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흐뭇하게 봤다.
이런 영화 좋아!
스토리는 우선 접어두고.
천녀유혼에서 느꼈던, 몽환적인 공간들. 그게 이 영화에도 있었다.
사람의 세계도 아니고, 귀신의 세계도 아닌 곳.
삶도 죽음도 아닌 곳. 그런 공간으로 귀도시가 나온다.
그리고, 무극사도 있다.
비석이 떡 등장하고, 위에서 아래로 훑어가는 건, 어디서 본건데 말이지.. 음음음.
공간을 이용해 동작들을 만들어 내는 것도 재밌었고.
참, 흐뭇하게 봤다.
이런 영화 좋아!
스토리는 우선 접어두고.
천녀유혼에서 느꼈던, 몽환적인 공간들. 그게 이 영화에도 있었다.
사람의 세계도 아니고, 귀신의 세계도 아닌 곳.
삶도 죽음도 아닌 곳. 그런 공간으로 귀도시가 나온다.
그리고, 무극사도 있다.
비석이 떡 등장하고, 위에서 아래로 훑어가는 건, 어디서 본건데 말이지.. 음음음.
공간을 이용해 동작들을 만들어 내는 것도 재밌었고.
오래전에 다운 받아놓은 파일을, 이제서야 봤다.
오래지나고 보니, 파일 이름만 보고서는 무슨 영환지 감도 안오고.
별 생각 없이 틀었다.
마호메트의 깨달음 과정을 감옥으로 옮겨놓았나 싶다.
눈과 귀가 되고, 찬송하고, 40박 40일을 명상하고.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도와줄 이 하나 없는 고독 속에 놓여있을 때, 인간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몇개나 될까?
마호메트가 깨달은 것이나, 감옥 안에서 말리크가 깨달은 것이나 뭐 얼마나 다를까?
비행기에서 구름을 보는 것과 맨발로 바닷가 모래를 만져보는 것과 사람을 죽이는 것과. 말리크 입장에서 그 사이에 어느만큼의 거리가 있었을까.
누가 누구에게 의지해 사는지 모를 일이다.
길고 긴 러닝타임에, 뒤에 가서는 지쳤다.
혼자였으면 절대 안봤을거야.
둘이어도.
뒤풀이 끝나고, 갈곳이 없어져 공포영화를 보자며 DVD방에 몰려갔다.
난 애당초 공포영화 같은 걸 좋아하지도 않고, 맨정신에 볼 심장도 아니다.
그래도 5명이나 되니 뭐 괜찮지 않을까 싶어 순순히 따라갔다.
주위에 사람이 있어도 무서운 건 무섭더구만.
시선이 영화 속 어느 공간에 위치하고, 그 시선으로 스크린 속 상황을 바라보니 상황에 대한 몰입이 잘되는 것 같다. 관찰자의 시선이라도 결국 영화 밖에서 관찰한다는 자각이 있게 되고, 극중 인물의 시선이라면 그 인물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게 필요할텐데, 이건 아무것도 필요없다.
피곤해서 혼자 찜질방으로 자러 갔는데,
영화 장면들이 떠올라서 눈이 잘 안 감겼다.
ㅠ
앨렌 페이지가 주연으로 나온대서 봤다.
킬리언 머피는 덤(은 아니고, 같이 나온대서 봤다.) ;;;
영화에 대한 소개나 정보도 없고.
장르가 '스릴러'로 분류되어 있길래, 대체 어떤 장면이 공포를 유발할까 긴장한 덕분에, 스릴러가 됐다.
다 보고 나서도, 존과 매기의 관계는 어떤 건지, 엠마는 대체 누군지, 언제 나타난건지 이해가 잘 안된다.
어쩌면 엠마가 본 모습이고, 존은 그림자가 아닐까 싶기도.
킬리언 머피의 병적인 존 연기는 신들린 것 같다.
앨렌 페이지도 인셉션 같은 곳 보다는 이런 영화가 훨씬 잘 어울린다.
삽입곡들 몽환적이고 좋다.
OST 있으면 듣고 싶다.
다 보고서 영화가 맘에 들지 않았다. '그들의 저항은 지금도 계속된다'는 포스터 표제와는 달리 과거의 운동을 청산하는 시각에서 영화는 전개된다. 청산은 아니라 할지라도, 영화는 너무 모호하다. 어느때에는 너희는 헛것을 보고 싸운거라는 얘기를 하는데, 그들이 정말 그랬을까?
테러리즘이, 혹은 그들의 저항이 자기 모순이었다면 그것을 들추면 될 일인데, 영화는 개인들이 어떠한 모순도 느끼지 않는 것 마냥 그리고 있다. 이건 애초에 피를 즐기는 인종이 테러를 한다는 식이다. 오히려 테러의 동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은 공권력이 스스로 던진다. 적군파 스스로는 그것에 대한 질문도 못던질만큼 폭력에 미친 집단이었던 걸까. 아니면 관객들이 동기 정도는 이해할 거라 생각해서 언급하지 않는 걸까. 물론 초반에 어떤 꿈이 있었는지는 소개되지만, 바더-마인호프 그룹이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고민으로 테러를 선택했는지가 빠져있다. 그들의 군사훈련 장면은 실제와 너무 달랐을 것 같은데, 자신의 저항을 하나의 놀이쯤으로 생각한 것 처럼 그린 게 싫다.
