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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께] 운동 내 논쟁 - 탈북자의 국내 입국을 환영해야 한다

다함께 45 호

운동 내 논쟁 - 탈북자의 국내 입국을 환영해야 한다 - 최일붕

http://alltogether.or.kr/

 

 

주체주의자들은 남한(또는 제3국)에 입국하는 탈북자를 ‘사실상’ 환영하지 않는다.
내가 ‘사실상’이라고 강조한 이유는 그들이 탈북자의 국내 입국을 ‘반대한다’고는 결코 분명히 말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으레 그렇듯이 자신들의 스탈린주의적 입장을 은폐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솔직하지 못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주체주의자들의 주장은 이렇다. 1995년 대홍수 이후 북한 주민 가운데 일부가 양식을 구하러 중국에 가는 일이 생겨났다.
그들의 대부분은 양식만 구하고 곧바로 귀국한다. 장기 체류하고 있는 나머지도 대부분은 북한 귀환을 원한다. 오직 극소수만이 남한이나 제3국으로 망명한다.
그러므로 재중국 ‘탈북자’는 대부분 어느 나라에나 있는 불법체류자일 뿐이다. 그런데도 탈북자의 남한 입국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순전히 기획탈북 때문이다.
기획탈북 조직자들은 북한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는 미국 정보기관들과 남한 우익단체들, 그리고 탐욕스런 중국 브로커들로 이뤄진 국제 커넥션이다.

 

그러나, 음모에 ‘유인’돼 ‘사실상의 납치와 인신매매’로 입국하는 것만 제외하면 탈북자가 ‘어느 나라에나 있는 불법체류자일 뿐’인데도 왜 그들의 강제송환을 (암묵적으로) 지지하는 것일까? 주체주의자들은 한국에 오는 남아시아 출신 이주노동자의 강제추방도 지지할까?
그들은 탈북자들이 남한 입국 후 여러 고통을 겪고 있다면서도  그것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한다는 얘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때로 일부 주체주의자들은 남한 거주 탈북자들의 정착을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말한다(가령 12월 2일 5시 고대법대 신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반미청년회 정태흥 대표의 답변).
그러나 기획탈북을 통해 들어왔다 해서 환영하기가 내키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정부가 돈을 쓰라고 요구한다는 것은 모순이거나 생색일 뿐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결국 ‘기획탈북’에 의한 입국(‘기획입국’)이 원죄라는 것이다. 주체주의자들은 탈북자의 남한 이주를 사실상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북한 체제 전복과 침략을 위한 미국의 음모(‘기획탈북’)라는 견지에서 설명한다.

 

이런 주장의 문제점은 첫째, 미국이 북한 주민의 대량 이탈과 그들의 자국 입국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북한인권법은 위선의 산물이다. 미국은 인권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탈북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데만 관심이 있을 뿐, 탈북자 인권과 수용에는 진정한 관심이 없다. ‘다함께’ 김하영 동지는 이렇게 지적한다.
“미국이 노골적인 대북압박을 해 온 1990년대 내내, 그리고 부시 정부 들어서도 평범한 탈북자들의 문제는 관심 밖이었다. 정치적 이용 가치가 높고 고급 정보를 가진 소수의 고위층을 제외하면 말이다.
“미국은 한국전쟁 이후 지난해까지 총 8명(김경필 전 베를린 주재 북한 이익대표부 서기관 부부 등 외교관·과학자 등)에게만 망명을 허용했다.……
“미국은 탈북자를 ‘프라이오리티[우선순위] 2’ 대상에 지정함으로써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노리는 동시에, 탈북자의 한 해 망명 상한선을 정해 탈북자들이 몰려드는 것을 막으려 한다.
“2005년의 탈북자 망명 상한선은 5백 명 수준으로 결정될 예정이다. 쿠바인 망명 실제 허용이 망명 상한선의 10퍼센트 수준에서 이뤄진 것을 감안하면, 미국 정부가 탈북자 5백 명을 다 받아들이지 않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벌써부터 미국 정계에서는 탈북자 수용의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예컨대, 최근 미 하원 법사위는 국토안보부에 서한을 보내 북한이 북한인권법을 악용해 간첩이나 테러리스트를 미국에 잠입시킬 가능성을 경고했다.
“미국은 이라크에서 온 난민(신청자)들에 대해 구금을 명하고 있다(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소식지 2003년 5∼6월).
“미국의 이런 위선은 이미 여러 차례 드러났다. 북한인권법의 상원 통과를 눈앞에 뒀던 올해 9월 27일, 미국측은 중국 상하이 미국인 국제학교에 진입한 탈북자 9명을 추방했다. 추방이 곧 체포와 강제 송환으로 이어질 것이 뻔한데도 말이다.
“북한인권법이 상하원을 모두 통과한 지난 10월 말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주재 미국 총영사관에 40대 북한인(연해주 지역에서 일하던 북한 노동자)이 들어와 망명을 신청했다. 그런데 미국 총영사관측은 미국 망명을 허용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그를 러시아 당국에 인도할 방침이다.
“지난 11월 23일에는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이민법원이 북한 특수부대 지휘관 출신이라고 밝힌 탈북자의 정치 망명 요청을 기각했는데, 그 이유는 ‘북한 출신임을 증명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난민들은 안전을 위해 신분증과 여권을 없애는 경우가 허다한데, 각국 정부는 이런 점을 난민 요청 기각의 사유로 곧잘 이용하곤 한다.……”

 

둘째, 주체주의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탈북자가 ‘기획탈북’ 조직자들의 접촉과 유인에 의한 사실상의 납치와 인신매매를 통해 국내 입국하는 것은 아니다.
탈북자가 만일 북한에서 어지간히 살 수 있었다면, 또 중국에서 체류 또는 거주할 권리가 주어졌다면, 남한으로 오지도 않을 것이다.
만일 북한 인접국들인 중국과 남한이 탈북자의 이주 권리를 인정한다면 기획탈북이 아예 필요가 없을 것이다. 주체주의자들은 기획탈북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 이주와 왕래의 자유에 대해 침묵한다.
중국 체류자든 남한 입국자든 탈북자를 고통에 빠뜨리는 것도 바로 이주와 이주자에 대한 억압이다. 주체주의자는 북한·중국·남한이 이 자유를 억압하는 것을 비판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체주의자들은 해결책으로 기획탈북 근절을 요구한다. 이것은 북한·중국·남한 정부들이 기획탈북을 빌미로 북한 이탈 이주자를 억압하는 것을 사실상 지지하는 것이다.
지금 북한·중국 정부들은 북한 주민의 이주 자유를 억압하면서 ‘기획탈북’을 이유로 대고 있다. 남한 정부도 이런 태도를 부분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셋째, 주체주의자들은 기획탈북이 국제 문제를 일으킨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탈북자 색출·송환을 하고, 이는 재중 북한인 불법체류자들의 삶을 더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획탈북이 국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탈북자의 존재를 둘러싸고 남북한과 중국·미국의 정부들이 ‘체제 우위’ 언쟁을 하는 것이 ‘국제 문제’의 실상이다.
브로커 등이 연루된 남아시아인들의 ‘기획이주’ 때문에 한국 정부와 필리핀·방글라데시·네팔 등의 정부들이 서로 갈등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진보진영이 이 가운데 북한 편을 드는 것이 옳은가? 오히려 아무 편도 들지 않고 오직 탈북자만을 옹호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들은 거의 다 피억압자들이다. 잘 먹고 잘 사는데도 조국을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넷째, 주체주의자들의 북한인권법과 기획탈북 등 미국의 음모에 대한 반대는 북한 내의 억압에 침묵하는 한은 설득력이 없다.
물론 진정한 진보운동가라면 미국의 음모에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인권 미사여구에 가려진 위선을 들춰낼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진보운동가는 미국의 대북 압박과 적대 정책에 반대한다.
하지만 전쟁도 아닌 고작 음모와 유인에 의해 붕괴될 위험이 있을 만큼 허약한 체제는 어떤 체제인가? 미국의 그 알량하고 위선적인 권리조항에 이끌려 수많은 북한인들이 탈북할 것이 두렵다면 그런 체제는 커다란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스스로 고백하는 셈이다.
1989년 동독의 숙련노동자들과 기술자들이 대거 서독으로 이탈했을 때, 그리고 몇 주 뒤 수백만 명이 베를린장벽 제거를 요구했을 때 결국 동독 체제의 문제점 때문에 그랬던 것 아닌가?
물론 서독 체제가 더 나았다는 것은 아니다. 동독인들의 환상은 분명히 환상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그들이 과거에 살았던 체제가 더 좋았다고 향수에 젖지는 않는다. 만일 그렇다면 옛 동독 지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당은 스탈린주의 정당이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다. 옛 동독 공산당(SED)의 후신인 민주사회주의당(PDS)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으로 변신함으로써만 생존할 수 있었다.
북한 주민의 중국 이동이 단지 대홍수로 말미암은 경제적 궁핍 때문이었다는 주장은 북한이 사회주의가 아니라는 반증일 뿐이다.
맑스주의에서 사회주의는 그 정의상 자본주의보다 진보하고 질적으로 우월한 사회다.
아무리 큰물과 큰 가뭄이었다지만 자연재해에 그토록 취약하고, 아무리 많은 이재민이었다지만 자기 인민도 제대로 먹이지 못하는 체제가 무슨 사회주의라는 말인가?
사실, 북한 경제는 1970년대 말부터 성장이 감속하기 시작해 1980년대 말에는 정체하고, 1990년대 대부분 동안에는 실제로 수축했다.
그것은 ‘우리식 사회주의’이기는커녕 옛 소련 경제의 리듬에 종속돼 있었을 뿐 아니라, 사실은 세계경제의 리듬에 종속돼 있다. 만일 북한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가 가능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

