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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실험 - 유엔 제재는 해결책이 아니다

조금 늦은감이 있지만, 이번 북한의 핵 실험 강행과 그에 대한 미국등 강대국의 대응방식에 대해 깊이있게 고민해볼 필요성이 있으므로 퍼다 올려본다 . 

 

핵실험 초기의 미국이 보인 강경한 발표에 비해 오늘 보도자료에는 중국과 러시아를 의식하여 새로운 대북 결의안에서 금융제재 등 에 대해 일부 문구를 완화 시켰다고 나오고 있다 ( 관련기사 :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13&article_id=0000156032&section_id=100&menu_id=100 )


핵실험 초기에 중국이 보여준 반응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이나 러시아 역시 북한이 스스로 핵무장을 함으로서 북한 지배층에 대한 영향력이 약화되는것을 막으려 하겠지만, 그보다 현재로서는 미국이나 일본 등이 동아시아 패권을 장악하는것을 무엇보다 원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본문에 명시하고 있듯이 미국은 이라크에 발이 묶여있는데다 국내외의 강력한 반전여론 때문에 북한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에는 나서지 못하고 있다. 이라크에 대해서는 존재하지도 않는 대량살상무기를 핑계삼았던 조지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서는 거듭해서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음" 을 발표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이라크 점령반대, 반전 운동 이 북한의 막무가내식 핵실험과 이에 따라 미국이 조장할 한반도 위기 해소를 위해서도 여전히 핵심적으로 집중해야할 사안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북한의 선군정치 혹은 핵무장 이나 이에 대한 UN 제제 모두 노동자 민중이 원하는 진정한 평화체제 확립을 위한 대안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각 국 지배계급사이의 대립심화에 따른 군비경쟁과 삶의 질 악화로 이어질것이 뻔하다.


따라서 노무현 정권이 동참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미국의 대북제제 및 압박에 반대해야 한다. 대북제제는 북한의 민중들이 받을 고통을 배가시키는것은 물론 그들 스스로가 억압적인 체제에 맞서 싸우도록 하는데 있어 오히려 악 영향을 끼칠수 있다. 한반도와 주변지역의 진정한 평화와 안정을 원한다면 여전히 제국주의 의 약한 고리로 작용하고 있는 이라크 반전운동을 중심에 두고 제국주의적 조치들에 반대하는 행동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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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불 15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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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실험 - 미국의 대북 압박이 낳은 위험한 결과

 

북한 핵실험
- 미국의 대북 압박이 낳은 위험한 결과
유엔 제재는 해결책이 아니다

김하영

 

조금 전인 오늘(10월 9일) 정오 북한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은 핵실험 사실을 보도했다. 핵실험을 하겠다는 외무성 성명이 발표된 지 엿새 만의 일이다. 10월 3일 북한 외무성 성명이 발표된 후에 이것이 괜한 엄포가 아니라는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분석이 있었음에도 부시 정부는 호통과 위협만 남발하다 결국 북한 핵실험을 자초했다.

 

≪미국은 협력하려 하지 않았다≫의 지은이 리언 시걸은 며칠 전 "북한의 핵실험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미국이 북한과 진지한 협상에 임하는 것뿐이나 지금으로서는 그런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므로 북한의 핵실험은 예견된 순서였다. 핵보유 선언에도, 미사일 실험발사에도 미국이 무시정책으로 일관하며 대화에 나서지 않은 채 금융 제재를 지속하자 북한 당국은 결국 핵실험이라는 무시 못 할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북한의 핵실험은 지난 5년 반 동안 부시 대북 정책의 누적된 결과다. 북한은 제네바 합의 이후 2002년까지 플루토늄 원자로와 재처리 시설을 동결하고 있었다. 그런데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가 부시의 특사로 평양에 가 시비를 걸고 그 해 11월 대북 중유공급을 중단(제네바 합의 위반)함에 따라 북한은 핵비확산조약(NPT)에서 탈퇴하고 영변 원자로를 다시 가동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 이후 대량살상무기가 없으면 미국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된 상황에서 리처드 펄 같은 자들은 "우리는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를 쳐부셨다. 우리는 북한군에 대해서도 똑같이 할 수 있다"고 공언하곤 했다.

 

미국은 이미 2001년 12월 의회에 제출한 핵태세보고서에서 북한을 미국의 잠재적인 핵 공격 목표로 정해 놓았었다. 비핵국에 대한 이와 같은 위협은 명백한 핵비확산조약 위반이다.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게 된 북한에 노골적 위협을 몇 년 동안 퍼부었다면 이것은 핵무기를 만들라고 제사를 지낸 셈이나 마찬가지다.

 

사실, 북한에 대한 핵 위협은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얘기다. 미국은 1957년 정전협정을 위반한 채 핵폭탄과 핵지뢰와 핵 미사일을 남한에 들여와, 비핵국인 북한을 위협하는 수단으로 사용해 왔다.

 

부시 정부를 비롯해 남한·일본·중국 당국은 지금 북한의 핵실험을 비난하고 있지만, 국제사법재판소는 1996년에 "극단적인 환경 하에서 자위 목적, 즉 생존 그 자체가 문제가 될 때, 한 국가의 핵무기 사용이 합법적인지 불법적인지에 대해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부시의 대북 정책은 북한 정권을 교체시키지도 못한 채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만 강화시켜 온 셈이다.

 

유엔 제재는 해결책이 아니다

 

북한 핵실험이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북한 당국은 핵보유국으로 사실상 인정받거나 핵 보유가 협상의 지렛대가 되기를 바랄 것이다. 이것이 한 가능성이긴 하지만 지금 당장은 유엔을 통한 대북 제재가 강화될 것이다.

 

내뱉어 놓은 험악한 말들 때문에라도 부시 정부는 뭔가 강력한 조처를 취해야 할 형편이다. 하지만 군사적 대응이라는 카드를 집어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돈 오버도퍼 존스홉킨스 대학 교수는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미국은 새 유엔 결의안을 통해 북한을 비난하겠지만 그 이상으로는 뾰족한 수가 없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첫째, 미국은 이라크에 발목이 묶인 데다 이란이라는 난제를 안고 있다. 미국의 군사력이 막강하다 해도 대북 공격까지 추진할 만큼은 아니다. 북한도 이런 상황을 계산했을 것이다.

미국이 북한 핵시설을 정밀 공습하려 해도 사태는 거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1994년에 주한미군 총사령관이었던 게리 럭은 북한 핵시설 공격시 "미국인 8~10만 명을 포함해 1백만 명 정도가 사망하고 1천억 달러가 넘은 비용이 [드는]" 전면전을 부를 것으로 판단했다.

 

둘째, 중국과 남한 정부의 의견도 중요한 변수다. 중국과 남한 정부는 북한에 대한 유엔 제재에는 동의하겠지만(수위에는 이견이 있을지라도), 군사 공격은 지지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중국은 미국 군대가 압록강 근처까지 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고, 남한의 경우에는 대규모 파괴를 각오해야 하는데 그것은 이른 시일 안에 회생이 불가능한 정도일 수 있다.

 

2005년에 공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북한 핵시설을 정밀 폭격할 때 최악의 경우 한반도 전체가 10년 동안 생명이 살 수 없는 불모의 땅이 된다. 운이 조금 좋다면 폭격 후 두 달 안에 피폭 지점을 중심으로 반경 10~15 킬로미터에 있는 생물의 80퍼센트가 사망하고, 낙진은 서울을 포함해 최대 1천4백 킬로미터까지 확산된다.

 

미국이 북한을 너무 거칠게 몰아붙일 경우 남한은 중국과 좀더 가까워질 가능성이 큰데, 이것은 미국의 동북아 패권에 심각한 상처를 낼 수 있다. 브레진스키를 비롯한 미국의 전략가들은 냉전 해체 이후 늘 이 가능성을 염려해 왔다. 미국은 한미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북한 위협이라는 지렛대를 사용하는 동시에, 사태를 너무 악화시켜서도 안 되는 쉽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다.

 

셋째, 미국의 군사대응을 쉽지 않게 만드는 조건으로 다수파가 된 미국 내 반전 여론을 꼽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부시 정부는 우선 유엔 제재를 통해 압박을 가하고 사태를 주시하며 대응 방안을 고민할 것이다. 지난 5년 반 동안 통일된 대북 정책을 마련하지 못했던 부시 정부가 며칠 만에 핵실험에 대한 대응책을 정리했을 것 같지는 않다.

 

남한 진보진영은 대북 제재 강화 자체가 사태를 위협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의 군사 대응은 물론이고 유엔 제재에도 반대해야 한다. 남한 정부의 유엔 제재 지지 방침에 힘을 실어 줘서는 안 된다. 제재는 평범한 사람들의 고통만 증대시킬 뿐이다. 핵무기 확산을 막을 수 있는 길은 미국이 북한에 대한 위협을 즉각 거둬들이게 하는 것이다.

 

위험한 게임

 

북한 당국은 핵실험이 "조선반도와 주변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는 데 이바지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장 미국의 군사 대응이 없다 해도 북한 핵실험은 평화와 안정은커녕 동북아 긴장을 한층 강화시키는 효과를 낼 것이다.

 

북한의 핵실험은 일본의 핵무장을 자극할 것이고, 이렇게 되면 남한과 대만도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결국 동북아는 핵 공포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고, 심지어 핵 전장이 될 수도 있다.

북한 관료의 처지에서는 핵실험이 미국의 압박에 맞서는 불가피한 수단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핵실험은 사회주의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동북아시아 민중을 담보로 한 위험한 게임일 뿐이다. 또한 남한과 일본 등지의 민중 운동에 부정적 효과를 낼 수 있다.

 

핵 공포의 균형이 평화와 체제를 보장할 수는 없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사태 때 인류는 핵전쟁 코앞까지 갔었다. 4년 전 카슈미르에서 인도와 파키스탄은 핵전쟁을 일으킬 뻔했다. 핵무기로 상대 국가의 노동자·민중을 위협하는 것은 공포를 부추김으로써 제국주의를 패배시킬 수 있는 진정한 잠재력을 갉아먹는 일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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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항세력 아우성-FTA 첫번째

한미FTA 저지 운동이 놓쳐서는 안 되는 것

맞불 12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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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저지 운동이 놓쳐서는 안 되는 것

 

□ 우석균 칼럼 - 메스를 들이대며

한미FTA 저지 운동이
놓쳐서는 안 되는 것

우석균(의사/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 기업 세계화 반대 운동가)

 

한미FTA 3차 협상이 일단락됐다. 양측 협상대표 웬디 커틀러와 김종훈은 올해 내로 마무리짓기에는 협상이 너무 지지부진하다고 불평을 늘어놓으며 4차 협상 전에 문제가 되는 부분을 별도로 협상하기로 합의했다.

 

무역촉진권한법(TPA)의 시한이 내년 7월 1일이고 올 가을 미국 중간선거 결과에 따라 이의 연장 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이들의 불평은 괜한 호들갑이 아니다. FTA 반대 운동이 협상을 좌초시키지는 못하고 있으나 협상의 발목을 붙들고 있는 것은 분명한 상황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지점인 투자?서비스?금융 부문에서 양측에 특별한 이견이 없었다는 것은, 이견

이 나온 '사소한' 문제들은 정치적 일괄 타결을 통해 마무리지을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한미정상회담을 앞둔 한미FTA 협상의 반환점에서 저들의 중간 평가는 이제까지 반대 운동 때문에 속도를 내지 못했지만 지금부터 속도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한미FTA 반대 운동쪽은 어떤가? 우리 쪽도 사정이 그리 순탄해 보이지는 않는다. 문제가 있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3차 협상 때 보인 운동의 대응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운동은 항상 부침이 있다. 하지만 점검할 부분이 있다.

 

우선 한미FTA를 한미FTA만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2차 협상 전후에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통해 멕시코의 경제가 더 나빠졌고 사회양극화가 심해졌다는 비판에 한국 정부는 NAFTA로 멕시코 경제가 성장했다는 설득력 없는 답을 내놓았다.

 

그러나 삼성경제연구소는 달랐다. 삼성경제연구소는 "한미FTA의 정치경제학"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멕시코는 FTA 자체 때문이 아니라 이와 동반된 내부 구조조정에 실패한 게 문제였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FTA만 해서는 안 되고 내부 구조조정을 동시에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FTA에 뒤따르는 구조조정 전략이라는 것이다.

 

연쇄고리

 

FTA는 FTA만이 아니다. FTA는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신자유주의의 연쇄고리 중 하나다. 따라서 동시에 추진되고 있는 '자발적 자유화' 조치들과 노사관계로드맵 등의 노동탄압 조치를 포함한 전체를 봐야 한다. 한미 양국 정부는 FTA에서 "교육과 의료의 영리법인 허용을 통한 개방 요구"는 없을 것이라고 한발 뺐다.

 

그러나 교육과 의료 부문의 시장화가 멈추었나? 한미FTA에서 영리병원 허용이 빠지자 재경부는 경제자유구역 내에서 국내 기업의 영리병원을 허용하는 법 개정을 곧바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대학 구조조정을 비롯한 교육부문 구조조정도 FTA와 '별도로' 진행중이다. 방송·기간통신·금융·해운·항만·우체국·농협·법률·택배·농업 부문은 한미FTA를 통해, 교육·의료·전기·수도·가스·철도 등 다른 부문의 사유화와 시장화는 '자발적 구조조정'을 통해 진행중이다.

 

물론 공기업 영업에 대한 상업적 고려라든지 투자에서 영업이익 침해 금지 등을 통해 FTA는 포괄적으로 공공부문 사유화를 초래한다. 그러나 이러한 FTA의 사유화 효과는 '자발적 구조조정'과 더불어, 그리고 이를 통해 완성된다.

 

노사관계로드맵에 대한 대응도 마찬가지다. 운동이 한미FTA, 자발적 시장화 조치, 노사관계로드맵이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략의 연쇄사슬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이에 동시에 대응하지 않으면 효과적인 연대 운동을 전개해 나갈 수가 없다. 물론 한미FTA가 이 연쇄사슬의 핵심고리임은 분명하다.

여기에 반전평화 운동도 더해야 한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FTA보다 전시작통권 환수 때문에 공격당하는 것이 더 편하다"고 말한 바 있다.

 

전시작통권 환수가 사실상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 요구의 일부라는 점을 분명히 하지 못하고 있는 운동의 약점 탓이다. 미군기지 평택 이전이나 이라크 파병, 레바논 파병, 전시작통권 환수도 미군의 중동 침공과 이에 따른 전 세계적 군사 재배치의 일환이라는 점을 대중적으로 분명히 하지 못하면 한미FTA로 몰린 현 정부가 전시작통권 환수 뒤에 숨는 얄궂은 상황을 막을 수 없다. 반전평화 운동과 반신자유주의 운동의 결합 필요성은 이처럼 매우 현실적이다.

 

한국의 반신자유주의 운동은 이제 시작이다. 이제 시작인 운동을 두고 절망하거나 낙관만 할 때가 아니다. 대중운동을 건설하려는 진지하고 꾸준한 노력 이전에 의회로 그 활동의 중심을 옮기려는 여러 논의들, 예를 들어 국민투표 논의는 아직 때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시한을 정해 두고 그 때까지 대중운동의 조직을 끝내야 한다는 논의도 섣부르다.

 

대안 논의도 마찬가지다.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에는 한미FTA 효과의 하나로 유럽연합(EU)이나 중국·스위스 등과 FTA를 촉진하는 FTA 플랫폼의 효과를 지적한다. 한중FTA나 한EU FTA를 한미FTA의 현실적 대안으로 제출하는 것은 그 제안이 한미FTA를 지연시키려는 의도에서 나왔다고 해도 우리 운동의 대안은 아니다.

 

유럽의 반신자유주의 운동이 뿌리를 내리고 그 성과를 거둘 때까지는 거의 10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이제 그 운동은 우리가 보고 있듯이 거대한 대중운동을 통해 유럽헌법과 CPE 법안을 좌초시키고 있다.

 

지금 우리는 한국의 반신자유주의 운동이 시작되는 것을 보고 있다. 우리가 할 일은 아직은 작고 혼란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이 불꽃들을 거대한 맞불로 타오르게 하기 위한 꾸준한 노력이다. 아직 낙관하거나 절망할 때가, 일희일비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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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레바논에서 나가라 / 이스라엘의 전쟁은 부시의 전쟁이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이 몇주째 계속되고 있다. 이로 인해 몇백만에 달하는 레바논인들은 난민으로 몰락할수 밖에 없었다. 집속탄, 백린탄을 동원한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발생하는 사망자들은 압도다수가 민간인 들이다. 그들은 고의적으로 병원차를 공격하고 수도 베이루트를 폐허로 만들고 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민간인 희생자의 열 배가 넘는 레바논 민간인이 사망했고, 그 중 3분의 1이 어린이다.

 

이스라엘이 남부지역의 수송로를 차단하는 바람에 난민들에 대한 구호물자 수송은 물론 희생자 시신에 대한 수습작업도 불가능하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연료공급이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 레바논내 60% 정도의 의료시설이 기능을 상실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어 희생자는 더욱 늘어날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레바논에서의 지상전 확전을 결정하고 남부 레바논에 병력을 투입했다.


