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6/07

from 일기 2010/06/07 23:38

앞으로의 행방에 관한 이야기.

이미 마음먹었던 이야기.

괜히 빙글빙글 돌려 말한 이야기.

혼자서 나름 고민했던 이야기.

하지만 어려울 건 없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 끝에 돌아오는 길은 머리가 맑아진 느낌이었다.

따뜻하게 맞아주어 참 고맙다는 생각,

앞으로 해보고 싶은 것들 생각, 흐뭇한 마음..

 

근데 집에 돌아와보니 엄마가 ... 또 절연 선언을 한다.

뭘 잘못말했는지 모르겠다.

아니...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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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7 23:38 2010/06/07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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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7

from 일기 2010/05/17 01:23

집을 떠나 있었던 건 17일.. 

전주영화제에서 두리반으로, 두리반에서 청주로,

청주에서 머물렀던 건 11일쯤... 다시 청주에서 서울로,

미디액트 개관식에 갔다가 이틀을 더 놀고 오늘밤에야 돌아왔다.

보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전혀 실감나지 않는다.

특히 청주에서의 시간은 '어느새' 훌쩍 열흘을 넘기고 있었다.

 

그렇게 17일만에 열어본 블로그에서 낯선 글들이 보였다.

사진들도 마찬가지... 이해할 수 없는 슬픈 표정의 얼굴을 한 내가 사진 속에 있다.

사진을 찍으며 웃으려고 해도 잘 웃음이 안나오던 게 기억난다.

견디기 힘들 것 같았던 5월이 벌써 반 이상 지나가버렸다. 매일 매일 행복해하면서..

 

특별히 무언가를 결심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선택의 순간은 분명히 있다.

즐겁고 좋은 일을 선택하는 건 훨씬 쉽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걸 포기 혹은 거부하는 것에 대해 더 주목해야할 것 같긴 하다.

 

어제 읽었던 만화책 '매미소리가 그칠 무렵'에 보면 병에 걸린 아버지를 어린 스즈가 돌보는 동안

심약한 부인 요코는 가끔 병원에 와서 10분 남짓 시간을 보내다가 돌아갔을거라고 스즈의 이복언니..사치가 말한다. 저렇게 남의 눈치 안보면서 울 수 있는 사람은 스트레스 안받을 타입이라고. 

집에 돌아오는 동안 그 장면이 떠올랐다. 나는 요코같은 타입인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돌보는 엄마와 언니가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나는 더 못하겠다...이런 결론을 부여잡고 있다. '도망'이 이유 중 하나는 된다.

 

아니, 무엇이 이유인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도망'이 이유인건 변하지 않지만 문제는 내가 그것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는지이다.

함께 살기를 원한다면 내 삶을 변화시키는 것을 전제로 고민을 나누는 것이 맞겠지만 

지금의 난 그저 그정도는 내가 감당해버리고 싶다는 마음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것을 어떻게 감당할까... 구체적인 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잘 버텨주기만을 바라고 있을 뿐이긴 하지만... 이건 좀 더 현실적인 해결이 필요하다.

 

두번째는 돈벌이와 자리잡기인데...이건 별로 그냥 조급하게 느껴지지가 않는다.

 

조금 다른 의미로는 관계맺기의 문제. 지금 이곳의 관계와 그 곳의 관계를 어떻게 할건지.

나는 어떤 자리에 서있으려고 하는지..

이건 사실 약간 나에겐 옵션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점이 중요하다.

이 것이 나에게 옵션처럼 느껴진다는 사실.

 

정리하자면 자기 중심적인 관계 맺기 정도일까.

흡수하고 나를 채우는 것, 그 과정에서 발생한 에너지로 자연스럽게 내 것을 나누어주는 것..

그 이상 중요했던 것은 별로 없었다.

한 때 목메던 '그 무엇'은 꽤나 실체가 없던 것으로 밝혀졌고... 이후론 계속 '나'에 집중해왔다.

