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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덧 또 내 차례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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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토요일 아침처럼 ‘무한도전’ 재방송을 보려고 TV를 틀었다가 어안이 벙벙해졌습니다. 슬픔보다는 우선 놀라움이,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깊은 연민이 밀려왔습니다. 비록 정치적으로 그를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죽음이라는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했던 한 ‘인간’의 고통을 감히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나타난 폭풍 같은 애도의 물결은 놀라웠습니다. 상갓집에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예의도 지니지 않은 자들을 제외하고는, 생전의 지지자건, 비판자건, 혹은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이들마저도 진심으로 그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어쩌면, 좌절당한 우리 스스로의 꿈과 회한이 그의 죽음 속에 녹아있었기에 더 크게, 많이 슬퍼했던 것 아닐까 싶습니다. 약 350년 전, 루소는 자신에 대한 사랑과 더불어 타자에 대한 ‘연민’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이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자취를 감춘 줄 알았던 이 엄청난 ‘연민’의 폭발은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통계자료에 의하면, 2007년 한 해에만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1만 2천 명이 넘습니다. 40분에 한 명씩, 누군가 돌아오지 못할 발걸음을 떼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죽음을 떠올리고, 또 실제로 결행에 나섭니다. 죽음의 이유는 그 사람 수 만큼이나 다양할 것입니다. 존재론적 회의, 누군가에 대한 복수, 혹은 감당할 수 없는 심리적 고통으로부터의 탈출...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다양한 사연들을 넘어서는, 거대한 사회적 힘이 존재하고, 자살 또한 엄연한 사회적 불평등의 일면이라는 사실입니다.
지난주, 대전 중앙병원에 안치된 박종태 열사의 빈소에 다녀왔습니다. 마침 시내에서 추모 집회가 열리고 있었던 시간이라, 장례식장 건물 입구부터 늘어선 검은 화환들의 행렬과 대조적으로 영안실 안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먼 길을 마다않고 달려가 몇 시간씩 줄을 서며, 진심으로 전임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그 날, 박종태 열사의 영안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떠난 이는 말이 없기에, 열사의 삶을 뒤흔들었던 고뇌를 모두 알아내기란 어렵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의 죽음이 자신의 고통을 벗어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비정한 사회를 향한 최후의 말걸기였다는 점입니다. 30여 년 전 전태일 열사가 썼던 이 최후의 수단을 다시금 반복해야 한다는 오늘날의 현실이 새삼 놀랍고도 슬픕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음’으로 자신의 고통을 ‘증언’하고 우리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애원’해야 하는 것일까요? 어쩌면 우리는, 죽음으로서 진정성을 증명해보이라고 누군가에게 잔인한 요구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수많은 이들이 전임 대통령의 소박한 꿈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의 꿈은 무엇이었습니까? 돈보다는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은 그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기도 합니다.
그 렇다면, 지금 우리가 지켜줄 수 있는, 그래서 돌이킬 수 없는 회한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는 그런 일들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전직 대통령마저 견디기 어려웠던 삶의 신산함을 온 몸으로 견뎌내고 있는 우리 이웃들의 현재 진행형 고통에 결코 둔감해지지 말자는 것입니다. 굴뚝으로 올라간 쌍용차 노동자들, 어처구니없는 복직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88CC 여성 노동자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뉴스거리’도 못되어 언론에선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그 수많은 장기투쟁 사업장의 노동자들... 이들의 삶을, 고통을 함께 하자는 것입니다. 또 다른 비극, 더 큰 고통 앞에서야 뒤늦게 회한에 젖지 말고, 지금,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보았으면 합니다.
돌아보면, 글쓴이 스스로도 우리 사회의 이러한 고통들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익숙함이란 참으로 놀라운 잔인함이기도 합니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꿈을 가진 우리들, 이제 더 이상 ‘지못미’는 그만 하고, 사랑할 수 있을 때, 연대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 해보면 어떨까요?
댓글 목록
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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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 가슴을 퍽 치고 지나가는 글입니다. 또 다른 가능성으로서의 '연민'이 익숙해져있는 고통을 넘어 '지못미'를 초월하는 연대로 나타나기를 기원합니다. 건강하시죠?부가 정보
hongsi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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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야 뭐... 논문은 잘 진행되고 계신지? 성수동에 자주 가는데, 한번 연락드릴께요. 훌륭한 논문 쓰시라고 제가 밥 한번 사드립죠 (^^)부가 정보
최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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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희 선생님. 겸손하고 사려깊은, 그래서 여러 번 읽게 되는 글입니다. 좋은 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읽고 생각하면 좋겠어요.부가 정보
hongsi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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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익후... 과분한 실명 칭찬이십니다 ㅡ.ㅡ부가 정보
peasn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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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 정말 대박인데요.제 블로그에 일부 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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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gsi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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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대박까지...ㅡ.ㅡ 그나저나 요즘 어찌 지내세요? 제가 어제 멜 하나 보냈는데 해결 좀 (^^)부가 정보
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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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저도 퍼가염...부가 정보
hongsi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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넹.. 출장 가기전에 함봐야 할텐데...부가 정보
새벽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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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대전에 있다보니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생생한 글이 나오는군요.암튼 함께 생각하기 좋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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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gsi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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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조문도 한 번밖에 안 갔었는디, '경험'이라고 말하기 엄청 쑥쓰러워요 ㅜ.ㅜ부가 정보
peasn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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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해결해서 보내드릴께염!부가 정보
통통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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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가 중요한데요, 가까운 사람들끼리라도 모여보는게 어떨지요!부가 정보
hongsi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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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 교육 일정 때문에 7월중 울산에 갈 일이 있는데, 그 때 경주에 들를까요? 전화한번 드릴께요부가 정보
통통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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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일정을 알려주면 제 일정을 조정하지요. 빠른 시일내 전화주삼!부가 정보
바다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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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통찰력~부가 정보
hongsi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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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은 개뿔.... ㅡ.ㅡ부가 정보
88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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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마음에 퍼가고 싶네요!부가 정보
hongsi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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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네...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부가 정보
모래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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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비정한 사회를 향한 최후의 말걸기였다는 점' 이 글귀가왜 그분에게 관심을 갖어야하는지 제게 설명해주네요.
사람마다 주량이 다르듯 그것에 취약성이 있는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계속 얘기하고
생각해야하며 행동해야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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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gsi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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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라니... 뉘신지 ㅡ.ㅡ;; 우리 사회가, 또 우리 각자가 가끔씩 너무나 매정하고 비정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서로에게 그럴 필요 없는데... 안 그러고 살았음 좋겠어요...부가 정보
모래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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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 안녕하세요 선생님.제가 학생일 때 살바도르 아옌데를 통해 이곳에 표류하게 되었어요.
2번정도 큰맘먹고 흔적을 남겼으나 패스...되어 눈팅만 하다가
많이 달린 댓글에 무임승차하듯 슬쩍 사족남겼습니다.~
앗, 저는 올해 건양대 졸업한 권영훈이며 대전역앞에
희망진료소에 공보의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성실함과 치열함으로 다양한 식견을 지닌
선생님 글들이 제게 삶의 기폭제로 작용했기에
아직도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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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gsi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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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 아 그러셨군요. 대전에 계시면 얼굴이나 한번 봐요 (^^) 제가 근무하는 곳으로 전화 한번 주시거나 메일 연락처 남겨주세요. (갑자기 스토커 모드로 ㅎㅎ)부가 정보
모래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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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제가 다음 주에 연락드리겠습니다 ㅎㅎ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