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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체근대](4)..시공간에 대하여

  • 등록일
    2009/06/23 12:44
  • 수정일
    2009/06/23 12:44

정리가 서서히 지겨워진다.

이 책 읽기는 다 읽었고 재미도 상당했었는데

문제는 정리하는 것이 지겨워지는 거다...ㅎㅎ

 

뭐 딱히 이걸 왜 정리하려고 할까 하는 의구심도 뭉게뭉게 피어난다...ㅎㅎ

게으른자의 최후처럼 하기 싫으니까 온갖 핑계거리들이 마구마구 쏟아진다...ㅎㅎ

 

하지말까..?

 

3장. 시공간

 

-- 도시라는 것은 이방인들이 서로 마주칠 만한 장소를 뜻한다.

    덧붙이자면 이 말은 이방인들은 이방인으로서 만나게 되는 것이고 그 등장 뿐 아니라

    사라짐도 갑작스럽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 상대를 보호해주면서 상대와 즐길 수 있게끔 하는 활동, 가면을 쓰는 것이 예의의 본질이다.

    각각의 가면들은 그 가면을 쓴 이들이 권력과 불쾌감, 개인적 감정과는 거리를 둔 순수한

    사회적 친분을 가능케한다.

     예의의 목표는 남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자신으로부터 타인을 보호하는 것이다.

     (물론 이 목표는 자신도 그만큼 보답을 받으리라는 희망속에서 추구된다.)

 

-- 예의의 기술을 개인적으로 습득하여 실천하기 전에, 그것은 우선 배경이 되는

    사회의 특성이 되어야 한다.

    만일 어느 도시의 주민들이 예의의 그 지난한 기술을 터득하려 한다면,

    예의바른 것이 되어야 할 것은 바로 그 도시의 환경인 것이다.

 

-- 그리하여 개인이 아닌 '공공의 가면'을 쓰는 것은 일종의 적극적 결속과 참여 행위가 된다.

    즉, 가면을 쓰는 일은 상호 교류하고 관련을 맺는 삶에서 이탈하여

    그냥 나를 좀 가만 내버려두라고, 그냥 이렇게 살자는 식으로 전혀 개입하지 않거나

      '진정한 자아'를 몰수해버리거나 하는 것이 아니게 된다.

 

==> 결국 액체근대에서 각 개인들이 선택할 문제는 각 개인의 가면을 쓸 것인가

        아니면 공공의 가면을 쓸것인가를 선택하는 문제와 예의바르게 되기위하여

        나 자신을 바꾸어 갈것인가 아니면 도시를 예의바른 환경으로 만들것인가 하는 문제인 듯 싶다.

        액체근대 즉, 유동하는 근대에 있어서 지나치게 개인의 능력과 책임으로 파편화되는 일상들을

        어떻게 공공의 문제로 집단화 할것인가가 첨예한 문제라면

       우리는 언제나 적극적인 결속과 참여의 방식으로써의 공공의 가면을 고민해 봐야 할 듯 하다...ㅎㅎ

       가면 무도회라도 열어보아야 하는 것일까...?...푸하하하

 

-- 공적 공간이면서도 예의바르지 않은 두번째 공간은 소비자들을 위한 역할, 정확히 말해서

    도시 거주자들을 소비자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소비자들은 흔히 별다른 실제적 사회 교류 없이도

    물리적 소비 공간을 서로 공유한다. 그러한 공간들은 상호적이지 않은 행위를 장려한다.

 

-- 쇼핑은 기본적으로 공간 여행이며 시간 여행은 부차적인 것이다.

    카니발은 변형된 도시, 더 엄밀히 말하면 변형된 도시가 원래의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동안의 시간의 틈이다.

 

-- 카니발은 현실이 겉으로 보는 것처럼 가혹하지는 않으며,

    도시가 돌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지만,

    소비의 사원들은 일상적 현실의 무미 건조한 견고함과 난공불락의 성격말고는

    어떠한 본질도 드러내주지 않는다. 소비의 사원은 미셸 푸코의 '보트'처럼

    "홀로 존재하며 문을 닫아건 동시에 망망대해의 무한함에 몸을 내맡기고 있는,

         부유하는 공간의 조각이자 장소 없는 장소이다"

 

==> 소비 혹은 쇼핑에 대하여 좀더 많은 고민들을 해야겠다.

우선 소비는 자본주의의 내성, 본질로서의 [교환]이라는 것에 대한 고민들이 필요한 것 같고

쇼핑은 공적공간 혹은 자본의 공간에대한 점유 형식으로서의 고민들을 해봐야 겠다.

음....아무래도 조금은 무거운 공부가 되려나 ...?....ㅎㅎ

어쨋든 열공....ㅎㅎ...언젠가는....ㅎㅎ

 

-- 공간은 그것이 통제될때 진정 '소유되었다'.

    그리고 통제는 무엇보다도 '시간을 길들이는 것',

    시간 속에 존재하는 역동성을 무력화 시키는 것이었다.

 

-- 시간의 새로운 즉시성은 인간의 공존 양식을 바꾸어 놓는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인간이 공동의 일에 주의를 기울이는 방식

    (혹은 때에 따라서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방식),

     인간이 어떤 일들을 공동의 일로 만드는 방식(혹은 그렇게 하지 않는 방식)에서 일어난다.

 

-- 즉시성의 시대에 '합리적 선택'은 결과를 회피하면서 만족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결과가 내포하고 있는 책임을 회피하는 것을 뜻한다.

    오늘의 만족을 위해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내일 만족할 기회를 저당잡힌 것이다.

    지속은 자산을 부채로 바꾸어 놓는다. 

   모든 육중하고, 고체이고 무거운 것들--이동을 가로막고 제한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 시간, 즉시성, 저당잡힌 시간에 대한 고민은 진즉부터 했었다.

        시간이 현대인들 특히, 우리같이 마을의 새로운 생성에 대한 고민들을 하는 부분에 있어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인 듯 싶다.   

        특히 시간을 기록하고 그 속의 사람들의 공존의 방식들을 탐구한다는 것은

        보다 엄밀한 시간에 대한 분석들을 필요로 하기때문이다...ㅎㅎ

        이래저래 공부할 것들만 풍족해지는 삶이다...아니 나의 시간이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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