그런데, 불쾌감을 유발한 장면들이 실은 현실에 판박이로 재현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이걸 감독의 악의로 볼 수는 없겠다는 생각에 의기소침해진다. 테러리즘은 애초에 그렇다. 사회의 토대와 관계를 뛰어넘어 다른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일텐데, 그런 태도들이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 배어있다. 음.. 더 생각해보니, 감독이 여기까지 고려하지 않고 만들진 않았겠구나 싶네.. 모호할 수 밖에. 자신에게서 괴물이 나왔고, 자신이 그 괴물의 존재이유일 때 선택할 수 있는 건 한정되어 있다. 영화는 최소한 그런 정도의 진정성은 부여해줬다.
테러가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자리에서 혁명을 하자는 것 만큼이나 반혁명적인 것이 없다. 하지만 그 같은 상상을 얼마나 많이 하는가.. 용서할 수 없는 인간들에 대해.. 참 많은 사람이 죽어왔고, 눈에 보이는 테러 이상으로 잔혹하고 은밀한 죽음들이 이어지는데, 이런 유혹을 떨치기 쉽지 않다.
엘렌페이지를 뒤적거리다,
출연한 영화에 '공작'이 있길래 살펴봤는데
오옷, 엘렌페이지와 킬리언머피가 같이 주연이네!!
흐흐흐흐
오늘 중으로 볼까?
관심갖던 배우와 감독들이 서로 겹치고 얽히는 걸 찾아내면서 신기해하고 있다.
그동안 대니 보일, 이완 맥그리거 사이의 관계만 보고 있었고, 앨렌 페이지는 따로 관심 갖고 있었다.
며칠 전 킬리언 머피가 대니 보일과 28일후에서 만나고, 켄 로치와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서 만난 걸 알게 됐다.
며칠 전부터 열심히 훑어보는 중이다.
그런데 이렇게 앨랜 페이지와 킬리언 머피가 만나는 곳을 찾았다.(인셉션에도 같이 나오드마)
왠지 설레는 예감. 앞으로 더 겹치지 않을까.
좋아하는 감독, 배우들이 만나는 걸 보면, 저들에게 공통점이 있고 그 공통점을 내가 좋아하는 게 아닌지 싶다.
아메리칸크라임에서 앨렌페이지는 좀 짱이었음.
이런. 다 보고 나서, 영화 정보 찾아보니, 이거 대니보일 감독이 만든 거 아냐. -_-
28일후만 대니보일이구나.
트레인스포팅을 공감하며 인상깊게 봤고,
28일후에 묘사된 인간 사회의 단면들이 섬찟하도록 예리해서,
대니보일 감독이 만든 영화를 다, 보려고 했었다.
28주후가 28일후 속편이라길래 같은 감독일 줄 알고 봐야겠다 맘 먹었다.
그런데, 막상 보니, 영화 처음부터, 전개가 작위적이고, 화려한 볼거리들 속에서 그저 공포만을 생산하려 들어, 28일후와는 분위기가 완전 달라져있다. 영화가 전작에 못 미칠수도 있지만, 이런 식으로 시선이 퇴화할 수 있나 싶어서, 아무래도, 뭔가 이상했는데, ,,,,, 감독이 다른 사람이었구나.
흠. 확실히 비슷한 스토리를 가지고 연출한 영화라고 해서 급이 같은 건 아니네..
대니보일 감독은 28개월후를 촬영한다는 것 같기도?
28일후나 다시 봐야할까봐.
OST가 좋아서, 봐야겠다고 맘먹었던 영화.
으음, 조금 보다 보니, 이거 울리는 영화겠구나, 이런 거 싫어, 라고 생각하면서도 눈을 못떼고, 다보고 말았다. 영화 속 상황은 생각만해도 괴롭워지고, 자꾸 부모님이 떠올라서, 더 슬퍼진다. 그동안 계속 영화에서 보여주는 그대로, 관계에 대해 생각해왔었는데, 그건 사고 속에 있을 뿐이고, 지지리 궁상인게 현실의 관계일 뿐이니, 몇 달 전부턴, 연애도 심드렁, 관계를 잘 만들어나갈 자신도 없고, 그렇게 절실한 마음이 생기긴 할까, 있었다고 생각했던 건 조작이나 환상은 아니었을까, 뭐, 이러고 있다. 평생, 절대적인, 이런 것들은 영화에서처럼, 비일상적인 상황에서야 가능하다. 그걸 바라는 건, 지금-여기가 아니라 오히려 저편을 꿈꾸며 사는 것, 그러니 지금-여기에 충실하려면 비글비글 구질구질 대는 삶을 직시해야하지 않을까. 내가 잘 못하는 일이라, 찝찝하네. 호흡을 길게.