삼십대 후반인 I는 이렇게 살아와보니 무언가를 선택할 때 늘 절대적인 기준에 의할 필요는 없다고 말해주었지만 좀 더 관계맺는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고 행동할 수는 없을지,

내가 하려고 하는게 구체적으로 무언지 정도는 알고 행동해야 하는 건 아닌지 하는 걱정은 여전하다.

 

어쨌든 내가 궁금한 것은 이런 나의 상황과 방식이 그들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이고

또 그것이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를 바란다.

하지만 나도 이미 알고 있는 것 처럼 함께하기엔 모순된 두 가지 개념이 있다.

나는 정주하지 않는다. 그들은 정주한다.

나는 조직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조직 안에서 고민하려 한다.

나는 내 삶의 조건을 단순화시키고 살짜쿵 도망가려 한다. 그들은 그들의 삶의 조건을 세분화하고 변화시키려한다.

 

외부자일 수 있던 것은 내 현장과 내 삶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이상 외부자로 있기엔 내 현장과 삶의 많은 부분을 그들에게 기대려고 하는 상황이고

그렇다고 내부자로 있을 수도 없다.

우린 어떤 관계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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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7 01:23 2010/05/17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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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꽃차 도전

from 일기 2010/04/29 20:27

미세인님의 [민들레꽃 차 만들기] 에 관련된 글.

 

나름 심혈을 기울인 만들기 과정의 인증샷들과 셀카 등등이 컴퓨터로 옮기는 과정에서 사라지고

...으흑. 애니콜...너.

아무튼 결과물만 덩그라니...

 

 

 

약간 숨이 덜 죽은 것 같기도 하고... 잘 마르지 않을까봐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여튼 난 최선을 다했어..ㅋㅋ 

4-5개씩 넣는다고 해도 100잔 넘게 나온단 말이지..으흣흣흣...

널 때 약간 꿀냄새같은 게 나던데...차에서도 나면 좋겠다.

민들레 꽃차는 마셔본 적이 없고 잎차만 마셔봤는데 그건 딱히...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어쨌든 꽃차니까...뭐 예쁘게만 피면 된다는 ;; ㅋㅋㅋ

 

요즘 차 사이트나 뒤적이며 시간을 보내는데 통장 잔고가 바닥을 치니 한숨만 쉬었더랬지.

네 다섯시간 정도 꼼지락거려서 이렇게 훌륭한 아이들을 만들어내다니 스스로 기특하구나..

이번 주말에 나갈 때 가져 갈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첫번째 실험대상은 공룡들로 하겠어~ 

오. 괜찮아...특별히 문제는 없을거야. 우리 밭엔 농약 안쳐..ㅋㅋ (귀찮아서...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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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9 20:27 2010/04/29 20:27

중동에 관한 책을 읽고 싶다고 생각했던 건 라픽 샤미의 <한줌의 별빛>을 보고 나서였다.

<아주르와 아스마르>를 봤을 때도 판타지라는 걸 알면서도 무척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었다.

<라피끄..>를 읽고 나니 그동안 띄엄띄엄 접해왔던 팔레스타인에 대한 장면들이 퍼즐 맞추듯 끼워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나의 아이들> <내가 정말 미소짓고 있었을까>와 같은 다큐멘터리, 촘스키의 책에서 읽을 수 있었던 내용들... 그 때는 어디가 어디에 붙어있는 지도 모르고 그냥 읽었더랬지;

 

책이 쉽게 쓰여 있어서 어렵지 않았고 핵심적인 사안별로 챕터가 나뉘어 있어서 시대나 사건에 대한 설명은 오히려 반복적으로 나와 여러 각도에서 곱씹어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책읽기를 여러번 중단했는데 아무리 글자만 읽는거지만 내용이 좀 힘들게 느껴졌다.

말도 안되는 이스라엘의 폭력과 얄미운 미국의 행동거지를 보는 게 너무 화가났고 무엇보다 동시대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답답해져왔다.