 

이스라엘의 비인도적 행위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이 행동할수 있는 것은 이것이 곧 미국이 주도하는 제국주의적 정책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UN 대사인 존 볼튼은 "이스라엘이 헤즈볼라를 상대로 벌이고 있는 전쟁을 이용해야 한다" 고 말하며 "레바논에서, 우리는 시리아와 이란을 몰아붙일 기회를 잡았다" 며 진정한 속내를 드러냈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략전쟁은 중동지역에서 자원을 확보하고 패권을 강화하기 위해 미국이 기도하고 있는 시리아, 이란에 대한 확전의 전초전이 될 수 있다. 이스라엘과 그 동맹 세력이 헤즈볼라를 분쇄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들은 보다 자신감을 가지고 이란에 대한 공격에 나설수 있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격이 2년 뒤 이라크 침공으로 이어졌던것을 상기해보면, 레바논에서의 전쟁은 훨씬 더 커다란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정책이 이라크 민중들의 저항에 부딪쳐 주춤하고 있고, 부시 정권은 이것을 타개 하기 위해 이란, 시리아 등으로의 확전을 꾀하고 있다. 레바논 침공전은 부시로 하여금 그 확전의 성공여부를 갸늠하도록 만들 것이다. 상황이 그렇다면 반전운동은 이스라엘과 부시 정권이 바라고 있는 레바논 침략전의 성공을 저지시켜야 한다. 그것이 보다 많은 평범한 사람들을 전쟁의 포화에서 구해 내는 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를 앞세우고 민중의 삶을 파멸로 몰아넣는 지배계급들에게 그들의 주요한 정책인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는 거대한 대중운동은 큰 타격을 줄 것이며, 그들의 약한 고리로 작용하도록 만들수 있다. 반전운동은 여전히 전체 민중의 삶을 결정짓는 요소들의 대한 투쟁으로 작용할수 있으며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에 대해 반대하고 레바논, 팔레스타인 민중들과 연대하여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반대하는 운동에 함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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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불 5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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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레바논에서 나가라

 

조지 W 부시, 토니 블레어,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는 레바논의 평화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이스라엘이 폭격과 파괴를 계속해도 좋다고 허가했다.

 

"적대 행위 종식"을 제안하는 유엔 결의안 초안(이하 초안)이 논의되고 있는 동안에도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남부의 도시 티레를 포위한 채 다리들을 파괴했다. 그래서 원조 물자 반입과 피난민들의 탈출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레바논인들을 위한 무조건 휴전은 결코 없을 것이다. 미국과 프랑스가 중재한 "평화 협상"은 그런 무조건 휴전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초안은 이스라엘군의 레바논 즉각 철수를 결코 요구하지 않는다.

 

초안이 분명하게 요구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침략에 맞선 저항을 중단하라는 것이다. 초안에 따르면, 적대 행위 종식은 "특히, 헤즈볼라의 모든 공격 즉시 중단"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스라엘에 요구하는 것은 "모든 공격적 군사 작전"의 중단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티레 포위 작전과 베이루트 민간인 거주 지역 폭격이 헤즈볼라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한 "방어적" 작전이라고 주장한다.

 

초안은 헤즈볼라에게 지난 달 포로로 붙잡은 이스라엘 병사 두 명을 무조건 석방하라고 요구하면서도 이스라엘에게는 수백 명의 레바논인 재소자 "문제를 해결"하도록 "권고"할 뿐이다.

초안은 이스라엘이 레바논의 셰바(Shebaa) 농장 지역을 상시 점령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어떤 노력도 담고 있지 않다. 레바논 정부와 아랍 각국이 이스라엘군의 전면 철수를 요구하자 부시는 결의안에서 그런 문제는 "협상 대상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초안은 이스라엘 국경선에서 북쪽으로 거의 32킬로미터에 이르는 지역을 비무장 지대로 만들 것을 요구한다. 그리 되면 남북으로 1백50킬로미터가 약간 넘는 레바논 영토의 상당 부분이 비무장 지대가 될 것이다. 이스라엘군이 전투를 치르며 가까스로 침투한 지역보다 훨씬 넓은 지역이다.

다국적군이 그 비무장 지대를 관할할 것이다. 레바논의 옛 식민지 종주국이었던 프랑스가 이 점령군을 주도할 듯하다.

 

다시 말해, 초안의 핵심 목표는 이스라엘의 더러운 짓을 다른 수단으로 완수하려는 것이다. 이스라엘 국방장관 아미르 페레츠는 헤즈볼라를 무장해제시키는 "양면 작전"을 말하고 있다. 하나는 침략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영국·프랑스가 주도하는 외교적 노력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장관들이 분명히 말했듯이, 이스라엘군은 다국적군이 도착할 때까지 공격을 계속할 것이고, 따라서 레바논인들의 고통도 앞으로 몇 주 동안 지속할 것이다.

 

결의안은 거의 1백만 명에 이르는 레바논 난민들 ― 레바논 인구의 4분의 1 ― 이 집에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내용을 전혀 담고 있지 않다.

 

따라서 거의 모든 레바논인들 ― 전통적으로 헤즈볼라에 적대적이었던 많은 사람들을 포함해서 ― 이 이 협상에 반대하는 것도 당연하다.

서방 열강들은 이스라엘이 군사력을 이용해 확보하지 못한 전리품을 이스라엘에 주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전쟁이 시작된 지 4주가 지났지만, 이스라엘은 레바논 영토 안 46미터∼5킬로미터 지역 이상으로 진격하는 데 실패했다. 이스라엘은 전쟁을 시작할 때 리타니 강까지 32킬로미터에 이르는 지역을 점령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지금 그 "완충 지대"에 턱없이 못 미치고 있다.

 

비교

 

칼라우아이(Qalaouay) 마을에 사는 자말 사르한은 지난주에 현재 상황과 1982년 이스라엘의 대규모 침략 당시의 상황을 비교하며 이렇게 말했다. "전에 이스라엘은 6일 만에 [레바논] 남부를 점령했다. 지금은 24일이 지났어도 단 한 개의 마을도 점령하지 못했다."

 

이스라엘의 침략에 맞선 저항은 헤즈볼라가 모종의 외부 세력이나 점령 세력이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 준다. 그들은 압도 다수 레바논인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런 저항에 직면한 이스라엘 장군들은 레바논을 이스라엘군 철수 이후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비유하고 있다. 가자지구에서 철수한 뒤에도 이스라엘군은 빈번하게 가자지구에 침입해서 멋대로 공격하고 폭탄을 퍼붓고 사람들을 암살하고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집단 처벌을 자행해 왔다.

 

그런 "침입"은 레바논에서도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헤즈볼라는 2000년에 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군을 몰아냈다. 그 때 이후로 이스라엘군은 UN이 감시하는 "통제선"을 거의 날마다 넘나들며 공격을 해 왔다.

 

영토

 

이스라엘이 레바논 영토 전체에서 당장 철수하고 레바논인 재소자들을 석방하지 않는다면 레바논에 평화가 찾아올 수 없다.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점령이 철저하게 실패하고 있는 데 더해서 서방 열강이 레바논 남부를 점령한다면 아랍 세계 전역의 수많은 사람들이 더욱 분노할 것이다. 우리는 그 지역을 점령하고 헤즈볼라를 무장해제시키기 위해 외부의 군대가 투입되는 것에 철저하게 반대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레바논 전쟁이 더 광범한 전쟁의 일부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미국과 이스라엘 정부들은 이란과 시리아가 다음 표적이라고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다.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서 재앙에 직면한 부시·블레어·에후드 올메르트는 '테러와의 전쟁'을 더 강화하고 확대하고 있다.

 

우리는 레바논 공격에 반대하고 더 광범한 전쟁 몰이 ― 이스라엘의 침략은 그 일부다 ― 에도 반대하는 우리의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전쟁은 부시의 전쟁이다

 

미국과 프랑스 등 서방 강대국들이 레바논 사태의 해결 방안으로 “[다국적] 평화유지군” 투입을 추진하고 있다. 레바논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극의 규모가 워낙 어마어마한 데다 이스라엘이 스스로 공격을 멈출 가능성도 없어 보이다 보니 적잖은 사람들이 이런 계획을 ‘차선책’으로 여기는 듯하다.

그러나 서방 강대국들이 추진하는 “평화유지군”은 평화와 정의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의 바람과는 달리 이스라엘 군과 협력하는 또 다른 점령군 구실을 하게 될 것이다.

 

“인도주의”를 앞세운 서방 강대국들의 개입 사례는 무수히 많다. 그러나 그러한 개입은 대부분 사태 해결은커녕 더 커다란 “인도적 위기”를 낳았다.

1999년 코소보 사태에 개입한 NATO군은 수천 명의 무고한 민간인을 학살했고, 그 뒤 코소보를 점령했다. 1995년에 “인종청소”를 막는다는 구실로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에 개입한 미국은 옛 유고 연방 내전 동안 이뤄진 것 가운데 최대 규모( 20만 명)의 인종청소를 지휘했다.

 

소말리아·수단·아이티 등 다른 많은 곳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반복됐고, 서방의 이익 보호와 지역 패권 유지가 개입의 진정한 동기였음이 거듭 드러났다.

 

레바논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 점은 더욱 분명해진다. 1978년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저항세력의 공격을 빌미 삼아 레바논을 침공하자 유엔은 미국·프랑스·이탈리아 등이 참가한 유엔평화유지군(UNIFIL ― 지금도 레바논 남부에 주둔하고 있다)을 레바논에 파견했다.

 

그 뒤 1982년 8월 미국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와 그 활동가들이 베이루트에서 철수하는 대신 이스라엘은 베이루트를 공격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협상을 중재했다. 또, 미국은 무장이 해제된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위해 “적절한 안전 보장 조치를 제공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PLO는 베이루트 철수 약속을 즉각 이행했다. 그러나 PLO가 약속을 이행하자마자 미군은 일정을 앞당겨 레바논에서 철수해 버렸고, 9월 중순 아리엘 샤론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은 베이루트 서부 사브라와 샤틸라의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봉쇄한 채 극우파 기독교 민병대를 앞세워 수천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을 학살했다.

 

유엔평화유지군은 학살이 끝난 9월 말 다시 레바논에 들어왔다. 그러나 이들은 이스라엘을 비난하기는커녕 이스라엘의 점령에 저항하는 세력을 공격하면서 레바논 정부가 이스라엘과 평화 협정을 체결하도록 압력을 넣는 데만 열을 올렸다.

 

1983년에 베이루트 주재 미 대사관과 미 해병대 기지가 저항세력의 공격을 받은 것은 이러한 서방 강대국들의 위선과 배신에 대한 분노의 산물이었다.

 

이번에 투입될 다국적군의 구실도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애초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군대가 헤즈볼라를 분쇄하고 적어도 레바논 남부 지역을 완전히 장악한 뒤 다국적군의 지원을 받게 되길 원했다. 이들이 즉각 휴전 요구에 한사코 반대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지금 부시와 콘돌리자 라이스가 다국적군 투입을 서두르는 것은 헤즈볼라의 완강하고 효과적인 저항에 직면한 이스라엘이 헤즈볼라 분쇄에 실패하지 않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또, 그리 되면 프랑스는 자신의 옛 식민지에 복귀할 수 있을 것이고 미국은 이란과 시리아에 더 큰 압력을 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인디펜던트>의 저명한 중동 전문 기자인 로버트 피스크는 이렇게 말한다. “다국적군은 그들[레바논인]을 위해 오는 것이 아니다. 다국적군은 이스라엘과 미국이 중동을 재편하는 것을 돕기 위해 오는 것이다. … 그러나 미국의 야망은 항상 중동의 악몽이 되곤 했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은 말 그대로 ‘생지옥’을 만들어냈다. 따라서,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이 야만을 멈추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이미 ‘생지옥’을 만들어낸 제국주의 군대가 다른 곳에서는 ‘평화’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악마에게 자비를 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반전 운동은 제국주의 강대국의 책략에 반대하며 ‘무조건적이고 즉각적인 휴전, 이스라엘의 공격 중단과 즉각 철수’를 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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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노동자 양보는 답이 아니다 / 노무현이 노동자를 또 죽였다

'대기업 노동자 양보론' 을 말하는 사람들은 비정규직,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처우가 향상될 것이라는 조건하에서 대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이나 기타 근무조건 들을 일정부분 양보할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사회적 합의주의의 틀 안에서 노동자들이 한 발 양보하면 자본가계급 역시 한발 물러설것이라는 협상의 원칙을 전제로 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최선의 경우에도 지나치게 순진한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협상이란 기본적으로 힘의 관계, 즉 계급역관계에 기반하여 이루어 지는 것이다. 자본가 계급이 신자유주의를 앞세우고 전체 노동자. 민중의 삶을 나락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반면에 그에 대항해서 맞서 싸워야할 노동계급은 지도부의 일관되지 못한 타협주의적 전술때문에 지금의 계급역관계는 결코 노동계급에게 유리하다고 말할수 없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상황에서 양보안 과 같은 방식을 적들에게 제안하는것은 일종의 항복선언이 되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가 개선되기는 커녕 보다 많은 것을 '양보' 할것을 강요당하며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 전체가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지게 될 결과를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을 위한 투쟁은 폄하하거나 '노동운동의 계급전선이 아니' 라며 비껴가야할 어떤 것이 아니라, 그 투쟁을 보다 발전시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연대 투쟁, 나아가서 전 노동계급적인 관점의 정치투쟁으로 발전시켜야 할 부분이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조건의 노동자들만이 투쟁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할수 있겠는가? 그런 관점은 단순히 시혜적, 도덕적 입장만을 강요할 뿐, 노동운동의 발전에 기여한다고 볼 수는 없을것이다.


발작적인 폭압만을 반복하고 있는 노 뭐시기와 그 떨거지들은 또 한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직접적인 폭력으로 살해하고, 그것도 모자라 그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에게 폭력으로만 응답하며 많은 부상자를 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 민중의 올바른 대응의 방식은 지금과 같이 민주노총 지도부가 말로만 연대투쟁을 조직하며 결과적으로 개별 사업장 노동자들의 투쟁이 깨어져 나갈때까지 팔짱끼고 있는 형태가 아니라 노동운동의 지도부가 보다 진지하고 성실하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투쟁을 조직하여 '전국적인 힘의 집중과 강력한 투쟁으로 본때를 보여' 주는 것이 될 것이다.


8 월 9 일 포항에서 있었던 하중근 열사 사망 규탄집회 역시 경찰이 포스코로 향하는 길을 막으면서 집회 참가자들에게 무지막지한 폭력을 휘둘렀고 지역위원회에서 열심히 활동하시던 동지 한 분이 연행되기 까지 하였다. 정말이지, 노무현 정권과 민중 사이에는 점차 건널수 없는 피의 강물이 생겨나게 될 것을 확신한다. 그 강물에 익사당할 사람이 누구인지는 노동계급의 투쟁의 정도에 달려 있다. 연행당한 동지의 조속한 석방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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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불 5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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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노동자 양보는 답이 아니다

 

'산별노조 시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전망과 과제'라는 토론회에서 장석준 동지는 "대공장 노조 조합원이 임금을 일정 부분 양보하고 중소기업 노동자에게 강하게 어필할 수 있는 단체협상요구안을 낸다면 금속노조 가입이 급증하고, 그 영향[으로] … 노조 조직률이 20퍼센트, 30퍼센트로 치닫게 되는 낙관적 상상을 해 본다"(<레디앙> 7월 23일치)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문성현 대표도 "6천만 원 받는 조합원이 2천만 원을 받는 조합원에게 도움을 주도록 당이 역할을 한다면 당에 표를 찍겠다는 사람들이 많다"며 공감했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두 사람은 '대기업 노동자 양보론'을 편 것이다. 장석준 동지는 이미 6월 27일 <레디앙>에 기고한 글에서도 "단기적으로는 대기업 정규직 조합원들에게 손해가 될 수도 있는 요구안을 앞장서서 외치"는 것이 노동운동의 과제라고 말한 바 있다.

 

그와 '평등사회로 전진하는 활동가 연대'(이하 '전진') 소속 회원 다수가 지난 민주노동당 당직 선거 때 '대기업 노동자 양보'를 주장한 윤영상 후보를 지지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전진'은 예전부터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임금 인상 투쟁을 폄하해 왔다. '전진 2005 실천테제'는 "기업별 임금 인상은 노동운동의 계급 전선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전진'의 장석원 씨는 "대기업·정규직 노동조합의 높은 임금 수준은 … 무조건 방어되어야 하는 것인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주장했고 나는 이것을 비판한 바 있다.(<다함께> 60호 참조)

 

'대기업 노조의 선도적 투쟁이 다른 부문의 임금과 노동조건까지 함께 끌어올리던 시대는 지났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올해도 경총은 "대기업이 임금 인상을 주도했기 때문에 기업들의 평균 임금이 올라갔다"('최근 임금 교섭의 특징 및 과제')고 분노했고, <조선일보>는 "현대차가 앞장서서 원칙을 저버리면 다른 기업들이 무엇을 배우겠는가"라며 임금 인상 양보를 비난했다.