 

다섯째, 주체주의자들은 궁극적 해결책으로 북한의 경제 사정과 식량 사정이 근본적으로 개선되는 것을 든다. 그래서 이를 위해 미국의 대북관계 정상화, 남북경협 강화, 대북 식량지원·전력 지원 등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과 남한·일본 정부들이 그런 요구를 수용하는 제스처를 취할 때 그들에 대한 개량주의적 태도를 낳을 것이다.
이미 2000년 이후 김대중 정권 후반부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
제국주의와의 ‘평화공존’이 지속가능할까?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은 제국주의가 자본주의의 필연적 결과로 발전하는 자본주의의 특정 단계임을 강조한다.
북한 민중의 고통은 자본주의 세계 체제와 북한 체제가 그들에게 가하는 착취와 억압의 멍에 자체를 제거할 때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
물론 그러기 전에라도 우리는 국내 입국하는 북한 출신 노동자·민중을 환영해야 한다.

 

미국의 음모가 사실일지라도 탈북자 인권 외면의 구실이 될 수는 없다. 미국 권력층의 일부가 장차 북한에 친미 정권을 세울 요량으로 해외망명 임시정부를 구성할 북한 관료 출신 극소수 탈북자들을 비호할 수 있다. 그럴지라도 그것 때문에 수많은 평범한 탈북자들의 불행이 외면돼도 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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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께] “대학평준화만이 해결책입니다”

다함께 45 호

“대학평준화만이 해결책입니다” - 강동훈 (정리)

http://alltogether.or.kr/

 

 

최근 출간된 ≪학벌사회≫의 저자 김상봉 ‘학벌없는사회’ 정책국장에게서 수능 부정의 원인과 해결책에 대해 듣는다


 

이번 수능시험에서 핸드폰을 이용한 부정 행위와 대리 시험 등이 밝혀지면서 일각에서는 처벌을 통해 시험의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게 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난해 수능시험이 끝난 뒤에는 많은 학생들이 자살을 했습니다. 다행인지 어쩐지 올해는 자살한 학생은 거의 없지만 많은 학생들이 범법행위를 했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결국 우리 나라 교육은 학생들을 극한에 몰아 자살과 범법행위 중에서 선택하도록 강요하고 있는 셈입니다.

 

어느 대학에 가느냐가 인생을 결정하는 상황에서 대학 진학은 생존에 직결된 문제고, 학생들의 신분을 결정합니다. 공부, 학문 다 웃기는 소리죠. 어느 대학을 나오느냐 하는 것은 인생이 걸린 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학생들은 사생결단의 심정으로 이 경쟁에 임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육의 본래 의미인 자기 실현과 계발은 사라지고 1점이라도 더 얻기 위한 경쟁만이 남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부정행위는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법으로 막을 수가 없습니다. 인생이 걸린 일이기 때문에 다양한 기술이 개발될 겁니다. 돈 있는 집 부모들은 성형 수술을 해서라도 대리 시험을 치게 할 겁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학평준화를 도입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봅니다.


 

대학평준화는 왜 필요합니까?

 

평준화에 대한 이데올로기 공세가 너무 심해서 ‘평준화’ 하면 다들 하향 평준화를 얘기하고 평준화가 교육을 망치는 주범인 양 얘기하는데, 저는 교육이 평준화되는 것은 너무나 당위라고 봅니다.
지금 우리 나라 교육이 망가지는 이유는 [대학이] 서열화해 있기 때문입니다. 1류 대학과 3류 대학이라는 구분이 외피 상으로는 교육적으로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획일적인 서열 속에서 사람들의 신분을 나누는 기준이 되고 있죠.

 

인간의 능력은 무수히 다양합니다. 교육이 정상화된다는 것은 각자가 다양한 소질을 다양하게 계발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나라의 교육은 한 가지 방식으로 줄을 세우고 모든 학생들이 시험 선수가 되길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나라 교육의 모든 부조리, 경쟁력 저하, 모든 일탈의 원인이죠.
모든 사람이 똑같은 방식으로 시험선수가 돼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대학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각 대학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하자면 서열화를 없애야만 합니다.


 

최근에 쓰신 ≪학벌사회≫라는 책에서 대학평준화 방안을 제시하셨는데, 그에 대해 소개해 주시죠.

 

대학평준화가 추첨을 해서 학생을 배분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정 대학·지역으로 몰릴 필요가 없는 구조를 만들어 주는 것이 대학평준화의 기본 취지입니다.
이것을 실행하기 위한 1차적 방법이 국립대학의 통합 네트워크입니다. 지금 서울대를 제외하면 지방의 거점 국립대학들은 이미 평준화돼 있습니다.
서울대를 묶어서 처음부터 평준화하자고 하면 무리가 있기 때문에 한시적으로 서울대 학부를 한 10년 정도 폐지하고 지방 국립대를 중심으로 통합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것이 자리를 잡으면 그 때 서울대를 포함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때는 수도권 인구를 고려해서 서울대 학생 수를 대폭 늘려야 합니다. 예를 들어 베를린대학은 학생수가 10만 명입니다. 베를린 인구가 3백만∼4백만 명 정도인데도 그렇습니다. 따라서 서울대 학생 정원을 훨씬 더 늘려서 대중적 국립대학이 돼야 합니다.

 

그러면 사립대학들은 어떻게 하느냐 혹은 연고대가 나서서 설치지 않겠느냐고 얘기하는데, 그건 쉽게 되지 않을 겁니다.
국립대학은 지금도 사립대학에 비해 등록금에서 우위에 있고, 장기적으로는 국립대학들은 무상으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면 사립대학들은 경쟁이 안 될 겁니다.
장기적으로 사립대학은 공립대학 체계로 흡수해야 합니다. 지금 사립학교법 개정 문제에서 보듯이 사립학교 재단들은 교육을 할 자격이 없습니다. 사립학교법 개정 문제로 학교 폐쇄하겠다는 것을 보십시오.

 

한 걸음 더 나아가 실질적인 평준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직자 지역할당제’를 실행해야 합니다. 쉽게 말해 고시 할당제인데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고시를 계속 시행한다고 하더라도 인구비례로 고시를 할당하는 겁니다.
지금은 사법고시나 행정고시의 90퍼센트 안팎이 서울 지역 학교 출신입니다. 그리고 서울대, 연·고대가 60∼70퍼센트입니다. 그런데 인구비례로 할당하면 서울은 23퍼센트밖에 안 되죠. 결국 서울에 있는 대학에 기를 쓰고 올 필요가 없는 겁니다. 오히려 서울의 학생들도 지방의 대학들로 가게 될 겁니다.

 

미국의 경우에 의사나 변호사 자격증을 주 정부가 줍니다. 그러면 자연히 특정 지역으로 몰릴 이유가 없는 겁니다. 자연히 각 지역의 대학들로 분산되는 것이죠.


 

서울대 출신들이 정·재계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라는 것도 엄청난 저항에 부딪히지 않을까요?

 

시장주의자들은 말로는 시장에서 경쟁을 해야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시장 경쟁은 독점이 없어지고 다양성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가 시장으로 들어오는 거죠.
하지만 모두가 대등한 상황에서, 독점이 없는 상황에서 서로가 다양성과 역동성을 갖고 경쟁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지 기득권을 인정해 주는 것으로는 좋은 성과를 낼 수 없습니다. 지금 서울대학과 지방 국립대, 사립대 사이에 무슨 경쟁이 있습니까?
‘경쟁을 통해서 교육의 수월성을 담보한다?’ 그러나 한국의 고등학생들처럼 많은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어디 있습니까? 하지만 우리나라의 학생들처럼 대학 수학 능력이 부족한 학생들이 어디 있습니까?
그 까닭은 경쟁이 없어서가 아니라 경쟁이 왜곡됐기 때문입니다. 경쟁이 다양화해야 합니다.

