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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아버지가 낚시하러 가는 곳에 따라가서 주변을 돌아다니며 풀이나 꽃들을 구경하거나 친구들과 뒷산에 가면 꼭 무덤가에서 놀곤 했는데 시골에서는 워낙 얕은 언덕에 무덤이 널려 있었으니 밤이 아니면 무서운 대상이 아니었다.
무덤가에 유난히 많이 피어 있던 할미꽃을 어찌나 좋아했던지..이 자주빛을 띤 보라색 꽃들이 옅은 보풀에 쌓여서 조용히 고개숙여 있는 꽃들은 밝은 꽃들과 대조적이었다.
올해 봄 친구와 남산한옥 마을에 놀러갔다가 무덤이 아닌 한옥의 뒤뜰에 피어있는 것을 보고 어찌나 생경스럽던지..
언제였지, 어린 날이었는데..한날은 여러송이를 꺾어 내 책상에 꽂아 놨는데 오마니가 보시고는 재수없게시리 이꽃을 갖고 왔다며 혼난 기억이 났다.
지금봐도 참 애틋하다. 할미꽃...나도 곱게 하얀 보풀로 자신을 겸손하게 감싸고 고개숙인 저꽃처럼 나즈막하게 늙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금은 아파서 제대로 기능을 못하는 미놀타..그녀석의 눈으로 본 이 꽃..
내 눈길이 책장에 놓여 있는 미놀타에게 간다. 미안..내가 제대로 다루지 못해서 왜 고장이 났는지 원인도 모르고 앓는 소리가 난다. 진짜 미안. 다시 한번 널 고쳐줄 사람을 찾아볼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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