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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간의 민주적 소통

요즘 읽은 몇 편의 논문들이 하나같이 어찌나 interdisciplinary or transdisplinary approach 를 강조하는지 마치 이것만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특히나 생물학과 사회과학이 만나는 접점이라 할 수 있는 사회역학 분야는 이러한 접근법이 그 어느 분야보다도 절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Kaplan 이 사회역학의 한계와 미래를 전망한 리뷰 논문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사회역학의 많은 개념과 주제들이 사회과학으로 유래한 것인데 사람들(소위 사회역학을 한다는 사람들)은 그 용어의 일상성과 친숙함으로 인해 마치 자신이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haplotype" 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겠지만, "빈곤", "지역사회"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본인 스스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내 이야기다). .  

 그러나 막상 interdisciplinary reseach 를 하려면 결코 쉽지가 않다. 인접한 학문 분야의 연구자들과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한다고 해도 사용하는 용어와 개념, 연구 방법론이 다른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본인 스스로의 전문분야가 아닌 것을 스스로 다 파악한다는 것도 쉽지 않다. 빠르게 변화하는 여러 학문 분야의 최신지견을 다 알기란 실제로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이에 대한 실례로 kaplan 은 다소 충격적인(?)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이 바닥에서 조금만 공부한 사람이면 영국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기념비적 연구인 화이트홀 연구와 중심 연구자인 Marmot 를 알 것이다. 이 연구의 가장 큰 의미라면, 절대 빈곤을 넘어서 사회적 위계 그 자체가 건강 격차를 낳는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곧잘 영장류에 대한 Sapolsky 의 연구와 비교된다. 원숭이 집단에서조차(!) 사회적 위계가 낮을수록 코티졸 (스트레스 호르몬)이 높다는 것이다. Marmot 는 이를 Serengeti 생태계와 whitehall  생태계의 유사성이라고 표현하였고 건강불평등을 매개하는 사회심리적-신경내분비 기전의 훌륭한 근거로서 수많은 논문들에 인용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영장류에 대한 연구들을 모아서 리뷰해본 결과 위계와 건강위험에 대한 연관성을 확정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Sapolsky 도 다른 요인들의 영향을 배제한다면 이러한 연관성은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천하의 Marmot 도 타 영역을 빠삭하게 알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Richard Levins 는 ecosocial epidemiology, 복잡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가장 중요한 학문적 성과들은 대개 분야의 경계, 혹은 분야를 가로지르는 도전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학문의 민주주의가 중요하며 학교들의 department system과 학회 중심, 분야에 따른 연구비 배분 등이 이러한 소통을 가로막는 주요한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어찌 보면 이는 토마스 쿤이 이야기한 "정상과학"의 정상적인(?) 발전과정 아닌가?



학문 분야 중심으로 돌아가다보니 그에 대한 반성과 반동으로 학제간 연구에 대한 강조가 넘쳐나는 듯 싶다. 세미나 때 사회역학 포스닥들이 이야기하는 걸 들으니 처절하기는 하다. 대개 취업은 본인의 전공분야에 따라 결정되기 마련인데, 이렇게 학제간 연구와 트레이닝을 마치면 막상 전공분야의 "업적"이 없어서 힘들단다. 이를테면 자기가 사회학과 나와서 사회역학과정 포스닥을 하고 있는데, 임상의학 학술지에 논문을 실은 것들은 나중에 취업하는데 하나도 도움이 안 된다는 거다. Levins 는 제자들의 추천서 쓰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단다. 생태학 혹은 생태역학을 전공했다게 뭔지, 이게 회사나 학교에 어떻게 중요한지 설명하는 것 자체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는 것이다. 반면 캐나다에서는 연구비를 받을 때 여러 학문분야가 같이 한 과제에게 높은 우선순위가 부여된단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할 말이 많지만 짧게 ㅡ.ㅡ+

미국 연구자들은 학제간 연구가 부실하다고 불만이지만, 사실 나한테는 이러한 수준도 놀라웠다. 한 20여명이 참여하는 사회역학 관련 세미나에 MD 는 기껏해야 4-5명을 넘지 않는다. 심리학, 생리학, 생물학, 역사학, 경제학, 사회학..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causal inference 에 대한 활발한 논의를 한다. 내가 있는 연구소만 해도 펠로우 4명 중 나만 MD. 나머지는 사회학과 인구학, 심지어 공학(road safety)을 전공했고 스탭들도 상당수 사회학, 경제학 전공자들이다.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가끔은 터무니 없기도 하고(ㅎㅎㅎ) 가끔은 기발하고 창조적인 의견들, 그리고 내가 모르는 다른 분야의 최근 경향들, 그리고 건강과의 관련성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한국에서 역학회는 어땠었나? 일단 아무도 공개적으로 주장하지는 않지만 역학은 일단 MD 의 영역이다. 최근 일부(!) 나아지기는 했지만 역학이 마치 "예방의학"의 한 분과인 양 존재하는 이상 이러한 MD 편향은 바뀌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러니 다양한 요인의 causality 에 대한 논의는 거의 불가능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숫자도 얼마 안되는 역학 전공자들이 하나같이 molecular or genetic epi 를 한다는 것이다. 생물학적 종의 다양성이 생태계 유지의 필수적 조건이듯 학문 분야에서의 다양성도 매우 중요할텐데, 영 그렇지가 못한 상황이다. 이러다가 재난이라도 닥치거나 치명적이 천적이 나타나면 다함께 멸종(? 헉.)할 수도 있다.

 

근데.. 아쉽게도 kaplan 의 논문이나 Levins 의 논문들은 학제간 연구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강조하되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답을 주고 있지 않다. 뭐 딱히 답이 있는 것도 아니기는 하지만.....

 

이거 다시 "조직화".. 좀더 거창하게 이름붙이면 "네트워킹"의 문제로 돌아가는 것인가? 나혼자 북도 치고 장구도 치고(사물놀이?) 다 하려고 하기보다 연구자들을 조직하는 것이 중요하다. 근데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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