 

그 말은 지금처럼 획일적인 시험 경쟁과 대학 서열은 안 된다는 겁니다. 각 전공 영역에서 경쟁을 할 때 진정한 경쟁력이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서열화가 강고한 것처럼 보이지만 곧 무너질 거라고 봅니다. 왜냐면 최근 고교등급제가 얘기가 나오면서 그 전선이 분명해졌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국에서 시장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독점을 인정해 달라는 것일 뿐이라는 점이 분명해졌고 이제 그것은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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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께] 선거는 제국주의 점령을 안정시키지 못할 것이다

다함께 45 호

선거는 제국주의 점령을 안정시키지 못할 것이다 - 김용욱

http://alltogether.or.kr/

 

조지 W 부시는 “이라크인들은 [내년 1월]선거를 통해서 자기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팔루자 학살도 선거를 안정적으로 치르기 위해서였다고 정당화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이라크인에게 선택권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라크인들에게 선택권이 있다면 먼저 점령을 끝낼 것이다. 미국은 지난 주 바레인에서 열린 이라크 지원 국제회의에서 대강의 철군 날짜도 밝히지 않았다.


 

11월 중순 수니파인 무슬림학자협회를 중심으로 47개 단체들이 선거 보이콧을 선언했다. 이것은 최근 언론에서 주목받은 17개 정당의 선거 연기 주장과는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연기를 주장하는 자들은 꼭두각시 정부 총리 후보였던 아드난 파차치처럼 미군 점령을 지지한 자들이다. 이들이 연기를 요구하는 것은 선거에서 질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원래 선거 보이콧은 팔루자 대학살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학살 이후 이른바 “수니파 삼각지대”에서는 반점령 정서가 더 극렬해졌다. 이것은 자연히 선거에 대한 극도의 불신으로 이어졌다. 
〈알 자지라〉와 가진 인터뷰에서 무슬림성직자연합의 압둘 살람 알 쿠바이시는 “외국 점령군이 있는 한 공정한 선거란 있을 수 없다!”고 일갈했다. 
사실, 이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정서이다. 팔루자 공격으로 죽은 사람의 수는 알라위 정부에 따르면 2천 명, 적신월사에 따르면 6천 명 이상이다. 
중동 전문 기자 패트릭 콕번은 이렇게 말했다. “한 도시를 박살내고, 대다수 주민을 난민으로 만든 다음, 그들 보고 점령군이 진행하는 투표에 참여하러 나오라고? 내가 들어본 가장 황당한 소리다.”

 

하지만 많은 시아파들이 선거에 참가할 것이다. 시아파의 가장 중요한 두 지도자인 알시스타니와 알사드르가 선거 참가를 독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아파 지도자들이 선거 보이콧에 합류하지 않은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이들이 선거 보이콧에 합류했다면 팔루자 학살과 미군 점령의 정당성에 결정타를 날렸을 것이다.
더구나 시스타니가 작성하고 있는 시아파 후보 리스트에는 심지어 알라위 같은 미국 부역자도 포함될 예정이다.
시아파 지도자들은 수십 년간 꿈도 꿀 수 없었던 시아파 주도 정부를 건립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타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이 점을 이용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시스타니와 사드르가 선거에 참가하는 것은 미국 정책에 동조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직접 팔루자 방어에 뛰어들지는 않았지만, 알사드르는 팔루자 공격을 비난했고, 지지자들에게 절대로 공격에 참가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사드르의 두 부관은 팔루자 공격에 격렬하게 반대했다는 이유로 체포당했다. 시스타니도 이러한 비판에 합류했다.
현재 그들은 선거를 점령을 끝낼 수 있는 하나의 수단으로 보고 있다. 바그다드의 대규모 시아파 거주지인 사드르 시에는 “독재 반대, 외국 점령 반대, 올바른 선거를 통해서만 이라크인들이 이라크를 이끌 수 있을 것이다.”라는 배너가 걸려 있다.

 

심지어 미국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거짓말을 제공했던 아마드 찰라비마저도 “우리는 나자프 같은 대학살을 막아야 한다.”는 슬로건을 내놓으며 선거 후보로 나서려 하고 있다.
이것은 역겨운 일이지만, 그와 동시에 시아파 대중의 반점령 정서가 얼마나 강력한지 보여 준다. 많은 시아파 사람들은 지도자들이 부추긴 기대 때문에 선거에 기대를 걸고 있다.
한 시아파 상인은 AP와 인터뷰하면서 “투표일은 내 생애 가장 기쁜 날이 될 것이다. 선거를 통해 점령을 끝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물론 “선거를 통해 평화적으로 점령을 끝낼 수 있다”는 생각을 순진하다고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점은 시아파가 선거에 참여한다고 해서 상황이 미국에게 유리하게 풀리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기대가 실망으로 드러나는 순간 미국은 더 커다란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이미 소수의 시아파들은 선거 이상을 바라보고 있다. 심지어 시스타니 지지자들 일부도 무장 저항에 참가하고 있고, 시스타니도 이것을 허용하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이라크인의 삶은 나아지기는커녕 더 악화하고 있다. 최근 <유엔개발보고서>에 따르면 60퍼센트의 농촌 인구와 20퍼센트의 도시 인구가 오염된 물을 마시고 있다.
침략 이후 영양 실조에 걸린 아동의 비율은 두 배로 뛰었고, 40만 명은 전염병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바그다드의 전력 공급은 전쟁 이전보다 60퍼센트 이상 낮다. 팔루자 공습 이전 갤럽 여론조사에서 94퍼센트의 바그다드인이 전쟁 이후 살기 더 힘들어졌다고 답했다.
이러한 고통은 점령이 종결되지 않는 한 계속될 것이다. 애당초 모든 국제법과 UN조차 무시하고 침략을 강행한 미국이 선거 이후 협상을 통해 철군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선거에 기대를 걸고 있는 많은 시아파도 점령은 2004년 4월처럼 수니파와 시아파가 단결해서 단호하게 싸울 때만 끝낼 수 있다는 결론을 다시 한번 확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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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께] 체 게바라의 생애와 유산

다함께 44 호
체 게바라의 생애와 유산 - 다함께 편집팀
http://alltogether.or.kr/



오늘날 체 게바라의 모습은 어디서나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신화 속의 인물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무엇이 체 게바라를 정치적으로 만들었는가? 그의 생각은 어떻게 바뀌었는가? 짧은 생애를 산 그가 어떻게 전 세계적인 인물이 됐으며, 왜 그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는가?



지난 몇 년 동안 체 게바라에 대한 관심이 대단히 높아졌다. 이것은 반자본주의 운동과 반전 운동의 폭발이 초래한 급진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멕시코의 사파티스타에서 유럽의 노동조합원들에 이르기까지 게바라는 반란과 반제국주의의 불멸의 상징이 됐다. 게바라의 저작이 다시 출간되고 있다. 심지어 영화도 있다.
최근 개봉된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는 게바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그의 라틴아메리카 여행을 묘사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중간계급 출신의 이 신출내기 의사 청년은 이런 여행을 통해 정치화했고 헌신적인 혁명가가 됐으며 결국 그 이름이 쿠바와 동의어가 됐다.
게바라는 타고난 맑스주의자가 아니었다. 사실, 게바라가 처음으로 정치적 각성을 하게 된 것은 모터싸이클을 타고 라틴아메리카를 여행하면서였다.
그가 만난 원주민들은 궁색하고 가난에 찌든 삶을 살고 있었다. 그 경험은 게바라의 인도주의 정신과 동정심을 자극했다.
그러나 그의 삶의 경로를 영원히 바꿔놓은 것은 그가 의사 자격증을 취득한 직후에 떠난 여행이었다.



1954년 게바라가 과테말라에 이르렀을 때, 미국 소유의 식료품 회사들을 과감하게 국유화한 개량주의 정부가 미국의 후원을 받은 군사 쿠데타로 전복됐다. 이런 사건들 때문에 급진화한 많은 청년들 가운데 한 명이 게바라였다.
그 쿠데타 때문에 게바라는 멕시코에 망명중이던 다른 사람들과 만나게 됐고, 거기서 한 쿠바 청년 활동가를 만났다. 그 혁명가의 이름은 물론 피델 카스트로였다.
점차 정치화하고 있던 게바라는 이 만남을 계기로 삶의 방향을 결정했다.
이 청년들은 라틴아메리카 대륙이 미국의 거대 기업들의 이익에 맞게 운영되고 있다고 보았다. 그들은 스스로 반제국주의자라고 여겼다.
얼마 뒤 게바라 자신을 포함한 소수는 냉전에서 소련을 편들며 스스로 공산주의자라고 여겼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소련은 결코 사회주의 사회의 모델이 아니라 전체주의 국가였다.
이 집단이 구체화한 사상과 정치 전략이 그 뒤 몇 년 동안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많은 투쟁들에서 출발점이 됐다.



