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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기록들

최근 중/장거리 이동 중에 읽거나 보게된 실제와 가상의 혁명 기록에 대한 단상..

 

#0. Robert Heinlein. [The moon is a harsh mistress] Tom Doherty Associate Inc. 1997 (원작은 1966년 발표)

 

The Moon Is a Harsh Mistress

 

소위 SF 업계 Big 3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클라크와 함께)중 하나인 하인라인의 작품으로, 휴고와 네뷸러 동시 수상작...

(책으로 읽은 것은 아니지만) Starship troopers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 또한 작가의 의중을 모르겠음 ㅡ.ㅡ

스타쉽 트루퍼스가 군사주의를 찬양하는 것인지, 아니면 고도의 안티인지 헷갈리는 것은 아마도 하인라인의 정치적 이력을 알고 있기 때문일 듯. 그는 베트남전에 찬성했던 우파. 그런데 위키에 찾아보니 과거 업톤싱클레어의 사회주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는군. 더 헷갈려 ㅜ.ㅜ (하긴, 평생  일관된 이력을 가지고 살아가기가 쉬운 일인가??? )

 

이 책도,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권위적 존재에 대한 도전으로서 혁명을 찬양하고, 더구나 주인공 중 한 명인 Bernardo 교수의 언설을 통해 개인의 자율성에 기반한 아나키 철학을 옹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비합법적인 전위에 의한 수직적 의사결정구조, Mike 라는 슈퍼컴퓨터의 철저한 '지도', 의회의 '조작'을 매우 긍정적으로 그리는 다소 어리둥절(?)한 양상을 보인다. 이거 도대체.... ㅜ.ㅜ

 

나름 합의점을 찾아본다면,

작가는 지향 측면에서 자유주의자로서 자유주의적 혁명을 옹호한다, 플러스

1960년대에 상상가능했던 혁명운동이란 러시아에서처럼 전위가 지도하고 비밀 세포들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었기에 작가의 상상력도 거기에 제한되었을 것이다?

 

우쨌든 이런 정치적/사회적 해석은 차치하고, 참으로 기발한 상상력과 문장력으로 쓰인 것만은 사실이다. 네트워크를 가로지르는 핵심 노드에 자리한 슈퍼컴 Mike의 존재와 기능은 오늘날의 기술수준에서 돌아볼 때, 정말 획기적이면서도 합리적인 상상력이 아니었나 싶다. 중력의 문제를 혁명 성공 가능요인의 중심에 자리잡게 한 것도 매우 그럴듯하고... 다만 생물학적 문제 - 정상세균총과 병원체의 다이내믹에 대한 부분은 좀 아쉬웠다 (이 부분은 아시모프의 소설들에 훨씬 사실적으로 그려짐). 또한 미국사회에 끼친 파장도 대단하여 이 책에 등장한 'TAANSAFL: There ain't no such things as a free lunch" 이 관용어로 널리 자리잡게 되었다고...

 

하지만, 뭐랄까... 아쉬운 것은...

달과 관련된 혁명운동을 다루고 있는 Ursular LeGuin의 [Disposessed] 와 비교해볼 때, 전자에서의 회한과 정서적 몰입이 전혀(!) 일어나지 않더라는.... 

정통 Hard SF 의 명작이라 칭할만하기는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깊이와 철학적 성찰이 부족하다고나 할까? (소위 SF 명장이라는 양반한테 이런 평 했다고 밤길에 테러당할지도 모르겠다 ㅎㅎ) 솔직하게도, 루니들의 투쟁에서 '절박함'과 혁명운동의 어떤 '뜨거움'을 느끼지 못하겠더라. 글을 너무 머리로만 썼나봐?  하드SF 라고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잖아.. Joe Haldeman의 소설들을 보라구!!!

 

그래서 생각이 들었다. 

과연, 혁명이 이렇게 이루어져서야 쓰겠나?

나는 이 혁명 반댈세!



#0. Patricio Guzman 감독[La Batalla de Chile]- 칠레전투 3부작, 1972-79년

 

 

 

무릇, 혁명이란 이루기보다 지키기가 더 어렵고, 그 지켜가는 과정 자체가 혁명이라 하겠다. 아주아주 힘든........

하인라인의 소설에서 루니들은 컴퓨터와 뛰어난 혁명가들의 혁혁한 공에 힘입어 혁명을 성공시켰지만, 현실에서의 혁명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더구나 민중권력이란...

 

선거에서 이겨보자고 만들었을 노래 Venceremos는 어찌도 이리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기만 하는 건지.... 다큐가 그리고 있는 혁명시기 민중권력의 모습은,그 '바람직함'에 가슴이 떨리면서도, 한 사람 한 사람들이 직면하고 있는 절박함/긴박함 (그리고 그 비극적 말로를 알고 있기에) 때문에 더욱 안타깝기만 했다. 

1부 마지막에서, 반동적 군부의 총구와 나의 눈이 (카메라를 통해) 마주치고 급기야 그 총탄에 의해 화면이 뒤집히는 장면에서,역사의 기록이란 무엇이어야 하는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옌데는 포탄이 작렬하는 대통령궁에서 이야기했다.

"그들은 힘으로 우리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력이나 범죄행위로도 사회변혁을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의 것이며 인민이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더 자유롭게 걷고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할 역사의 큰 길을 인민의 손으로 열게 될 것입니다." (1973.9.11 Salvador Allende)

 

그리고 반동의 총공세에 저항하기 위해 나서는 초라한 행색의 한 남성 노동자는 이야기했다.

"전 이 정부가 민중의 정부라는 걸 압니다. 저는 이미 결심했기 때문에 두렵지 않아요. 얼마 전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내겐 자라나는 두 아이가 있고, 그 애들이 다 커서 내가 어떤 이유로 죽어야 한다면, 평생을 착취당해왔던 노동자로서 대의명분을 위해 죽었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죠."

 

단기적으로 패배한 듯 보이는 혁명도,

그 정신은 오롯이 남아 시간과 장소를 달리하여 또다시 분출되고, 세상은 그렇게 변해가는 것 같다. 조정래의 [태백산맥] 마지막 장에 하대치가 남긴 이야기처럼 말이다...

 

감독과 카메라맨들의 이 뜨거운 시선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우리는 그 소중한 역사의 한 때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 거친 흑백의 화면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와 투쟁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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