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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극장이 가깝다보니 이렇게저렇게 영화를 놓치지 않고 보고 있다.
#.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김성호 감독, 2014년)
'귀엽다'는 말이 어쩐지 실례가 될 것만 같은 아역배우들의 연기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음. 남동생의 코 파는 연기는 가히 천하제일... ㅡ.ㅡ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서, 텔레비전 보며 밥먹는 이다윗 배우의 연기 이후 미성년 부문 생활연기의 최고봉이랄까 ㅋㅋㅋ
웨스 앤더슨 같은 아기자기한 장치들과 화면구성도 은근 볼거리....
심지어 블록버스터 급 액션과 스릴러, 음모와 배신은 양념....
배우 김혜자와 최민수를 비롯하여 성인들의 캐릭터와 연기도 모두 과하지 않아서 좋았음.
해피엔딩으로 끝나서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가혹한 현실에 영화에서마저 가혹하게 끝나버린다면 어쩐지 감당이 안 될 것 같더란 말이지... ㅜ.ㅜ
#. 나를 찾아줘 (데이빗 핀처 감독, 2014년)
일단 제목이 마음에 들었음. 되도 않는 이두 문자 영어 제목에 어이 없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닌데, gone girl 이라는 원제목보다 영화를 더 잘 드러내는 듯.. .제목이 좀 스포일러인가?? "아이킬드마이마더" "인히어런트 바이스" 같은 제목들을 떠올리다보면, 절로 혈압 상승.....
가족들과 함께 어려운 시간을 견뎌내고, 사람과의 관계를 차곡차곡 만들어나가는 영화가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었다면, 이 영화는 정 반대편에서 "피식"하면서 팔짱 끼고 썩소를 날리고 있을 영화....
이런 게 가정인가, 이런 게 사랑인가, 이런 게 인간인가..... 하는 회의를 무한생산 ㅡ.ㅡ
아이고 무서워라.... 정말 다 보고나서 엔딩 크레딧 올라가는데 모골이 송연....
'어메이징 에이미'를 연기한 로자먼드 파이크 연기가 정말 완벽한데다, 벤 에플렉의 찌질남은 연기인지 실제인지.... 오랜만에 정말 아메리칸 스윗하트가 아니라 아메리칸 호구 인증 ㅋㅋㅋ
[파이트클럽] 이후 핀처 감독 영화에 왠지 끌리지 않았는데, 몇 가지 다시 챙겨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음
#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 2014년)
"실스마리아의 구름"이라고 하면 품격이 떨어지나.... ㅡ.ㅡ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막나가는 듯한 심드렁한 표정과 태도가 도대체 연기인지 실제인지 알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의 영화. 줄리엣 비노쉬의 캐릭터와 서사 또한 극중 인물인지, 배우 자신의 것인지 헷갈리고, 클로이 모레츠는 딱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실제 삶을 연기하고 있음 ㅋㅋㅋㅋ 이 셋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혹은 촬영장에서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었을지가 몹시도 궁금....
젊음에 집착하는 나이든 여배우의 회한과 노욕, 이를 깨우쳐주는 젊은 파트너들의 활약(?)을 그린 전형적 영화라고도 볼 수 있겠으나,
이 둘 사이 주도권의 역전과 마지막 무대 리허설까지도 현실을 받아들이는 듯 받아들이지 못하는 원로 배우의 모습, 그리고 이들 모두 (최소한 영화 중에서) 실스마리아 계곡의 구름이 몰려드는 장관을 결국 놓쳤다는 것은, 아직, 혹은 영원히 완성되지 않을 인생에 대한 메타포로 보였음.
#. 버드맨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뚜 감독, 2014년)
기묘하게도,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와 데칼코마니 같은 영화.
근데, 색깔이 달라... 그래서 분명히 거울을 보았는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보이는 것 같은 기묘한 환상과 당혹감을 안겨준달까???
마이클 키튼이 연기한 리건이란 인물은 어느 정도나 마이클 키튼과 다른 사람인 건지 너무너무 궁금... 분명, 버드맨은 배트맨이었고, 내면의 그 허스키보이스는 다크나이트의 그분 목소리라고 ㅋㅋㅋ
첫 장면, 공중부양할 때부터 이거이거 범상치 않겠는 걸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라틴 아메리카 작가와 감독들한테 클리세처럼 따라붙는 수식어 "마술적 리얼리즘" - 이거 말고 무슨 단어가 적절하겠냐고....
