인. 이번 기회에 외국에서 시내거리를 돌아다니는 시위에 참여하게 된다는 점에서 많은 기대를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 오전 내내 집회에 들고다닐 피켓-평택 미군기지 반대 사진피켓-을 만들고 밥 든든히(?) 챙겨먹고 집결장소로 이동. 숙소는 다운타운 동쪽 거의 끝의 Main Street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차량을 이용하는 것보다 걷는 것이 훨씬 더 편하다는 판단에 뚜벅이행군을 시작했다. 약 40분을 걸어가서 집결지 도착.

 

구름 한 점 없는, 말 그대로 새파란 청명한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볕이 살갗에 따갑다. 행인이야 뭐 마라톤 한다고 이미 새카맣게 탄 얼굴이며 몸뚱아리라 큰 부담이 없었건만 같이 간 일행은 하얀 살이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할 정도였다. 그나마 청량한 바람이 계속 불어주는 덕에 큰 고생은 없었지만. 집결지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집결. 공원은 길 모퉁이에 있었지만 상당한 규모였고, 나무며 잔디며 모두 아름다웠다. 거기에 전 세계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자기들의 주장과 구호가 담긴 각종 피켓과 선전물을 들고 즐겁게 떠들고 있었다.

 

풍경 1

집회는 시작부터 발랄하고 즐겁게 진행되고 있었다. 한국에서 보듯 주최측의 어떤 사람이 나와서 마이크를 잡고 이러저러한 지시를 내리는 것이 아니었다. 진행요원인듯한 사람 몇 몇이 선전전단을 뿌리는 것 이외에 모든 것은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알아서 해결하고 있었다. 선두를 담당하게 될 단체만이 선두 위치에 서서 자리를 잡고 있을 뿐이었다. 누군가가 앞에 나서 참석자 전원에게 구호를 따라 외치게 하거나 특별한 식순을 진행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모두 자유분방한 가운데서도 자신들이 해야할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는 듯이 보였다.

 

참석한 사람들은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보여주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재밌는 것은 전혀 획일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두 각자의 방법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서로 다르게 쏟아놓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흥겨운 곡들을 계속 연주하는 밴드. 캐나다 현지 시민단체라고 하는데 이름은 잘 모르겠다. 이 사람들, 행진 내내 이렇게 즐겁게 발랄한 곡들을 연주하면서 간다. 간혹 귀에 익은 음악도 들리고 노래를 아는 사람들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것은 물론, 흥에 겨워 주변에서 계속 춤을 추는 사람들도 많았다.

 


부쉬에게 조종당하는 캐나다 총리의 모습. 이 차량도 역시 끝까지 시위에 동참. 조형물 자체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이 있어서인지 몰라도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이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었다. 우리도 한 컷~!

 


다양한 복장을 하고 나온 사람들도 있었다. 브라질에서 온 사람들은 삼바 카니발 복장으로 여러명이 내내 몸을 흔들고 다녔고, 한 시민단체 사람들은 새처럼 복장을 하고 나와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하면서 시위에 참여했다. 아쉬운 것은 마침 이 때 사진기가 없어져 그 모습을 찍지 못했다는 점. 다만 흡혈귀(?) 복장을 한 한분의 모습이 남아있다.

 


핵무기 관련 포럼에 참여하시는 분인듯 한데, 누가 가서 질문을 해도 저자세로 서서 손에 들고 있는 사진만 계속 보여줄 뿐이었다. 그 사진들을 다 보고 오지 못해 아쉽다.

 


이렇게 사람들이 집회를 시작했고, 우리도 평택미군기지 관련 피켓을 들고 함께 행진했다. 주변에 지나가는 차량들에서는 경적을 울리거나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거나 V자를 그려주면서 지나갔고, 도로변의 행인들도 역시 박수를 쳐주거나 환호성을 질러주었다. 사람들은 연신 "PEACE"를 외쳤다. 부쉬는 꺼지라는 구호도 나오고...