게바라는 이런 사상과 전략을 요약해 ≪게릴라전≫이라는 소책자를 썼다. 그는 게릴라 군대를 동원해 지배계급을 군사적으로 공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게바라는 농촌이 주요 전쟁터라고 주장했고, 게릴라들의 용기와 의지로 객관적 조건을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혁명을 시작할 수 있을 때까지 조건이 무르익기를 기다릴 필요 없다. 왜냐하면 반란을 일으킨 게릴라 집단이 그런 조건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고 썼다.
그는 또 이 엘리트 집단이 대중을 대리해 혁명을 일으킬 것이라고 믿으며 이렇게 말했다. “게릴라 전사는 일종의 수호천사로서, 항상 빈민들을 도와주고 전쟁의 초기 국면에서는 되도록 부자들을 괴롭히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그의 투쟁관을 지배한 것은 남성 위주의 엘리트 집단을 조직해 그들을 군사적으로 ― 흔히 야만적인 규율로 ― 훈련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멕시코시티를 가로지르는 인수르헨테스 대로(大路)를 따라 17마일[약 27킬로미터]을 걷는 장거리 행군과 산악 등반 등이 그런 훈련의 일부였다.
게바라는 해발 고도가 높은 멕시코시티에서 생활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투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늘 천식에 시달린 그는 죽을 때까지 계속 호흡용 마스크를 달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 집단은 이제 구체적인 목표를 갖게 됐다. 그것은 쿠바에서 증오의 대상이던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1950년대에 쿠바는 부유한 미국인들의 놀이터나 다름없었다. 카지노와 매음굴은 넘쳐난 반면, 평범한 쿠바인들은 대부분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나 바티스타 정권을 타도하자는 운동은 거의 재앙으로 끝났다.
1956년 말 게바라와 그 동료들을 태운 배는 예정보다 늦게 쿠바 해안에 상륙했고, 바티스타 정권은 이미 알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배에서 내린 82명 가운데 19명만이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게바라는 쿠바의 산악지대에서 게릴라 병사의 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그는 자기와 함께 싸운 사람들에게 충성심과 공포심을 심어 주는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였다.
그 집단은 모두 심각한 신체적 고통에 시달렸는데, 특히 게바라는 끊임없는 천식 때문에 괴로워했다.



형편없는 무기로 무장한 이 오합지졸 게릴라 병사들이 1959년 1월 아바나에서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바티스타 정권이 붕괴 일보직전이었고 내부에서부터 무너졌기 때문이다.
바티스타 정권의 패배는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 미국의 패권에 대한 커다란 타격이었다. 미국은 쿠바를 철저하게 봉쇄하는 것으로 보복했고, 그 봉쇄는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쿠바혁명의 승리는 전 세계 혁명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게릴라전 전략의 정당성이 입증된 듯했다. 그것은 정치적·경제적 배후조종에 익숙한 미국을 물리쳤다. 그 뒤 몇 년 동안 라틴아메리카 전역의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 전략을 모방했다.



게바라는 쿠바의 진정한 변화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기대는 실현될 수 없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혁명이 처음부터 근본적 약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민주주의, 즉 노동자 통제가 실제로 확대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다수 보통 사람들은 그저 구경꾼이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없었다.
오히려 새 정부는 생산을 증대하고 경제의 활력을 유지하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계속 더 많은 것을 요구했다. 희생을 요구했고, 더 열심히 일할 것과 주말에도 자발적으로 일할 것 등을 요구했다.



모범을 보이기 위해 게바라는 늘 자기 사무실에서 늦게까지 일한 뒤에도 주말에는 육체 노동을 했다.
쿠바혁명의 공식 사진사가 된 유명한 사진사 오스발도 살라스의 책에 나오는 많은 사진들 가운데 하나는 게바라가 건설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이런 규율과 자기 절제 덕분에 게바라는 평범한 쿠바인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자기 희생과 규율만으로는 부족했다. 그것만으로는 미국의 봉쇄가 초래한 결과를 극복할 수 없었고 대중 민주주의 ― 모든 사회주의 혁명의 근본적 특징 ― 의 부재, 대중의 사회 조직 참여 부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었다.
선거도 없었다. 새 정부는 단지 스스로 임명할 뿐이었다.
사실, 피델 카스트로는 쿠바혁명과 새 국가를 사회주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훨씬 나중에 소련 편에 붙은 뒤에야 그렇게 했을 뿐이다.
게바라와 그의 동료들이 집권 뒤 맞닥뜨린 딜레마는 중요했다. 그들이 미국에 반대한 것은 옳았지만, 그들의 잘못된 정치 전략 때문에 오늘날의 쿠바는 사회주의를 자처하면서도 시민적 자유나 민주적 절차도 부정하는 끔찍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게바라 자신은 더 많은 것을 원했다. 그는 쿠바가 점차 소련에 의존하는 것에 실망하고 좌절했다.
그는 혁명의 확산을 원했다. 그는 쿠바 혼자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결국 말 그대로 자본주의라는 바다 위의 섬일 뿐이었다. 그는 결코 자신의 정신을 포기하지 않았고, “베트남이 하나, 둘, 셋, 아니 훨씬 더 많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전략에 사로잡혀 더 나아가지 못했다. 이것은 그의 생애의 비극적 모순이었다.
그는 세계를 변혁하기를 원했지만, 그가 의존한 정치 전략 때문에 그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혁명을 확산시키려는 그의 방법은 여전히 게릴라전이었다.



그는 결국 쿠바에서 모든 관직을 사퇴하고 콩고로 가서 투쟁했다. 그 투쟁은 대실패로 끝났지만, 다행히 그는 살아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볼리비아로 가서 또 다른 게릴라전을 수행했다. 그는 볼리비아 군대에 쫓겨다니다가 붙잡혀 미국의 군사 “고문단”이 지켜보는 가운데 살해당했다.
짧은 생애 동안에 게바라는 이미 전 세계에서 혁명과 반제국주의를 대표하는 인물이 돼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그를 저항의 상징으로 여긴다.



아마도 일부 사람들은 게바라에 대한 정치적 비판이 불쾌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게바라의 약점과 강점을 모두 살펴보는 것과 이 비범한 인물을 깎아내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오히려 이런 고찰을 통해 우리는 게바라가 반자본주의·반제국주의 투쟁에 기여한 바를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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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월 15 일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와 체 게바라' 라는 주제로 포럼이 있습니다.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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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께] 노무현은 우리의 적이다 / 노무현의 ‘자주 외교’?

다함께 44 호

노무현은 우리의 적이다 / 노무현의 '자주 외교'? - 전지윤

http://alltogether.or.kr/

 

지난 11월 11일은 열우당 창당 1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러나 열우당 창당 1년을 기념하는 사람은 ‘빼빼로 데이’를 기념하는 사람보다 더 적었다.
왜냐면 “우리당 창당 이후 1년은 실망과 배신감으로 가득 차 국민의 시름만 깊어[진]”(민주노동당) 1년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1년 간 노무현과 열우당은 “미국에 목덜미 잡히고 조·중·동과 한나라당에 휘둘려 지금까지 한 일이라곤 이라크에 파병하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위해 주력한 것말곤 내세울 게 별로 없[다.]”(홍세화, <한겨레> 11월 17일치)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개혁을 노무현과 열우당에 기대했지만, 그 기대는 철저히 배신당했다.
이해찬은 “조선·동아는 까불지 마라”, “한나라당이 나쁜 건 세상이 다 안다”고 큰소리쳤지만 ‘까불고 있는 나쁜 놈들’에게 노무현 정권은 쩔쩔맸다.
이해찬은 “조선·동아는 내 손아귀 안에서 논다”고 했지만 정작 조·중·동의 손아귀에 잡힌 건 노무현 정권이었다.  
열우당이 ‘친일법’을 ‘부일법’으로 바꾸며 직위가 아닌 행위 중심으로 조사하겠다고 물러나자 <오마이뉴스> 정운현은 “친일 ‘청산’인가, 친일 ‘면죄’인가” 하고 개탄했다.
종합부동산세는 거듭 후퇴해 “타워팰리스 81평”도 빠져 나가는 ‘종합구멍세’가 됐고 경실련은 “열린우리당은 땅 부자를 대변하는 특권층 옹호 당”이라고 규탄했다. 
문화관광부는 “개정된 신문법에 따라도 조·중·동은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아니”라며  ‘친절한’ 유권 해석을 내려 주었다.
검찰은 2억 원이 든 굴비 상자를 받은 한나라당 안상수를 굴비만 받은 걸로 봐주며 불구속 기소해 면죄부를 주었다.