마술상자를 통과하는 기분의 카메라 롱테이크와 극장 내부 동선은 너무 유쾌했고, 불안을 극대화시키는 드럼 연주도 매력 덩어리.... 대사며, 장면이며, 빵 터지는 순간이 너무 많았는데, 관객들의 기괴할 정도의 침묵에 당혹.... 나만 미친 여자처럼 킥킥댔다니까....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제레미 레너, 마이클 파스빈더 같은 양반들도 이 영화 보면서 나만큼 빵 터지지 않았을까 싶음 ㅋㅋ
에드워드 노튼은... 영화 보는 내내, 어쩜 저렇게 맨날 미친 놈 역할만 하나 측은한 생각이 ㅋㅋ 그가 착하거나 비교적 정상인으로 나온 영화는 아마도 [문라이즈 킹덤]이 유일한 듯..
어처구니 없는 실수로 팬티만 입은 채 맨하탄 인파 속에서 황급히 발걸음을 재촉하는 리건, 이를 사진찍고 트위터에 올리면서 사인해달라는 교양없는 시민들, 나비넥타이 매고 앉아서 고풍스런 극장을 채운 채 '순수' 예술을 즐기고 있는 교양있는 엘리트 관객들.... 정말 불협화음인데 묘하게 어색하지 않아....
세상의 인정과 사랑을 갈구하고 존재를 입증하고 싶어하는 전직 슈퍼히어로의 진정성은, 피를 훌려서야 완성된다는 괴이한 아이러니... 사실 그 자신만 빼고 아무도 그런 진정성 요구하지도 기대하지도 않고 있는데 말이지.... 심지어 자신의 내면조차도 다른 목소리를 들려주잖아.....
그런데, 우리들 모두의 인생이 어쩌면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음. 그렇게 생각하면, 리건이 버드맨처럼 날아오르고 그 모습에 환하게 미소짓는 딸의 얼굴로 영화를 맺는 건 지나친 해피엔딩....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가 태풍이 몰아치는 날의 바닷 속같은 일촉즉발의 잔잔함과 차가움으로 마무리되었다면, [버드맨]은 내내 시끌벅적하고 피와 살점이 날리는 격전을 보여주었지만 오히려 마무리는 너무 훈훈했달까???
이냐리뚜 감독은 이 영화 찍으면서 정말 즐거웠을 것 같음. 자신이 살고 있는 헐리우드를 이렇게 마음껏 놀려먹었는데, 결국 아카데미 수상이라니 ㅋㅋ
#.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 (빔 벤더스 감독, 2014년)
브라질 출신 불세출의 사진가 세바스티앙 살가두의 사진세계와 삶을 담아 낸 빔 벤더스의 다큐 영화.
그동안 여러 차례 마주쳤던 사헬, 에티오피아, 르완다, 콩고의 참혹한 인간사를 다룬 사진들의 상당수가 살가두의 것이었음을 새삼 알게 됨....
일단, 첫 장면 브라질 광산의 모습에서 일단 압도... 이건 또 뭔가, 여긴 또 어디인가.......
작가가 '어둠의 심장'을 목격하고 사진활동을 접었던 사연은 백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음.. ㅡ.ㅡ
누구라도 쉽지 않았을 것이여... 자연으로 회귀하고 지구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면서 다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했던 사연도 다 이해가 됨...
근데, 나무 250만 그루 심은 것이 주제인 것처럼 그려지고, 또 그걸 부각시킨 영화 광고는 좀 웃긴다는 생각..... 사실, 생각이 있고, 돈이 있어서 사람을 동원할 수 있으면 그게 그렇게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 않은가 말여.... ㅡ.ㅡ
작가의 사진 세계와, 작가로서의 삶에 대해 좀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으면 좋았을텐데, 아쉬움이 남음...
어쨌든 화면 가득히 압도하는 흑백 사진들에 혼을 빼앗겨버림....
전시회는 어쩌다보니 놓치고.... 아쉬워라....
이런 영화를 보면 사진이 다시 찍고 싶어진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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