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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원형과 정난정

그동안 산국을 따러 갈 기회가 없었다.

어제는 맘먹고 산국을 따러갔다.

이왕 산국을 따는 길에 후배 태하랑 함께 하기로 하고, 답사를 겸하기로 했다.

이곳 고양시보다는 아무래도 자연이 덜 훼손되지 않은 파주가 산국이 더 많을 것 같았다.

그래서 윤원형과 정난정의 무덤이 있는 파주 교하를 선택했다.

 

정난정의 무덤/ 첩의 몸으로 정경부인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남편 윤원형 무덤 바로 옆에 있다.

 

파주시청 홈페이지 안내는 참으로 불친절했다.

윤원형네 집안 무덤은 문화재로 지정되었고, 넓이만도 22만평에 이른다고 하는데,

홈페이지가 알려주는대로 따르다가 목적지를 가운데 두고 크게 한바퀴 돌았다.

 

윤원형과 정난정, 그리고 문정왕후.

그들의 극적인 삶만큼이나 TV 사극에 여러 번 등장했던 인물들이다.

 

일명 파평윤씨 정정공파 묘역은 파주시에서 문화재로 지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안내도조차 없다.

 

파평윤씨는 조선의 대표적인 왕비족이다.

특히 이곳에 있는 윤번(정정공)의 후손 중에 3명의 왕비가 나온다.

그러니 그 위세가 짐작하고 남음이 있겠다.

 

 

조선 전기의 왕실혼인도/ 세조비 정희왕후 윤씨가 윤번의 따님이다. 그리고 중종의 비인 대윤의 장경왕후와 소윤의 문정왕후가 모두 윤번의 후손이다.

 

윤번을 중심으로 가계도를 그리면,

 

윤번 --- 사윤(士昀, 2번째 아들) - 보() --- 장경왕후(보의 손녀)
         |                                                         |

         |                                                         -   윤임(보의 손자)

         |

          - 사흔(士盺, 3번째 아들) - (계겸, 사흔의 둘째아들) --- 문정왕후(계겸의 증손녀)

         |                                                                               |

         |                                                                                - 윤원형(문정왕후의 4째 동생)

          - 정희왕후 윤씨

 

이와 같다. 즉 윤임과 윤원형은 9촌 관계이고, 윤임이 아저씨다.

그러나 윤원형 세력에 의해 윤임과 그의 세 아들이 사형을 당했다.

자신의 조카가 왕위(명종)에 오르면서 윤원형은 승승장구하여 벼슬이 영의정에 이른다.

정난정은 첩에서 정경부인으로 신분상승을 한다.

 

윤원형의 무덤/ 비석 뒤로 숨어 있는 무덤이 정난정의 무덤이다. 윤원형과 정난정은 스스로 자살하였기 때문에 삭탈관직만 되고 후손들이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문정왕후의 9년간에 걸친 섭정이 있었고,

유림의 반대를 무릅쓰고 승과를 부활하였고,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끈 서산대사나 사명대사는 이때 승과 부활로 승과에 급제한 승려들이다.)

윤원형은 권력을 한손에 잡았고,

정난정은 첩에서 정경부인이 되었으니

그 과정에서 무리가 없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시기와 원한 또한 막대하였을 것이다.

 

물론 동정 따위를 하자는 게 아니다.

윤원형이 권력을 장악한 동안 축재하여 서울에 16채의 저택이 있었다고 하는데 동정할 이유가 뭐가 있으랴. 다만 권력을 장악한 자들에 대하여 믿음이 가지 않기 때문에 그들을 폄하하였던 권력자들 또한 믿지 않을 따름이다.

 

 

 

이곳 묘역에 있는 무인석

 

이곳 정정공파 묘역을 들러보니 의외로 무인석이 많다.

무덤 앞에 세우는 인물상은 왕실이 아니면 무인석을 세울 수 없었다고 하는데

이들은 문인석 대신에 무인석을 많이 세웠다.

권력의 중심이면서도 그 권력의 질서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행위를 하는 것은

그때에도 종종 있었나보다.

 

윤지임의 무덤/ 문정왕후와 윤원형의 아버지 무덤이다. 남의 처첩을 가로채는 등 전횡을 많이 했지만, 아들과 달리 외척은 정치와 멀어야 된다는 신조로 살았다고 한다. 덕분에 후손들이 무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영의정을 지낸 이 치고는 초라한 윤원형의 무덤과 달리 그의 아버지 윤지임과 그의 큰형 윤원필의 무덤은 아주 당당하다.

 


정정공 윤번의 묘(뒷편)와 그의 부인 인천이씨의 무덤/ 인천이씨는 따님(정희왕후)이 왕후가 된 후 죽었기 때문에 남편보다 장명등이 더 장대(민간 무덤에서 가장 크다고 함)하다고 한다.

 

산국은 어떻게 됐을까.

이상하게 이곳에서 그렇게 많이 돌아다녔는데도 산국을 발견할 수 없었다.

다음주에 산국 따러 또 갈 수 있을까.

 

그리고 이곳은 넓은 산들이 높지도 않고, 포장되지 않은 길들이 능선에서 능선으로 이어져 있어 산책이나 자전거 타기 참 좋을 것 같다.

 

가장 찾기 쉬운 방법은 교하 이마트 안쪽 마을에서 산으로 넘어가는 길(막힌 것 같지만 있음)이 있는데, 그리로 넘어가면 된다. 워낙 넓으니 혹시 가게되면 먹을 것 싸가지고 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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