 

따라서 대기업 노조의 경제 투쟁은 여전히 정당하고 필요하다. 경제 투쟁이 정치 투쟁으로 이어지고, 비정규직 등과의 연대 투쟁으로 나아가지 않는 게 문제인 것이지, 경제 투쟁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기업 노조의 임금 인상 투쟁을 마뜩찮게 여기던 '전진'의 태도는 이제 장석준 동지처럼 대기업 노조의 양보를 주장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포스코는 매년 비정규직을 핑계로 정규직의 임금 동결을 강요해 왔지만 이번에 드러났듯 포스코 비정규직들의 임금은 다른 지역보다 낮은 상태다. 연대하지 않은 포스코 정규직에 대한 비정규직 건설 노동자들의 서운함은 크다.

 

필요한 것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 투쟁으로 모두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상향 평준화하는 것이지, 정규직의 양보를 통한 하향 평준화가 아니다. 연대 투쟁 속에서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동지애도 커질 수 있다.

 

연대 투쟁이 강력하고 성공적이라면 노조 조직률도 높아질 것이다. 한국에서 가장 급격히 노조 조직률이 늘어난 때는 바로 1987년 대투쟁과 1996∼97년 총파업 시기였다.

 

장석준 동지가 산별노조 시대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아래로부터 연대와 투쟁이라는 관점에 서서 민주노동당의 과제를 찾지 않다가 길을 잃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노무현이 노동자를 또 죽였다

 

노무현 정권에 의한 하중근 열사 살해 사건의 진상이 밝혀졌다. 부검 결과, 하중근 열사는 소화기·방패·진압봉·군홧발·주먹질로 집단 구타를 당해 전신 타박상, 갈비뼈 2대 골절, 두개골 골절로 사망했다.

 

이라크 파병으로 김선일 씨를 죽이고, 경찰 폭력으로 전용철·홍덕표 열사를 죽이고, 이제 하중근 열사마저 살해한 이 정부는 바로 노동자·민중 연쇄살인 정부다.

 

전용철·홍덕표 열사 살해 후에도 노무현은 거짓 사과를 하며 “이 같은 시위 문화가 계속된다면 앞으로도 돌발사태가 발생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며 살기를 드러낸 바 있다.

 

그 후 농민 살해범들은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고, “밀어! 때려! 작살을 내버려! 방패로 쳐!”라며 폭력을 교사해 직위해제된 경찰청 기동단장 이종우는 슬그머니 강원경찰청 차장으로 복귀했다.

이번에도 “그들이 가는 곳은 피바다가 된다”는 경찰청 기동대가 방패 끝을 날카롭게 갈아서 머리를 가격하는 특기를 펼쳤다. 소화기는 그들의 새로운 흉기였다.

양극화와 비정규직 확대를 낳는 신자유주의 정책은 저항을 불러왔고, 노무현은 레임덕이 깊어갈수록 폭력으로 저항을 짓밟으려 한다.

 

흉기

 

7월 12일 5만 명이 모인 한미FTA 반대 집회 이후 노무현과 지배자들은 포항건설노조를 대상으로 “본때를 보이고 과감하게 나가”(포항시장 박승호)려 했다. “이 입장이 초지일관해야 향후의 투쟁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게 저들의 생각이었다. 특히 건설노조는 투쟁 속에서 성장하며 전국적으로 번져가는 대표적인 비정규직 노조였다.

 

여기서 물러서면 투쟁의 확산을 고무할 것이고 한미FTA, 비정규직 개악안, 노사관계로드맵 추진에도 차질이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힘을 무자비하게 집중해 폭력 진압에 나서서 포스코 점거 농성을 파괴하고 하중근 열사까지 살해한 것이다.

 

그 후 열우당 김근태는 “우리가 단호한 대처를 정부에 요구한 것이 사태 해결의 단초가 됐다”며 자랑스러워했고, 행자부장관 이용섭은 “앞으로도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처함으로써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뒷받침하겠다”고 다짐했다.

 

친기업 언론들의 악랄한 왜곡·편파보도도 ‘초지일관’됐다. “극렬 노조 테러”니 “파업 폭탄”이니 하는 조중동 등의 ‘기사 테러’, ‘사설 폭탄’들은 여지없이 노동자들의 가슴에 피멍을 남겼다. 이들은 하중근 열사의 죽음에 침묵하며 열사를 두 번 죽이고 있다.

 

폭력

 

포항건설노조에 연대하는 금속노조 의견 광고의 ‘삼성’ 관련 문구를 문제 삼아 게재를 거부한 <한겨레>도 유감이다. “한겨레의 비루함은 자유의 버림에서 온 게 아니라 자유의 조건”이라는 홍세화 씨의 변론은 구차하게 들린다.

 

하중근 열사의 사망이 낳은 반발과 투쟁에도 노무현 정부는 사과는커녕 폭력 탄압으로 ‘초지일관’하고 있다. 8월 4일 규탄집회 때도 경찰 폭력으로 58명의 노동자가 두개골 골절, 코뼈 골절, 갈비뼈 골절, 고막 파열, 실명 위기 등의 부상을 입었다. 조중동은 ‘북한 혁명열사릉 참배’를 빌미로 민주노총을 마녀사냥하며 노무현을 돕고 있다.

 

포스코 점거 투쟁 때 재빨리 전국적인 힘의 집중과 연대를 건설하지 못해 실기한 바 있는 민주노총 지도자들은 오류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이 투쟁에 열심히 연대해 온 민주노동당 이해삼 최고위원은 “일정한 타협과 마무리, 사측에 대한 설득”을 잘하지 못한 것을 자책했다.(<진보정치> 285호)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해야 할 것은 그러한 중재가 아니라 전국적인 연대와 투쟁의 호소·건설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노무현과 지배자들에게 ‘본때를 보일’ 수 있는 전국적인 힘의 집중과 강력한 투쟁 건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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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한미FTA 거짓말을 반박한다 / 한미FTA는 ‘매국 협상’인가?

다함께 80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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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한미FTA 거짓말을 반박한다

 

노무현 정부는 한미FTA 추진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해 40억 원이나 쓰겠다고 한다. 이 돈도 돈이지만 한미FTA가 양극화 완화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일자리를 늘리고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것이라는 거짓말만 늘어놓고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한미FTA는 세계화 시대에 피할 수 없는 흐름인가?


 

한국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높아 교역을 증대시키지 않으면 현상 유지조차 힘들기 때문에 FTA를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노무현 정부의 논리다. 특히 미국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시장이기 때문에 한미FTA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FTA는 결코 대세가 아니다. 신자유주의의 선두주자라 할 수 있는 미국조차 나프타(북미자유무역협정)와 호주·싱가포르를 제외하면 변변한 FTA를 거의 추진하지 못했다.
더욱이, 미국이 중남미 전역에 걸쳐 추진하려는 FTAA(미주자유무역지대)는 남미 민중들의 저항 때문에 파산 일보직전에 있다.


전 세계 곳곳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이 파탄나고 그 정책을 추진하던 지도자들이 대중의 저항 때문에 권좌에서 쫓겨나고 있다.
한국과 미국 자본가들에게 한미FTA가 사업 확장과 수익성을 위한 엘도라도가 될지 모르겠지만, 양국 대중에게는 고용 불안과 공공서비스 파괴와 생활수준 저하를 의미한다.
지금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에서 벌어지는 투쟁이 보여 주는 바는 FTA 같은 신자유주의 정책도 대중 투쟁을 통해 저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미FTA가 양질의 일자리 증가로 이어질까?


 

FTA 체결이 일자리 증대는 제쳐두고라도 경제성장조차 자동으로 가져오지는 않는다. 그 본보기는 주요 선진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들과 FTA를 맺은 멕시코이다. 
1994년 나프타(NAFTA) 출범 이후 2003년까지 멕시코의 무역규모는 2.5배 증가했지만 그 동안 낮은 경제성장과 불안정에 시달렸다.
더욱이, 수출이 증가했는데도 멕시코 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은 하루 5달러에서 4달러로 하락했으며, 전체 노동자의 25퍼센트에 달하는 1천만 노동자들의 최저임금도 20퍼센트 감소했다. 실업률 또한 9.7퍼센트에서 15.1퍼센트로 증가해 사회 양극화는 더 심화됐다.


 

캐나다에서도 나프타 추진 이후 비정규직은 5퍼센트에서 11.6퍼센트로 증가했다. 그리고 실업자 고용보험 혜택 비율이 87퍼센트에서 36퍼센트로 감소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 노동자들이 득을 본 것은 아니었다. 1995년에서 2000년 사이에 미국 제조업 노동자들 중 7백만 명이 부도와 정리해고로 일자리를 잃었다.

 

노무현 정부는 한미FTA가 외국인 직접투자를 증대시켜 일자리를 늘릴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외국인 직접투자가 늘어나면 일자리가 늘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적대적 인수합병을 위해 투자했다가 자본 철수를 할 경우 대규모 정리해고를 동반한다. 1천3백 명이 거리로 쫓겨난 오리온전기가 본보기다. 2000년대 들어 이런 적대적 인수합병 투자가 14.1퍼센트에서 45.6퍼센트로 3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한미FTA로 비정규직 증가나 근로조건 악화 등의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는 한미FTA 체결로 비정규직이 증가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미국측도 한미FTA를 통해 상대국의 노동기본권 준수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주한미상공회의소와 한미재계회의가 공동으로 작성한 2005년 정책보고서에는 해고 요건의 완화와 해고 사전 통지기간 단축(60일에서 30일), 확정기여형 퇴직연금제도로 전환, 파업 때 대체근로 허용, 비정규직을 확산할 다년계약제 도입 등의 요구 사항이 들어 있다.

 

이런 요구는 노무현이 추진하는 노사관계 로드맵의 핵심 내용들이다.
한국과 미국의 기업인들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고 노동조합의 힘을 약화시키는 데는 이해관계가 완벽하게 일치한다.


 

공공 서비스의 질은 나아질까?


 

노무현 정부는 “한미FTA로 건강보험이 손상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부터 국민보건을 해치는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 왔다.
병원의 영리법인화를 도입했고, 제약회사들의 수익이 증대하는데도 현재의 약가제도를 개편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을 뿐 아니라, 광우병이 확인돼도 쇠고기 수입을 재개했다.
그런데 한미FTA가 보건의료 분야에서 초래할 결과는 분만료 7백만 원, 사랑니 발치비 1백만 원이나 하는 미국식 의료체계의 도입이다.

 

외자 도입을 명분으로 미국식 의료체계를 도입한 칠레는 공적 건강보험이 파괴돼 직장인이 아닌 환자는 무보험 상태로 전락했다. 삼성생명이나 AIG 같은 기업들이 병원의 영리법인화와 건강보험의 개편을 요구하고 있다. 

의료뿐 아니라 교육 분야에서도 개방과 경쟁을 통한 경쟁력 강화 노력은 전부터 추진돼 왔다. 국공립대 통폐합과 등록금 인상, 기업의 대학 운영, 대학의 영리법인화 등이 그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전기·수도·가스 등과 관련된 공공 서비스의 사기업화 우려는 지나칠 뿐 아니라 “최대한 공공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미 무역대표부는 한국이 2005년에 공기업의 사기업화 건수가 한 건도 없다고 지적하고 있어 한미FTA 협상 과정에서 사기업화 요구를 거세게 밀어붙일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이미 노무현 정부는 외국계 기업이 눈독을 들이는 배전과 변전 사업을 한전에서 분리해 사기업화할 채비를 마쳤으며, 천연가스 수입권을 민간 기업들에게 허용하고 있다. 또한 베올리와와 온데오 같은 초국적 물(水) 기업이 노리는 상하수도 사업의 경우 민간 위탁과 경쟁 체제를 도입하고 있다.

한미FTA로 더욱 가속될 공기업의 사기업화는 공공요금 인상과 최악의 경우 캘리포니아 정전 사태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

 

한미FTA는 ‘매국 협상’인가?

 

한미FTA가 국부를 유출하거나 한국에 유익하지 않다는 국익론에 근거해 한미FTA를 반대하는 것은 노동자·민중의 이해관계에 비추어 매우 위험한 논리가 될 수 있다.

중국이나 EU 또는 아시아 국가들과의 FTA를 체결해 한국 경제의 체질을 강화한 다음에 한미FTA를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이런 주장은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위해 한국뿐 아니라 한국과 FTA를 체결하는 나라의 노동자들을 공격하는 정책을 지지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더 우려스런 입장은 ‘매국 5적’, ‘제2의 을사늑약’ 등으로 표현되는 매국협상론이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먼저 한미FTA 협상을 미국측에 제안한 사실이나, 독점자본뿐 아니라 중소자본을 포함한 한국의 대다수 자본가들이 한미FTA를 이윤 추구의 계기로 여겨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로 볼 때 한미FTA가 단지 극소수 ‘매판’ 자본만의 이익은 아니다.

더욱이 한미FTA를 매국 협상이라고 보는 입장은 ‘민족자본’, ‘피해를 보는 중소자본’ 등의 자본 분파와의 협력을 조장하고 실천적으로 계급 연합으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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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에 투표하라

다함께 80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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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링크 : 오세훈 - 이명박 줄기세포로 만든 복제 배아
관련링크 : 강금실에게 개혁을 기대하는 것은 “한정식 집에서 짜장면.."

 

민주노동당에 투표하라

 

이번 지방선거에서 열우당은 십중팔구 참패하고야 말 것이다. 그 당은 어떻게든 패배를 모면하기 위해 갖은 쇼를 다하고 있다. ‘운동권 새댁’이라는 한명숙을 총리로 임명하고, 강금실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세웠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보고 있다시피 그 효과는 거의 제로다.

한나라당이 공천 비리와 성추행 사건 등 악재를 거듭하고 있는데도 열우당의 지지율이 정체이거나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것은 일시적이 아니라 고착되고 있는 지표이다.

상당수 사람들은 ‘여당이 무조건 싫다’고 한다. 한나라당이 온갖 부패 추문에도 지지율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총선에서 열우당을 지지했던 사람들 중 상당수가 그 당에 등을 돌렸다. 한국갤럽 여론 조사에 따르면, 총선 때 열우당 후보에게 표를 던진 서울시 유권자 중 강금실을 지지하는 사람은 고작 38.9퍼센트다. 강금실은 열우당의 후보가 되자마자 비극적 희극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열우당은 한나라당에 대한 대중의 두려움과 반감에 기대고 있다. 그러나 열우당의 반한나라당 슬로건은 노동자를 기만하는 것이다. 지난 대선 패배와 탄핵 반대 운동으로 그로기 상태가 된 한나라당을 소생시킨 것은 다름 아닌 열우당이었다.

그러므로 열우당의 반한나라당 슬로건은 노동자 대중이 투쟁과 삶의 경험을 통해 애써 가꾼 진보적 각성의 열매를 가로채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나라당이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열우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지율이 높다는 것일 뿐, 한나라당의 절대 지지도가 상승한 것은 아니다. 열우당의 실패로부터 반사이익 챙기기, 이것이 한나라당이 살아가는 법이다.

오죽하면 <조선일보>의 김대중이 한나라당을 두고 “더 이상 국민이 기대하는 야당이 아니며 그런 요구를 수임할 능력이나 자질이 없다”고 했을까.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4월 중순에 9.4퍼센트였던 무응답층이 5월 초에는 오히려 18.5퍼센트로 늘어났다.

그래서 이번 선거는 역대 지방선거 중 투표율이 가장 저조할 것 같다. 그럼에도 민주노동당이 이들 샴 쌍둥이와는 뚜렷하게 구분되는 대안을 제시한다면 상당한 성공을 거둘 가능성도 있다.

그러려면, 민주노동당은 무엇보다 열우당의 교활한 의회 술책에 말려서는 안 된다. ‘개혁적’ 언사를 사용해 반개혁적·반노동자적 본질을 은폐하고 정치적으로 후진적인 대중을 속이려는 열우당의 책략을 가차없이 폭로해야 한다.

이렇게 봤을 때, 5월 2일에 열우당이 6개 법안을 국회의장 직권상정으로 통과시킬 때 민주노동당 의원단이 이를 도운 일은 민주노동당 선거 도전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법안들, 특히 주민소환제가 ‘진보적’이었을지라도 당시 맥락에서 그것이 판단의 핵심 고려 사항이 돼서는 안 됐다. 왜냐하면 선거 패배를 모면하기 위해 왼쪽 깜빡이를 켜 지지층을 결속시키려는 열우당의 책략이 그 개혁입법의 맥락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 법안들이 ‘날치기’ 통과라는 인상을 줘 가면서까지 반드시 그 날 통과시켜야 할 만큼 급박한 것들도 아니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의 눈에 두 당(열우당과 민주노동당)은 별반 차이가 없는 것으로 비칠 뿐이다. 이런 식의 의회 전술은 그렇잖아도 강하게 압력받는 양당 구도 속으로 민주노동당을 밀어넣을 수 있다.

