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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나의 7대(?) 사건

* 이 글은 뻐꾸기님의 [잘가라, 2004년] 에 관련된 글입니다.

도대체 연말 기분이 나지 않던 차에, 뻐꾸기 언니의 글을 보고 잠시 나의 1년을 돌아보다. 올해는 정말 사건이 하나도 없었네... 하면서 입을 삐죽거리다 아참, 미국에 연수 왔지? 하는 생각이 번뜩 떠올랐다. 이쯤 되면 무심함이 입신의 경지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저히 10대 사건을 만들어낼 수가 없네. 7대 불가사의도 아니고, 7대 사건이라니 무슨 소년과학잡지 제목도 아니고 ㅜ.ㅜ 그나마 6대사건, 9대사건 아닌게 다행인가?

 

1. 태백산 일출 산행

난생 처음으로 엄동설한, 야간산행 도전.. 기다렸다는 듯 마침 그날은 수십년만에 처음으로 찾아온 강추위 때문에 전국이 꽁꽁 얼어붙었더랬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엄청난 추위 땜시 일행들의 랜턴이 모두 방전되어 버리고, 오빠에게 빌려간 좋은 헤드랜턴 덕분에 무리들 사이에 "앞장서는" 황당한 일까지 경험했다. 얼어죽는다는게 어떤건지 정말 실감했다. 흰눈덮힌 태백산 어스름과 일출은 대 장관이었다. 허나 그렇게 얻은 호연지기는 영하 18도의 추위에 꽁꽁 얼어붙어 약발이 별로 오래가지 못했다. 한국에 돌아가면 꼭한번 다시 가고픈 산행... 지리산 백무동 계곡으로 일출보러 올러가는 건 나한테 좀 무리겠지?

 

2. 고속도로에서 퍼진 차

대전에서 서울 올라가던 중(2월, 미국 출장가기 전날) 어이없게도 냉각수 뚜껑이 날아가 버려 차가 오버히트 되는 불상사 발생... 고속도로 한 복판에서 자욱한 연기 휘날리며 달리는 위험천만한 상황을 연출했다. 갓길로 겨우 빠져나와 비상등 켜놓고 있자니, 날은 춥고, 차들은 쌩쌩 달리고... 출근길 청계고가 한복판에서 엔진 꺼졌던 사건만큼이나 처량하게 느껴졌다.

 

3. 남아프리카 공화국 방문

제 3회 국제건강형평성 학회 참석 차, 난생 첨으로 아프리카 대륙을 밟아보았다. 발표 때문에 좀 후달리기는 했지만... 낯선 곳, 새로운 환경에서 형평에 관심을 가진 여러 나라의 의욕적인 연구자들을 만나보고, 수박 겉핥기 식이나마 남아공 사람들 사는 모습, 활동가들의 모습도 직접 보고... 짧게 표현하기 힘든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 여행이었음

 

4. 내 귀에 도청장치.. 가 아니고 진주종...그리고 수술

역시 평생 처음으로(여러가지가 다 처음이로군) 전신마취와 수술... 수술 전에 밀린 일들 마무리하느라 며칠 동안 잠을 설쳤더니만 막상 병원에 가서는 정신 못차리고 푹 잘 수 있었다. 수술 당일 아침에도 늦잠을 자서, 문병온 친구가 아연실색했다. 마취에서 아련히 깨어날 무렵, 머리속에 번뜩였던 것은 술후 합병증... 귀 수술 후에는 안면신경 마비가 흔한 합병증 중 하나다. 그 졸린 와중에 눈을 깜빡이고 얼굴을 찡그리며 신경을 자가 테스트해본후 아무일 없음을 깨닫고 다시 자버렸다. 수술은 했는데... 귀는 여전히 잘 안들리고... 환장할 노릇이다.. 평생 이렇게 살아갈 걸 생각하면 좀 우울하기는 하다. 그러고보니 올해 있었던 일들 중 가장 슬픈 사건이로군... (어쩜 평생에?)

 

 



5. 사랑니 뽑다

작년까지 뵈지도 않던 한쪽 사랑니가 올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더니만 피곤할 때마다 조금씩 아프기 시작했다. 그것도 귀와 같은 오른쪽.... 미국 가기전에 이걸 해결해야 한다는 필사의 신념으로 출국 막판 그 바쁜 와중에 이를 뽑았다. 가은씨한테 야매로...치료비는 책선물로 대신 ㅎㅎㅎ. 이빨 뽑은지 두 시간 만에 김 모 샘의 강권에 의해 짜장면 먹고, 그 날 저녁에는 가족 외식한다고 유황오리 먹으러 갔다. 정말 괴로웠다.

 

6. 가족 나들이

초등학교 이후 처음으로.. 온 가족이 함께 물놀이를 갔다. 부모님, 나, 오빠네 식구들... 그래봤자 한나절 북한산 계곡에 가서 백숙, 매운탕 뭐 이런거 시켜먹고 물장구 친게 전부지만... 정말 감회가 새로왔다. 이것도 내가 연수를 가는것 때문에 특별히 기획된 가족행사였다. 안 그랬으면 아마 불가능했었겠지... 나는 귀에 물이라도 들어갈까봐 평상에 하루 종일 누워서 그늘 따라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이게 얼마만의 가족 나들이인가.. 부모님께 정말 죄송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7. 미국 연수

여차저차하여 미국 땅을 밟게 되었다. 이제 네 달째에 접어드는데, 뭘 많이 배우긴 한건지 잘 모르겠다. 시간이 정말 빨리 가기는 한다.

 

그 밖에 또 뭐가 있을까... 감동을 주었던 책들, 영화들, 좋은 사람들과의 여행.... 개인적인 일은 아니지만 민노당의 의회진출... (그 때 목이 메었던 걸 생각하면서 지금 최저위원들 하는 꼬라지 보면 화가 두 배로 난다)..

 

아... 잘 가라.. 2004년...

내년은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과연 일신우일신할 수 있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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