 

최근 열우당과 한나라당의 “재벌 총수의 소유권 보장을 위한 오십 보 백 보의 진흙탕 싸움”(민주노동당) 끝에 통과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대로 하면 “출자 제한을 받는 재벌은 현재의 18개에서 10개로 줄어들”(참여연대) 참이다.
이미 알맹이가 빠져 껍데기뿐인 4대 ‘무늬’ 개혁은 한나라당과 조·중·동은 고사하고 “안에서 개판치는 모임”(김정란)이라는 ‘안개모’의 벽도 넘지 못하고 있다. 
“이게 아닌데 싶어 한마디 하고 싶어” 하던 한나라당, 자민련, 자유총연맹과 재벌2세 출신의 열우당 의원들이 모여 “지나치게 이상적인 개혁 입법”(창립선언문)을 막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래서 이부영은 “산이 높으면 돌아가[자]”고 했고, 천정배도 “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했다.
‘노무현의 복심(腹心)’이라는 문희상도 “최선이 안 되면 차선”이라며 “적절한 선에서 타협”을 말하고 나섰다.
한나라당 김덕룡은 “4대 국론 분열법 밀어붙이기를 중단할 것을 시사한 … 반가운 소식”에 기뻐했지만 <오마이뉴스> 고태진은 “그 높다는 산, 한번 올라가 보려고 해 보기는 해 봤나?”라며 분통을 터뜨렸다(11월 12일치).

 

4대 ‘무늬’ 개혁에서는 이토록 힘없이 동요하는 노무현 정권이 이라크 파병 연장, 비정규 노동법 개악, 공무원노조 탄압, 기업도시법 강행 등 ‘4대 개악’에서는 거침이 없다.
“다음 대통령에게는 너무 어려운 숙제를 넘기지 않겠다”는 심보인지 노무현은 반민중적·친제국주의적·친기업적 악행들을 한꺼번에 밀어붙이려 한다. 더구나 여기서는 ‘안개모’와 개혁적 386과 조·중·동과 한나라당이 별 차이도, 이견도 없다.
노무현의 오른팔인 386 이광재는 공무원노조 파업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며 보수언론들에 이메일을 뿌렸고, 유시민은 “누가 공무원 되라고 협박했냐”며 막말을 해댔다.
노동부 장관 김대환은 “전공노는 대화 상대가 아니다” 하고 나섰다. “정부는 탄압하고, 한나라당은 공조하고, 조·중·동은 응원하는”(진중권, <경향신문> 11월 16일치) 상황이 연출됐다.
기업도시법에서는 “주는 김에 홀딱 벗고 준다”(한나라당 최구식)는 우파와 재벌들의 주문에 따라 온갖 친기업적 특혜가 쏟아지고 있다.

 

해외에 나간 노무현은 이번에도 친기업적 발언을 쏟아냈다.
“오늘까지 우리 경제를 성장시켜 온 것은 우리 기업의 애국심이었다. … 대통령이 성과라고 내놓는 것[은] … 기업들이 핵심적으로 한 것이고 대통령은 그냥 밥 짓는데 뒤에 가서 부채질 한번 해 준 수준[이다.]”
기업주들을 위해 ‘부채’를 넘어 선풍기 수준으로 노동자들을 탄압해 온 노무현 정부는 최근 ‘부채질’을 위해 시위진압용 살수차 26대 구입 비용 39억 원을 편성했다.
노무현 정권은 이처럼 4대 개혁에서는 우파와 가끔 말로만 싸울 뿐 행동에서는 우파에 타협해 껍데기뿐인 ‘무늬’ 개혁마저 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4대 개악’에서는 우파와 손잡고 말과 행동 모두 무자비하게 노동자 민중을 공격하고 있다.
따라서 “열우당은 적과 아를 분명히 구분해 … 비정규직 관련법 개악 움직임을 중단하고  개혁 공조를 복원해야 한다”(<민중의 소리> 11월 2일치 논평)는 미련은 버려야 한다.
정말이지 적과 아를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껍데기가 아닌 알맹이 개혁을 이루고 ‘4대 개악’을 막아내기 위한 투쟁에서 우파와 함께 노무현 정권도 우리의 적이다.
‘안개모’의 안영근은 “민노당에 대한 기대는 이만 버리고 우리는 우리 갈 길을 가야 한다”고 열우당의 우향우를 재촉했다.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유사시 못살겠다고 길거리로 쏟아져 나올 국민이 1천만 명이 될 것”(모 장관이 민주노동당 의원들과 회동에서 한 말)이라는 지금, 노무현에 대한 미련을 이만 버리고 노무현에 맞서는 전면적 투쟁의 길로 나서야 한다.

 

노무현의 ‘자주 외교’?

 

 

해외로 나간 노무현이 11월 13일 미국의 대북 강경책에 대한 북한의 반발이 “일리가 있는 측면이 있다”고 편드는 듯한 말을 하면서 작은 파장이 있었다. 
우파들은 노무현이 11월 20일 부시와 만나서 “대들까 봐 걱정”(한나라당 김덕룡)했고, 진보 진영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 모처럼 빛이 났다”(<민중의 소리>)고 환영했다.
<오마이뉴스> 등은 노무현이 그 동안의 ‘한미공조 올인’ 외교에서 벗어나 ‘자주외교’로 나아가는 신호라며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막상 부시를 만난 노무현은 ‘대들기’는커녕 부시의 재선을 거듭 축하하고 이라크 파병 연장을 약속하며 알아서 기었다.
노무현은 이번 해외순방에서 기업을 찬양하는 발언들을 쏟아내며 신자유주의를 위한 한-일, 한-싱가포르, 한-캐나다 등 ‘FTA 드라이브’를 펼쳤다.
“전쟁의 위험을 감수”할 수 없다는 노무현의 발언도 이런 발언을 한 게 놀라운 게 아니라 “할 말은 하겠다”더니 그 동안 이런 발언도 안 한 게 놀라운 일이다. 

 

노무현의 말이 없더라도 케네스 퀴노네스(전 미 국무부 북한담당관)가 지적했듯이 “이라크 사태를 걱정하고” 있는 미국이 북한을 “[선제공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라크에서 수렁에 빠져 있기 때문에 부시는 노무현에게 북한 핵문제를 “평화적이고 외교적 방법으로 해결”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이번에 노무현은 “자기 국방은 자기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이어서 국방부는 ‘협력적 자주국방’을 위해 앞으로 4년 간 99조 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복지를 삭감하며 군비를 늘리고, 이라크 파병 연장도 ‘자주적’으로 결정하고, 아예 “해외 파병 상설부대의 편성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게 노무현식 ‘자주외교’, ‘자주국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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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께] 입시 경쟁이 낳은 ‘수능 부정’

다함께 44 호

입시 경쟁이 낳은 ‘수능 부정’  - 강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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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7일 치러진 수능시험에서 휴대전화를 이용해 1백40여 명이 함께 ‘부정행위’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사실, 전부터 수능시험에서 부정행위에 대한 소문은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실제로 이번 수능시험 전에 이미 교육청 게시판 등에 부정행위에 대한 제보가 올라오기도 했다.
게다가 휴대전화를 이용한 부정행위만이 아니라 신분증을 위조한 대리시험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결국 경찰은 수능시험 부정행위에 대한 수사를 전국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교육부도 부랴부랴 “휴대전화 등을 이용한 부정행위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도록 종합대책을 마련하기로 하고, 감독관 추가 배치, 전자 검색대 및 전파 차단기 설치, 문제지 유형 확대, 몸수색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많은 학생들이 정부의 이 같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 대처에 분노했다.
한 학생은 “시험을 보는 도중 계속 휴대전화 진동 소리가 들렸지만 감독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며 수능시험의 ‘공정성’에 대해 불만을 나타냈다. 그래서 일부 학생들은 수능 “재시험”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것은 한국 사회에서 수능시험이 그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수시 모집이나 대학별 면접 등에 비해 ‘공정한’ 제도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한겨레>는 “시험 부정은 시험제도 자체의 불신으로 비화될 수 있다.”며 정부에 엄정한 대책을 요구했다.
그러나 수능시험과 입시 경쟁 자체가 ‘공정한’ 경쟁은 아니다. 부자집 아이들은 더 좋은 환경에서 충분한 과외를 받아 수능시험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게다가 고교등급제 논란에서 봤듯이, 이들은 면접 등에서 더 좋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도 많다.

 

자본주의 시험제도의 목적은 생산을 조직하고 운영할 소수와 위에서 결정된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을 수행할 다수를 분리하는 것이다.
시험 결과에 따른 이해관계가 크면 클수록 입시 경쟁에서 이기고자 하는 바람도 커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부정행위에 대한 기술적 방지 대책을 강화하거나 엄한 처벌을 하는 것으로 부정행위를 온전히 없앨 수 없다. 부정행위는 자본주의 시험제도의 붙박이다.
특히 한국의 수능시험은 대학에서 공부할 자격이 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수능시험의 결과로 인생 전체가 결정되는 시험인 만큼 부정행위에 대한 유혹도 클 수밖에 없다.
한 학생의 말처럼 “수능날 하루가 인생의 반 이상을 결정하는 상황에서 누구나 ‘대박’을 바란다.”