2001년,  2005년, 2007년과 같은 숫자들을 보면 마음이 무거웠다.

 

유대인에 대한 동정적인 이미지는 나 또한 갖고 있었고 이스라엘 성지 순례에 대해 종교적이지 않은 의미로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이스라엘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군인들이 주인공이었고 결국 몇몇이 죽는데 생각해보면 상대편은 팔레스타인 사람이었을테고.... 그 장면에서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어쨌든 주인공 입장에 동조하며 영화를 봤을 것 같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문제에 대해서 - 정확히 말하면 이스라엘의 문제지만; 막연하게 알고 있던 건 대게 종교적인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는데 <라피끄..>를 읽고 나니 그게 아니란 것을 알게됐다.

온전히 종교의 문제도, 온전히 민족주의의 문제도 아니고 힘에 의한 점령, 식민주의, 인종주의, 폭력성, 타인에 대한 두려움, 무관심, 오랜 세월을 지속해온 무기력함 같은 것들이 섞여

말도 안되는 상황을 계속해서 연출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무척 궁금했는데 - 숫자로 표시된 '찬성' '반대'가 아니라 실제 감정적으로 어떨지 궁금했다...

우연히 다큐멘터리 제목을 검색하다 블로그 글 을 보게 되었다. 키부츠에 머물면서 팔레스타인 공습을 거부한 이스라엘 공군에 관해 이스라엘 청년과 나눈 대화(...라기보다 이스라엘 청년의 일방적인 말걸기)였는데 '민족을 위협하는 위험한 발상' 이라는 '익숙한' 의견을 이스라엘 청년으로부터 듣게 된다.

책 서문에서도 팔레스타인과 한국의 상황은 비슷한 점이 많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남한의 모습은 이스라엘과 비슷한 면도 많을 거란 생각이 들었었다. 전쟁의 위험, 테러 운운하며 정치에 써먹는 거나 그게 뼛속 깊이 각인 되어있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

남한이 북한을 공습해도 6-70%가 찬성하는 그런 날이 올까... 올지도.. i _ i

뭐 이미 이런 저런 파병을 했기도 했고.... 

이런 식으로 '팔레스타인과 나'는 몇가지로 연결된다..우울하군;

라피끄 - 연대라는 이름을 연결된다면 더 좋겠지만

지금은 조금씩 머릿속의 퍼즐 조각들을 더 맞춰 나가는 것 부터..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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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2 21:37 2010/04/22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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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2

from 일기 2010/04/22 12:10

마음속에 쌓아두었던 온갖 약한 마음, 두려움, 서운함, 질투심, 외로움 같은 것들을

100퍼센트 날 것으로 꺼내어 보였다.

취기가 오르는 어느 시점 까지는 웃음과 농담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지만

정신줄을 놓은 그 순간부터 컨트롤되지 않는 감정이 눈물로 터졌고_ 물론 기억은 안나지만

상대방은 당황하고 수습하고 조금은 미안해했으며 짜증을 냈겠지

그리고 불쌍하게 봤을 거다...

실제로 내 상태가 그렇기 때문에 불쌍하게 보인다거나 약한 모습을 보인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민폐를 끼쳤다는 민망함과 은밀한 욕구들이 드러났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뭐 안드러났을 수도 있겠지만, 카타르시스가 필요한 나머지 이유없이 울었다..라는 단순한 사실로 받아들여졌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얼마나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하는지 그 누군가들에게조차 드러내지 않는 마음들을

엿보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 그것만은 혼자만의 생각으로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부끄럽다. 짝사랑하는 것을 들킨 것 처럼.._ 진짜 짝사랑으로 오해하진 않았겠지? ㅎㅎ

아무튼 술먹고 진상의 대가는 혹독...

땅에 떨어진 자존감을 끌어올리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땅 속 깊이 파묻어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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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2 12:10 2010/04/22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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