지금 김종철 서울시장 후보도 양당 구도 압력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언론이 악의적으로 김종철 후보를 군소 후보로 제쳐 버리고, 민주노동당의 서울 지지율이 다른 지역에 비해 낮고, 열우·한나라당이 모두 개혁적 이미지(단지 이미지일 뿐이지만)를 지닌 후보를 내세웠다는 점이 김종철 후보의 선거 도전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객관적 조건들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이번 선거는 매우 민감하고 전국적 초점을 이루는 투쟁들을 배경으로 치러진다 ― 평택 미군기지 확장, 한미FTA, 비정규직 등.

이 쟁점들은 예외 없이 우리 사회를 첨예하게 가르고 있다. 그리고 열우당과 한나라당은 이 쟁점들에서 근본으로 다르지 않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따라서 김종철 후보가 TV 토론 등을 활용해 정부와 열우당의 기만을 날카롭게 폭로하고 대중에게 투쟁을 호소한다면, 운동의 성장에 크게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매우 효과적인 선거 운동이 될 것이다.

이 과정은 한나라당을 비판하지만 그것 이상으로 노동자와 피억압 민중의 운동과 투쟁을 증오하고 두려워하며 결정적 순간에는 한나라당에 달라붙는 열우당의 동요와 우유부단함을 대중에게 한껏 드러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김종철 후보는 TV 토론에서 KTX 여승무원 농성, 평택 미군기지 반대 운동 등의 당면 현안에 대해 수세적인 태도를 보였다. 선거운동 초기에 그는 “노학연대 투쟁을 선동하겠다”고 했는데, 이와도 모순되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도 김종철 후보가 이른바 포지티브 선거, ‘정책’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부르주아적 명망성의 압력을 계속 수용한다면, 유력한 도전자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기보다는 자칫 양당 구도에 의해 잊혀진 도전자가 될 위험성이 있다.

물론 사회의 진보적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은 마땅히 5월 31일 김종철 후보에게 투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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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파래지는 강금실의 ‘보라색’ / 오세훈 - 한나라당판 강금실?

다함께 78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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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파래지는 강금실의 ‘보라색’

 

강금실의 ‘보라색 패션쇼’가 계속되고 있다. 이미지 선거 전략 때문에 ‘보라색’의 정체는 모호하다. 구체적인 공약과 정책은 “투 비 컨티뉴드(다음 번에 계속됨)” “기대하시라 개봉박두”라며 뜸을 들이고 있다. 그러나 ‘소문난 잔치집에 먹을 것 없다’고 그가 노동자·민중의 삶을 개선할 가망은 거의 없다.

강금실은 출마 선언 당시 자신의 보라색이 “기존의 빨간색(진보)과 파란색(보수)의 대립을 풀어내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강금실은 “저소득층 산모에게는 20만 원을, 나머지 산모에게는 10만 원을 상품권으로 지급하겠다”며 꾀죄죄한 생색내기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노무현과 ‘거리두기’를 한답시고 오히려 기득권에 아부하고 있다.

그는 “강남에 사는 분들이 왜 자기들을 죄인 취급하냐고 말한다”며 “강남 시민들의 마음을 다치게 한 것은 잘못”이라고 한다. 그래서 “강남을 아름다운 부촌으로” 만들자고 한다.

강금실은 조·중·동 같은 우익들에게도 비위를 맞추려 한다. 그는 “내가 시장이 되면 현 정부처럼 일부 언론과 대립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출마선언 쇼’를 하면서 전태일 동상을 찾은 것은 역겨운 위선이다. 강금실은 “지입차주는 노동자가 아니”라며 화물연대 노동자를 탄압하고, 철도 파업에 경찰을 투입하고, 살인적인 강제 추방으로 이주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몬 장본인이다.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는데도 강금실의 지지율 역시 떨어지고 있다. 선거가 시작하기도 전에 기득권 세력과 우파에 타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일관되게 한나라당에 맞설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착각이다. 오히려 타협 때문에 한나라당의 입지를 강화시켜 줄 뿐이다. 한나라당에 맞서기 위해서라면 오히려 김종철 민주노동당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

 

오세훈 - 한나라당판 강금실?

 

김덕룡·박성범의 공천 비리는 차떼기와 최연희 성추행에 이어 한나라당이 구제불능의 쓰레기임을 다시 한 번 보여 주었다. 그러나 이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영남 지역만 해도 “기초의원 1억∼3억 원, 광역의원 3억∼5억 원, 기초단체장 10억∼15억 원의 ‘공천 공정가’ 소문이 돌고 있다.”

오세훈은 2000년 이회창의 ‘젊은 피 수혈’로 입당한 자답게 이런 썩은 내 풀풀 나는 한나라당의 치부를 가리는 구실을 한다. 강금실의 보라색 패션쇼에 오세훈은 녹색 패션쇼로 맞서고 있다. 자신이 “오랫동안 환경운동을 해오며 녹색이 뼛속까지 박혀 있다”는 것이다.

이 자가 새만금 공사 반대 삼보일배나 북한산 관통도로 통과 반대 성명에 한두 번 얼굴을 비추거나 이름을 올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자가 새만금 공사 등을 저지하기 위해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였다는 흔적은 결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오세훈은 “뉴타운 50개 건설”, “강북 상권 부활 프로젝트”를 말하고 있는데, 이는 김종철 후보가 지적하듯이 환경을 파괴하는 “한나라당다운 전형적인 개발론”일 뿐이다.

이런 자를 중앙집행위원으로 받아들인 환경운동연합 지도부의 명망 추구 정치도 문제이지만, 무엇보다 오세훈은 이런 경력을 자신의 이미지 관리용으로 써먹을 뿐이다.

강남 부유층 주부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이 자는 민중운동과 전혀 관계가 없던 ‘웰빙 오렌지족’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자의 자유주의적 이미지는 짝퉁일 뿐이다. 그는 민변에 이름을 올려놨지만 지금까지도 “탄핵은 올바랐다”고 우기며 한나라당의 노무현 탄핵을 옹호하고 있다.

오세훈은 이라크 파병안에 찬성했고 노동권과 환경을 파괴하는 경제특구법안에 적극 찬성했다. 이 자는 “21세기 업그레이드된 개방의 구체적인 모습은 자유무역협정으로 나타날 것”이라며 신자유주의를 찬양한다. 또, “내가 힘들고 뒤처지는 것은 내 탓이지, 그 누구의 탓도 아니”고 “내가 가난한 것은 남이 부자이기 때문이 아니”라며 경쟁을 고무한다.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집단이기주의”를 버리라며 “자신들의 월급을 깎더라도 실업자나 비정규직 노동자와 일자리를 나누겠다는 생각이 있어야” 한다고 비아냥거린다.

이 자가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경쟁 후보인 맹형규는 “영입 인사는 백설공주이고, 나나 홍준표 의원은 일곱 난쟁이인 것처럼 취급”되고 있다고 신경질을 냈다. 맹형규와 홍준표 같은 ‘늙은 난쟁이’들의 견제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오세훈의 인기가 강금실을 능가하는 것은 노무현에 대한 사람들의 환멸이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 주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노무현을 심판하기 위해 오세훈 같은 자를 지지하는 것은 갈증난다고 소금물을 들이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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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처럼 싸우고 승리하자

다함께 78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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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처럼 싸우고 승리하자

 

 

노무현 정부는 틈만 나면 비정규직 개악안을 통과시키겠다며 노동자들을 우롱했다.

이번에도 노동부 장관 이상수는 “이번에는 미룰 수 없다. 4월 임시국회가 데드라인”이라고 협박했다. 또 진만 빼고 미룰지, 정말 강행 처리할지는 알 수 없다.

고교생들도 57퍼센트가 비정규직 개악안을 반대(한길리서치 조사 결과)할 정도이지만 노무현 정부에게 중요한 것은 기업주들의 요구다.

노무현 정부는 비정규직 확대라는 기업주들의 요구에 따라 노동부 보고서를 은폐· 조작하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열우당과 한나라당의 싸움판에서 흙탕물이 튀고 있지만, 비정규직 개악안 앞에서 이 모든 갈등은 봄눈 녹듯 사라진다. 

따라서 개악안 처리 여부는 결국 기층 대중이 얼마나 강력하게 투쟁하느냐에 달려 있다. 노동자와 학생이 프랑스처럼 대규모 파업과 점거 투쟁을 벌인다면 개악안을 저지할 수도 있다. 민주노총 조준호 위원장과 민주노동당 문성현 대표도 “프랑스처럼 싸우고 승리하자”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4월 10일부터 벌인 닷새 간의 민주노총 순환 파업은 결코 ‘프랑스처럼’이 아니었다. 사실, 마지막 날 진행된 금속연맹의 4시간 파업을 제외하곤 파업도 아니었다.

조준호 위원장도 “이번 투쟁은 산업을 마비시키는 파업이 아니라 우리의 요구를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빌팽을 물러서게 한 것은 바로 산업과 사회기반시설을 마비시키는 파업이었다.

순환 파업마저 ‘순환 홍보’로 전락시킨 민주노총 지도부는 지난 몇 년 간 ‘사회적 교섭’에 연연하거나 국회 일정에 종속된 하루 파업을 되풀이하면서 투쟁 동력을 갉아먹어 왔다.

더는 지배자들에게 끌려다니며 현장조합원들의 진을 빼서는 안 된다. 국회 일정에 따라 파업을 결정했다 철회하는 일도 삼가야 한다. 개악안을 완전히 폐기시켜 끝없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프랑스처럼 개악안을 폐기하지 않으면 무기한 파업을 하겠다고 선언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운동 활동가들은 그러한 파업 건설에 온 힘을 모아야 한다.     

안타깝게도, 민주노총 지도부는 아직도 이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총 김태일 사무총장은 “비정규직법안이 4월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하면 … 노사관계로드맵 논의를 위한 대화 구조에 들어가야 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또 다른 악순환에 말려들겠다는 것이다. 교섭 테이블에서 투쟁의 발목이 잡힌 채 정부안의 부분 수정을 추구하다 뒤통수를 맞고, 결국 뒤늦게 국회 일정에 맞춰 파업을 결정했다 철회하기를 반복하는 악순환 말이다.

노무현 정부는 민주노총 지도부를 교섭 테이블로 끌어들여 실컷 이용해 먹은 다음 뒤통수를 칠 게 뻔하다. 사회적 교섭을 지지하는 민주노총 이수봉 대변인마저 “[노무현 정부에게] 민주노총이 씹다버린 껌 취급을 받았다”고 말하지 않는가. 

최근 타결된 일부 ‘장기 투쟁 사업장’들의 성과도 “정부의 노력” 덕분이 아니다. 1년 넘게 처절하고 끈질기게 노동자들이 투쟁한 성과인 것이다.

더구나 여전히 세종병원, 코오롱, 오리온전기, 하이닉스매그나칩, 현대하이스코 등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철도공사는 끝내 KTX 여성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GM대우 사측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공 농성장을 철조망과 콘테이너로 용접해서 ‘포로수용소‘로 만들어 버렸다. 심지어 고공 농성자들이 단식에 들어가자 물과 소금도 주지 못하게 막고 있다.

노동부 장관 이상수는 “이제는 소수가 반대하더라도 다수의 힘에 의해서 [비정규직 개악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정말이지 소수 지배자들에게 다수 노동자들의 힘을 보여 줘야 한다.

프랑스에서는 “파업으로 학교가 문을 닫고 기차, 지하철, 비행기, 버스가 운행을 멈추었다. 우체국과 병원도 파업에 가세”했고 결국 “프랑스 정부는 더는 버틸 수 없었다”(<중앙일보>). <동아일보>는 “프랑스의 사례는 ‘강 건너 불’이 아니다”라고 걱정했다.

프랑스 지배자들처럼 비정규직을 확대하려는 노무현 정부에 맞서 프랑스 노동자와 학생들처럼 대중 파업과 시위를 건설하자. 그래서 노무현을 빌팽처럼 물러서게 만들고 프랑스처럼 우리도 승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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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강연 - 종교란 무엇인가?

다함께 77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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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란 무엇인가

 

 

이 글은 지난 3월 18일 연세대에서 열린 '종교·진보운동·사회주의' 강연회의 발제를 녹취해 정리한 것이다.


 

박노자 종교 강연회


 

"짓밟힌 자의 신음소리"


 

하필이면 왜 이 주제를 선택했는지에 대해서 먼저 일종의 변명 같은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1∼2년 전에 민중 신학과 가까운 한 기독교 계통의 잡지로부터 현대 한국 기독교를 비판하는 글을 청탁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걸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하다가 결국엔 '죄송합니다. 못쓰겠습니다' 그렇게 넘어갔습니다. 제 학술 분야가 원래 기독교보다 고대사였기 때문에 불교 공부를 좀더 많이 한 부분도 있었고, 또 신자가 아닌 신분으로 비판하기에는 뭔가가 쉽게 내키지 않은 부분이 있었던 것도 같지만, 사실 그때 제가 거절의 말씀을 드렸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하면   이건 굳이 기독교뿐만 아니라 결국 불교에도 그대로 해당됩니다만   '기업 활동에 대해서 이념적인 비판을 할 수 있는가'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기업 활동이라고 말씀드린 것은, 얼핏 보면 신을 모독하는 발언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실은 신에 대한 발언이 아니라 현존하는 종교 조직에 대한 발언입니다. 그리고 사실은 외국의 사회인류학이라든가 사회학 같은 부문에서는, 특히 종교사회학에서는 요즘  '종교 시장'이라는 용어를 거의 별 거부감 없이 쓰다 보니까 저도 약간의 영향을 받은 것 같은데, 어쨌든 한국의 경우 사찰이든 교회든 예외적인 소수를 제외하면, 일종의 기업 활동으로 보이는 신앙 활동의 형태가 많이 보이기 때문에 이것을 어떤 이념적 입장에서 비판하기가 왠지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여기서 기업 활동이란 우리가 경험적으로 잘 아는 소위 기복 장사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꼭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사찰이나 교회를 찾을 때는 마음 속에 일종의 거래를 하는 듯한 마음으로 찾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는 말씀이지요. 예컨대 "내가 열심히 신앙생활 하고 기도하면 내 아들이 서울대에 입학하겠지" 하고 생각할 때 여기서 신의 축복이란 게 아주 현실적이면서도 물질적으로 나타나는 부분입니다. "신앙 생활 잘 하고 기도를 잘 하면, 대학교 입학뿐 아니라 예컨대 직장에서도 인간 관계가 원만해져서 안 짤리겠죠. 그러니까, 난 교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 하면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 결국에는 여유있는 생활하고 잘 살 수 있겠지" 하는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신앙 생활을 한다는 것은 일종의 "신통력이 있다, 신이나 어떤 초자연적인 힘과 거래할 수 있다"는 조직에 가입해서, 헌금이라는 이름이든 성금이란 이름이든 불전이란 이름이든, 어떤 명목으로 거기에다 일종의 물질적 대가를 바치고 그 대신에 상당히 현실적인 성격의 축복을 돌려 받는, 성격의 신앙 생활이 우리한테는 아주 익숙해진 것이고, 넓은 의미에서 그것은 기복 신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기복 신앙은 꼭 구체적으로 '자녀 입학하게 해 달라', 아니면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극락왕생하게 해 달라' 하는 것뿐만 아니고 넓은 의미에서 현실 생활이 원만하고, '현실적인 잣대'로 봤을 때 행복한 생활을 초자연적 힘에 의해서 돌려받으려는 것이 기복 신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찰이든 교회든 수많은 종교단체에서 이와 같은 넓은 의미의 기복을 제공함으로써 상당한 대가를 받고, 또 그 대가로 사찰의 경우엔 동양에서 가장 크다는 대형 불상을 짓고, 교회 같으면 단일 교회로선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를 짓고, 말하자면 기복 장사를 잘 한다는 것을 건물이나 여러 가지 종교적 상징물로 나타내기도 하는데, 결국 그런 거래나 장사에 대해서 이념적 입장에서 뭐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좀더 깊이 생각해 보면 이런 기복 장사, 종교를 신통력이 있는 개인이나 단체와 거래하는 곳으로 이해한다는 것, 또는 종교의 대상으로 신이나 초자연적 힘, 또는 그 힘을 빌려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들을 생각한다는 것은 어제그제 생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더 비판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습니다.

혹시 고등학교 때 역사 교과서에서 배웠는지 모르겠지만, 신라의 이차돈이 누군지 기억하십니까? 신라 법흥왕 때의 순교자 이차돈을 잘 기억하시겠지만, 왕이 대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불교를 도입했는데, 그 과정에서 법흥왕이 이차돈을 희생시킨 거죠. 대신들하고 화해하기 위해서 이차돈을 죽였는데, 결국 대신들의 반대가 무로 돌아가고 불교가 받아들여졌다는 게 우리가 알고 있는 공식적인 이야기인데, 혹시 여러분은 이차돈이 순교했을 때의 이야기를 기억하십니까?