 

지배계급은 시험제도를 통해 경쟁에서 이기면 자신들처럼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주입시킨다.
그러나 오직 소수의 학생만이 신분 상승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대다수 학생들은 시험 경쟁에서 들러리를 설뿐이며, 그 때문에 좁은 학교와 독서실에 갇혀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공부를 하며 시간을 낭비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인류 사회에서 시험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스스로 어떤 일을 하고, 누구와 일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었던 사회에서 시험은 필요하지 않았다.
지금의 시험제도는 ‘인간 본성’에 따른 자연스러운 제도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필요에 맞춰 만들어진 제도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연대와 상호 부조와 평등과 집단적 협력과 자원 활용의 민주적 계획에 기초를 둔 사회를 건설한다면 더는 시험제도가 필요 없을 것이다. 당연히 학생들이 절박한 마음에서 부정행위를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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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께] 공무원노조 파업평가 와 전망 / 실패한 파업?

다함께 44 호

공무원노조 파업평가 와 전망 / 실패한 파업? - 김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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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는 공무원노조에 전쟁을 선포했다. 우리 사회의 지배자들은 공무원 노동자들이 “[지배 계급의] 국민이 아닌 민주노총의 명령에 따르”는 것에 이를 갈았다.(<동아일보> 11월 16일치.)
열린우리당의 소위 ‘개혁파’ 의원들도 예외 없이 공무원 노동자 파업에 적대감을 드러냈다.
그 결과 공무원노조 파업을 둘러싸고 공식 정치 구조 안에서 첨예한 양극화가 일어났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한 목소리로 “파업 철회와 단호한 대처”를 요구한 반면, 민주노동당은 파업을 적극 지지했다.

 

민주노동당은 공무원노조 파업 전 과정에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 이를 통해 열린우리당이 쥐고 있던 정치 양극화의 왼쪽 극을 되찾을 수 있었다.
노무현 정부는 순전히 무력에 의지해 공무원노조 파업을 파괴했다.
“경찰 병력이 전 관공서를 점령하다시피 들이닥친 것은 군사독재 정권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김영길 전공노 위원장)
이것은 정부와 여당이 심화되는 경제 위기와 강화되는 우익의 공세에 직면해 우파와의 타협을 선택했음을 극명하게 보여 줬다.
“정부·여당이 초강경 대응하는 것은 그 자체가 정부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노동계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지켜보는 자본의 눈을 의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www.labortoday.co.kr, 11월 12일치.)

 

그러나, 이 과정에서 노무현 정부의 핵심 지배 전략이 결정적인 위기를 맞이했다.
노무현은 자신이 동의를 좀더 중시하는 지배 전략을 선호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했다. 즉, 노조 지도자들과 타협하고, 그러면 노조 지도자들은 현장 조합원들에게 협상 타결안을 내놓는 방식 말이다.
정부가 한때 내놓았던 ‘네덜란드식[또는 스페인식] 노사 모델’은 그런 시도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이 전략은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한 채 표류했다.
경제 위기의 심화는 노무현 정부가 양보할 수 있는 여지를 심각하게 제약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잇달아 예정돼 있는 산업 전투의 고리를 끊어내야 할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됐다. 투쟁 경험이 부족한 공무원노조가 그 표적이 됐다.

 

노무현은 ‘노동조합 전체를 한꺼번에 다루지 말고, 그들 가운데 하나를 골라내’는 새처 식의 노동 지배 정책을 따랐다.
노무현 정부는 과거 억압적인 정부들이 주로 사용한 방식, 즉 법과 경찰에 기대 공무원노조 파업을 파괴했다.
그러나 이것은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에게] 부메랑이 되는 행동”(홍세화)이었다.
왜냐하면 공무원노조 파업 파괴가 “위기의 노·정 관계에 자극제로 작용하면서 올들어 노·정 관계가 최대 위기 상황에 봉착했”기 때문이다.(<경향신문> 11월 16일치.)
그 어느 때보다 노동조합과 노무현 정부 사이에 커다란 금이 갔다.

 

이 파장은 노동조합에만 한정되지 않을 듯하다.
노무현 정부는 공무원노조 파업을 파괴하기 위해 서울 지역 대학들에 경찰 병력을 배치하고 출입자들을 검문·검색했다.
1980년대 세대에게나 익숙했던 일들이 역대 정부 중 가장 ‘개혁적’이라던 ‘참여정부’ 하에서도 재현된 것이었다. 적지 않은 학생들이 이 낯선 광경에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민주노동당 박용진 대변인은 “노무현 정권은 공무원노조 3권 보장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15년 전 노태우 군사정권과 이름만 다를 뿐 성도 같고 성격도 같다.”고 비판했다.

 

 

실패한 파업?

 

 

정부와 언론들은 노조원들의 참가가 저조해 파업이 실패했다고 말했다. 파업에 헌신적으로 연대했던 일부 활동가들도 이런 시각을 공유하는 듯하다.
그러나 공무원노조 파업의 영향은 단순하지 않다.

 


행정자치부는 파업 참가자 수가 3천2백 명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의 파업 참가자 집계는 실제 상황을 정확히 반영하지 않았다.
“정부 측은 ‘파업 참가자 = 징계 대상자’임을 고려해 신중한 파악”을 했기 때문이다.(<연합뉴스> 11월 15일치.)
더욱이 정부가 파업은 물론 집단 행동 일체를 불법으로 몰아가는 상황에서, 수천 명의 조합원들이 용기 있게 ‘불법’ 파업에 참가했다.

 

<매일노동뉴스>에 따르면, 11월 13일과 14일에 서울에 집결한 공무원 노조원 수는 8천여 명이었다.
공무원노조는 공식적으로 4만 4천 명이 파업에 참가했다고 밝혔다. 이것은 아마도 파업 참가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저항을 포함한 수치일 것이다.
실제로, 상경 파업에 참가하지 못한 노조원들은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파업에 동조했다 ― 지각, 휴가, 집단 자연 보호 활동, 체육 대회, 중식 집회 등.
많은 노동자들은 ‘마음만은 파업’이라는 심정이었다. 1백억 원이 넘는 파업 기금 모금도 파업 지지가 상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이 같은 현장 조합원들의 지지가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노조가 3일 동안 파업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정부 탄압 때문에 ― 특히, 11월 4일 정부의 강경한 담화문 발표 이후 ― 상당수 조합원들이 위축된 것은 사실이다.
또, 정부가 협상 자체를(심지어 대화마저도) 거부해 파업을 며칠 남겨 놓고 노조 지도부도 잠시 동요했다. 
그러나 정부는 파업 찬반 투표 봉쇄라는 ‘예비검속’까지 했지만 파업 돌입을 막지는 못했다.
파업 돌입 그 자체를 “승리”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공무원노조가 최초의 파업을 감행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했다.
그렇지 않고 공무원노조 지도부가 정부 탄압에 굴복해 파업을 지레 포기했다면, 그 결과는 지금과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정부는 탄압의 여세를 몰아 징계 등을 통한 노조 무력화와 다른 산업 부문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싶어했지만, 상황은 정부의 계획대로 되고 있지 않다.
한편, 울산 동구청과 북구청의 파업 참가율은 각각 73퍼센트와 53퍼센트였다.
두 곳은 민주노동당 구청장들이 파업을 지지해 징계 부담감이 상대적으로 덜했던 곳이다.
이것은 정부가 순전히 탄압에 의지해 파업을 파괴했음을 다시 한 번 보여 준다.

 

공무원노조 지도부가 노동자 대회 전에 파업에 돌입했더라면 탄압의 효과를 크게 상쇄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남는다.
공무원 노동자들은 2∼3일만 저항하면 파업을 앞둔 수만 명의 노동자들로부터 방어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터이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면 더 많은 공무원 노동자들이 파업에 참가할 용기와 자신감을 얻었을 것이다.
한편, 정부는 노동자 대회를 앞두고 공무원노조 파업을 파괴하는 것에 심각한 정치적 부담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공무원노조 파업의 성사 여부는 파업 규모와 연대에 달려 있었다.
즉, 공무원 노동자들이 노동자 대회에 얼마나 참가할지, 무엇보다 민주노총 노동자들이 공무원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연대를 보낼지가 관건이었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노동자 대회에서 공무원노조 파업에 연대를 호소하고 수천 명의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공무원 파업 참가자들을 엄호한 것은 노동자 연대의 전통이 살아 있음을 보여 줬다.

