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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 빠지다.

내가 사막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3년 쯤 되었을 것이다.

소비에트가 붕괴되고, 문민정부가 들어섰을 때 쯤이다.

그해 박상우는 '사하라'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이후 대세인 듯 쏟아져나온 후일담 소설의 시작이었다.

 

그때 쯤 이른바 '조직'들은 공안탄압에 의해 거의 붕괴되었고,

소비에트 붕괴와 함께 전망을 잃은 활동가들은 대부분 조직 재건의 길에서 이탈했다.

 

그래도 노동탄압과 공안탄압은 여전했고,

거리의 데모도 여전했다.

 

그러나 그 거리의 데모는 어쩐지 이전보단 맥이 빠진 것이었다.

여전히 높이 일렁이고 있지만 머지않아 스러질 운명에 기세를 잃어버린, 폭풍우 지난 다음에도 관성처럼 일고 있는, 바다의 파도처럼 말이다.

 

사하라는 이런 상황을 시대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사막풍경

 

시위가 있는 현장에서 약간 벗어난 골목길 바에 앉은 두 남녀는

아련히 들려오는, 한 때 그들 삶의 일부였던, 시위대의 구호 외치는 소리와 최루탄 쏘는 소리가

마치 "축제의 밤에 터져 오르는 폭죽소리"처럼 들리기도 하듯,

익숙한 현실에서 한 발 비껴 있었고, 또 다른 피안을 찾지도 못하고 있었다.

 

여자는 피안을 찾기보단 숨고 싶었고,

스러저가는 자신의 열정과 반대로 "태양이 이글거리고, 한낮 내내 불기둥 같은 복사열이 피어오르는" 그곳에 가고 싶었다. 바로 사하라.

열정, 그러나 너무나 낮선, 그래서 현실이 아닌 그곳, 사하라.

그때부터 난 사막에 관심을 갖게 됐고, 사하라에 가고싶어했다.

 

나는 한번도 사막에 가보지 못했지만, 말로 표현 못할 황량함이 있을 것 같은 곳,

외로움이라고 표현하기조차 벅찬, 너무나 큰 외로움이 있을 것 같은 곳,

그래서 그곳에 다녀오면 현실의 외로움 따위는 하찮아지고,

온갖 유혹으로 혼탁해진 영혼은 좀 더 맑아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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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다시 사막으로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

독일인 누군가가 쓴 '최후의 베드윈'인지 '마지막 베드윈'인지 재미없는 체험기를 꾸역꾸역 읽고,

요즘은 그 책보단 훨씬 재밌지만, 그래도 조금 따분한 테오도로 모노의 '낙타여행'을 읽고 있다.

 

테오도로 모노의 '낙타여행'

 

지난 일요일에는 산에 가자는 친구의 청도 거절하고, 집에서 놀자는 아내와 성연이의 청도 거절하고, 피곤하여 쉬고싶은 욕망도 뿌리치고 국립도서관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BBC에서 만든 다큐 '모래의 바다 사막'도 보고, 다우리 엔터테인먼트에서 만든 '사막의 세계'를 DVD로 봤다.

다큐는 역시 BBC가 잘 만드는 것 같다. 이어서 본 MBC의 '대사하라'를 시시해서 못보게 만들 정도였다.

 

황량한 사막에도 비가 온다.

비가 온 다음에 사막은 초원으로, 꽃밭으로 변한다.

두메양귀비로 보이는 노란 꽃들로 끝없이 뒤덮힌 아리조나 사막...

놀랍다.

알제리 사막에는 비가 오면 빨강 개양귀비가 끝없이 피어나고,

그 사이로 듬성듬성 보랏빛 엉겅퀴가 피어난다고 하는데...

 

그러나 곧, 꽃들을 이고 있는 그곳 땅조차 멀지 않아 잊어버리고 말, 짧은 연극은 막을 내리고,

다시, 본래 그 모습이랄 수 있는, 황량한 사막으로 돌아간다.

 

테오도로 모노는 말한다.

"사하라는 냉혹한 곳이다. 얼마 안 있으면 우리도 사하라를 닮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자신의 고통도 묵묵히 견뎌낼 것이고, 다른 사람들이 고통에 대해서도 무감각해질 것이다."

 

....

정 떨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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