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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소설과 과학 논평

출퇴근 길이 가까워져서 한 가지 안 좋은 점은 책을 읽기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ㅡ.ㅡ

사실, 출퇴근 시간 절약된 분량을 차분히 앉아서 책읽는 시간에 써도 될텐데...

아무래도 자리에 앉으면 항상 어디에선가 적체되어 있는 일을 하게 되는지라...

 

저녁 독서시간 할당을 지키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듯... 이러다 바보되겠쓰... ㅜ.ㅜ

 

#1. SF 명예의 전당 2권

 

SF 명예의 전당 2 : 화성의 오디세이
SF 명예의 전당 2 : 화성의 오디세이
로버트 A. 하인라인 외
오멜라스(웅진), 2010

 

이거 사실 첨 출판되었을 때 번역자 중 한 명인 네오한테 선물받은 건데

뭉기적거리고 있다가 최근에야 다 읽었다.

내가 번역에 참여했던 '명예의 전당' 시리즈 (?) 중 단편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역시나 느끼는 감정은... 놀랍다/대단하다/신기하다.......

 

*

아무런 맥락없이 읽는다면 빈번하게 등장하는 정형화된 클리세들이 눈에 거슬리고

공장에서 찍어내듯 고만고만하게 나오는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자연스럽게 연상될 법도 하지만,

여기 실린 이 글들이 현재의 그 클리셰, 혹은 스테레오타입의 원조였음을 생각하면 대단하다는 말로는 오히려 설명이 부족하다.

이를테면, 서글프고 애틋하면서도 약간 소름이 돋는 '헬렌 올로이' 같은게 대표적이다.

감정을 갖게 된 로봇, 로봇인 줄 모르는 로봇, 그 정체를 알면서도 사랑에 빠지는 사람...

SF 업계에서 이 얼마나 상투적이고 흔해빠진 스토리인가 말이지.. ㅋㅋ

근데 이게 1938년 작이라는 사실이 완전 후덜덜......

스터전의 경우에도 그 명성만 익히 전해듣고 작품은 첨 보았는데, 역시 소인, 기계인간의 창조주, 우리 주변의 소우주, 사회성 빵점인 과학자....  오늘날 흔해빠진 플롯들의 원조 ....

반인/반기계를 다룬 '스캐너의 허무한 삶'도 그렇고,

초능력을 갖게 된 누군가 (대개는 어린이 ㅋㅋ)의 축복받지 못한 삶을 다룬 '즐거운 인생',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과도 관련된 안전한 로봇 패러다임에 반하는 '즐거운 기온'도 이런 유형...

 

*

미래를 내다보는 혹은 사회문제를 예측하거나 뚫어보는 눈 또한 놀라운데,

이를테면 핵 노출에 의한 기형아 문제를 아주 짧고도 인상적으로 그려낸 '오로지 엄마만이',

도덕/차별/배제 문제의 복잡성을 빼어나게 그려낸 '친절한 이들의 나라',

그리고 무엇보다 '앨저넌에게 꽃다발을'은 엄청난 수작....

정체성/능력주의/과학기술의 사회적 영향 같은 어려운 당대의 이슈를 어쩜 이렇게 짜임새 있으면서도 서정적으로 그려냈는지.... 읽는 내내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음.. ㅜ.ㅜ

 

*

근데... 하인라인의 노동자 적대성은 도대체....

누가 쓴 건지 확인하지도 않고 읽다가 '혹시?' 하면서 다시 앞쪽을 들춰보니 '역시' 그였어... ㅡ.ㅡ

글은 참 맛깔나게 쓰는데...   짜증이 화르륵..

 

 

#2.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 - 창조론이 과학이 될 수 없는 16가지 이유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 - 창조론이 과학이 될 수 없는 16가지 이유
리처드 도킨스 외
바다출판사, 2012

 

당대의 일류 과학자들이 바쁜 시간을 내서 이렇게 책을 써야 하는 미국의 현실이 그저 안습....

나도 2004-05년 미국에 머무르는 동안 어처구니를 상실했던 공립학교 지적설계론 교육을 둘러싼 되도 않는 '논쟁'에 과학자들이 이건 정말 심각하구나 하면서 함께 팔을 걷어붙인 프로젝트라고나 할까?

뭐 미국 상황이 한심하기는 하지만,

한국에서도 KAIST 에 '창조관'이 버젓이 존재하고, 미국의 복음주의 영향이 남유난히 강한 점을 생각한다면 남 욕할 처지는 아닌 듯...

담배회사나 석유회사들이 건강영향, 지구온난화 등 자신들에게 불리한 연구결과를 반박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으로 동원하는 수단은 의심을 창출하고 논란을 만들어서 시간끌기.... 사실 창조과학의 최근 버전인 지적설계론이 동원하고 있는 방법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보면 될 듯... 

진화론이 완전 틀렸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진화론도 있고, 지적설계론이라는 대안적 설명도 있는데, 학문의 자유, 선택의 자유라는 미국 정신에 따라 과학 시간에 여러 가지 견해를 다 가르치는게 좋지 않겠냐...  이런 접근전략...

말만 들으면 그럴듯해보이지만, 일단 지적 설계론은 '검정'이 가능한 형태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리고 실제로 전문가동료 심사 학술지에 증거가 제시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이건 뭐 과학도 아닌데.... 어디 듣보잡이 나타나서 진화론과 자기가 동급이라고.....