 


이러고서 지나가는데 시위에 참여한 한 할머니가 물어본다.

 

할머니 : 난 미국서 왔다. 어디서 왔는가?

나 : 남한에서 왔다.

할머니 : (피켓에 있는 대추리 어르신을 가르키며)이 사람은 왜 이러고 있나?

나 : 여긴 한국의 평택이라는 곳이고 이 사람은 여기서 농사를 짓는 사람이다. 그런데 미군기지를 만든다고 이 사람을 쫓아내고 이 사람의 땅을 이렇게 다 부쉈다.(뒌장... 파헤쳤다라는 말은 영어로 뭔지...)

할머니 : 미군이 그랬나?

나 : 미군기지를 위해서 한국군이 그랬다.

할머니 : 오마이갇~! 북한과 가까운 곳인가?

나 : 평택은 서울의 남쪽이다. 북한과는 멀다. 미군기지 건설때문이다.

할머니 : 한국정부는 뭐하나?

나 : 한국정부가 이렇게 했다. 한국국민들은 한국정부와 미국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할머니 : 오마이갇~! 어떻게 한국정부가 그럴 수 있나?

나 : 나도 이해할 수 없다.

할머니 : 한국사람들은 어떻게 하고 있나?

나 : 정부와 싸우고 있다.

할머니 : 오마이갇~!

 

이 할머니, 뭔가 이야기를 할 때마다 한숨섞인 목소리로 "오마이갇~!"을 연발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미국서 오신 어른들은 놀라운 일이나 안좋은 이야기가 나오면 감탄사처럼 이렇게 탄식한다. 요 얘긴 또 나중에...

 

 

풍경 2

물경 2천여명이 온 도로를 가득 메우고(다리를 건널때는 차선 하나만 이용했는데, 다운타운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도로 전체를 메우고 행진했다) 시위를 하는데 신기한 것은 경찰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처음 Seaforth Peace Park에 있을 때 오토바이를 탄 경찰 하나가 와서 대충 보고 가더니 그걸로 끝이다.

 

다운타운 안에 들어가서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경찰들은 뭐하고 있을까? 아무리 "평화"를 위한 집회이고 "평화"적으로 진행한다고 할지라도 뭐 폴리스라인이라던가 질서유지를 위해서라든가 하는 이유로 경찰들이 나와있을 법도 한데 어째 아무도 뵈는 경찰들이 없는거다. 거 희한하네...

 

그런데 경찰이 있기는 있었다. 다운타운을 한참 돌아가는 중에 보니 한 테이크아웃점 앞에 경관 둘이 서서 커피 한잔씩 빨면서 지들끼리 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정복경찰관이었을뿐만 아니라 집회시위를 관찰하기보다는 지들끼리 잡담하면서 키득거리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좀 자세히 둘러보니까 행진하고 있는 거리 한 블럭 밖에 코너마다 오토바이를 한 대 세워둔 채 경관 한 명씩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들이 하는 일은 행진하는 도로쪽으로 차량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교통정리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장면을 좀 찍어보려고 했는데 이 때도 마침 카메라가 행방불명... 아쉽다...

 

 

풍경 3

Sunset Beach에서 벌어진 집회. 여기는 해안 바로 옆에 있는 공원인데, 역시 그 규모가 굉장한데다 잔디가 너무 좋다. 이미 공연무대가 마련되어 있었고 주최측에서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었다. 거의 대부분은 재즈밴드와 락밴드들이 공연을 하는 것이었고 초청연사들이 한 명씩 나와 발언을 하는 것으로 채워졌다. 무대 주변에서는 각종 부스들이 설치되어 있었고,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캐나다 공산당이 부스를 마련하여 선전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공산당이라니... 부럽도다...