삼국유사를 그대로 믿는다면 그것이 신라에서 불교가 공인된 동기가 됐는데, 이차돈이 참수당하기 직전에 '만약 부처님에게 신통력이 있다면, 부처님에게 기적을 일으킬 권세가 있다면, 내가 죽고 나서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이렇게 예언하고 참수당한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피 대신에 하얀 물, 그러니까 우유와 같은 색깔의 하얀 물이 갑자기 목에서 솟아 나와, 그 자리에 있는 모든 대신들이 부처가 대단한 신통력을 가진 무서운 신인 줄 알고 거기에 감복하고 불교를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다분히 설화적인 이야기이고, 불교를 믿는 수행자의 목을 칠 때 하얀색의 액체가 나온다는 이야기는 붓다의 본생담(本生譚), '자타카'에서 많이 읽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불교의 설화로서는 유래가 깊은 설화입니다. 그러니까 특별히 신라에서 생긴 설화도 전혀 아닙니다. 어쨌든 여기에서 중요한 부분은, 신라 사람들한테 초기의 붓다, 초기의 부처가 바로 기적을 일으킬 만한 힘을 가진 그런 신통한 존재였고, 불교를 믿는 사람들, 승려나 순교자 이차돈 같은 사람들이 기적을 일으킬 만한 신통력의 소유자로 보인 것입니다.

우리는 백제가 불교를 일본에 전달했다는 것을 상당한 민족적 긍지로 삼는데, 만약  일본서기 , 일본의 공식 역사를 그대로 믿는다면, 백제 성왕이 일본에 불교를 전수했을 때, '부처를 믿으면 나라 안이 태평할 것이고 붓다가 나라를 지켜줄 수 있다'는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백제에서 불교를 받아들인 일본 지배자의 입장에서는 붓다라는 신이 힘이 세고 무서운 신통력을 갖고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그런 초자연적 존재였던 것이죠. 그런 면에서 종교에다 초자연적 힘을 부여하고, 종교 전문가들, 성직자들을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무섭고도 신비한 도사로 생각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만이 아니고 우리 역사 속에 상당히 깊이 내재돼 있기 때문에 이것을 건드리기가 상당히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물론 과거의 기복과 오늘날의 기복은 상당히 다릅니다. 기복은 복을 빈다는 이야기인데, 복을 누구를 위해서 비는가가 상당히 중요합니다. 예컨대, 자녀가 수능시험을 볼 때 어머님이 사찰에 가서 대입 기도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입 기도라는 게 결국 내 옆에서 기도를 하는 다른 아줌마의 아들보다 내 아들을 먼저 입학시켜 달라는 이야기가 들어 있는데(청중 웃음), 기도는 같이 하지만 결국 그 속에는 상당한 경쟁 관념이 내재해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현대의 기복은 완전히 장삿속이 되기도 하지만, 아주 원자화된 개인, 말하자면 옆의 아줌마 아들이 아니라 내 아들만을 입학시켜 달라는, 개인·개체 위주의 장사인데, 전통적인 기복이 이것보다는 약간 차원이 높았습니다.

예를 들어 신라 시대 때 미륵상이나 아미타상을 만들고 거기에다 어떤 명을 새겼는가 하면, 나의 부모를 비롯한 칠세(七世) 친척들을 극락왕생하게 하소서, 그리고 우리 국토가 태평하고 모든 중생들이 깨달음을 얻게끔 하소서 하는 명을 새겼습니다. 결국 나뿐만 아니고 국가 전체가 그리고 모든 중생들이 뭔가를 받도록 비는 그런 마음이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차이가 있습니다만, 그래도 근본적으로 기복 신앙이라는 것이 아주 오랜 역사를 갖고 있고, 이미 문화 속에 얽히고설킨 부분이 있기 때문에 제가 그 때는 그것에 대해서 뭐라고 얘기하기가 왠지 참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그 때 제게 어떤 생각이 들었냐하면, 기복 장사 자체를 문제 삼기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기복 장사에는 사찰이나 교회라는 공급자가 있는가 하면, 그 장사를 제발 해 달라고 하는 수요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와 사찰들이 갑자기 없어지고 수요만 그대로 남는다면, 예를 들어 무당이나 점쟁이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수요자로 하여금 이런 기복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 상황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바뀌지 않는다면 공급자나 수요자만을 인격적으로 탓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기복 장사 자체를 문제삼을 순 없다 하더라도 소위 '상도덕'은 문제삼을 수 있는 부분입니다. '상도덕' 아시죠? 장사할 때 그래도 어기면 안 되는 일종의 '상도'가 있는데, 기복 장사하는 과정에선 이것이 너무도 많이 어겨지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서 일반 재벌들끼리 장사를 해도, 만약 LG 휴대폰 쪽에서 '삼성 휴대폰이 곧 고장날 것이니 삼성 휴대폰을 사는 사람은 그것을 행복하게 쓸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악성 흑색 광고를 낸다면 이것은 아마 당장 재판을 받아 상당한 돈을 물을 겁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나왔다는 사람이 '불신지옥'이라고 외친다면 이건 사실 LG 휴대폰만이 진리고 삼성 휴대폰이 거짓이라는 말과 전혀 다를 게 없습니다. 그러니까 결국에는 같은 시장을 놓고 경쟁하는 관계인데. 그걸 또 '불신지옥'이라고 외칠 때에는 꼭 '불신(佛信)지옥', 그러니까 '불교를 믿는다면 지옥이다' 라고 들리기 때문에... (청중 웃음)

이것은 상도덕의 문제입니다. 아무리 장사를 열심히 하겠다고 발벗고 나서도 장사를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청중 웃음)
이런 부분도 있습니다. 기업체에서는 고용자를 막 다루면 안 되지 않습니까? 삼성이 무노조 경영을 한다고 해서 삼성을 대단히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 삼성말고 무노조 경영하는 곳이 '종교 재벌'들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 혹시 대형 교회나 대형 사찰에서 노조를 본 적이 있으십니까? 없죠?(청중 웃음)

사실은, 삼성보다 대형 교회에서 주인이 아닌 '밑에 사람'으로 일하기가 훨씬 불안합니다. 대형 교회의 부목이나 전도사, 운전사 정도면   뭐 월급이 박한 건 그렇다 치고 언제 짤릴지 모르는 상황이죠. 주목의 마음에 안 들고 노선을 달리 하면 자르는 데 별 절차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노조를 만드는 시도를 2년 전부터 한 것 같은데, 아직 대다수 대형 교회들에 노조가 없습니다. 고용된 사람들이 많은데도 말입니다.

대형 교회도 그렇지만 최근 부산의 삼광사라는 대형 사찰에서 노조 탄압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비정규직 사찰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려다 사태가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매일노동뉴스>에서 알게 됐습니다. 결국 장사를 한다 하더라도 이렇게 장사를 해서는 무노조 삼성보다 더 못된 장사가 될 것 같아서 좀 문제가 있습니다.

또, 예를 들어, 아무리 장사를 많이 한다 하더라도 기업체가 정치에 부당하게 압박을 주면 안 된다는 부분이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서, 지금 한국 노무현 정부가 미국과 FTA 투자 협정을 맺고자 하는데 실제로는 이 협정이 체결되면 가장 혜택을 볼 기업체가 어느 기업체인지 뻔하거든요. 삼성입니다. 삼성에서는 아마도 FTA가 맺어지기를 대단히 바라고 있겠지만, 만약에 삼성이 이를 위해 정치권에 상당히 노골적인 로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게 된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할 것입니다.

그런데 대형 교회들이 성조기를 들고 나와서 미군을 찬양한다든가 'We Love America!'를 부른다면 이것도 결국엔 일종의 기업체의 정치적 압박의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대형 교회의 경우에는 미국과의 역사적 관계도 있고 이해관계도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많은데, 그렇다 하더라도 나라 전체의 정치를 한 집단 위주로 하려고 한다는 건 문제입니다.

또, [그들이] 성조기를 들고 나올 때 드는 생각은, 미국의 정치인들이나 주류 지식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비유 중 하나, 즉 미국을 '새로운 로마제국'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그러니까 "'새로운 로마제국'처럼 미국이 전 세계를 다스리면서 사람들한테 라틴어 대신 영어를 가르쳐 주고 공동 문화를 만들어 주고 문명의 공간을 확보해 준다." 이것은 미 제국의 주류 지식인들이 제국을 옹호하는 입장의 골자 중 하나인데, 그러면 미 제국의 성조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 결국에는 새로운 로마제국의 깃발을 들고 다니는 꼴이 되는데, 예수를 못 박아 죽인 것은 바로 로마제국이 아닙니까? (청중 웃음) 그러니까, 그런 역사적 관계까지 생각하면 이것은 상당히 기이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실제로는 로마제국에 못 박혀 죽은 예수를 숭배하는 것인지, 아니면 일종의 무한의 힘의 상징인 성조기를 숭배하는 것인지 좀 분간하기 어려운 지경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업체에 대해서 한 가지 문제 삼는 부분이 '탈세'인데, 종교단체 같은 경우엔 탈세도 아니고 '무세'입니다. 세금을 아예 안 냅니다(청중 웃음). 만약, 주요 종교단체들의 수익이 웬만한 중소기업보다 많다는 사실까지 감안한다면, 예컨대 대형 교회에서 세금을 내서 그 세금 전액이 무상 의료나 무상 교육의 실천에 쓰인다든가, 아니면 단순히 이런저런 방법으로 자선에 쓰인다든가 이런 조건을 내세워 세금을 낸다면 이것은 교리에 반대되는 부분이 전혀 없을 텐데, 어쨌든 탈세도 아닌 '무세'라니 이건 참 '상도덕'상 문제가 있지 않나 그런 생각도 있습니다(청중웃음).

또, 제가 늘 한국 종교에 관해 문제 삼고자 하는 또 하나의 부분은 '상품 강매'입니다. 일반 회사가 그렇게 하면 당장 걸리겠지만, 예를 들어 종교 재단이 세운 학교에서 학생들한테 예배시키는 것은 결국 '상품 강매'와 다른 게 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인들이 신앙 시장에서 본인들의 상품을 열심히 마케팅하고 추진하는 것까진 좋은데, 본인들의 회사에서 운영하는 학교의 학생들한테까지 그 상품을 사게끔 강제한다면 이건 헌법상의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상도덕'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국이나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주류 종교를 얘기할 때, 이것은 단순히 기복 장사로만 얘기할 수 없는 성질의 훨씬 더 복합적인 현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를 들어, 외국의 한인 사회에 왜 하필이면 교회가 그렇게 많은가 물어보면 그것은 신앙이 강해서라기보다는 교회가 일종의 네트워크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다니지 않으면 미국의 한인 사회나 유럽의 한인 사회에서는 '왕따'를 당하게 돼 있습니다. 교회들이 일부러 왕따 시키지 않더라도 저절로 당하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바깥에서는 그것이 좀더 극명하게 나타날 뿐이지만, 한국 안에서도 보이게 또는 보이지 않게 교연, 즉 교회와 교맥을 통해서 맺어지는 것까지 포함하면, 한국에서 흔히 '관계 자본'이라고 말하는 3연, 즉 학연·혈연·지연말고도 '교연'을 분명히 더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교회나 사찰의 경우에는 또 한 가지 대단히 중요한 기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기존 사회나 기존 질서에 뭔가 신성한 듯한 외피를 덮어 주고 기존 질서를 합리화하는 데 신의 도움을 받는 그런 부분이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일반적인 한국 사람이 평생 살면서 진심으로 존경할 만한 공인(public figure)이 과연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아주 일찍 초·중·고등학교에서 국가주의적인 주입을 받아 국가를 대단한 숭배 대상으로 삼을 수 있지만, 국가를 존경하기가 좀 힘들어요.

국가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되는지 다들 체험적으로 알기 때문에 '추상적인 국가'를 숭배해도 '구체적인 국가'를 존경하기란 좀 힘듭니다. 존경하고 싶어도 곧잘 무슨 최연희 의원의 성파문이든 무슨 파문이든 (청중 웃음) 국가를 대표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꼭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추상적으로 운동 경기에서 우리 팀이 꼭 이겨야 한다든가 태극기로 상징되는 추상적인 대한민국이 숭배 대상이 돼도 구체적인 대통령, 국회의원, 고급관료들이 존경 대상이 되기는 아무래도 조금 힘들어요.

그런데 그런 것도 그렇지만, 예를 들어서 어떤 학교 의식이라든가 어떤 공적인 의식에 대통령을 모신다고 하면 아마 참석자들이 대단히 좋아할 것입니다. 근데 그것은 노무현 씨라는 한 개인이 좋아서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아직 대통령직에 추상적으로 권위를 부여하기 때문이죠. "대통령도 왔다!", 그러면 우리가 생각하는 위계 서열에서는 대단히 높은 사람이 온 것인데, 그렇다고 해서 아마도 노사모 빼고는 인격적으로 노무현 씨를 아주 진심으로 사모하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을 겁니다. (청중 웃음)
그러니까, '추상적인 권위 인정'과 '구체적인 인격적 존경,' 이 두 가지는 조금 다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우리가 제도적으로도 존경하게끔 돼 있지만, 좀 신비한 옷을 입고 신비한 말씀을 하고 뭔가 신성한 듯한 아우라(청중 웃음), [즉] 후광을 갖고 나타날 추기경님이나 큰스님이다 하면 대다수 사람들이 제도적인 인정뿐만 아니라 인격적인 존경까지도 하게 돼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런 공인된 종교 지도자들이 이 체제가 나쁘다든가, 이 체제를 우리가 빨리 바꿔야 한다든가, 이 체제의 문제점이 무엇이라는 말씀을 잘 안 하시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청중 웃음), 사실 맞다고 할 수도 없고 틀리다고 할 수도 없는 말씀을 하도 잘하시기 때문에, 이 분들의 존재 자체는 체제를 상당 부분 합리화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높으신 스님이 <조선일보>나 <동아일보>나 <중앙일보>에 인터뷰하시고 법문다운 좋은 말씀을 하시는데, 그 말씀에는 별 문제가 없어도   어차피 그 말씀 상당 부분이 당나라 후기나 송나라 때 선사들의 책에서 다 베낀, 이미 역사적으로 검증된 말씀이라 별 문제는 없는데   주류 언론에다가 인터뷰한다는 것 자체는 대한민국 제도권의 권위를 높여주는 부분이 있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종교는 이 체제가 인간이 살 만하고 이 체제가 인간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체제라는 환상을 피지배자들한테 상당히 효과적으로 덮어씌우는 면이 있는 건데 이것은 굳이 한국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작년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돌아가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사실, 요한 바오로 2세라는 사람이 여러 가지 주장을 했는데, 그 중 하나가 피임을 종교적 죄악으로 본 겁니다. 그것이 종교적으로 맞다 틀리다 하는 건 제가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서 뭐라 할 수는 없는데, 어쨌든 아프리카, 특히 남부 아프리카의 경우에는 에이즈가 지금 대단히 치성(熾盛)을 부리고 있어서 예컨대 잠비아나 나미비아의 경우에는 에이즈에 전염된 사람이 이미 15퍼센트에서 20퍼센트까지입니다. 이미 나라가 멸종으로 치닫고 있는 거죠.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보호 없는 섹스를 한다는 것은 목숨을 대단히 위협할 만한 부분이 있는 것이죠. 왜냐하면 성교시에 피임하지 않을 경우 곧잘 에이즈가 전염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교황의 말씀을 듣고 피임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에이즈에 걸려 죽은 사람이 과연 몇 만 명이 되는지 대단히 궁금할 따름입니다.

낙태 수술에 대한 교황의 입장도 아주 단호하셨는데, 현실적으로 가난한 나라에서는 어차피 키울 수 없는 아이를 낳았다가는 결국 사회적 살인처럼 되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낙태를 절대적으로 반대하는 종교 입장을 따라서 많은 여인들이 결국 낙태하지 않고 아이를 낳았는데, 결국 그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고통으로 빠뜨렸는지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그런데 요한 바오로 2세가 죽었을 적에 한국 언론들도 그렇지만 외국 언론에서도 그것을 언급하는 언론이 몇 군데밖에 안 됐고, 대다수는 요한 바오로를 거의 새로운 성인으로 모시고 그랬습니다. 요한 바오로에 대한 비판적인 언급을 여러 언론 중에서도 한두 군데밖에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종교 지도자의 권위는 세계 지배계급에게 그만큼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것은 굳이 한국만의 사정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러한 신성하다 싶은 지도자로 상징되는 종교가 원자화·개체화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결국 '여러분이 불행하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신앙생활이나 인격의 문제가 되는 것이고, 여러분의 불행은 여러분이 종교적인 생활을 하고 인격을 수양해서 언제든지 행복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결국 행복하지 않은 사회에서, 그리고 구조적으로 행복할 수 없는 사회에서 개인이 신과 종교라는 매개체를 통해 거래하면 일단 개인적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죠.