워낙 지적설계론을 포함하여 종교 - 특히 기독교는 정파, 사파, 구교, 신교 가리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입장이기에 책의 내용이 신기한 것은 없었으나,

'자연선택은 누가 더 생존율이 높을지 모르는 상태로 생겨나는 무작위적인 변이들을 재료로 삼는 무작위적이지 않은 과정'이라는 간단명료한 문장으로 진화론의 핵심을 설명한 것이 기억에 남고, 또 두 가지 인상적인 부분....

 

첫째는, 신학교에 다닐만큼 독실한 기독교도였던 다윈이 자신의 믿음, 그리고 기존의 지식과 일치하지 않는 자신의 발견 때문에 몹시도 괴로워했다는 점....

만일 이 때 다윈이 '어 이게 아닐 거야, 내가 뭘 잘못 봤겠지, 이럴 리가 없잖아'라고 넘어갔으면 현대의 위대한 발견은 없었거나 아니면 한참이나 뒤늦게 다른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을 것.... 코페르니쿠스의 위대한 발견도, 기존 지식으로부터 예측된 것과는 미묘하게 다른 자신의 관찰을 그냥 넘어가지 않고 '왜' 라는 끈질긴 질문으로 추구한데서 비롯된 것임을 떠올려보면, 과학적 태도란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믿음'이 아닌 '이성'에 의해 질문하고,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리라...

이에 비하면, 내가 그동안 했던 연구들에서 이런 태도는 너무 부족하지 않았나 반성.... ㅡ.ㅡ

뭐 내가 다윈이나 코페르니쿠스 쫓아가려다 가랑이 찢어지겠지만,

기존 지식과 일치하지 않는 결과에 대한 경시, 혹은 안일한 해석은 돌아보면 민망할 지경............ㅜ.ㅜ

 

둘째는 과학이 도덕원리를 제공할 수 없는 것만큼이나 종교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 (스티븐 핑커)에 완전 공감!!! 종교가 일부 (!)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것도 사실이지만, 그 패악질을 두고 손익계산서를 비교해본다면 인류에게 손해가 더 클 것이라는 것이 평소 나의 지론인데다, 종교가 과연 윤리와 도덕 영역에서는 소중한 존재인가에 대해 깊은 의구심을 가졌던 나에게 아주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 의견....

종교, 특히 자기성찰로서의 도구가 아니라 어떤 절대자와의 관계를 상정하는 종교의 경우,

그러한 절대자의 존재가 사람을 과연 더욱 도덕적으로 행동하게 만들까???

역사적으로 한국을 비롯하여 세계 곳곳에 훌륭한 종교지도자들이 많았고 (많았나?)

또 일반인들 중에서도 해당 종교가 내세운 본연의 미덕을 실천하며 사는 이들이 적지는 않았으나, 그렇다면 counter-factual condition 을 가정했을 때 과연 이들이 해당 종교에 귀의하지 않았더라면 인간 말종이 되었을 것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ㅋㅋ

종교 없었어도 충분히 그들은 도덕적인 삶을 살아가지 않았을까 싶다는....

실제로는 버트런트 러셀도 누누이 지적했듯,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고 혹은 인가된 패악이 너무너무 많은데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계속 반복되고 있다. 그래서 "도덕이 종교의 영역에 속한다는 전제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스티븐 핑커의 경고는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종교가 없다는 것이 물질만능주의 인간말종으로 살겠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잖나....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몇 주 전 한겨레 21에 실린 김인국 신부의 인터뷰를 읽다 약간 허거덕 했다. 이 분은 김용철 변호사가 양심선언을 할 때 도와주고 힘이 되준 훌륭한 분이다. 인터뷰 중간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뱀이 시키는 대로 놔두면 안 된다. 창세기에 나오는 원죄 이야기다. 아담과 이브가 금지된 과일을 따먹은 것보다 더 무거운 죄는 지각능력과 판단능력을 버리고 뱀이 시키는 대로 행동한 것이다. 운명의 결정권을 뱀에게 넘긴 것이 죄와 불행의 시작이었다. 세상의 불법과 폭력에 우리가 공범자일 수 있다는 생각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세상의 악에 우리도 어떤 모양으로든 일조하거나 간접으로 승인하거나 결과적으로 방조 또는 묵인한 측면도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세상이 이럴 수는 없다." (한겨레 21 900호 김인국 신부 인터뷰)

 

글쎄다.. 나는 이 에덴동산 장면을, 창조주가 시키는 대로 무개념 상태로 살다가 뱀을 통해 처음으로 각성을 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된 상징적 사건으로 이해하고 있다. 운명의 결정권을 뱀에게 넘긴게 아니라, 뱀을 통해 돌아보게 된 것 아니여? 그 전에는 결정권이 오로지 그분에게 있다가??? 이런 걸 보면 정말 건널 수 없는 심연이 존재한다는 생각밖에....  뒷부분 논지에는 완전 동의하는데, 이게 정말 적절한 사례인지는 도대체 납득이 안 됨...

하긴, 뭐 믿는다는데 어쩌겠나.... 과학적으로 입증하거나 반박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나는 절대자 믿는 종교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사족이지만, 이건 실존인물을 둘러싼 종교적 빠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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