 

각국에서 온 공연단이 자기들의 말로 노래도 하고 춤도 춘다. 그 앞에서는 어른 아이들이 모여 평화블럭을 만들고 있었고 주변 언덕 위로는 참여자들이 둘러 앉아 손도 흔들고 춤도 추면서 분위기를 만끽한다. 재밌는 것은 이 사람들, 웃통 훌렁 벗고 일광욕하듯이 드러누워있는 사람들도 있었고, 자기들끼리 싸온 도시락을 까먹는 사람도 있었고, 가족단위로 둘러앉아 애들 노는 것을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다가 중요 연사가 나와서 좋은 이야기를 하면 박수도 치고 흥겨운 노래가 나오면 제 흥이 닿는 대로 몸을 흔들기도 한다. 역시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주최측이 뭔가를 요구하는 일이 없다. 한 군데로 모여달라거나 구호를 같이 외치자거나 하는 등의 모습이 보이진 않는다. 다만, 연사가 발언을 마친 후라던가 공연이 끝나면 환호와 박수를 쳐달라는 요청은 계속 있었다.

 

중요한 사람이 한 분 왔다. 신디시헨(Cindy Sheehan)이었다. 이라크에 파병된 아들 케이시가 시체로 돌아오자 부쉬에게 그 책임을 묻는 행동을 함으로써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사람이다. 2005년 8월에 조지부쉬의 휴가지였던 텍사스 크로포드 목장으로 떠나면서 신디시헨은 이런 글을 남겼다.

 

"벤자민 프랭클린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시적 안위를 위해 기본 자유를 희생하는 사람들은 자유와 안전, 어느 것도 누릴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미국은 지금 자유와 안전, 그 어느 것도 없는 나라로 급속히 변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두 가지 모두를 요구해야 하며, 어느 것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이 두 가지는 우리의 천부인권입니다. 제발 당신의 그 권리를 포기하지 마십시오. 나도 나의 그 권리를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신디시헨은 부쉬에게 "왜 우리 자식이 죽어야 했는가?", "우리 자식을 죽음으로 몰고간 그 '숭고한 명분'이 무엇인가?"를 물으며 크로포드 목장에서 노숙투쟁을 전개했고, 미국 이라크 반전운동의 한 획을 그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신디가 겪은 고통은 더 심해졌다. 부쉬는 철저하게 신디시헨의 요구를 묵살했고, 여러 집회 중에 경찰에 연행되었고 남편으로부터 이혼당했으며, 친정어머니는 쓰러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투쟁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가 그 자리에 왔다.

 

그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뜨거운 날 햇볕에 몸을 바삭바삭 구워가며 집회를 한 보람이 있었다면 그건 오바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소한 그 때 행인은 그렇게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다. 신디시헨은 언론에서 보던 모습과는 달리 정장차림의 말끔한 모습으로 단상에 올랐다. 뜨거운 환호와 박수가 이어졌으며, 그녀가 말을 할 때마다 사람들은 기립하여 박수를 쳤다. 띄엄띄엄 알아듣는 수준의 회화실력이다보니 그녀가 하는 말을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의 말은 힘이 있었고 분명한 메시지가 있었다.

 

"우리는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량학살을 그대로 놔둘 수 없다."

"우리 아이들이 더 이상 죽어서는 안 된다."

"평화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부쉬에게 이것을 알려야 한다."


 

 

감상1

만일 민주노동당이나 민주노총이 이런 식의 집회, 즉 그동안의 집회와는 달리 격식도 차리지 않고, 주관단체의 관리체제를 동원하지도 않고, 각진 구호와 팔뚝질도 없이, '운동권'스러운 명사연설도 두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즐기는 집회를 만든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전투적 활동가"를 자처하는 "선진그룹"의 사람들, 혹시 "이게 무슨 집회냐? 애들 장난이냐?"라던가 "이 엄혹한 시기에 이따위 집회를 구상하다니" 뭐 이런 비판을 하지는 않을까? 브라스밴드와 아카펠라그룹이, 또는 통기타를 든 사람들이 가볍고 발랄한 곡을 연주하거나 노래하면서 춤을 추면서 지나가는 시위를 하면 이 분들, 뭐라고 할까? 혹시 "운동이 죽었다"고 하지는 않을까?

