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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1. 최장집, 박찬표, 박상훈 공저. [어떤 민주주의인가] 후마니타스 2007

 

 

책의 발간 즈음해서 한겨레 21에 실린 최장집 교수의 인터뷰를 읽었더랬다.

그는 절차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에 관한 자신의 견해가 세간에 오해되고 있음을 강력하게 역설했다. 읽고보니, 나 또한 그의 전작을 통해 이런 오해를 적지 않게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책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가지 기억해둘만한 핵심 내용들....

 

 

 



0. 성장하는, 혹은 성숙해가는 연구자

 

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살아 있는 이곳의 현실에 천착하여 문제의식을 꾸준하게 발전시키고 이론을 심화시켜나가는 이들의 모습이 새삼 존경스럽고 부러웠다. 초로의 학자가 젊은 날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고 재해석하며 스스로 인식의 확장과 발견의 기쁨을 확인해가는 모습은, 학계 핏댕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책의 1부가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되어 (학술적 엄밀성을 떨어질지 모르지만) 좀더 자유로운 소통, 학자로서의 최장집이라는 컨텍스트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정치학자로서 현실과의 바람직한 관계 설정에 대한 질문에 그는 답한다. ".. 자신의 학문과 그 업적이 넓게는 사회과학, 좁게는 정치학 발전에 기여하는 바 크다면 그것만으로도 학자의 역할은 충분하다....  우리는 그런 학자의 업적과 이론을 통해 현실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고, 현실 정치를 판단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받는다. 그것은 학문의 중요한 역할이다. 좋은 학자들의 이론에서 도움 받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현실에서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불행하게도 그것은 우리가 보통 세계적인 대가라고 말하는 상대적으로 소수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고, 그런 수준의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행복이다. 그러나 사회과학이나 특히 정치학 영역에서 대가가 되는 일은 학문적 탐구의 결과로서만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 사회에 이성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깊이 간여하지 않고서는, 또 깊고 강하게 가치 판단을 하지 않고서는 가능할 것 같지 않다....."

 

0. 절차적 vs. 실질적 민주주의

 

책의 상당량을 이 두가지의  개념적 명료화와 그 불가분성을 설명하는데 기울이고 있다. 특히 세간의 오해 - 절차적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이루었는데 실질적 민주주의가 문제라는 - 를 드러내고,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절차적 민주주의가 주요 과제임을 역설한다. 구구절절 기억해둘 내용이 많지만, 아마도 첫머리의 이 부분이 가장 함축적인 표현이 아닌가 싶다.

"내가 생각하는 절차적 민주주의는 어떤 넓은 통로로 이어지는 열쇠 같은 것, 큰 산에 오르기 위한 등산로의 입구 같은 것이다. 민주주의는 매우 포괄적이고 폭넓은 정치 현상이기 때문에, 그것을 좀 더 넓고 좀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좋은 입구를 발견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바른 입구를 발견하지 못할 때 그 등산객은 넓은 산에서 길을 잃고 얼마나 헤매겠는가?"

 

0. 민주주의의 핵심 기제로서의 정당, 그리고 다원주의적 엘리트 정당 vs. 대중정당

 

읽는 내내, 그래 내가 말하고 싶은게 바로 이거였다구 하면서 맞장구를 쳤다. 머리 속에 들어있던 희미한 문제의식과 단편적인 주장들이 가지런히 정리되는 느낌이랄까... 이런게 책을 읽는 보람이다 (^^) 국내에서 두드러진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는 헌정주의에 대한 비판, 소위 정치의 효율성을 주창하는 정책정당/엘리트 정당론에 대한 비판, 이것이 신자유주의의 정치 버전임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매우매우 공감. 

 

0. 궁금증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을 대의제와 책임제도라고 했을 때 직접 참여 민주주의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이를테면 브라질의 참여예산제나 민중건강평의회 같은 구조는, 저자들이 미국의 주민소환제를 비판했던 것처럼 제도가 정해놓은 한도 내에서나 선택이 가능한 미조직 개인들의 행동 -포퓰리즘으로 전화될 수 있는-으로 보아야 하는 것일까? 아니라고는 답 못하겠으나, 대의제가 아니면서, 그렇다고 개인으로서의 산발적 행동도 아닌, '조직화된 직접 참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그리고 우리 당.... 당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해? ㅠ.ㅠ

 

 

2. 김미정 등. [부서진 미래] 삶이 보이는 창, 2006

 

 

이런 책은, 사실 정서적으로 감당이 안 된다. 감정이입 100%와 걷잡을 수 없는 분노...물론, 내용을 떠나, 서술의 방식이나 분석을 본다면야 부족한 부분이 상당히 많이 눈에 띈다. 지나친 전형성이나 '설명적' 담화양식이 특히 그렇다. 그리고 현상을 설명하고 해석하는 분석적 내러티브의 부족도 그렇고... 하지만, 이것들이 이 아마추어 르뽀 작가들이 해야 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당연하게도, 부르디외의 [세계의 비참]이 떠올랐다.

 

3부로 편집된 [세계의  비참] 첫 머리에 부르디외는 "독자들에게"라는 서문을 적었다. 거기에서 부르디외는 말했다.

"... '통탄해서도 안 되고, 비웃어도 안 되며, 혐오해서도 안 된다. 오직 이해하는 것만이 필요하다' 이는 스피노자의 말이다. 하지만 이 스피노자식의 규칙을 따를 수 있는 방법도 함께 제시해 주지 못한다면, 우리들 사회학자가 아무리 이 규율을 준수한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세계의 비참]을 읽었을 때의 심정은 참으로 복잡했다. 그야말로 세계의 비참에 대한 아픔과 더불어, 문제의 구조적 기원에 대한 이성적인 이해가 화악 열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가장 중요한 연구도구로서, 사회학자 그 자신의 힘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부르디외 같은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아직까지 그 바램은 실현하지 못했고, 당분간은 역시 힘들 거 같다. [부서진 미래]를 보면서 분석하고 고민하기보다 울컥(!)하는 감정이 앞서는 걸로 보아 아직 멀었다. ㅡ.ㅡ

남아 있는 장들은 좀더 차분하게 읽을 수 있음 좋겠다.

 

그리고 이 책 끝나면 상큼한 책에 빠져보고 싶구나.

얼마 전에 보았던 영화 베오울프의 시나리오 작업을 했던 Neil Gaiman, 그의 까칠하고도 은근 상큼한 이야기에 빠져보리다!

American Gods: A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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