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임 덕
행인은 닭들을 비롯한 가금류들에게 일정한 미안함을 가지고 있다. 일부 모지리나 또라이들을 비난할 때 "닭" 등 가금류들을 빗대 욕설을 하기 때문이다. 새들에 대한 편견이 있어서는 아니다. 행인은 새들을 사랑한다. 가금류를 동원한 욕설은 단지 수사일 뿐이다. '개 코메디'라고 욕설을 한다고 해서 코메디언들을 욕하는 것이 아니듯이. 행인은 코메디언이나 개그맨들도 좋아한다. 그들이 행인을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일정한 부류의 사람들이나 현상에 대해 가금류를 동원하여 비판하는 건 행인만 그런 것이 아닌 듯하다. 조선 팔도에도... 아니 북한에선 어떤지 잘 모르겠고, 남한땅 안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있고, 하물며 물 건너 영어쓰는 나라에서조차 그런 현상이 있는 것 같다. 대표적인 것이 레임덕... 덕이면 duck, 우리 말로 오리... 갈팡질팡하는 집권자의 정권말기 행보를 뒤뚱거리는 오리에 비유한 것이라는데, 오리가 무슨 죄냐... 낙동강 오리알만으로는 부족했던 것인가...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중계방송을 보기 위해 새벽에 일어났으나... 넘 일찍 일어났다. 남는 시간에 일을 하자니 하다가 중간에 끝날 듯 해서 여니때와 다름 없이 또 웹 써핑질을 했다. 그리고 기사 하나를 발견했다. 노무현의 최근 정치행보에 관한 분석기사였는데, 거기서 눈길을 끄는 표현 하나를 발견했다. '레임덕 없는 대통령'...
얼마 전에 무현교 광신도 집합소 '서프라이즈'에서도 이와 유사한 표현이 사용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찾아서 링크를 걸려 하다가 괜히 행인 블로그를 방문하신 분들에게 피로감을 안겨줄까봐 기냥 관 둔다. 암튼 그 때도 이 '레임덕 없는 대통령'이라는 표현을 보면서 혼자 실실 웃었던 일이 있었더랬다.
최근 한미 FTA 체결 이후 이상스레 노무현의 지지도가 올라가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간 한미 FTA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던 층에서조차 갑자기 절반 이상의 응답자가 한미 FTA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여론조사가 나오기도 했다. 이 와중에 노무현에 대한 지지도가 물경 30%까지 치솟았다는 조사결과까지 보인다. 노무현이 최근 들어 갑자기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면서 은근히 웃는 낯이 많아진 까닭이 여기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임기말에 보이는 지지도 상승의 효과를 보면서 사상 초유의 '레임덕 없는 대통령'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왠지 와 닿지를 않는다. 물론 링크를 건 기사의 논조는 '서프라이즈'에서 어떤 "논객"이 표현했던 동일한 문장의 의미와는 많이 다르다. 기사의 방향과는 관계없이 그 표현만 가지고 이야기하는 거다. 과연 왜 노무현은 '레임덕 없는 대통령'이 되고 있을까? 임기가 불과 10개월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우선, 서프라이즈의 그 얼치기 '논객'이 '레임덕 없는 대통령' 운운했을 때, 행인이 실실 웃었던 것은 집권기간 내내 노무현이 겪었던 '레임덕' 때문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일심회 케이스. 한 국가의 정보기관은 집권자의 그림자다. 집권자가 누구건, 집권자의 이데올로기가 뭐건 간에 국가의 정보기관은 집권자의 수족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민주화 이후 최대의 간첩단 사건 운운 하면서 벌린 일심회사건의 경과를 보면 사건이 공개되던 초기 안기부...가 아니라 국정원은 대통령에게 상세한 상황보고도 하지 않았다. 단순 '간첩사건'이 아니라 간첩'단' 사건임에도 그랬다.
그림자가 지 실체의 뒤통수를 가격한 꼴이다. 이게 무슨 환타지 소설도 아니고, 나라꼴이 우습게 돌아가도 이만저만한 망신이 아니었던 거다.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노무현의 국정장악 능력이 거의 바닥을 기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한미 FTA체결 이후 청와대가 각부처에 지시하명하여 한미 FTA 체결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 효과를 대대적으로 조사한 후 국민들에게 선전 홍보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그 결과 며칠 전 조사결과가 일부 발표되었는데 그 내용이 가관이다. 얼마나 가관인지는 정태인교수가 쓴 이 칼럼만 봐도 대충 짐작이 된다.
