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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가상 세계의 슈퍼 히어로들 이야기

#.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보급판 문고본)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보급판 문고본)
올리버 색스
이마고, 2008

 

올리버 색스의 높은 명성에 비해 그동안 저작을 읽어본 적은 없었는데,
작년에 돌아가시고 난 직후, 닐 타이슨의 Startalk Radio 에 소개된 옛 인터뷰를 듣고 꼭 한 번 읽어보리라.....
 
글쎄, 도대체 학술서라고도 소설이라고도 에세이라고도 이름 붙일수 없는 이 묘한 장르의 글쓰기에 흠뻑 바져들고야 말았는데.... 
 
어딘가 부서지고 생물학의 결핍과 과잉, 온전한 자신 혹은 그 일부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서조차 지울수 없는 인간의 내면과 불굴의 의지를 이보다 더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낼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
그토록 괴이한 신경질환자들의 사연을 신기한 구경꺼리가 아니라, 그렇다고 더없는 비극과 절망의 스토리도 아닌 모습으로, 이렇게 따뜻한 연민과 존중을 담아 바라볼수 있으리라고는 얘상해본적이 없었다고... ㅡ.ㅡ
또한 그러한 병증을 통해서 극적으로 드러나고야 마는, 오히려 '정상' 시기에는 우리 눈에 잘 띄지 않던 인간 행동과 심리의 독특한 측면을 아주아주 잘 그려내고 있음....
 
예컨대 "뇌에 장애를 가진 사람들 빼놀고는 모두 속아 넘어가고야 마는" 대통령 연설의 에피소드는 인간의 유약함, 어쩌면 병을 통해서야 보호막이 생겨나는 어이러니를 잘 보여줌. 자폐 또한 "다른 사람과는 달리 완전히 내부로 향하는 존재, 독창성이 있는 불가사의한 존재" 라는 설명 또한 그러함.
 
한번도 환자가 "병에 의존해서" 살아갈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음. 치료하고 물리쳐야할 대상에서 오히려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니, secondary gain 말고는 이걸 이해할 개념어가 나에게 없었던 게지...
파괴적 충동을 분출하는 드럼 연주에서 살아갈 동력을 얻는 툴렛증후군 환자들과 낮은 자능에도 특출한 재능과 심상의 깊이를 가진 이들의 사연에서, 잠시나마 인간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해왔던 스스로를 부끄럽게 돌아보았음... ㅜ.ㅜ그리고 곧이어 인간에 대한 믿음과 연민을 가지고 빼어난 관찰력과 기다림으로 이 모든 것을 이해하도록 만들어준 색스 할배에게 경의를 표할 수밖에...
 
"이 대목에서 우리는 기묘한 세상과 접하게 된다 그것은 우리의 통상적인 상식이 뒤집히는 세계이다. 병리상태가 곧 행복한 상태이며 정상상태가 곧 병리상태일 수도 있는 세계이자 흥분상태가 속박인 동시에 해방일 수도 있는 세계. 깨어있는 상태가 아니라 몽롱하게 취해있는 상태 속에 진실이 존재하는 세계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큐피드와 디오니소스의 세계이디"
 
회상, 아마도 원어에는 memory가 아니라 recall 이었을 것 같은데... 이 사례들은 너무 서글프면서도 먹먹한 안도감을 주었는데....
꽃이 진다고 너를 잊은 것은 아니라고.. 세월이 지나 잊혀진 것같지만 우리의 기억은 여전히 우리의 심연 어딘가에 보존되어 있고, 어떤 힘으로 빗장이 풀리면 다시 떠오를 수 있다니 말이여.....

 

#. 아툴 가완디. 어떻게 죽을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KBS  선정 도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KBS 선정 도서
아툴 가완디
부키, 2015

 

이상하게 이 즈음에 의사들이 쓴 책을 연달아 읽었는데, 보관함 리스트에 들어 있던 여러 권의 책들 중 도서관에서 대출할 수 있었던 책들이 우연히 그러했음.

마치 죽음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를 알려주는 자기계발 내지는 힐링팔이 책 같은 제목이지만,  의외로 내용은 의학적, 사회학적 분석을 담고 있음. 특히 노인병을 다루는 의사의 관점이기도 하지만, 누구보다도 신체와 정신이 쇠약해가는 경로를 걷고 있는 노인의 입장에서 '제도'와 '사회적 환경'을 돌아보고자 하는 접근이 훌륭했음.
 
 
노인의 관점에서 요양원의 역사를 기술한다면
"노새의 관점에서 미국 서부개척사를 기술하는것과 같은 것"... 
 
나 또한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던 듯.... 어시스티드 리빙 시설이 노인보다는 그들의 자녀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초기 설립자의 한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나 잘 알겠다고... ㅜ.ㅜ 안전이 중요하기는 한데, 최고 가치는 아니잖여.... 하지만 한국 사회는 지금 한편으로는 안전 이데올로기에 완전히 포섭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서비스의 시장화, 상업화의 첨단을 걷고 있어서 최악의 상태라는 느낌적 느낌 ㅠㅠ
 
 
"죽을수밖에 없는 존재로 살아가는데 따른 투쟁은 곧 자신의 삶을 본래의 모습대로 유지하고자 하는 투쟁이기도 하다. 과거의 나와 현재 유지하고 싶은 나와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릴만큼 너무 쇠약해지거나 너무 소진되거나 너무 종속되는 것을 피하려는 것이다. 질병과 노화만으로도 이 투쟁은 충분히 함겹다. 우리가 의지하는 전문가들과 시설들이 이 투쟁을 더 어렵게 만들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우리는 적어도 자신의 임무가 안전이라는 미명하에 사람의 선택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있는 삶을 살도록 선택의 범위를 넓혀주는 것이라고 믿는 전문가가 점점 많아지는 시대에 살고있다"
 
 
한편으로는 선택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의사들이 책임을 회피하고 (사실 이러한 선택권 확대가 좀더 동등한 환자-의사 관계를 만들어가는 핵심이라고 배워왔는데... 결과적으로는 너무 어려운 판단을 넘겨버린 것에 다름 없게 되어버린 아이러니), 어느덧 우리가 왜 '살아가는지'에 대해서 잊은 채 오로지 안전하게 '보존'하는 데에만 관심을 쏟게 된 이 상황을 돌아보는 것에는 통렬함이...
 
