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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할인마트 안가기

 

결혼하면서 12년을 시부모님과 같이 살았다.

단순히 우린 집을 얻을 돈이 없었고, 경기도 고촌에서 시부모님은 두분이 살고 계셨기 때문에 우리가 들어가서 살겠다고 했다.

살면서 어떤 식으로든 역할 분담은 필요했고 나는 활동을 하니까 집안 살림은 어머님이 다 해주셨다. 그런데 생활비가 문제였다.

어머니께 한달에 생활비가 얼마나 드냐고 여쭤보니 잘 모르신단다.

어머니는 결혼하고부터 지금까지 전체 생활비를 운영해보신 경험이 없다. 독특하게도 아버님이 돈을 쥐고 필요한 걸 사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지금은 돈벌이를 하지 않으시는지라 자식들에게 필요할 때마다 용돈을 얻거나 물품을 사오라고 하셨단다.

음...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일단 30만원을 드렸다. 쓰시다가 떨어지면 이야기하시라고...

우리도 형편이 넉넉지 않으니 조금씩 쓰면서 한달 생활비를 계산해볼 작정이었다.

그런데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돈이 다 떨어졌다고 하신다. 네? 그 돈 다 뭐하셨어요?

어머니는 추궁을 받으신 거라 생각하셨는데 조목조목 이야기를 해주신다.

파마하고.. 교회 헌금내고... 반찬사고... 신발도 바꾸고...집에 필요한 뭐 사고... 등등...

어머니는 용돈과 생활비를 구분하지 못하신다. 그렇게 살아보신 적이 없어서인 것 같다.

그렇게 하니 안되겠다 싶었다.

용돈은 용돈대로 형제들이 나누어서 드리도록 해야 하고 생활비는 생활비로 따로 정리를 해야 한다.

그 다음에 시도한 것... 장을 같이 보기.

한 달에 두 번, 혹은 세 번을 장을 보러 같이 갔다. 어차피 열흘치나 보름치를 사야하니 차를 타고 싸다는 대형할인마트에 가서 필요한 걸 이것 저것 넉넉하게 사고 뭐하고 하니 두시간이 훌쩍 간다. 계산을 하니 20만원 정도가 나왔다. 헐~~

다리도 아프고 정신도 없고... 집에 와서 물건 산걸 열어보니 이런.. 별로 산게 없다. 남편이 좋아하는 술과 술안주거리... 약간의 찬거리... 생필품들...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또 장을 보러 가게 되었다. 결국은 마찬가지...

꼭 필요하지 않은 것도 참 많고, 한꺼번에 많이 사게 되니까 버려지는 것도 많다.

뭔가 대책이 필요한데....

며칠 뒤 친정에 제사가 있어 갔는데 엄마와 오빠가 장을 보러 이마트를 간다고 한다. 엄마는 이마트 가는게 영 못마땅 하다신다.

집앞에 재래시장이 있는데 거기가면 단골 아줌마들이 다 알아서 잘 챙겨주고 물건도 좋단다. 엄마가 하시는 말씀이 시장상인들도 먹고 살아야지, 맨날 무슨 마트가고.. 가봐야 정신만 없고, 봉투도 따로 사야하고, 물건도 좋지 않고, 별로 싸지도 않단다.

우리엄마 시골서 자랐고, 청주서 고등학교 나왔다. 그리고 살림만 하다가 아빠와 늦게 결혼해서 서울서 산지 벌써 30여년이다. 선거 때마다 싸운다. 나 꼴보기 싫어서, 운동권들 설치는 거 싫어서 당나라당 찍는다고...

그런 우리엄마가 그런 이야기를 한다. 이게 출신성분 차인가?

나는 엄마한테 맞장구를 쳤다. 맞어... 그치?

대형할인마트 물건값 정말 싼가? 물건을 10개 20개 들이로 사면 어디서 사든지 싸게 해준다. 대형할인마트는 물건 값을 낮추기 위해 하청업체에게 무자비한 가격 횡포를 강요한다. 누구는 그런 이야기한다. 이마트는 교환, 반품을 군소리 없이 해준다고... 너무 좋다고...

