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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기념 산행

1.

 

지난 수요일(6월 24일) 보강이 끝나고 약 2달 간의 방학이 시작되었다.

 

어제는 방학 첫날,

한 학기를 마친 나 자신에게 선물을 해야지.

 

짐을 싸들고 산으로 향했다.

내가 선택한 코스는 장흥 말머리고개에서 출발해서, 고령산을 거쳐 보광사로 내려오는 것이었다.

 

등산코스/ 오른쪽 끝부분 장흥에서 기산저수지 너머가는 말머리고개에서 출발하여 보광사로 내려오는 길이다.

내가 선택한 등산코스/ 오른쪽 끝에 있는 말머리고개에서 출발해서 왼쪽 1번 보광사로 내려오는 길이다.

 

 

이 코스는 예전부터 한번 가보고 싶었었다.

집에서 가깝고,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곳 - 얼마나 멋진 조건인가.

 

버스 시간표를 알아보니 보광사는 약 30분에 1대 꼴로 버스가 다니고,

말머리고개로는 3시간에 1대, 하루 4번 운행한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말머리고개에서 출발해서 보광사로 내려오는 코스였다.

 

산마루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대체로 평탄하고 한적하다.

 

 

2.

 

구파발역에서 오전 10:10에 출발한다.

아침 설겆이도 하지 못하고 부랴부랴 도착했다.

차는 단 1분도 늦지 않고 정각에 출발했다.

 

차 안은 거의 할머니들이었고, 어쩌다 나같은 등산객들이 한둘 눈에 띈다.

일영을 지나고, 장흥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농촌풍경이 많이 남아 있다.

 

장흥역을 지나면 계곡은 유원지로 바뀐다.

음식점과 숙박업소가 계곡을 따라 빼곡하다.

 

기산저수지로 넘어가는 말머리고개는 제법 경사가 가파르다.

말머리고개 정상에는 송추유스호스텔이 있는데, 정류장 이름도 송추유스호스텔이다.

 

여기서 내려서 유스호스텔로 접어들면 등산길이 시작된다.

 

 

 등산로 주변은 나무가 울창해 멀리 있는 풍경이 보이지 않지만 이렇듯 시야가 뻥뚤린 곳도 나타나기도 한다.

 

 

3.

 

411봉을 지나고 얼마 안 가 그 귀하다는 천마를 발견했다.

이파리가 없이 줄기만 쭉 올라온 특이한 모습이다.

언젠가 TV에서 본 것이어서 뭔가 귀한 약재려니 했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천마였다.

 

야생천마 줄기/ 중풍 등 혈관계통 질환에 매우 좋다고 한다.

 

 

다섯 뿌리다.

난 그중 제일 작은 것 한 뿌리를 캤다.

씨앗을 맺었는데, 누군가 손이 타지 않는다면 혹시 씨앗이 떨어저 더 많이 퍼졌으면 하는 기대 때문에

다른 것들은 캐지 못하겠더라...

근데, 씨앗으로 번식하는 거 맞나???

 

이 등산로의 특징 중 하나는 안내팻말이 거의 없다는 거다.

지도를 복사해서 갔지만, 해적의 보물지도처럼 현실에서 길을 찾는데 그리 요긴한 것만은 아니다.

결국 길을 잃었다.

498봉우리에서 다른 길이 없어서 앞에 보이는 길을 따라 내려갔는데, 도무지 방향이 아니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은 대체로 서쪽인데,

그렇다면 그림자가 오른쪽에 와야 하는데, 

 그림자를 뒤에서 나를 따라 오고, 때로는 왼쪽으로 오기도 한다.

그렇담 동남쪽으로 내가 가고 있는 거다.

 

그래도 미련이 남아 한참을 가는데, 이건 도무지 아닌 거 같아 498봉우리로 되돌아 왔다.

봉우리 정상에는 헬기장이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서북 방향으로 길이 숨어있었다.

 

기산보루성/ 535봉우리 정상에 있는 것으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유물이 나온다고 한다.

