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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을 담은 연구

여기 와서 기기묘묘한 연구들을 많이 목격하다보니, (특히 방법론적으로 무척 현란하나 내용이 공허한) 좀 시큰둥해지고 있었는데, 최근 두 건의 초청강의는 커다란 자극이 되었다.

 

 지난 수요일에는 미시간 대학의 사회학 교수인 David Williams가 와서 인종에 따른 건강 불평등에 대해 특강을 했다. 일단 강의를 참 잘 하더라. 적절한 자료 제시와 문제 제기, 분명한 표현과 심지어 좋은 목소리(^^)... 그 자신이 흑인이었는데, 그가 제기하는 문제들이 그저 뛰어난 연구자의 방법론적으로 훌륭한 연구결과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뭐라 해야 할까... 깊은 이해와 통찰력, 그리고 공명....  본인은 별로 감정을 실어서 이야기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현 상황을 무척이나 비분강개하며(항상 비분강개할 준비가 되어있다 ㅡ.ㅡ), 소수 인종의 건강 문제를 동일시할 수 있었다.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를 읽어가며, 미국사회에서 흑인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면서, 흑인들이 스스로 인종 이야기를 꺼내면 웬지(?) 다르게 느껴진다. 얼마전에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제이미 폭스가 수상자로 나와 "위대한 흑인 영화"를 만들어준 백인 감독에게 감사한다면서 말을 못 이루는 걸 보고 가슴이 짠하기도 했다. 이전 같으면 그저 관례적인 인사말이라고 생각하면서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을텐데 말이다...

 

 



RWJ seminar series 에서 보스턴 대학 교수인 Deborah Belle을 초청하여 강의를 들었다. 저소득층 여성의 스트레스와 사회적 지지가 우울증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내용이었다. 미국에서는 사회적 지지, 사회 네트워크, 사회적 자본에 대한 연구들이 요즘 차고 넘쳐난다. 첨에 논문 제목을 보고는 그저 그러려니 했는데, 읽어보니 분위기가 영 다르다. 사회 네트워크, 사회적 지지가 건강에 보호효과가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근데 누구에게나 다 그럴까? 이 할머니의 연구결과들은 저소득층 여성의 경우, 그들의 사회네트워크는 오히려 스트레스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텔레비젼 드라마에 나오듯, 경제적으로는 어렵지만 오히려 이웃들과 알콩달콩하게 함께 도우며 사는 달동네 모습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난한 여성들(특히 미국은 어린 자녀가 있는 홀어머니의 문제가 심각하다. 빈곤층의 대부분이 이들)의 친구나 친적은 대개 똑같이 가난하거나 더욱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 이들은 사회적 지지를 제공하며 힘이 되기보다는 빈곤 여성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그래서 많은 경우 그녀들 스스로가 이웃과 담을 쌓고 고립을 자초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우리가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결과이자 주변에서 많이 목격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를 학술적으로 논증한 논문은 거의 본 적이 없었다(내 학문이 짧아서일수도 있지만, 다른 연구자들도 다 그렇게 말 하더라). 하나같이 논문들은 친지와 친구가 많을수록 사회적 지지 수준이 높고, 이게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렇듯 사회적 지지나 네트워크에 관한 논문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사회적 책임을 방기하고 문제를 개인과 가족에게로 책임지우려는 미국 사회의 반동적 성격 때문이란다. 그녀의 연구팀에 속해 있는 냉소적인 젊은 학자는 "사회적 지지"가 가장 돈이 덜 드는 처방이기 때문에 인기 있는 연구주제라고 이야기했단다. 국가에서 노동의 기회, 교육의 기회, 최소한의 사회보장 조치를 해주기보다는 가족들끼리 친구들끼리 알아서 지지해주고 재미나게 살아봐라... 이 할머니는 또 자신이 참가했던 심층면접 조사, 거기에서 자신이 배웠던 것- 중산층, 고학력, 백인 여성으로서 그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던 경험들을 나즈막하게 털어놓았다. 또 최근 참가했던 전국 연구 위원회에서 모두다 우울증 유전자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고 몹시도 암울했다는 이야기도 했다. 이 세미나 시리즈에는 원래사회역학 팀 스탭들이 대부분 참여하고 펠로우들도 많이 참여해서 말들을 엄청 많이 하는데, 이 할머니가 한 시간 동안 자신의 연구 경험과 거기에서 배운 것들을 털어놓고 나니, 한 1분 가량 아무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 정말 숙연한 분위기....이런 경우는 첨이었다.

 

전문적 기술도 아니요, 동정과 연민도 아니요.. 연구자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깊은 이해와 공감, 여기에서 비롯된 깊은 통찰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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