 

한국의 거리 곳곳에서 이런 종류의 집회와 시위가 있었으면 좋겠다. "평화"라는 구호는 얼핏 평화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 현실에서는 가장 과격한 구호일 수 있다. 그런데 그 과격한 구호를 가장 과격하지 않은 방법으로 알려내는 방법이 새로운 형태의 집회와 시위로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지난 메이데이 집회처럼 같잖은 형식에 치우쳐 왜 그런 집회에 돈을 쓰는지 의문이 들도록 만드는 그런 집회, 정말 앞으로는 참석하고싶지 않다. 우리는 이제 좀 더 재밌게 우리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준비가 되어 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감상 2

한국 경찰들, 이젠 집회 시위에 애꿎은 의경들 방석복 입혀서 쫙 깔아놓는 짓 좀 하지 않았으면 싶다. 나중에 다시 포스팅을 하겠지만 이번에 일본에서 미군기지 반대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대거 참여했는데 이 사람들의 투쟁과정에서 평택투쟁에서 보여줬던 촛불시위 등 평화로운 방법과는 달리 매우 격렬한 투쟁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어떤 집회시위를 하건 우리나라처럼 만명이 넘는 경찰병력을 동원해서 다 때려 부수고 다 잡아 넣고 용역깡패들을 수백명씩 동원해서 사람 주어 패는 짓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물론 한국 경찰들에게 전적으로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캐나다라고 해서, 또는 일본이라고 해서 정부가 방침을 세워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집회시위를 저지하라고 하면 그 나라 경찰 역시 방석복에 곤봉들고 나와 사람들 때리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한국은? 한국적 특수성 때문에? 남북대치의 분단상황이 가지는 위험성 때문에? 도대체 어떤 근거로 전의경을 새카맣게 깔아놓고 집회시위를 원천적으로 막고 나설까? 그러면서 그것을 폴리스라인의 새로운 또는 선진적 형태라고 잡설을 늘어놓는 두꺼운 낯짝은 또 뭐란 말인가?

 

뱅쿠버의 집회. 물론 세계각국의 사람들이 참여한 것이니만큼 자국국민들만으로 이루어진 집회 역시 그러한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현지 사람들이 그런 집회에 대해 전혀 거부감을 가지지 않고 있으며 경찰이 집회시위를 원봉하고 실력저지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아마 한국이 그런 상황이라고 설명을 했더라면 이 동네 사람들, 앞의 미국 할머니처럼 "오마이갇~!"이라고 경악할지 모르겠다.

 

즐겁고 새로운 집회시위. 꼭 한 번 해보고 싶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6/07/04 15:13 2006/07/04 15:13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hi/trackback/550
  1. 나도 해보고 싶다!! 크~ 근데 사진 속의 행인 너무 귀여워요~
    (귀엽다는 말에 대한 행인의 반응은? 오마이갓~ ㅋㅋ)

  2. 경찰과 한판 하지 않으면 집회 재미 없다구 안온다니깐요..ㅋㅋ

  3. 동감 백만 스물 한 개

  4. 투쟁은 즐겁게 ㅠ 정말이지 부럽군요 저 분들 >_< 크~ 역시 영어를 익혀야;;; 수고하셨어요 ^^ 우리나라는 언제 저런 문화가 정착이 되려나 안타깝군요 ㅠ.ㅠ

  5. azrael/ 혹시 행인 옆에 키 큰 넘 보고 하시는 말씀 아니신지... 그넘은 좀 귀여워요 ㅋㅋ 몇달 후 장가가는 넘인데...ㅎㅎ

    산오리/ 그렇겠죠? 그게 참 저도 꼭 그런 이야기를 들을 것 같아요. 거 정말 그러고 싶은 건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쩝...

    이슬이/ 그쵸? 저도 그 동감에 하나 더 얹어서 백만 스물 두 개~~

    에밀리오/ 뭔가 시작이 있으면 되지 않을까요? 나중에 우리가 한 번 기획을 해보죠 뭐~~!! 홧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