 

그러나, 민주노총 지도부의 11월 26일 총파업 선언은 아쉬움을 남겼다.
15일에 파업에 들어가는 공무원 노동자들에게 26일은 결코 가까운 일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또 정부의 모진 탄압 때문에 전체 노조원의 1퍼센트도 채 안 되는 1천 명 남짓이 상경 파업을 한 상황에서, 이제 막 등장한 신생 노조가 정부를 상대로 사흘을 버틴 것은 놀라운 저항력이었다(이런 이유 때문에 산개냐 집중이냐는 이 파업에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정부는 1989년 전교조 탄압의 전례를 따르고 싶어하는 듯하다.
그러나 공무원노조는 전교조가 10년에 걸쳐 이른 그 지점에서 정부와 싸우고 있다.
이미 14만 명의 조합원을 보유한 사실상의 노동조합이고, 그 때문에 상당수 지자체들이 공무원노조와 단체협약을 체결한 상태다.

 

정부의 파업 노동자 징계라는 2라운드 전투도 만만치 않은 저항에 직면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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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께] 미국은 결코 승리할 수 없을 것이다

다함께 44 호

미국은 결코 승리할 수 없을 것이다   - 김용욱

http://alltogether.or.kr/

 

팔루자 공세가 한창이던 11월 13일 미국 NBC방송에는 충격적인 장면이 방송됐다. 미군 해병대원은 부상당해 쓰러져 있는 이라크인에게 총을 겨눈 채 “이 새끼 죽은 척하고 있어”하고 말했다. 곧이어 화면은 보이지 않고 총소리와 함께 “이제 죽었어”라는 말이 들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았지만 이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었다. 국제적십자사는 팔루자에서 탈출한 난민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해서 이번 공격으로 사망한 민간인이 적어도 8백 명이라고 발표했다.


 

이러한 대학살은 우연이 아니라 철저하게 계획된 것이었다. 알라위 정부는 작전 시작 두 달 전부터 팔루자 지역에 새로운 의약품 반입을 막았다.
전투 시작 직전 해병대 장교들은 “15∼50세 남성은 무기를 소지하지 않았더라도 무조건 사살하라. … 적은 여성으로 가장할 수도 있다. 움직이는 것은 모두 쏴라.” 하고 명령했다.

 

 

미군은 11월 8일 공격을 시작하면서 먼저 팔루자 종합병원을 점령했다. 이 병원의 의사 무하라니는 출산을 돕던 중 미군에 체포당했다. 그녀는 미군 저격수가 의사 17명을 살해했다고 증언했다.
미군은 국제적십자사와 모스크들이 모은 구호품의 반입조차 가로막았다. 이것은 국제법 위반이었다. 식량과 물이 끊긴 상태에서 팔루자 사람들은 마당의 나무 뿌리를 캐먹었다.
미군의 공격으로 부상을 당해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목숨을 걸고 집안으로 데려와도 의사도 의약품도 없기 때문에 결국 죽어 갈 수밖에 없었다. 미군 탱크들은 길거리에 방치된 시체를 밟고 지나갔고, 개와 고양이 들은 시체에서 쏟아져 나온 내장을 먹고 살았다.

 

역겹게도 꼭두각시 정부의 총리 알라위는 죽은 사람 가운데 민간인은 한 명도 없다고 잡아뗐고, 해병대는 통역을 시켜 파괴된 집마다 “우리는 평화와 안정을 위해 여기에 왔습니다” 하고 쓰게 했다.
 이번 팔루자 공격에서 미군이 부분적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은 것은 이른바 ‘럼스펠드 독트린’을 무시하고 1만 2천 명 이상의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재래식’ 작전을 펼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저항세력의 영향력이 강력한 다른 18개 지역에서 똑같은 성공을 반복할 병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오히려 대규모의 해병대 병력이 팔루자에 묶여 있는 한 저항세력은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기 더욱 쉬워질 것이다.
실제로 미군은 팔루자보다 인구가 3배 이상 많고, 지리적으로도 훨씬 넓은 모술에 겨우 2천5백 명의 병력만 보낼 수 있었다.

 

따라서 조지 W 부시는 의기양양하게 해병대의 노고를 치하했지만, 원래 이라크 침략을 찬성한 미국의 주류 언론들은 그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죽거나 사로잡은 저항세력의 수로 성공을 가늠할 수는 없다 … 미국이 이미 베트남전쟁에서 배운 것처럼 그러한 성공은 신기루일 뿐이다” 하고 말했다.
<뉴욕 타임스>는 “만약 게릴라들의 근거지를 점령하는 것으로 점령군이 승리할 수 있다면 미국은 애당초 베트남에서 패배하지 않았을 것이고, 프랑스는 알제리 전투에서 승리했을 것이다. 또,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집단 처벌’로 그들[아프가니스탄인들]을 쉽게 굴복시킬 수 있었다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1백만 명을 살해하고도 철군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이들의 예상대로 전투가 더 치열해지고 있다. 모술뿐 아니라 바그다드 남부 6개 지역이 2003년 4월 함락 이후 최초로 미군의 통제에서 벗어났다.
힐라에서는 저항세력과 폴란드 군대 사이에 처음으로 전투가 진행중이고, 남부 습지의 베두인족들은 영국 군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정치적 반발도 확산되고 있다. 11월 13일에는 계엄령을 어기고 바그다드에서 5천 명 이상이 반알라위 시위를 벌였다.
며칠 뒤 47개 정당과 단체들은 내년 1월 선거에 불참하겠다고 선언했다. 팔루자 공격이 부시 정부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조지 W 부시는 모르겠지만, 미군이 지금 맞서 싸우고 있는 이라크인들은 19세기 후반 제국주의 군대가 대적한 제3세계 민중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이라크인들은 1958년에 제국주의 세력을 자기 힘으로 쫓아낸 기억을 가지고 있을 뿐더러, 산업화와 전쟁을 통해 각종 기술과 무기에 대한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갖추고 있다.
물론 이라크 저항세력이 군사적으로 미국을 패배시키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미국은 이 점 하나만 믿고 앞으로도 계속 군사력에 의존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결코 승리할 수 없다.
미군이 온갖 야만적 방법으로 군사적 승리를 거두었다고 생각한 순간, 이라크 게릴라들은 더 많은 사람들을 저항에 끌어들이면서 점령군에게 정치적 패배를 안겨 왔다.
부시 정부의 ‘테러와의 전쟁’은 애초부터 매우 정치적인 전쟁이었다. 이 전쟁의 성패는 미국이 거짓말과 협박을 통해서 다른 나라의 지배자와 피지배자에게서 얼마만큼 양보를 얻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하지만 미군이 이라크에서 야만적 학살과 정치적 패배를 반복할수록 정치적 동의를 얻기가 더 힘들어질 것이다. 지금 팔루자에서 일어난 대학살을 보고 자기 나라 지배자들이 이라크 침략에 계속 동참하는 것을 반길 사람은 거의 없다.

 

지난 2주 동안 미국, 영국, 필리핀, 한국 등에서 팔루자 공격 반대 시위가 있었다. 팔레스타인에서도 수천 명이 나섰고, 그리스에서도 1만 2천 명이 반전 시위에 참여했다. 칠레에서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방문하는 부시에 반대해서 5만 명이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라크 저항 운동과 국제적 반전 운동은 함께 가야 한다. 제국주의 점령은 이라크의 저항과 우리의 반전 운동이 결합될 때 끝장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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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께] 민주노동당 - 정치적 독립성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다함께 43 호

민주노동당 - 정치적 독립성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 김인식

http://alltogether.or.kr/

 

10월 4일 우익의 대규모 시위와 21일 헌재의 수도 이전 위헌 판결을 계기로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던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독립성이 흔들리고 있다.
“한나라당은 수구 세력의 중심이고, 열린우리당은 동요하고 있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천영세 민주노동당 원내대표)


이 물음에 대한 우려스러운 첫 답변은 11월 1일 당 최고위원회에 제출된 공계진 사무부총장의 ‘최근 정국 현안에 대한 대응’ 문서였다. 그는 열린우리당과의 “대승적 협력” 필요성을 피력했다.
“당은 수구 세력과의 투쟁으로 ‘열린당 2중대’라는 소리를 듣는 한이 있더라도 역사 발전의 견지에서 ‘개혁 입법의 현실화’,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대승적 행보를 해야 할 것임.”
그의 주장에는 “역사적인 사건[이자] 발전”인 열린우리당의 ‘보안법 폐지 형법 보완’이 우파의 공세 때문에 후퇴할지도 모른다는 초조감과 불안감이 짙게 배어 있다.
김창현 사무총장도 그 문서의 “표현은 과하지만 전략 기조에 대해서는 동의”했다(<오마이뉴스> 11월 5일치). “수구 보수 세력에 대한 화력을 집중하지 않으면 우리는 한발자욱도 전진할 수 없다는 위기감”(www.kdlp.org) 때문이다.


