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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와 보는 밤
윤동주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 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다. 불을 켜두는 것은 너무나 피로롭은 일이옵니다. 그것은 낮의 연장이옵기에_____
이제 창을 열어 공기를 바꾸어 들여야 할 텐데 밖을 가만히 내다보아야 방안과 같이 어두워 꼭 세상 같은데 비를 맞고 오던 길이 그대로 비 속에 젖어 있사옵니다.
하루의 울분을 씻을 바 없어 가만히 눈을 감으면 마음 속으로 흐르는 소리, 이제 思想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가옵니다.
빨래를 널며 바람에 물기가 느껴지길래, 설마 비가 오지는 않겠지...
왠지 비가 올 것 같았는데, 그냥 집을 나섰다.(나이 먹을 수록 아버지가 그랬던 것 처럼, 감각으로 아는 일기예보가 점점 더 정확해진다.)
공부방에 갔다가 끝날 때 즈음..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짐을 잔뜩 들고 비를 맞으며 한참을 걷고, 한참을 타고 집에 왔다.
시를 뒤적뒤적...윤동주의 시가 꼭 오늘의 나 같다.
(2004. 11. 1)
감기기운 때문에 아침에 일찍 눈을 떴는데도 계속 FM만 들어놓고 오전 내내 뒹굴거렸다.
시계를 보니 12시. 슬슬 일어나 늦은 아침인지 이른 점심인지 구분을 못할 밥을 먹어야 할 것 같았다.
어제 저녁 대충 끓여 놓은 김치찌개와 실패한 고구마 현미밥을 놓고 젓가락으로 깔짝 거렸다. 밥맛도 그다지 없고 읽으려고 빼놓고 보지 않은 박재삼 시집이 눈에 띄여 한 손에는 시집을 한손에는 젓가락을 들었다.
'98년, 찬주언니의 권유, 종로서적에서'
아, 찬주언니 수유리 살 때 였나 보다. 종로서적, 이제 없어져 버린 그 건물 앞을 지날 때마다 마음이 쑤신다. 종로의 세서점 중에서 가장 조용하고 가장 장사치 냄새가 덜 났던 그곳..대자본의 힘에 굴복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할아버지의 시선이어서인가, 아니면 시조도 해서인지 마지막 행이 아주 고전적이다.
스치고 말 한 장면을 쨍하게 잡아내다가 마지막에 슬 풀어버리는 쥐고 펴는 힘이 있는데, 그것이 힘으로 느껴지기보다 그저 시선을 그곳에 한번 고정했다가 다시 하늘을 본다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예전에 봤을 텐데 기억이 안나는 것은 그때는 별로 였나보다.
지금은 아주 편하고 괜찮은데..
시인의 96년 당시의 심정이었을 것 같은 두시(비슷하지만)를 옮겨 적어본다.
"햇빛 하나는 잘 받아/그 이마가 빛나는/이 사실이 부럽네"
나는 이구절이 참 좋다. 그 이마가 빛난다라...
虛無의 내력
늘 돈은 조금만 있고
머리맡엔 책만 쌓이고
그 책도 이제는
있으나마나한데
땅 밑에
갈 생각만 하면
나는 빈 것뿐이네.
아득한 靑山을 보며
죽도록 부지런히 쓴다만
詩를 쓰는 것은
돈과는 거리가 멀고
그러면서 그 짧은 행간에
짜릿한 共感을 심는 일은
늘 아득하기만 하네
그러나 靑山은
아무 일도 안하고
늘 그 자리에 놓여 있건만
햇빛 하나는 잘 받아
그 이마가 빛나는
이 사실이 부럽네
살아남은 자의 슬픔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 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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