그런데, 이 메시지는 이 종교를 창시한 사람들, 예수님이나 부처님하고는 별 관계가 없고 바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와 직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소비자이자 노동자들한테 모든 사회적 문제를 인격이나 수양 문제로 돌리기를 원하는 게 아마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핵심이 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교회는 기복 장사하는 기업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 기업체의 정체는 체제 전체를 합리화하고 공고화하고 아주 당연할 뿐만 아니라 거의 신성하다 싶은 것으로 만드는 기능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맑스가 종교에 대해서 한 말을 혹시 기억하십니까? "민중의 아편"이라는 말이 제일 유명해졌는데, 그 문장에서는 그 이야기뿐만 아니라 다른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짓밟힌 존재의 신음소리'라는 얘기죠. 그러니까 종교는 맑스가 보기에는 '짓밟힌 존재의 신음소리이자 민중을 위한 아편'이라고 이야기한 건데, 그런 면에서 맑스는 신음할 수밖에 없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종교를 찾게 돼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입니다. 맑스는 종교가 단순히 위에서 강요하는 '아편'이라기보다는 이 상황을, 행복할 수 없는 상황을 사람들이 바꾸지 않는 한은  결국 민중이 저절로 찾게 돼 있는 불가피한 것, 또는 일부분이나마 민중의 현실적 상황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특히 전근대 사회에서는 수많은 종교 이단들이 바로 민중의 반항 의지, 저항 의지를 대변했고, 말 그대로 민중의 신음소리를 담았다는 것이 맑스의 종교론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지금의 한국 현실을 중심으로 본다면 종교는 과연 '짓밟힌 존재의 신음 소리'에 더 가깝습니까, 아니면 '민중을 위한 아편'에 더 가깝습니까? 둘 다 종교의 기능을 묘사하는 얘기인데 저는 잘 모르겠지만 얼핏 보기에는 '짓밟힌 존재의 신음 소리'보다 그 신음 소리를 진통시켜 주고 침묵을 강요하고, 그래서 결국에는 상처가 아프지 않게 진통시키는 일종의 마취제에 더 가까운 것 같은 느낌입니다.

물론 아주 아플 때 마취제를 먹게 돼 있지만, 마취제·진통제를 먹는다고 해서 상처가 아물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당분간 아프지는 않겠지만 상처는 그래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무엇이냐면, 지금의 종교가 기존 체제를 옹립하고 합리화하고 체제로 인한 개인의 불행을 개인적인, 상당히 자기 기만적인 행복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종교들의 원래 모습이 과연 맞는가 하는 점입니다. 종교가 정말 민중을 위한 아편 정도라면 하필이면 기독교나 불교, 이슬람이 왜 그렇게 오래도록 존재해 왔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바보가 아니거든요. 기만이라면 상당히 빨리 깨우칠 수 있는 부분인데, 또 실제로는 신음하는 소리, 짓밟힌 사람이 신음하는 소리를 담지 않은 종교는 지금 봤을 때는 그렇게 오래 안 가요.

예컨대, 최근에 만들어진 소위 신흥종교들 중에는 상당히 빨리 쇠퇴하는 종교들이 꽤 있는데, 통일교만 해도 1960∼70년대에 특히, 미국이나 일본에서 교세 확장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실제로 교세가 상당히 쇠미해졌습니다. 기존의 신자도 많이 탈락하고 새로운 신자 확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됐는데,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습니다만, 그 중 하나는 실제 통일교 교리에서는 이 "짓밟힌 사람의 신음소리"를 거의 들어볼 수 없다는 부분이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문선명한테 카리스마가 있지만 문선명이 미국의 지도층·지배층하고 너무 가깝기 때문에 아무래도 "짓밟힌 사람의 신음소리" 듣기에는 조금 어려운 종교입니다.

그러니까, 신흥종교를 봐도 알 수 있지만 대개 아픈 사람의 신음 소리를 담아 주지 않는 종교는 장수하지는 못합니다. 기독교나 불교, 이슬람이 이 때까지 장수해 온 비밀이 있다면, 그것이 만들어졌을 때 그 종교를 만든 사람들이 분명히 민중 편에 섰던 것이고, 민중의 그 신음 소리를 많이 담고 민중이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 쪽으로 나아가자고 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오랫동안 예수나 붓다, 무하마드의 카리스마를 이용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용하려면 일단 카리스마가 있어야 하는데 결국 붓다나 예수님, 무하마드에게 그 카리스마를 만들어 준 것이 아마도 종교 속에 담겨 있는, 그러니까 초기 불교나 초기 기독교, 초기 이슬람에 담겨 있는 상당히 강력한 평등 정신이나 저항 정신이 아닌가 싶습니다.

불교에 대해서 저항 정신이란 말이 아마 지금의 불교를 보면 어울리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제도 불교는 저항과 전혀 어울리는 모습은 아닌데, 실제로 붓다라는 사람   원래 상류계급에 속했다가 진리를 찾겠다고 혼자 뛰쳐나와 6년 동안 고생해 결국 뭔가를 깨달았다는 그 붓다   은 그 깨달은 것이 공(空)과 연기(緣起)라는 진리였는데, 이 진리대로라면 당시 인도 계급 제도인 카스트 제도나 남녀차별이 사실 존재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실 부처님이 실제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불경을 통해서는 읽어내기가 대단히 힘듭니다. 대다수 불경들이 붓다가 죽은 뒤 4∼5백 년 뒤에 만들어진 글들입니다. 거기에 붓다가 그렇게 말했다고 돼 있지만, 그건 사실과 전혀 관계 없습니다. 실제 붓다의 육성에 가장 가까운 초기 경전들 중에서도 붓다의 말씀을 거의 그대로 담았다고 믿어지는 것은 아마  숫타니파타 라든가 그 정도 경전 몇 개이고요, '니카야',  아함경(阿含經) 이라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초기 경전도 붓다가 죽은 지 훨씬 뒤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붓다가 실제로 무슨 얘기를 했는지 아마  숫타니파타 를 보면 대충 알 수가 있겠지만   윤색된 부분도 있고 가미된 부분도 있습니다만   붓다는 처음에 깨닫고 나서는 무엇보다 인간의 평등을 많이 얘기했습니다.

진정한 바라문이 무엇이냐? 바라문은 인도의 성직자 계급입니다. 당시에는 계급 질서 맨 위에 있었다는 성직자 계급인데, 이 바라문에게 붓다가 얘기한 것은 사람 귀하다는 것이 결국에는 남에게 자비를 베풀고 탐욕을 내지 않는 것이고, 사람들 사이에 절대 차별을 두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동물들 사이에서는 '내 종이다, 내 종이 아니다. 동류다, 이류다' 이렇게 서로 차별할 수 있지만, 사람들은 모두 다 똑같다 이런 얘기를 한 것입니다.

붓다가 깨달은 이치는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공허하다. 그리고 우리의 존재는 여러 가지 요인들로 만들어지는 이유와 결과의 순환이다" 이런 것이었는데, 거기에서는 영구한 계급 차별이라는 부분이 개입될 수 없는 그런 가르침을 만든 것입니다.

붓다는 만인 평등을 외치기도 하고, 동물 죽여서 제사 지내는 것을 반대하기도 하고, 남자와 여자가 원칙적으로 평등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죠. 또, 붓다의 생활 방식은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탁발 아니었습니까? 탁발이라 하면 동냥을 구하는 것인데, 실제 붓다가 탁발하면서 뭘 했었냐면 요즘 말로 아마 심리정신과의 상담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민중이 밥을 줄 때는 뭘 물어보지 않습니까? 붓다가 그 대답을 하고 여러 사람들에게 생활 문제 풀어 주고 어떻게 바르게 살아야 하는지 얘기해 주고, 말하자면 상담을 해 주고 식량을 받는 그런 거래를 하는 것인데, 그것은 민중과 아주 가까운 생활 방식이기도 했습니다.
붓다는 기적을 절대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신통력이나 기적이라는 부분은 붓다에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아들을 부활시켜 달라고 애원하는 한 여자한테 붓다는 '그래요? 한 번 부활시켜 보겠습니다. 그런데 당신 마을에서 친척 중에 죽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 그런 사람을 한 번 찾아 주면 제가 당신 아들도 부활시켜 보겠습니다' 하고 말한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무슨 얘기냐면, 붓다의 원래 가르침은 신통력, 초자연적 힘, 신이라는 것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던 겁니다. 붓다는 대단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던 거죠. 민중한테 붓다는 존경받는 스승이었습니다.

그런데 붓다에게 한 가지 좀 아쉬운 점은, 붓다는 일종의 초기 공산주의적인 공동체인 승가를 만들기 위해 국가 권력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해 자기 제자, 수행자들과 함께 숲 속에서 살기로 한 것인데요. 그것은 어찌 보면 민중과도 가까운 거리에서 사는 효과가 있기도 했고, 또 어찌 보면 그런 저항의 태도, 아주 소극적인 저항의 태도에는 문제점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가난한 사람들한테는 처자를 버리고 수행자가 된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붓다는 자기 부인 야쇼타라와 아들 라후라를 내버려두어도 그들을 먹여 살릴 만한 사람이 충분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처자를 버리고 수행자가 된다는 게 훨씬 더 부담이 큽니다. 그래서 붓다의 제자들 중에는 대개 수행 생활을 해도 되는 상당한 재력과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였고, 결국 그 사람들이 붓다가 죽자마자 붓다의 가르침을 자기 편한 대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붓다의 제자 중에는 노예 출신들도 있었는데, 붓다가 죽고 나서는 노비는 스님이 될 수 없다는 계율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니까 노비나 왕의 고용자한테는 스님이 되는 기회를 막아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붓다가 했는지 아니면 그 제자가 했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아마도 초기 불교의 주류 승단에서 한 것 같은데  , 처음부터 여성이 승려가 되는 데 대단히 까다로운 조건들이 있었습니다. 소위 '팔경법'[尼八敬戒]이라는 건데, 여덟 가지로 여승이 남자 승려를 공경해야 한다, 아무리 나이 어린 남자스님이라 하더라도 나이 많은 여자 스님이 먼저 꼭 절해야 한다든가 하는 법들이 만들어졌는데, 그것이 붓다에게 가탁(假託)돼 있지만 실제로는 그 제자들이 만든 것 아닌가 싶습니다.

어쨌든 불교는 상당 부분 아주 초기부터 왜곡되기 시작했고 체제에 편입되기 시작했는데, 인도를 통일했다는 아쇼카왕 때는 불교가 왕의 국교가 돼서 거의 원래 정신을 이미 잃어버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중국이나 한국으로 유입된 불교는 이미 절대평등주의적이고 남녀평등주의적인 붓다의 가르침과는 거의 관계 없다 싶은, 이미 체제에 완전히 편입된 종교였습니다.

그런데 붓다라는 스승의 카리스마가 있었기에 후기의 승단, 후기의 승려들이 그것을 계속 이용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싶고, 바로 그런 붓다의 카리스마는 불교가 그래도 죽지 않고 계속 민중들한테 인기가 있는 비결이 아닌가 싶습니다.

불교에 대한 묘사는 기독교에 대한 묘사와 놀랍게도 비슷합니다. 아마도 복음서를 읽으신 분은 다 아시겠지만, 특히 누가복음에는 계급투쟁적이라 할까요. 상류 계급에 대한 상당한 혐오감이 담겨 있습니다. '배부른 사람들이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니고 배고픈 사람들이 배부르게 되리라' 하고 돼 있고, '부자가 하늘나라 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도 어렵다'는 말은 체제에 편입된 사람이라면 도저히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도 그렇지만 그런 체제 반대적인 발언들이 가장 많은 책이 요한계시록입니다. 요한계시록 같은 경우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곧 올 것으로 기술을 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올 때 로마제국이 망할 것이고, 로마제국에 협력했던 부자들이 결국 벌을 받을 것으로 서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재미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복음서들이 최종 편집되는 것은 180년대라고들 추정하고 있습니다. 180년대에 이미 기독교는 거의 체제에 편입된 종교였습니다. 그럼에도 이미 체제에 협력하고 있던 교단 지도자들이 '부자들이 복을 받을 수 없고 하나님 나라 갈 수 없다'는 예수의 진짜 말씀을 남겨 놓은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프롤레타리아로서의 예수의 카리스마가 그 사람들한테 필요했던 것입니다. 예수가 만약에 부자들이 하늘나라로 갈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과연 기독교가 이렇게 빠른 속도로 확산될 수 있었겠습니까?

이미 2세기의 기독교는 상당히 보수화됐는데, 그래도 예수의 원래 정신은 상징적으로라도 복음서에 담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던 것이고, 그런 예수의 정신이 있었기에 기독교는 지금까지도 수많은 짓밟힌 사람들한테 영감을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서의 편집 과정이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게 4복음서   마태·마가·누가·요한 복음   에는 재미있게도 노예의 존재나 노예제에 대해 아무 언급이 없는 겁니다. 예수가 살았다고 믿어지는 1세기 초반에는 노예제가 경제의 주춧돌이었습니다. 노예들이 대단히 많았고, 예수가 부자 보고 하늘나라 못 간다고 했다면 분명히 노예 문제에 대해 발언을 안 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복음서에는 아무 말이 없습니다.

노예에 대한 얘기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하면, 사도 바울 그러니까 기독교 보수화의 주역이라 할 수 있는 사도 바울이 나중에 '종들이여, 주인들에게 복종하라' 하고 말한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이 그대로 신약에 담겨져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결국 그 편집 과정에서는 말하자면 대중한테 어필할 수 있는 미끼 밥을 남겨 두기는 했는데, 상당 부분은 바울 사도와 그 제자들의 보수적인 이데올로기로 메워진 것 아닌가 싶은 것입니다.

기독교도 그렇지만 또 아주 재미있는 예가 이슬람입니다. 이슬람을 창시한 무하마드라는 사람은 메카라는 상업 도시에서 '거지가 왜 이렇게 많은가. 왜 부자들은 이렇게 잘 살고 못사는 사람은 왜 이렇게 못사는가' 이런 불만이 출발점이 돼서 새로운 종교를 만든 사람이었습니다. 무하마드와 그 공동체가 메디나에서 망명중이었을 때, 당시에 예배할 수 있는 장소가 무하마드의 집뿐이었는데, 그 집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함께 예배를 봤습니다.

그런데 무하마드가 죽고 나서 무하마드의 계승자 우마르가 거의 맨 먼저 개악을 한 것 중의 하나가 '남자와 여자는 예배를 따로 봐야 한다'는 법률을 정한 겁니다. 무하마드의 원래 육성을 담은 코란의 기록을 보면 여성의 권리를 상당 부분 주장했습니다. 이혼권이나 피임권리나 유산상속권이나, 여자와 남자는 원래 알라신에 의해서 평등한 존재로 만들어졌다는 등 여성 권리에 대한 주장들이 상당히 많은데, 나중의 이슬람 율법을 보면 이게 상당 부분 뒤집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슬람권의 페미니스트들을 보면, 상당 부분 서구의 페미니즘에서도 영감을 받지만, '무하마드의 진짜 정신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슬람을 페미니즘의 원천으로 생각하는 여성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슬람을 보든, 기독교를 보든, 불교를 보든 우리가 살고 있는 계급 사회에서 고등 종교의 스토리는 놀라울 만큼 비슷합니다. 제가 뭔가 사회를 개혁하고자 하는 입장에서 기존 종교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지는 게 좋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제 그것을 결론 삼아 끝내겠습니다.

결국 지금 성직자 집단이 대표하는 기존의 제도권 종교를 그대로 인정하기는 상당히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 가르침은 그 종교를 만들었다는 사람들의 생각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사실, 옛날에 한용운 스님이 <조선불교유신론>에서 "만약 붓다의 가르침이 맞다면 나도 붓다가 될 수 있는 존재인데 왜 사찰에 가서 불상 앞에 절해야 하는가. 나 자신에게 절해도 되는데" 하고 말했습니다. 또는 "명부전에 가서 부모님들이나 내 자신이 극락왕생하게 해 달라고 비는 것이 재판관한테 뇌물 주는 것하고 무엇이 다르냐. 결국에는 내가 죄가 없으면 왕생할 거고 죄가 있다면 아무리 빌어도 안 될 텐데, 뇌물 주듯이 비는 게 다 뭐냐" 하고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결국 만해 한용운의 정신을 살려서 우리가 기존 종교가 분명히 그 원래 정신과 다른 부분을 당연히 비판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대신 우리가 맑스주의자가 된다 하더라도 속류 맑시스트나 스탈린주의자들처럼 '종교, 그 정체는 무용지물이다. 마약이다' 하고 버리기보다는 그 종교를 만든 사람들의 진짜 의지가 무엇이었는지, 왜 그 사람들한테 그렇게 많은 민중이 모였는지, 왜 그 사람들이 지금도 민중한테 이렇게 귀중한 이름들인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지금 베네수엘라의 수많은 빈민들의 집에 딱 두 개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차베스 대통령이죠. 그러니까 양쪽을 상당히 가깝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하여튼 왜 하필이면 수많은 빈민들한테 예수는 지금도 이렇게 영감을 주는지, 우리가 진정한 맑시스트라면 스탈린주의 식으로 종교를 무조건 팽개치기보다는 종교를 비판함과 동시에 종교에 대한, 원래 종교의 모습에 대해 나름으로 애착을 가지는 것도 좋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자와의 대담


 

김하영 :
무릇 모든 종교에는 보수파와 진보파가 있습니다. 가령 불교의 경우, 일본제국주의와 박정희의 "호국불교"가 있었는가 하면, 암베드카르를 지지한 인도 불가촉 천민(달리트)의 불교가 있었고, 또 1980년대 한국의 "민중불교"가 있었습니다. 박노자 동지의 경우 민중불교와 흡사한 데가 적잖이 있는 듯합니다. 민중불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노자 :
한국에서 민중불교의 창시자는 바로 만해 한용운 스님입니다. 민중불교는 일본과 한국에서 1920∼30년대에 상당히 많은 인기를 얻었는데, 민중불교의 주장이 결국 이거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불교의 사찰들이 산송장, 말 그대로 살아 있는 시체에 불과한 것이고요, 붓다의 원래 정신이 초기에 수행자 공동체, 즉 승가의 무소유 공산주의적인 생활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원래 승가에서는 한 승려가 개인적으로 가질 수 있는 게 옷 한 벌과 밥 그릇 하나 정도였고요, 민중한테 상담을 해 주고 민중한테 여러 가지 살고 죽는 일에 대해서 생각을 심어 주고 식량을 받아 살았던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원래 불교에서 모든 고뇌의 근원으로 생각하는 게 '탐진치(貪瞋痴)'라는 건데, '탐진치'가 뭐냐 하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입니다. 그런데 한용운 스님도 그렇고, 일본의 민중불교도 그렇고, 성냄이나 어리석음보다 가장 무서운 게 탐욕이라고 생각했고, 탐욕을 그 기반으로 삼으면서 늘 재생산시키는 자본주의에 비판의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자본주의의 자본축적과 확대재생산이라는 것이 심리적으로 분석하자면 결국 탐욕과 공포 심리 없이 개인 차원에서 불가능한 것입니다. 많이 가지려고 탐욕을 내고 낙오자가 될까 봐서 늘 겁에 질리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시장의 세계는 만약 축적이 안 되고 확대재생산이 안 되면 죽게 돼 있는 세계인데, 공포와 탐욕의 이중주입니다.