논리는 간단하다. 한나라당과 우익은 너무 끔찍하고, 열린우리당은 슬금슬금 뒷걸음질치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이 열린우리당을 비판하면 한나라당을 이롭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열린우리당과의 “대승적 협력”을 통해 “열린[우리]당의 ‘우향우’를 저지하고 ‘좌향좌’ 방향 유지를 견인”해야 한다는 공계진 부총장의 주장은 현실 정치의 시험대를 통과할 수 없다. 
열린우리당은 모순된 계급 기반 때문에 그 당의 정책은 늘 혼란스럽고 갈팡질팡한다. 피억압 대중을 붙잡기 위해 민주노동당과 ‘공조’하기도 하지만, 자본가 계급을 안심시키기 위해 한나라당에게 추파를 던지기도 하는 등 쉼없이 동요한다.


열린우리당의 개혁적 강령은 언제나 문서로만 존재했다. 열린우리당은 노동자 대중을 위한 진지한 사회개혁을 이룬 적도, 그렇게 할 능력도 없다.
자본가 계급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은행, 증권 시장, 언론, 고위 관료, 사법부 등 권력의 요새들이 그들의 손 안에 있다.
게다가 경제 위기의 심화 때문에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노동자 대중에게 새로운 개혁들을 제공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한때 주었던 것조차 빼앗아야 할 상황에 놓여 있다. 공무원 노동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과 비정규직 법안 개악을 보라.
따라서 우파의 반동 앞에서 열린우리당이 사실상 항복하고 대중을 배신하는 것은 결코 우연적이거나 일시적인 이유 탓이 아니다.
10·31 지자체 보궐 선거 패배는 시작일 뿐이다. 열린우리당의 위기는 더욱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우파의 공세가 강화되는 상황 때문에 민주노동당 안에서 이른바 “대승적 협력”론은 쉽게 수그러들 것 같지 않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열린우리당의 옷자락에 매달리는 것은, 민주노동당이 열린우리당의 불성실한 동맹(이른바 ‘2중대’)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자기패배적인 모토일 뿐이다.
민주노동당의 성공은 세력 균형을 두 주요 정당의 지배로부터 우리 운동 쪽으로 옮겨놓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임박한 산업 전선의 전투는 이를 위한 중요한 디딤돌이다.
노동자 저항은 노무현 정부만이 아니라 한나라당에게도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게다가, 한나라당이 세력 균형의 절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우파의 준동에 대한 대중적 반감 때문에 한나라당의 지지율은 한 달 전보다 3.3퍼센트 하락했다(<내일신문> 11월 9일치).


11월 5일 민주노동당 전국 지역 대표자 연석회의는 정부의 노동자 운동 탄압에 맞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가장 강력한 대정부, 대여당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심화되는 사회적 위기는 대담하고 단호한 행동을 요구한다. 민주노동당은 이를 행동으로 증명하면서 정치적 신뢰를 획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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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께] 노동운동 위기와 대안 논쟁

다함께 43 호

노동운동 위기와 대안 논쟁 - 전지윤

http://alltogether.or.kr/

 

요즘 박승옥(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원), 박태주(한국노동교육원 교수), 김형기(경북대 교수) 등이 노동운동을 비판하고 사회적 타협을 주장하면서 노동운동 노선 논쟁에 불을 지피려 하고 있다. 이들 사이에는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두드러진다.  


이들은 “왕자병 걸린 노동운동”이 “‘멸망으로 가는 완행열차’를 탄 채 졸고 있다”(박승옥)고 노동운동의 위기를 말한다. 낮은 노조 조직율도 위기의 증거로 제시된다.
그러나 12퍼센트의 노조 조직율 자체는 우파 노조인 한국노총 조합원 수는 줄었지만 좌파 노조인 민주노총 조합원은 9년 만에 20만 명이나 증가했다는 사실을 보여 주지 않는다. 또, 1998년부터 해마다 거의 갑절로 늘어나고 있는 파업건수는 사뭇 다른 그림을 보여 준다.


물론 한국 노동운동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그와 동시에 투쟁을 통제·회피하는 노조관료주의도 발전해 왔다. 이 때문에 IMF 이후 노동운동이 구조조정에 더 효과적으로 맞서지 못했고, 전투적 조합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노동운동이 강력하지만, 그와 동시에 정치적 위기, 지도력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1998년 민주노총 지도부가 노사정위에서 정리해고를 합의한 것, IMF 이후 ‘총파업’이 몇 차례나 무산되며 민주노총이 “양치기 소년”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 올해 보건의료노조 지도부가 지부 투쟁을 가로막는 산별 합의를 한 것 등은 모두 이런 위기의 징후이다.


하지만 이들이 내세우는 위기의 주된 근거는 다른 곳에 있다. 이들은 중심부(대기업·정규직)와 주변부(중소기업·비정규직)로 “노동 내부의 양극화”(박태주)를 지적하고 노동운동이 “대기업 정규직 남성 노동자 중심”의 “또 다른 가진 소수”(박승옥)의 운동이 됐다며 “노동운동의 정당성과 도덕성을 근거지에서부터 허물어뜨릴 … 정당성의 위기”를 말한다.
중심부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의 향상이 1987년 이후 민주노조 건설과 투쟁의 성과라는 점, 주변부 노동자의 열악한 상황의 책임과 원인이 정부와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격과 분열지배 정책에 있다는 점, 그나마 대기업의 조직된 노동자들의 선도적 투쟁이 전체 노동자들의 조건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는 점 등은 이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따라서 이들은 주변부 노동자들도 민주노조 건설과 투쟁에 나서도록 중심부 노동자가 적극 고무하고 연대해야 한다는 대안을 내놓지 않는다.


물론 박승옥은 “한국 노동운동이 … 비정규직 문제, 연소 여성노동자 문제, 이주노동자 문제를 자기의 문제로 끌어안고 나아가야[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로부터 나오는 실천적 대안은 연대 투쟁이 아니다. 이들은 다만 ‘노동 내부의 양극화’의 책임과 원인이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임금’과 ‘투쟁’에 있는 양 몰아붙이며 파업·투쟁 ‘자제’와 “연대 임금” 등 ‘양보’를 말한다.
“노동운동은 … 이제 폭력 행동도 그만두어야 한다. … 파업에 대해서도 신중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박승옥)
“소모적인 파업 투쟁은 … 노동계급의 힘을 약화시킨다.”(김형기)
“대기업 노동자들의 양보는 더 큰 단결을 위한 전술적 후퇴인 것이다.”(박태주) 
이런 대안이 일리가 있으려면 중심부 노동자들의 투쟁은 주변부 노동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반면, 중심부 노동자들의 양보는 주변부 노동자들의 조건을 개선해야 한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모두 현실과 어긋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소장에 따르면 대기업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과 비정규직 증가는 아무런 상관 관계가 없었다. 오히려 노조 조직률이 높아질수록 비정규직이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비정규직 고용에 관한 6가지 신화>).
실제로, 대기업 노조가 높은 수준으로 임단협을 타결하면 중소·하청업체도 그 수준에 맞춰야 하는 압력을 받는다. 그래서 보수 언론이 대기업 노조 파업에 게거품을 무는 것이다.    반면, “대공장 노조가 양보[하면] … 상대적 비교치가 낮아진 중소영세기업 비정규 미조직 노동자들의 임금은 더욱 정체되거나 삭감될 뿐이다.”(하부영, ‘대기업 노조의 자기 성찰과 모색’, ≪노동사회≫ 10월호.)
이들의 대체적 결론은 대기업 노조가 투쟁을 멈추고 “제도적 참여”(박승옥), “사회적 대타협”(박태주), “역사적인 대타협”(김형기)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박태주는 “노동운동이 공장의 담, 기업의 울타리를 벗어”나 “한국 경제의 어려움”을 돌아보라고 주문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거대한 물결을 애써 외면한 채 … 살 수는 없”(박태주)으니 “노동자들이 …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김형기)는 것이다.
하지만 1998년 민주노총이 ‘국민경제의 이익과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사정위에 들어가 정리해고와 근로자파견제를 합의한 결과는 사회적 양극화와 비정규직의 확대였다.
이러한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를 들어서 ‘노동운동의 위기’를 말하던 이들이 바로 그 문제들을 더욱 심화시킬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위한 ‘역사적 타협’을 말하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나아가 박태주는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파견법 철폐가 실현 가능한 이야기냐”고 말한다. 


올해 금호타이어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 건설을 고무하고 함께 싸워 정규직화를 쟁취했다.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은 산별노조관료들의 타협과 통제를 거슬러 투쟁해 승리했다. 노동운동이 “기업의 울타리를 벗어나” 계급적 연대로 나아가고 경제적 요구와 정치적 요구를 결합해서 강력히 투쟁한다는 대안은 이런 투쟁 속에서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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