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2017년 지나간 책 이야기들 (2)

#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 (권내현, 2014)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 - 어느 노비 가계 2백년의 기록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 - 어느 노비 가계 2백년의 기록
권내현
역사비평사, 2014

 

 
세금을 걷기 위해 정리된 한 지역의 호구조사 자료와 족보를 추적하여, 오늘날 족보니 양반가문이니, 성이니 본관이니 하는 뻘짓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것인지를 (뜻하지 아니하게) 폭로해주는 재미난 책 ㅋ 
 
조선 후기, 절대 다수인 평민이나 노비 같은 하천민이 사회적 장벽을 뛰어넘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 방향은 양반 기득권의 직접적인 해체가 아니라 모두 다 양반이 되는 독특한 길"... 나 이 말 너무 공감함... 이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음. 불평등과 불공정에 대한 resentment 는 대개 불평등 그 자체보다 내가 그 자리에 가지 못한 것에 대한 사실에 대한 원통함으로 귀결되는 슬픈 사실을 너무 많이 목도함 ㅡ.ㅡ
 
자신을 소유한 양반가의 성씨는 아니지만 인근에 흔한 양반성씨를 신분 세탁에 활용했고, 그 대표적인 성씨가 김해김씨라는 추적에 너무 고개를 끄덕임. 이게 아니고서야 어떻게 전국민의 1/3이 김해김씨일 수 있냐는 말여 ㅋㅋ
 
 
"성왕이 천하와 국가를 다스림에 있어서 반드시 그 사정이 가지런하지 못한 것으로 인하여 귀한 자는 귀하게 여기고 천한 자는 천하게 여기며 후한자는 후하게 여기고 박한 자는 박하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호포의 경우 귀천을 논함이 없이 모두 포를 내게 되니, 만약 선비들로 말한다면 평생 고생하며 부지런히 독서만 하는 자가 한 글자도 읽지 않는 자와 같이 그 포를 낸다면 또한 억을하지 않겠습니까?"
 
숙종실록 7년 4월 3일에 대사헌 이단하의 상소문 내용이라는데 내용이 아주 대단함 ㅋㅋㅋㅋ 
한국 사회의 대표적 사기 개념단어인 '선비' 대신, '지주/유한 계급'이라고 이름 바꿔야 함.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개뿔, 저런 새끼들이 나라를 지배한다고 깝치고 있었으니 조선 망해버린 거 아닌가 말여. 자신의 '사적 이해'를 위해 노골적으로 제도를 바꾸고 빠져나갔던 기회주의적 조선 양반계급 진짜 너무 혐오스러움. 당대의 유교적 기준으로 보아도 이건 납득할 수 없는 부도덕한 처사
 
양반이 관직을 얻지 못하고 죽어도 신주에 으레 '학생부군신위'라고 썼던 것은 살아서는 유학, 죽어서는 학생이라는 당대의 관행을 따른 것 뿐임. ㅋㅋㅋ 평생 놀고 먹었던 양반이라 해도 학생...
 
 
조선 후기는 정말 한반도의 암흑시대랄까.... 지금 존재하는 가부장제의 온갖 악행들이 이때 강화됨. 시집살이며, 동성촌락이며, 되도 않는 양반 문화에 남존여비... 심지어 오리지널인 중국보다 더 심해 ㅋㅋㅋ
현재의 화이트칼라/블루칼라 신분차별, 교육에 대한 과도한 집착 또한 이 시기에 (사실은 허울 뿐인) 과거제도를 통해 공직에 진출하고 봉건지배 계급으로 각종 특혜를 독식했던 나쁜 전통이 epigenetic change 로 굳어버린 게 아닐까 싶음....역사에서 지워져야 할 시기였음
 
무슨 가문 몇 대손이고, 조상 중에 무슨 벼슬한 아무개 있다.. 이런 거 대개 개소리라고 보면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줌. 설사 그게 (일부) 사실이라 해도, 오늘날 그의 삶을 설명해주는 게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말여... 게다가 대대로 호의호식하고 조선 망하는데 크나큰 기여했던 지주 계급이었던 게 뭐 자랑이라고 그러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음
 
근본없는 우리 집안, 조상 덕이라고는 1도 내세우지 않는 우리 가족이 새삼 자랑스러움 ㅋㅋㅋ 
 
 

# 보이지 않는 고통 (카렌 메싱, 2017)

 
 
이 미묘함... 실천적 연구에서 몹시 훌륭한 분인데 막상 본인의 삶에 대한 반추는 나이브하기가 이를데 없어서 매우 당황스러움... ㅡ.ㅡ 심지어 한 다리 건너면 아는 분...
물론 이 분의 연구/실천활동에 대한 존경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님. 그래서 더 찜찜....
 
 
현장과 연구의 괴리, 노동자 편에 서지 못하는 연구자의 문제를 공감격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이건 현상에 대한 명명이지 문제의 진단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 아녀...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운좋게도 이런 기회를 얻어 나는 훌륭하게 되었지만 다른 사람은 불쌍한 노동자의 처지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1도 없어...세상에나 저들은 왜 저러지???? 이런 마인드셋은 술먹고 뒷담화에서 할 이야기 아닌가 말여 ㅠㅠ  Pont of production에서 지식생산의 정치경제 분석을 시도했던 것에 비하면 지나치게 나이브해서 깜놀 ㅠㅠ
 
공감만 하면 다 잘 해결될 것인가? 공감에는 무시무시한 어두운 면도 있잖여. 난 경영자와 공감할거야....... 누구와 무엇을 가치에 둔 공감 혹은 연대인가, 왜 이것이 어려운 가에 대한 탐색 없이 공감은 모두 선량한 우리 편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동의가 안 됨...
 
 
서로 다른 각자의 자리에서도 대등하게 존중하며 연대할수 있는 차가운 sympathy 보다 경험해보고 깊게 이입하는 empathy 전략만을 강조하는 게 찜찜함.. 아마도 메싱은 심퍼시, 엠퍼시 구분해서 책을 쓴 건 아닌 거 같음...
 
“교수라는 나의 지위는 그들의 곤경을 보다 잘 드러낼 수 있는 신뢰감을 형성한다”
 
하아... 너무 한국사회의 전형적 지사주의... 불쌍한 노동자 위해 권력 있는 내가 나서서 말해주겠어, 나의 커리어 위협, 연구비 위협을 무릅쓰고 그들을 위해 싸워주겠어... 아 뭐 이런 건가..ㅡ.ㅡ
 
그녀의 평생에 걸친 연구와 실천활동을 익히 알고 존경함에도 불구하고, 뭔가 뜨악한 이 불편함을 잘 설명할 길이 없네.... 한국사회에서 소위 진보적 지식인들의 '과잉대표되는' 사회적 발언에 대한 평소의 불만이 메싱 할매한테 표출된 건가.... ㅡ.ㅡ
 
심지어 한국사회는 현장 연구의 기회나 계급적 만남의 기회가 훨씬 많은데 이제는 연구자들도 이런 책 번역할게 아니라 한국의 경험을 후속 세대에게 전달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함....
 
 
참, 한국과 캐나다의 공통점들이 그대로 드러난 대목은 나름 흥미로웠음. 의사한테는 팁을 안주면서 저임금 서비스 노동자에게 팁을 주는 것, 안전보건 문제보다는 고용과 보상에 노동자들이 훨씬 경도될수밖에 없는 상황, 공부 못하면 저렇게 된다는 속물적 언사들 .... 세상 다 비슷함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