당에서 이 보고서와 관련한 회의를 하면서 회의에 참석했던 사람들 모두 웃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웃음 뒤에는 국가기관이 어떻게 이런 사기극을 모의하고 실행할 수 있는지 성토가 이어졌고 분노가 일어났다. 그런데, 정작 국가의 각 연구원(院)들이 조사작성한 결과물이 이렇게 근거도 없이 짜깁기 수준에서 이루어지게 된 배경은 그만큼 각 부처들이 사전에 충분한 준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웅변한다. 대통령이 사활을 걸고 한미 FTA를 추진하는 동안 정작 정부부처들은 대통령 뒤통수만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당장에 지지율 조금 올라가는 것을 보며 '레임덕 없는 대통령'을 운운하기에는 너무 가관인 것이 현재의 상태다. 유권자의 신뢰도만을 가지고 레임덕을 평가하는 것이 아닌데, 서프라이즈의 논객은 그저 대통령 지지도만을 가지고 레임덕의 유무를 판단하는 단순한 사고구조를 보여주었던 거다. 닭성의 극치다.(이 대목에서 다시 닭에게 미안...)
집권기간 내내 이렇게 닭짓을 하면서 레임덕에 시달리는 노무현의 지지도가 왜 올라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또다른 분석이 필요하다. 즉, 서프라이즈에서 놀고 있던 어떤 닭스러운 논객이 왜 환호작약하며 '레임덕 없는 대통령'을 운운할 수 있었는지를 보아야 하는 거다. 국민들은 왜 30%에 달하는 지지도를 임기말 대통령에게 보내고 있는가?
거기엔 결정적으로 한나라당의 이명박이나 박근혜에 필적할만한 대안세력이 아직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노무현의 도박은 다시 한 번 성공했다. 고건을 비롯해 이번 정운찬까지 노무현의 눈 밖에 나면 대권 근처에도 가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으니까. 대항마가 없는 상황에서 이명박과 박근혜 등의 얼굴을 가진 한나라당은 쥐랄 삽질을 해도 일정한 지지를 얻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항상 그 '일정한' 지지율에 있다.
그 '일정한' 범위 밖에 있는 사람들, 다시 말해 한나라당을 지지하지 않고 있는 약 60% 넘는 정도의 국민들은 도대체 누구를 지지해야할까? 아니, 지지할 수 있을까? 민주노동당? 최근 어떤 조사에서 15%까지 지지율이 올라갔다는 결과도 나왔고 이번 보궐선거에서 출마지역 전체에서 두자리수 이상의 지지율을 얻는 등 나름 약진하고 있으나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은 아직 10% 수준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보다 낮게 보는 사람도 많이 있다.
그럼 10%의 민주노동당 지지자를 제외한 나머지 절반에 가까운 국민들은 누구를 지지할 수 있을라나? 이건 사실 질문이 되질 않는다. 누가 보여야 지지를 하던 GG를 치던 할 거 아닌가? 이 마당에 일하는 꼴을 보여주는 것은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대통령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적어도 한나라당 수준의 지지율을 대통령이 받고 있는 것은 그다지 놀랄만한 일이라고 볼 여지가 없다. 왜 노무현의 지지율이 올라가고 있을까 하며 당황하는 주변분들도 몇 보았는데, 놀라실 일이 아니다. 이 상황에서 그정도 지지율이라도 못받으면 노무현, 기냥 하야하는 것이 신상에 이롭다.
더구나 지금 받고 있는 지지율이라는 것 역시 앞으로 전개될 정국상황에서는 안정적이지도 않다. 한미 FTA 협상의 내용이 완전히 공개되는 이달 말쯤, 상황은 어찌될지 모른다. 6월 임시국회에서 갑자기 한나라당이 개과천선하는 경우 역시 상황은 반전될 수 있다. 그럴 가능성이 없지도 않은 게 지금 한나라당 내부에서 드잡이가 벌어지고 있는 판이다. 내부의 알력구조로 인해 발생한 당에 대한 불신을 일소하기 위한 한나라당의 '모험'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거나 노무현이 막판에 지지율 상승에 힘입어 안정적 권력행사를 하면서 일을 잘 한다면 환영해야할 것이다. 지금 벌여놓은 판을 보자면 그럴 가능성은 거의 0에 가깝지만서도. 차라리 더 이상 닭짓 내지는 덕(duck)짓이나 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맘 편할지도 모르겠다. '임기 내내 레임덕에 시달린 대통령'이라는 초유의 기록을 남긴 노무현. 솔직히 노무현보다는 노무현 다음에 임기를 맡게될 누군가가 더 걱정이다. 이렇게 퍼질러 놓은 거 어떻게 다 줏어 담을지...
정말 오랜간만에 글남깁니다. 요즘 팔자에도 없는 책 더미와의 전쟁을 펼쳐서 ... ^^;; ... 아마도 내년에는 여의도에 성전이 들어설 것 같습니다. 정말 사이비 종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느낌입니다.
손윤/ 오혹... 무플방지요원이 되셨군요. ㅎㅎ 책더미에 둘러싸여있으셨군요. 그래도 그렇게 포스팅을 하시네요. 암튼 내년도에는 여의도에 순복음교회와 맞먹는 무현교 회당이 들어설지도 모르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