 
"우리 의사들은 병사들을 진군시키면서 계속 '멈추고 싶으면 알려줘'라고 말하는 장군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가 병들고 노쇠한 사람을 돌보는 데서 가장 잔인하게 실패한 부분은 .. 그들이 단지 안전한 환경에서 더 오래 사는 것 이상의 우선 순위와 욕구를 갖고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데 실패했다는 점"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좋은 죽음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좋은 삶을 사는것"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한국사회에서 노인 돌봄의 절대적인 서비스 량과 질이 형편없다보니, 가완디의 성찰이 너무 앞서간거 아닌가 헷갈리기도 하지만.... 인간다운 삶에의 욕구라고 특별히 K 스타일로 달라질 이유는 없잖여.. ㅜ.ㅜ
게다가 네덜란드의 언락사 합법화와 광범위한 활용이 호스피스 미발달을 가져온 요인일 수도 있다는 지적을 보면, 한국 사회에서는 이 모든 상충하는 가치들이 차근차근 토론되지 않고 한꺼번에 휘몰아쳤을 때 대혼란이 벌어질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이 책을 보면서 내내 마음 조리고 걱정하고 고민하다가 유일하게 빵 터진 부분은 갠지스 강에서 가완디 아버지 장사를 지낸 뒤 의례에 따라 강물 마시고 편모충 걸렸다는 이야기... 항생제는 미리 먹어두었지만 기생충까지는 생각 못했다니, 뭔가 웃픈... ㅠㅠ
 
노인 돌봄 문제는 나 자신의 미래이기도 하고 아주 근미래 어쩌면 당장 내일이 될수도 있는 나이든 부모님 삶의 문제이기도 한데....
막연한 우려와 상상이 아니라 당장 닥친 현실로서 세세히 그 과정을 묘사한 것이 가히 실용서에 버금가는 도움을 주었다고... 하지만 나 개인이 이해가 깊어졌다고 해도 사회적 해결책이 없다면 그닥 소용이 없다는 게 결정적 문제 ㅜ.ㅜ
 
 

#. 김보영 등. 이웃집 슈퍼 히어로

 

이웃집 슈퍼히어로
이웃집 슈퍼히어로
김보영 외
황금가지, 2015

 

대개 삶의 신산함이 묻어나는 페이소스와 기발한 상상력, 오늘 한국사회의 웃지도 울지도 못할 상황이 그대로 드러나는 단편 모음집으로 완전 몰입하면서 재밌게 읽었음
 
* 존재의 비용 (진산):  "보이드" ㅡ 자신이 초인임을 기억하지 못하는 초인, 하지만 모두에게 초인으로 기억되는 초인, 그렇다면 초인이 되고자 했던 그의 열망은 과연 실현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 자신에게 기억되지 못하는 공허한 능력이라니 ㅠㅠ
 
* 월간영웅 홍양전 (dcdc):  유쾌하게 웃지요 ㅋㅋㅋㅋ
 
* 편복협과 옥나찰 (좌백): 시작에 비해 마무리는 좀 싱거움.  예전에 이런 류의 패러디 소설이 인터넷에 참 많았는디...
 
* 아퀼라의 그림자 (듀나): 엔터테인먼터 기획사가 주도하는 슈퍼히어로 군단이라니... 어째 한국적 상황에서 엄청 현실적으로 보임 ㅋㅋㅋ
 
* 소녀는 영웅을 선호한다 (김수륜):  실장님 영웅인게냐 ㅋ 짜증
 
* 초인은 지금 (김이환) ㅡ 초인에게 경찰권을 부여할 것인가는 슈퍼히어로 장르의 오래된 논쟁거리...어쨌든 사적 물리력에 법적 정당성까지 얹어주는거 난 반대일세
 
* 선과선 (이수현): 초인은 선이라고 많은 이들이 믿는 상황에서 선출되지도 책임지지도 않는 초인의 행동을 제지하려는 경찰 이야기
 
* 노병들 (이서영):  투이타 전사학교 빵터짐 ㅋㅋ 며느리 신고 ㅋㅋㅋㅋㅋㅋㅋ
 
*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 (김보영)
 
세상 구하기의 고통을 넘어서 착취 당하는 초인의 이야기.
초인들의 노력을 악용하고 그 단물을 빨아먹는 권력자들의 실체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사람들의 고통을 알고도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초인들의 모습에 난데없이 울컥했다면 내가 이상한 건가?
무너지는 건물을, 구석에서 며칠이나 떠받치며 사람들을 구하고자 했던 여고생 초인이라니.. 어쩐지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갓난아기가 있다고 소리지르던 그 여학생들이 떠올라서 먹먹했음... ..
그리고 너무나 땅을 치며 공감했던 대목 ㅜ.ㅜ
 
"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은 누가 잘못했는지 알고싶어 한다.책임자를 추궁하고 흑막을 찾는다. 하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이런 일은 누가 잘못했을때가 아니라 잘한 사람이 하나도 없을 때에 일어난다. 경로에 줄 서있는 수백 수천의 사람 중 그 누구도, 아무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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