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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군 옛집기행(1)

  • 등록일
    2005/02/25 07:09
  • 수정일
    2005/02/25 07:09

드디어 갔다.

 

멀지도 않고

맨날 근처를 지나다니면서도

멍하니 벽돌공장 굴뚝만 쳐다보다가

오랫만에 찾아온 겨울날의 봄날씨속에

근질대는 몸뚱아릴 참지 못하고

친구에게 거의 떼쓰다시피 해서 다녀 왔다.

 

괴산군이다....^^...

 

청주에서 증평을 거쳐

새로 뚤린 4차선 도로를 따라 휭하니 달리면 괴산이다.

새로난 길을 가다보면

괴산읍내를 거치지 않아 좋긴 하지만

가는 길 언저리에 눈이 선한 홍명희 생가를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이 아쉬웠다.

 

다만 함께 간 친구의

작은 아버지(?)가 홍명희 생가 옆 한옥집에서

몇년 살았었다는 (에구구)

별루 도움 안되는 이야기로 대신하며 내쳐 달려 도착한 곳이 칠성이다.

 

 

 

괴산군 칠성면이다.

난 언제나 칠성하면 떠오르는 것은 이 벽돌공장 굴뚝이다.

멀리서도 한눈에

우뚝 솟은 것이 확연히 돋보이는 이 굴뚝만 쳐다보며

칠성을 지나친 것이 몇해나 된다.

 

지나가던 학생(? 한 고등 아니면 대학생 ???)들에게

율원리 김기응 고가를 물었더니 아마도 둔율리라 하기에

이 벽돌공장 이 있는 마을로 찾아 갔더니

아무리 돌아봐도 김기응 고가가 나타나질 않는 것이었다.

다행히 지나가던 할머니에게 물었더니

김참판댁이라고 하시면서 갈론계곡 방향으로 다시가야 한단다.

 

에구구

역시 문화재든 옛날 집이든

하다 못해 이웃동네 이름도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는 관심밖인가 보다

당당히 이 동네에 산다고 밝힌 친구들인데도

타지 사람들에게 이리 엉뚱한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을 보면.....^^;;

역시 다년간의 경험에 의하면 길을 묻거나 어떤 곳을 찾을땐

우리에 일꾼 할머니들 만한 안내자가 없는 듯하다..............................헤헤

 

 

      <사진.. 괴산군청 홈피 > - 전경사진을 못 찍어 이것만 퍼옴

 

김기응 가옥이다.

1900년 전후에 지어진 건물이다.

김기응이 누구인지 기록해 놓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리 유명한 인물은 아니었나 보다

그럼에도 김참판댁으로 불리는 것을 보면

당시 이 지역의 대지주 거부였을 것 같다.

어느 동네나 딱히 불를 이름 없으면 부르는 것이 참판댁이니 말이다.

 

 

한 100여년 정도된 한옥집이라서 그런지

벽체나 건축양식들이 많이 화려하고

또한 다른 고가처럼 옛스러워 보이진 않는다.

특히 충청도 양식이라 불리는 이 지역 양식이 아니라는 것이 흥미로운 집이다.

 

구조 자체도 대문을 지나 행랑채를 지나 사랑채, 안채가

매우 독특하게 배치되어 있고

특히 집을 둘러싼 흙담이 매우 독특한  집이다.

 




 

불행이도

집이 안으로 잠겨 있어서

들어가 보진 못했는데

밖에서 담장 너머로 기웃기웃 거리며 보는 재미가 그런대로 잼났다.

 

집은 야트막한 소나무 동산을 배경으로 남쪽을 보며 자리잡았고

앞으로는 높은 산이 안산 혹은 조산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보통 집을 지을때
사랑채의 대청에서 바라 보이는 안산 혹은 조산은

그집에 거주하는 사람의 심성을 반영한다하여

너무 높고 뾰족하거나

아니면 너무 밋밋하여 있는 듯 없는 듯 한 산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즉, 매일 바라보게 되는 앞산이

너무 뾰족하면 그 사람의 심성이 흉폭하게 되고

너무 밋밋하면

그사람이 우유부단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적당히 높으면서도 모나지 않은 산을 선택하는 데

이집은 매우 높고 뾰족한 느낌이 드는 것이

이런 집 터를 고르는 안목도

기우는 조선의 국운 만큼이나 잊혀져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이런 집터 선정방식이 고리타분할 수 도 있지만

나름대로는 의미가 있어 보인다.

 

요즘 아파트를 지을 때도 조망권 이야기가 있듯이

교육환경을 이야기 할때 누누이 거론되는

아이들의 시각적 중요성 이야기와 상통하지 않을까 한다.

 

즉 삭막한 아파트만 쳐다보고 자란 아이들이

삭막해 진다는 이야기다.....헤헤헤

 


앞산이 지붕을 닮은 듯하여 찍어 보았다.

 

참고로

이 김기응 가옥이 있는 마을은 칠성댐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칠성댐은 정식 명칭이 괴산댐 혹은 괴산 수력발전소인데

우리나라 기술진이 만든 최초의 댐이란다.

50년대에 만들었대나....?..하여튼 오래된 댐이다.

 

근데 잼나는 것은

이 댐이 생기기 전에 이미 댐이 생길걸 사람들은 알았단다.

 

그 유명한 우암 송시열이 노수신이 기거하던 곳을 찾아

풍류를 즐기다가 돌아가는 길에

이 곳은 산이 막혀 강이 될거라고 예언하고는

자신은 속리산 화양계곡에다가 거처를 정했다는 거다...

거참 ..용하기도 하다 ???...헤헤헤

아 그리고 댐이 들어선 마을중에

두천리가 있는데

그 마을 이름이 막을 두(杜),  내 천(川) 두천리다

그래서 그 마을 사람들은 댐이 들어설 당시에

감탄했단다.

그들도 왜 마을 이름이 이렇게 생겼는지 몰랐는데

아하 !!하고 감탄했다는 것이다.

내를 막았으니 두천리요 곧 댐이라는 거다.

그러니 앞으로 이름도 잘 지어야 하지 않겠는가 ?????...헤헤헤

 

솔직히 김기응가옥은 닫혀 있는 관계로 참 아쉽다는 생각을 해서

담에 꼭 한번 다시 찾아와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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