그래서 민중불교는 거기에 주목을 해 "자본주의를 개혁하지 않는다면 중생들이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결국 불교가 생각하는 진정한 인간의 삶은 자본주의 하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낸 겁니다. 그래서 일본 민중불교 같은 경우 전후에 소수자로나마 남아 있고, 비판불교라는 이름으로 1970∼80년대에 중요한 문제제기를 했는데, 한국 같은 경우 잘 아시겠지만 1950∼70년대 중반까지는 거의 얘기를 꺼낼 수 없었습니다. 만해 한용운은 민족 지도자로 상당히 우상화됐는데, 그렇다고 해도 만해 한용운의 진짜 사상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김하영 :
불교가 초기 단계를 벗어날 때 보인 모습은 그리스도교의 수도원 운동과 닮은 데가 많은 듯합니다. 초기 불교의 승가 공동체는 말 그대로 공동체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사회적 기반은 도시의 상인과 금융업자, 장인 들이었습니다. 이들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았던 거죠.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기부금으로 부유해져, 노예를 부리게까지 됐습니다. 중세 스리스도교 수도원들이 농노를 부린 것처럼 말입니다. 비폭력 교리도 7세기 왕 하르샤 실라디티야의 경우처럼 아주 간단히 무시되곤 했습니다.

이런 모순은 다른 모든 종교에서도 볼 수 있는데요, 이런 종교적 모순 때문에 또한 각 종교는 부패와 쇄신 운동이 충돌하곤 합니다. 또, 다양한 사회 계급들이 같은 종교를 서로 다르게 해석하며 충돌하곤 합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봐야 합니까?


 

박노자 :
노예에 대해서 얘기를 하자면, 원래 불교에서는 스님이 구족계(具足戒)를 받게 돼 있습니다. 구족계를 받아야 자격을 갖춘 스님이 되는 것이고, 이 구족계는 남자 승려의 경우에는 2백50 가지 계율이나 됩니다. 그런데 구족계 내용을 보시면   불교 서점에 가셔서  사분율 이라는 책을 보시면 거기에 내용이 나오는데   그 계율 중에 "금전을 취급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부처님이 직접 제정한 계율이죠. 또, "노예를 소유하거나 부리면 절대 안 된다"는 계율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만약 우리가 계율을 진짜 계율답게 하자면, 노예 내지 농노를 부린다든가 [하는 것은] 불교 공동체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그런데 아쇼카왕 때 불교가 주류 종교가 된 뒤에는 인도에서도 불교 사찰에서 노예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고요. 중국이나 조선에서는 사찰이 노비를 부리는 데 별다른 제한이 없었습니다. 조선 초기에는 국가에서 사대부들이 더 이상 가만두면 안 된다고 사찰의 토지와 노비를 빼앗아서 그렇지, 빼앗기 전까지 사찰들은 주요 노비주 중 하나였습니다.

결국 불교가 중국에 들어서면서부터 초기 계율을 원천적으로 무시해 왔다고 봐야 하는데, 불교의 경우에도 이것에 대한 쇄신 운동이 몇 번 일어났습니다. 그 중에는 한국에는 많이 안 들어왔지만, 중국에는 삼계교(三階敎)라는 중세의 민중불교 교단이 있었습니다. 6세기, 7세기에 수나라와 초기의 당나라에서 많이 유행했는데, '다 불성(佛性: 부처로서의 성격)을 갖춘 일체 중생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곧 평등하게 사는 것이 종교의 진짜 교리다'는 취지에서 출발한 운동인데, 당나라 중기 때 탄압을 받아 무산됐습니다.

수많은 쇄신 운동이 있었다는 것은 맞습니다. 기독교만 해도 예를 들어, 16세기의 종교개혁은 주로 루터 교회라든가 칼뱅 교회에서도 출발했지만, 또 한편으로 수많은 소수자 교회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소수자 교회 중에는 예를 들어서 퀘이커라는 종파가 있습니다. 함석헌 선생님은 다들 아시죠? 박정희 때 곧은 말씀을 많이 하신 분이고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신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한국 종교인이 함석헌 선생이죠. 한국에서 함석헌 선생님이 한국 퀘이커 지도자이기도 했습니다.

퀘이커라는 종파가 영국에서 17세기에 만들어졌는데, 퀘이커 교도들이 프로테스탄트 중에서도 급진적인 프로테스탄트였고요. 국가권력을 부정했고요, 또 제일 중요한 것으로 노예제를 부정했습니다. 미국에서 퀘이커 교도들이 흑인 노예 해방운동에서 늘 선두에 섰습니다. 수많은 다른 소수 종파들이 미국에서 노예제와 전투를 벌였던 것입니다. 지금의 퀘이커는 그 모습이 전혀 아니지만, 18세기 이전에는 계급 타파 운동, 계급 전복적인 운동을 봐도 종교적이지 않은 운동이 거의 없습니다. 종교적이지 않은 속세적인 반계급 운동은 18세기 이후로만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우리가 종교를 좀더 변증법적으로, 말하자면 양면을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김하영 :
이라크 전쟁이 기독교와 이슬람교 사이의 충돌이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이런 시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또, 부시 일당은 미국의 보수우익 기독교인 집단입니다. 미국의 보수 우익 기독교는 어떤 성격입니까?


 

박노자 :
이런 얘기를 들으면 듣자마자 무엇이 생각났느냐 하면, 여러분이 생각하시기에 바티칸의 교황청이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취합니까? 절대 반대하는 거죠.

그것은 교황청이 꼭 착해서 그런 것이기보다는 만약 전쟁에 찬성한다고 하면 지금 카톨릭 신도의 다수를 차지하는 중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빈민들이 과연 가만히 두겠습니까? 아마 신자들 대다수가 탈락할 것입니다. 어쨌든 교황청은 공식적으로 이번 이라크 전쟁뿐 아니고 1991년 제2차 걸프전쟁도 교황청이 반대했습니다. 그러니까 기독교와 이슬람의 전쟁이라고 하는데 기독교는 전쟁하지 말라고 하지 않습니까?

기독교 중에서 다수파라 할 수 있는 가톨릭은 전쟁하면 안 된다고 하니 종교 전쟁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문제가 있는데, 아까 말씀하신 미국의 일부 기본주의[근본주의]적인 신학자들, 부시와 상당히 가까운 기본주의적인 교파들은 대충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냐면, 인류의 최후가 지금 다가오고 있는데, 그 인류의 최후는 바로 아마겟돈이라고 할 만한 악과 선의 마지막 전투에서 결정될 것이고, 선은 물론 미국이고, 악은 물론 이슬람 세계입니다. 그래서 최종 전투에서는 결국 핵폭탄도 사용될 수가 있는데, 그 최종 전투로 인류가 멸망할 것이고, 인류가 멸망함과 동시에 선택받은 자들만이 "휴거"(携擧: "들어올림", "이끌어 올림"의 뜻)되어 하늘나라로 올라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본인들만이 구원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상당히 끔찍한 이야기인데, 어쨌든 이 얘기가 미국에서 상당히 인기를 끌고 있는 배경 중 하나는 지금 미국의 중산층이   한국도 그렇지만   해체 중에 있다는 겁니다. 상당 부분의 중산층의 위치가 하락하고 있는데, 기본주의적인 신앙은 위치가 하락되는 중산층의 불만을 체제가 아닌 종교적인 관심으로 돌리는 데 상당히 사용되는 것입니다.

사실, 미국의 경우 전체 노동인구 중 제조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8퍼센트도 안 됩니다. 제조업은 그 비중이 지난 50년 동안 거의 3∼4배 정도 줄어든 것입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해고돼 지금은 아주 불안정한 서비스 직종을 찾아 헤매야 되는 것이고, 미국은 지금 의료보험이 안 돼 있는 사람들만 해도 4천만 명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현실적 불만을 종교적인 관심으로 돌릴 수 있는 것이 바로 아까 말씀하신 부시와 같은 종류의 기본주의적인 신학이죠.


 

김하영 :
최근 덴마크 일간지 <율란트 포스텐>이 예언자 무하마드를 모욕적으로 묘사한 만평을 실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서방 세계에서 이슬람 혐오가 인종차별의 가장 뚜렷하고 또 유력한 형태가 됐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습니다. 이슬람 혐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박노자 :
혹시 여러분들 중에 인터넷을 통해 무하마드 만평을 직접 보신 분들 계십니까? 어떻게 생각하세요? 혹시 독후감이라도 있습니까? 이따가 저도 제 독후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만평을 보면 무하마드는 모자 대신 커다란 폭탄을 뒤집어쓰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고 어떤 생각이 났느냐 하면, 코란에는 '만약에 이슬람교인 여러분들 중에서 기독교인이나 유대인한테 누군가 악을 끼치면 나(즉, 무하마드) 자신이 최후의 심판의 날에 당신의 죄악을 증거할 것이다' 하고 써 있습니다. 무하마드의 부인들 중에는 유대인과 기독교인이 한 명 있었고요. 무하마드는 유대인이나 기독교인에 대해 상당한 호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한테 배운 바도 있고 해서요.

그리고 실제로 유대인들에게는 중세 이슬람 국가야말로 제일 살기 좋았던 곳입니다. 그들은 중세 유럽에서는 엄청난 박해를 받았는데, 이슬람 세계에서는 박해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원래 이슬람이야말로 다른 종교, 특히 같은 계통의 기독교나 유대교에 대해 대단한 똘레랑스를 갖고 있는 종교입니다.

그리고 요즘과 같은 자살 공격이라든가 하는 것은 종교를 이용한다 하더라도 종교적인 것이라기보다 정치적인 것이고, 무엇보다도 무력감의 발로라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율란트 포스텐>이라는 신문이 무하마드   기독교인이나 유대인을 괴롭힌 사람을 내가 최후 심판 때 고발하겠다고 한 무하마드   를 마치 기독교도나 유대인을 죽이겠다고 폭탄을 들고 있는 사람처럼 묘사했습니다. 우리가 일본에 대해 '역사 왜곡'이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까? 무하다드 만평이야말로 종교 왜곡일 뿐이죠. 더 할 말이 있겠습니까?

그 만평 중에는 또 어떤 것이 있었던가 하면, 자살 테러로 숨진 사람들이 낙원에 들어서자 무하마드가 그들에게 '미안하지만 처녀들이 다 떨어져 나갔다. 더 이상 여러분들한테 붙일 처녀가 없다' 뭐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인데, 코란은 자살 공격은 물론이거니와 자살 자체를 아주 안 좋게 보고 있습니다. 자살 공격은 이슬람에서 주장된 적이 없습니다.

유럽인들이 요즘은 이슬람에 대한 혐오, 이슬람에 대한 공격의 근거로 삼는 것이 이슬람의 지하드인데, 이 지하드라는 말이 유럽에서는 가끔 '신성한 전쟁', '성전'이라고 번역되는데, 원래 지하드가 무슨 뜻이냐 하면 불교의 용맹정진(勇猛精進)과 똑같은 뜻입니다. 열심히 노력한다는 뜻이에요. 다만 알라신을 받드는 공동체를 외적이 괴롭힌다면 지하드는 방어전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용맹정진을 뜻하는 이 말이 유럽에서 갑자기 신성한 전쟁이라는 뜻으로 해석되기 시작하니, 이것은 왜곡 중에서도 아주 심한 왜곡에 속합니다. 유럽인들이 이슬람에 대해서 왜곡하고 일종의 위협으로 꾸미는 것은 말 그대로 상식을 넘는 이야기죠. 뭐 히틀러의 반유태주의 공포하고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김하영 :
그리스도교에 대해 질문하겠습니다. 개신교의 경우 1980년대에 민중신학에 근거한 민중교회 운동이 있었습니다. 이 운동이나 그 주의주장에 대해 얘기해 주시겠습니까?


 

박노자 :
안병무 선생이나 서남동 선생 등 몇 분의 저서를 읽었는데, 이분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기존 교회라는 매개체를 넘어서 예수라는 사건, 예수가 나타났다는 그 사건을 직접 체험하고, 우리와 그 사건과의 관련성을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예컨대, 예수는 역사 속의 예수도 있는데 역사 속의 예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그리스 말로는 '오흘로스'(ochlos), 즉 민중이죠. 그러니까 민중에게 둘러싸여 있고, 민중을 위해서 부자들은 축복받을 수 없다고 말한 예수라는 사건이 있는가 하면, 우리들 사이에도 예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민중신학의 주장이었습니다.

민중신학자들 중 몇 사람은 전태일 분신 사건 때 대단한 충격을 받았는데, 그들은 분신하고 있는 전태일을 보면서 예수를 생각한 것입니다. 결국 이 사람이 예수와 같은 길을 선택한 게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민중신학에서는 민중을 위해 이렇게 자기를 아끼지 않는, 그리고 민중편에 서서 모든 사람들을 평등하게 보고, 평등한 세계가 오게끔 노력하는 것이 예수를 재현하는 하나의 체험으로 생각했던 겁니다.

기독교 신앙을 비판적으로 수용해 원래 기독교 정신을 회복하자면, 아마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의 민중신학이 하나의 첩경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아쉽게도 한국에서 1970∼80년대 민중신학의 열기가 높았다가 결국 그것이 주류 교회에서 따돌림을 당해서 대중적인 운동으로 전화되지 못했습니다. 대단히 아쉬운 일이죠.

함석헌 선생님 같으면 민중신학자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죠. 실제로 함석헌의 기독교 이해는 주류 신학하고 너무 달랐습니다. 그런데 함석헌 선생이야말로 아마 20세기가 낳은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철학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비주류" 신학은 귀중한 문화적 체험이기도 했습니다.


 

김하영 :
천주교는 최근에 교황이 바뀌었습니다. 새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이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못지 않은 보수파, 전통파인데요. 최근 우리 나라에서 새로 추기경이 된 정진석 추기경도 사회 문제에 대해 매우 보수적인 분입니다. 김수환 추기경이 더는 1980년대의 진보 인사가 아니라는 점도 이제는 진부한 얘기가 됐죠. 반면에, 천주교 고위 성직자층의 이런 보수화에 저항하는 정의구현사제단의 목소리는 들릴까 말할 할 정도로 미약한 듯합니다. 왜 이런지 설명해 주십시오.


 

박노자 :
한국 천주교는 재미있는 부분인데요. 1970년대 천주교는 반독재 운동의 대명사처럼 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외국 학자들이 많이 지적한 부분입니다만, 사실 1970년대 한국의 천주교는 정치적으로 박정희 독재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신학적으로는 전혀 진보적이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민중신학이라는 것이 오로지 개신교 속에서, 그것도 기독교장로회를 중심으로 해서 일어난 것인데, 천주교 같은 경우 신학적으로 굉장히 보수적인 입장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치적으로 천주교가 군사독재에 반대했던 것은 군사독재가 그만큼 부르주아적인 사회질서를 위협한다는 의식이 있어서였기도 했습니다.