자기네들이 전혀 책임지지 않고 물건 납품한 중소업체들한테 책임 물리면 그만이니 당근 교환, 반품 군소리 없이 해주지...

그리고 사실 별로 싸지 않다. 대형할인마트가 물건 값을 조금씩 올리기 시작한 지 꽤 되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분가해서 둘만 사는 지금 우리는 일주일에 당근 1개, 호박 1개, 양파 2개, 무 1개. 이만큼의 재료도 필요하지 않다. 남는다. 마트가서 물건 살 일이 없다.

그치만 마트는 이제 더 이상 할인매장이 아니다. 오빠네 부부는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간다. 1층에 놀이방도 있고 아이들 이것 저것 구경시키고 사주고, 또 같이 먹고.

먹거리 외에 가구며, 살림살이며 옷이며, 미용실에 병원에 문화센터까지...없는 게 없고, 모두 너무 싸단다. 아니 이제 굳이 싸다는 건 이유가 되지 않는다. 집 가까이에 저렴한 백화점과 문화센터를 겸비한 공간이 생긴 거니까.

분가하고 우리는 마트가지 않기로 약속했다. 노동자 탄압하지, 영세상인 다 죽이지, 또 중소업체에 횡포부리지, 주변 교통 마비시키지, 사람들을 소비 풍조에 물들게 하지, 자원 낭비하게 하지.. 뭐 이유를 대라면 얼마든지 댈 수 있고, 또 이런 배경에 대해서는 굳이 내가 잘난척하지 않아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몰라서 이용하는 게 아니라는 거.

노동자 탄압하고 착취하고.. 그래서 불매운동 하자고 해도 사실은 거의 가능하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옛날 낙동강에 폐수 방류한 두산 불매운동 할 때만 해도 약간 영향력이 있었지만 요즘은 별로 실천되지 않는다.

롯데 노조에 공권력 투입되고 롯데 불매운동 할 때 대학에 초청강의를 간적이 있는데 학생회 간부가 나한테 롯데 음료를 가져다 주었다. 내가 롯데 불매운동하기 때문에 안마신다고 하니까 당황하며 다른 걸로 바꾸어 주었다.

배달호 열사 돌아가시고 두산 불매운동할 때 내가 유일하게 마시는 청하도 두산 계열사 상품이라해서 눈물 머금고 소주마시거나 선배꼬셔서 백세주 마셨다. 뭔들 그런 실천에 동참을 안해봤겠는가... 그치만 역시 잠시 뿐이다. 어떤 상품엔 또 어떤 노동자의 피눈물이 배어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문래동 사무실 옆에 홈플러스가 있다. 사무실에 차를 가지고 오는 사람들에게 홈플러스 주차장을 이용하라고 한다. 24시간 무료... 크으~~ 아주 넓은 대형주차장을 완비한 사무실이라고, 마치 우리 땅인 양 맘대로 쓴다.

가끔씩 뭔가 급히 사야할 때, 사무실에 커피가 떨어졌을 때 갈등을 한다. 내가 그런 곳 안다닌다는 거 알고 옆자리 친구는 물건 살 때 꼭 자기가 간다. 생각해보면 참 얌체같은 짓을 한다 싶다. 나만 안가면 그만인가? 쩝~~ 그러면서 또 갈등...

나는 그냥 내 생각이 그렇고 우리 남편과 내가 약속했다고 알려주는 게 서로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고 이야기 한 건데... 그렇다고 주변사람들을 죄인 취급하긴 싫고, 또 강요하기도 싫다. 없는 살림에 조금이라도 싼 물건을 사다놓고 두고 두고 쓰겠다는 건 어쩔 수 없는 강요된 선택이고 어찌 이를 탓할 것인가 말이다.

그러니 이 약속도 얼마나 지켜질 지는 잘 모르겠고, 또 어떤 식으로 타협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갈 때까지 가보는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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