이승열 목소리 좋아! 방준석 음악 좋아!
이승열보다 방준석이 더 좋아 ㅠ
방준석이 작업한 OST, 더 들어봐야지.
영화 자체에 몰입은 잘 안되네..(헌데, 내가 몰입하며 본 영화는 뭐가 있었나?) 문화는, 예술은 무엇일까? 요즘 책을 읽으며 나름 정리하는 건, 상대주의에 빠지는 건 모든 의미를 부정하고 해체의 효과를 남겨 바람직하진 않다는 것, 그렇다고 절대적 가치를 미리 상정해 놓는 것은 목적론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것. 시대를 넘어서려는, 그리하여 보편성을 획득하려는, 기울기/경향/등등의 말로서만 존재하는 것이지 않을까. 더 넓은 시대를 가로지르려는, 그리하여 부력을 밀치고 가장 깊숙이 내려앉으려는 그런 시도말이다.
아무튼, 영화안에서 경극은 결코 시대와 외떨어질 수 없고, 배우들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적극적으로 시대에 부합한다. 살아남는 사람은 계속 살아남는다는 한숨이 무섭게 원대인도 죽었고, 자신을 팔거나 옆사람을 팔아야 살아남는다. 역사의 길이에 비해, 하다못해 삶의 길이에 비해서도 너무 짧은 흥망이 애처롭기도 하다. 살아남기 위해 그저 살았다고 하면, 더 초라해지는데. 그 속에서 이어져 온 것은 무엇일까.
주인공들 사이 관계는 잘 모르겠다. 애정일까, 집착일까. 안쓰런 건 쥬산.
문화혁명을 다뤘대서 봤는데, 그래, 아마도 그런 시기였겠지. 어떻게 살았어야할지 답이 서질 않는다. 지역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게 떠오른다.
소개해주신 덕분에,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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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와 같은 감독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이 영화는 물론,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도 자본주의에 대한 풍자가 아닐까 싶어졌다.
고기가 없어, 사람을 잡아 먹는 동네.
푸줏간 주인은 사람의 고기를 팔아 곡식과 교환하고, 창고에는 곡식이 그득하게 쌓여있다.
푸줏간 주인의 실수로 다리 한쪽을 잃어도, 그 불평의 화살은 이방인에게로 향한다.
자신의 차례가 돌아오는 걸 피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사지로 내보낸다. 서로 독립적으로 사는 것 같지만, 필요할 땐 합심해 희생자를 만든다. 델리카트슨 한편에는 매번 죽기 위해 노력하지만 죽지 못하는 부르주아 여성이 있고, 집세를 내지 못해 죽을 차례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가난한 할머니가 있다.
그리고 이런 지상세계의 사람들과 싸우는 지하세계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곡식이 부족할지언정, 사람 고기를 먹지 않는다.
영화는 집 바깥을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설사 보일 때에도 음습하고, 비바람이 몰아친다. 집 내부는 당연히 어둡고, 또 장면의 한 축은 지하 또한 그리 다르지 않다.
지상을 자본주의, 지하를 현실사회주의 세계로 바꿨을 때 비유는 정확하게 겹쳐진다. 지하세계 사람들이 곡식만으로 살듯, 지상세계도 충분히 삶을 영위할 조건이 만들어져 있지만, 고기를 섭취하기 위해 희생자를 만드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곡식에는 화폐라는 은유가 겹쳐져 있다.) 이런 세상은, 왼쪽 수도꼭지를 틀면 오른쪽에서 물이 나오는, 뭔가 비틀어진 곳임에 틀림없다. 영화 안에서 푸줏간 주인을 격침시키는 것은, 지하세계의 사람들이 아니라 광대 뤼종과 푸줏간 주인의 딸 쥴리다. 이 둘의 '사랑'이 델리카트슨을 물로 깨끗이 쓸어내버린다. 푸줏간 주인이 죽고난 뒤, 첼로와 톱을 켜는 장면에서 하늘이 맑아져 있다. 지상/지하의 음습함과는 다른 세상이다. 뤼종과 쥴리는 지하세계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감독이 지하세계의 음습함에 동의하는 것은 아님을 시사하는 것 같다. 어두컴컴한 방안에 개구리와 달팽이를 키워 자생하는 사람은 공동체운동이 유비된다. 물이 쏟아지는 순간, 개구리를 방생하며 밝은 세상으로 뛰쳐나온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푸줏간 주인을 쓰러트린 건, 뤼종/쥴리가 아니었다. 궁지에 몰린 뤼종/쥴리는 실상 변변한 힘 한 번 쓰지 못했었고, 푸줏간 주인은 자신이 던진 부메랑에 맞아 죽게 된다. 생산을 늘리기 위해 고정자본을 소비하는 기술진보를 가속할 수록 최종적 파국에 가까워지는 자본주의.
군데군데, 기발한 상상력이 엿보이는 장치들, 멋지다. 저런 상상력, 닮고 싶어.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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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귀여워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