대개 부르주아 질서로는, 소위 제도적인 민주주의 이상으로는 안정적인 것이 없거든요. '박정희가 결국 나라를 파멸로 끌고간다, 박정희의 무제한 종신 집권 같은 성격의 군사독재는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잘못하면 사회적인 급진적 변동의 가능성까지 열어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말하자면, 1970년대부터 이분들은 박정희를 일종의 불안 요소로 간주해서, 정상적으로 부르주아 국가가 작동되기 위해서는 박정희가 물러나고 제도적인 민주주의가 회복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부르주아의 제도적 민주주의가 회복된 뒤에는 사실 더 이상 한국 천주교가 바랄만한 것이 뭐가 있습니까? 신학적으로 한국 천주교는 사실 중남미의 해방신학 같은 진보적 흐름들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리고 부르주아적 질서가 회복됐다면 이 질서를 옹호하는 데 그냥 사력을 다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그런 면에서는 김수환 추기경이라든가 하는 분의 보수화는 어찌 보면 합법칙적인 행동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밖에 될 수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청중 질문에 대한 박노자의 답변


 

1.
수행 단체가 과연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인데요. 문제는, 불교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중생 모두가 수행자가 될 수 없지 않겠습니까? 수행 단체는 다른 사람들을 이끌고 이 세계를 어떻게 바꿔 보자는, 일종의 전위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 자체가 자본주의라는, 모든 속인들을 포함하는 한 제도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게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만약 아까 언급하신 도법 스님처럼 탁발 수행하면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본인들의 수행의 의미를 알린다면, 그것이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이 되지는 못해도 자본주의에 대한 하나의 도전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2.
'만약 부처님이나 예수님이 지금 우리 앞에 나타났다면 과연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물음입니다. 저는 눈에 그림이 선합니다. 여러분이 복음서에서 읽으셨겠지만, 예수님이 예루살렘의 성전에 들어와서 거기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막 내쫓아버리지 않았습니까? 만약 지금 예수님이 한국 대형교회 안으로 들어갔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 테러리스트 명단에 오르실 겁니다. 그것은 거의 안 봐도 그림이 선합니다. 예수님 같으신 분이 만약 지금 다시 오신다면 대충 지금의 교회를 어떻게 보실 것인지, 또는 이 자본주의 질서에 대해서 뭐라고 말씀하실지, 그것은 보지 않아도 볼 수가 있는 겁니다.

붓다만 하더라도 사회적인 발언을 꽤 많이 했습니다. 붓다의 사회적인 발언을 종합해 보면, 폭력을 행사하는 국가, 악법을 남발해 백성을 가혹하게 다루고, 전쟁을 하고, 지배계급을 위해 재물을 사용하는 그런 국가는 악이라고 봤습니다. 국가의 긍정적인 기능으로 붓다가 딱 두 가지를 지적했는데, 하나는 재분배 기능입니다.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도 있고 부자도 있는데, 부자한테서 재물을 거두고 그것을 평등하게 나눠 주는 것이 국가의 긍정적인 기능이라고 본 것이고요. 또 하나는 갈등의 조절자라는 부분입니다. 꼭 폭력을 통해서는 아니지만 '여러 가지 사회적 갈등들 사이에서는 평화를 찾아 줘야 한다. 사람들이 아직까지는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그런 구조라 그 중간에서 국가라는 조절자가 필요하다'는 점도 본 거죠.

아마 붓다가 다시 태어난다 하더라도 국가, 아마도 세계적인 차원에서의 국가로부터 그런 것을 요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마도 일단 분쟁에 대한 비폭력적인 조절과 재물에 대한 세계적 분배를 요구하실 겁니다. 초기 경전에 나오는 붓다의 발언을 종합해 보면 그런 요구를 하실 것 같습니다.


 

3.
정의구현사제단이나 도법 스님에 대한 말씀이 나왔는데요. 아마 한국에서 지금 만나볼 수 있는 종교인 중에서는 가장 올바른 길로 가시는 분들이 아닌가 합니다. 일단은 본인들의 종교적인 수행도 하시고 도법 스님은 화엄학의 대가이기도 합니다. 불교 교리에 대해서 많은 논문도 쓰시는 분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본인의 불교적인 이상을 사람들과 나눌 줄 알고 사회에 긍정적으로 참여할 줄 아시는 분이시라서, 지금 종교인으로서 가야 할 길로 가시는 분이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불교 승려들의 정치에서 약간 아쉬운 점은 불교 교리   그런데 불교 교리는 대단히 난삽합니다. 공부하기가 아주 쉽지 않은 교리입니다   를 많이 배우신 분들이 예컨대 사회과학이라든가 자본주의에 대한 구체적인 문제 제기 방법을 많이 외면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것을 배울 만한 여유가 없을 수도 있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현 사회에 대해서 발언할 때 꼭 2천 년 전의 말씀으로 해도 되지만 조금 더 사회과학적으로 정리를 해서 할 수 있었다면 더욱 좋지 않을까 하는 그런 희망이 있습니다.


 

4.
'종교의 본질이 도대체 무엇이냐, 그리고 지금 같은 시절에 진정한 종교인이 있다면 어떤 행동을 취할 것 같으냐'는 질문입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매일노동뉴스> 같은 매체에서 여승무원들이 파업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파업 투쟁한 지 거의 2주가 다 돼 가는데 성과는 없고, 공사나 국가 쪽에서는 절대 양보할 생각도 없고, 결국에는 다 해고하겠다는 방침을 만들어 놓고, 또 가장 중요한 것은 여론 매체에서는 동정 여론이 많이 없다 보니 국가에서는 막 나가도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일단 여론 조작에서는 공사와 국가가 어느 정도 성공했다 싶은 겁니다.

만약 진정한 종교인이 그런 상황을 본다면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제가 보기에 아마도 조금 성격이 강인하신 종교인이라면 부산과 서울 사이의 철로에 누워서 '승무원 문제가 풀릴 때까지는 기차가 안 다니게 하겠다'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종교에서 민중한테 아주 강력하게 호소하는 부분 하나는 정의감 표출입니다. 종교는 정의가 구조적으로 현실화 될 수 없는 사회에서 만들어진 것이고요. 이 사회에서 절대적으로 구할 수 없는 그 정의를 종교에서 구하고자 하는 것이 종교의 기본적인 호소력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진정한 종교인이 나타난다면 종교의 정의라는 본질을 행동으로 보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여승무원 문제는 지금 질질 끈 지 거의 2∼3주가 다 돼 가는데, 종교인들이 아직 말 한 마디 안한 것 같습니다. 진정한 종교인들이 많이 없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5.
'초기 기독교 같은 경우 아무리 민중적이라 하더라도 현실화하는데 한계가 있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갈 수 없듯이 부자가 하늘나라로 못 간다는 것이 물론 계급 질서에 대한 비판이지만, 구체적인 행동 방법이 제시돼 있지 않은 것 아니냐' 하는 질문입니다.

2천년 전 사람들의 사회 인식 수준과 우리의 인식 수준이 당연히 조금 다를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 당시로서는 계급 질서를 인간의 힘으로 바꿀 수 없다는 체념적인 생각이 거의 모든 고대·중세 사회에 아주 만연해 있었습니다. 예컨대 붓다도 사회개혁에 매진하는 것보다는 수행자 공동체를 만들어서 그들끼리 국가를 벗어나서 공산주의적인 생활을 했던 것이죠. 그리고 마찬가지로 초기 기독교에서도 '최후의 날에 부자들이 심판을 받을 것이다'라고 요한계시록 같은 곳에 쓴다고 하더라도, 우리 손으로 부자들을 심판해서 부자들도 빈민들도 없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그 당시로서는 제시하기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사회는 소농들과 노예, 그리고 장인들의 사회인데, 생산력의 발달 수준이 미미하고 분산되다 보니까 서로 힘을 결합하는 데 한계가 너무 많았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종족·부족·도시국가로 나뉘어 있는 그 당시의 세상에서는 민중이라는 종합적인 개념 자체가 성립되기 힘들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 당시의 사회적 한계가 있어서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지 않았는데, 초기 기독교의 정신을 오늘날에 와서 살리자면 분명히 오늘날의 우리 수준에 맞는 그런 현실화 방안을 고민해야 되지 않나 싶습니다.

결국 정의를 구할 수 없는, 정의롭지 못한 사회질서를 타파하자면, 일단 그 질서 속에서 억압받는 사람들이 모두 동시에 행동하는 방법이 최선의 방법일 테고, 지금에는 생산력의 발달 수준과 교육의 발달 수준 등으로 봐서 이것은 꼭 폭력적인 행동이 아닐 수도 있을 겁니다. 실제로 생산력이 어느 수준에 도달한다면 그 다음에 자본주의를 폐기한다는 게 지배계급의 저항만 끈질기지 않다면 굳이 폭력을 수반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6.
제가 믿고 있는 종교에 대해서 물으셨는데요, 저한테는 사실 제일 고통스러운 질문입니다. 예컨대 불자라 하더라도 제가 사찰에 자주 가는 것도 아니고 조계종 신도증도 없고, 그러니까 가짜 신자라고 해야죠. 그리고 '신자'에서 '신' 할 때 '믿을 신(信)' 자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초기 불교에서는 믿음이라는 용어를 잘 쓰지 않았습니다. 실제 초기 불교에서 가장 많이 썼던 용어가 뭐였냐면 '냐나'(이해), '브라즈냐'(般若: 지혜) 같은 용어였습니다. 초기 불교에서 가르침은 무조건 믿으라는 그런 소리가 아니었고요. 이해해서 실천하라는 소리였죠. 만약 진짜 불교를 가지고 뭔가를 한다면, 믿을 신 자는 웬만큼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제가 불교를 종합적으로는 공부를 많이 해서 그쪽에서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7.
'우리가 그렇게 기복신앙에 열중하는데 왜 하필이면 삼신할머니라든가 하는 민속신앙이 기독교와 맞물릴 만한 힘을 가지지 못했느냐' 하는 질문인 것 같습니다. 한국 민속신앙의 하나의 큰 문제는 뭐였냐 하면, 조선 시대에는 성리학자로부터 천시를 많이 받았던 거구요, 근현대에 와서는 성리학자를 대신한 기독교인으로부터 그것보다 훨씬 더 심한 멸시라든가 악마시하는 그런 것을 많이 당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민속신앙인이 지배자들로부터는 천대를 많이 받아온 것입니다. 시장화하는 데에는 지배자들이 늘 낮은 것으로 취급해온 민속신앙보다는 유럽이나 미국에서 수입한 '고급 신앙'이 상품화하는 데서는 훨씬 쉬운 거죠. 이것은 한국의 사회·문화적인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고요.


 

8.
단군 이야기를 하자면, 하도 폭발력 있는 주제라 간단하게 [답변]하겠는데요. 조선 시대에는 민중 생활이라든가 민중의 신화를 보면, 단군이 민중에게 신앙의 대상이 잘 되지는 않았습니다. 단군에 대한 기록이 왕조실록에서나 "단군묘가 있다"는 기록은 있는데, 민중들이 단군을 찾고 신앙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개화기에 와서 단군이 민족주의적인 신앙의 대상이 됐는데, 단군 신앙, 즉 대종교를 만든 사람들이 호남의 유림들이었습니다. 민중이 아니라 유림들. 나철 선생 같은 사람들이 대종교를 만든 동기는 일본에 가서 일본의 국가 신도(神道)의 주된 신격인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를 보고 '한국에서도 부국강병을 이루자면 그런 국가 신도와 같은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저쪽에 아마테라스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단군이 있다'는 얘기를 해서, 1909∼10년에 초기 대종교를 만든 겁니다.

거기에 상당히 동조한 사람들이 일부 개화주의자였습니다. 박은식 선생 같은 사람이 많이 동조를 했습니다. 그래서 단군 신앙이 당시 민중적이라기보다는 사회 상류층 일부의 일종의 반대모방, 일본과 정치적으로 싸우면서도 일본의 신도를 모방하고자 하는 욕망의 표출이라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식민지 때는 수많은 반일적·항일적인 저항적 지식인이 단군 신앙을 갖기는 했는데, 그럼에도 일제 말기에 대종교는 일제와 협력했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미군정기에 들어서 대종교뿐만 아니고 천도교라든가 동학을 이은 기타의 신앙 단체들이라든가 거의 모든 토착적인 신앙 단체들이 엄청난 타격을 입었습니다. 미군정이나 초기 한국 정부를 등에 업고 기독교가 밀고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한국의 종교 시장이 아주 급격하게 기독교 위주로 재편됐습니다. 그것이 미군정이나 이승만 시절의 일인데, 그 뒤로는 교회가 고성장을 계속 거듭해 온 겁니다. 한국 종교시장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9.
제가 질문을 완벽하게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본주의의 논리가 결국 신앙을 지배하는 게 아니냐' 하는 질문인 것 같은데요. 제가 말씀드렸던 것처럼 신앙을 표방하는 단체들도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일종의 기업의 형태로 꾸려져 있는 것이고, 기업과 다른 점이 있다면 세금을 안 낸다는 것 빼고는 [다른 점이] 거의 없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기업 형태로 돼 있는 상황에서 그들의 구체적인 신앙 행위는 결국 말 그대로 장사 가까이 될 수밖에 없는 그런 한계를 갖고 있는데, 물론 모든 교회들이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향린교회라든가 몇 군데의 민중신학 계통의 교회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의 신앙과 신학을 볼 수는 있으나 아쉽게도 그것은 소수 아닌가 싶습니다.


 

10.
'전태일에 대해서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 같은데, 전태일이라는 분의 수기 등을 보면 한 사람이 어떻게 계속 변해 갔는지, 어떻게 사람의 사상·이념 세계가 계속 바뀌어 가고 있는지 알 수가 있는 겁니다.

초기에 전태일은 대통령한테 "상소"를 하면, 즉 대통령한테 노동자의 생활에 대해서 사실 그대로 편지를 쓰고 얘기한다면 바꿀 수 있다는 순진한 믿음을 갖고 있었고, 말하자면 기존의 권력 체제를 이용해서 노동자 생활을 개조하고자 했는데, 결국 그 미련을 버리고 전투적인 투쟁으로 나아가게 됐습니다. 노동자 투쟁 과정에서 한 사람의 사상이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 아주 잘 보여 주는 사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전태일의 분신 자살은 그 당시 한국 사회, 아마 1960∼70년대에 가장 큰 충격이 아니었나 싶고 민중신학을 만드는 데 기폭제가 됐습니다.

그런데 요즘 비정규직 노동자라든가 수많은 노동자들이 분신 자살합니다. 최근 몇 년 만해도 자살한 노동자들이 벌써 수십 명이 되는 것 같은데, 그 중에서 분신하신 분들만 해도 적어도 열 명 안팎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노동자가 그냥 자살하면 신문에서 보도도 없고요. 분신자살한다 하더라도 신문에는 짤막한 보도 하나 나가고 더 이상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어찌 보면 자본주의에는 확실히 제도적인 민주주의가 유리한 겁니다. 소프트한[연성] 독재죠. 그런 체제 안에서는 노동자의 죽음은 별다른 충격이 될 수 없습니다. 여론 형성 과정이 철저하게 통제받기 때문에 결국 전태일처럼 요즘 노동자들이 분신자살해도 결국 사회에서는 아주 외로운 위치에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박노자의 전체 강연회 요약 발언

종교라는 게 우리 사회에서 비판할 수 없는 아마 유일하다 싶은 분야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은 국가나 대자본은 물론이거니와, 예를 들어서 군이라든가 여태까지 거의 비밀로 싸여져 있던 그런 분야에 대한 비판도 거의 다 가능해진 것 아닙니까? 예를 들어, 안기부 내지 국정원의 최고 비밀 중 하나라고 여겨지고 있는 1987년 KAL기 사건이 있지 않습니까? 지금 그것이 거짓이라는 책까지 나올 정도라면 더 이상 이 얘기도 성역이 아니지 않습니까?

한국 사회에 딱 하나 남은 성역이 있다면 종교입니다. 종교에 대해서는 뭔가 깊이 있는 해부 작업을 할 수가 없는 거죠. 우리 서적 시장을 봐도 여러 가지 책들이 많아 거의 홍수인데, 한국 대형 교회 사회경제학은 한 편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그냥 터부시되고 있는 거죠. 그런 면에서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도 너무 이야기한 게 없다는 거죠.

종교라는 게 사람의 가장 내밀한 부분이고요, 모든 사람한테 똑같은 종교가 있을 수 없는 것 같고요. 기독교 내지 불교를 가진다, 종교를 가진다 하더라도 결국 사람마다 생각하고 실천하는 기독교 내지 불교는 어차피 개체적으로 다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런 것을 부끄럽게 여길 필요 없이 '남과 다른 형태의 신앙과 실천을 한다, 남과 다른 방식으로 기독교 내지 불교를 생각하고 실천한다' 해도 그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무리 종교, 특히 불교에서 영감을 많이 얻고 있다 해도 가장 귀중한 한 가지 교본이 있다면, 소크라테스의 유명한 말이 있지 않습니까? '철학은 회의(懷疑)로부터 시작된다'는 겁니다. 종교를 가진다 하더라도 회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모든 것을 의심해야 결국에는 진리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 이것이 꼭 마약이 되는 겁니다. 종교가 마약이냐 아니냐 하는 해묵은 논쟁이 있지만, 결국 제가 보기에 회의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종교는 마약이 아닐 것이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종교는 그야말로 "민중의 아편"이 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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