 

 

4.

 

이 산길은 사람들이 많이 안 다니고, 높아서인지 둥굴레, 취나물, 고사리 등 나물종류가 지천이다.

지금은 나리꽃과 싸리꽃 따위가 군데군데 피어 있다. 

 

절벽에 핀 나리꽃/ 봐주는 이 없어도 꽃은 참 예쁘게 피었다. 나비라도, 아니면 지나는 산들바람이라도 한번 들려 흔들어 주려나...

 

 

조금 지나니 바위로 된 조그만 봉우리가 나타났다. 올라가니 사방이 뻥뚤렸다. 전망대란다.

바로 밑은 장흥 계곡 안에서 가장 넓은 골짜기인 돌고개 마을이다.

돌고개 마을은 이제 큼직한 모텔들로 가득 차서 번화하기가 도회나 다름 없다.

좋은 풍경과 환경은 모두 개인이 점유하고, 대중은 배제되는 척박한 우리사회 현실이

이 산골짜기에도 어김없이 반영되고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돌고개 마을/ 장흥계곡에서 가장 넓은 곳이다. 지금은 빼곡히 들어선 모텔들이 도회를 형성하고 있다. 멀리 바라보이는 산이 도봉산과 북한산이다.

 

 

5.

 

전망대를 지나면서 무시무시한 팻말들이 나온다.

군사지역이라 뭐뭐는 하지말라는 경고와

지뢰 매설지역이었는데, 3년 전에 지뢰를 제거했지만 조심하라는 경고다.

그럼 지뢰매설 때문에 이 등산길이 잘 안 알려진 건가?

 

어쨌든 고양시 계명산 쪽 능선에는 군부대가 길게 자리하고 있다.

다행히 내가 가는 고령산 쪽은 아니다.

 

보광사 뒷산이기도 한 고령산 앵무봉은 이 산줄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다.

해발고도 622m.

앵무봉에 올라가면 고양시와 파주시, 양주시 등이 훤하게 내리보인다.

습기가 높아서인지 흐릿했지만, 그래도 한강과 임진강이 뚜렸하게 보인다.

 

싱아군락/ 앵무봉 정상 주변에는 요즘 보기 힘든 싱아가 군락을 이루고 살고 있다.

 

정상 바로 아래 있는 멋진 소나무/ 이 길로 내려가면 도솔암을 거쳐 보광사로 내려갈 수 있다.

 

 

6.

 

앵무봉에서 보광사로 내려오는 길은 매우 가파르다.

도중에 도솔암이 있는데, 단청은 벗겨지고, 지붕은 무너져 천막으로 덮여있다.

그래도 독경소리는 맑아 오히려 신선했다.

 

보광사 도솔암

 

 

도솔암도 이제 중창불사를 하려나보다.

도솔암 밑으로 맑은 계곡길을 생각하면서 내려왔는데,

새로 닦은 널찍한 신작로다.

 

그늘도 없고, 가파른 찻길을 내려오려니

강렬한 햇볕과 밑으로 쏠려 아파오는 발끝의 통증 때문에 산행하는 맛이 안 난다.

 

보광사.

이곳은 조선 영조대왕의 원찰이기도 하다.

자기 어머니를 이 근처 소령원에 모시고,

이 절에서 어머니의 명복을 빌고,

묘소에 들릴 때는 이곳에서 머물기도 했다고 한다.

 

보광사 대웅전/ 산사람들 복을 기원하는 기도를 한다고 한다.

 

 

나는 이곳 망자의 넋을 기리는 불당 앞에 섰다.

한번은 들어가 부처님께 절을 해야지 했는데,

꼭 그렇게 해야만 할 일이 있는데,

결국 못 했다.

다만 불당 앞에 오래 머물렀을 뿐이다.

 

어고(魚鼓)/ 이 북소리를 듣고 물고기들도 감화되려나... 이니면 극락왕생하려나...

 

보광사 안에 있는 찻집/ 한번 가보고 싶다.

 

 

보광사는 한 때 민중불교의 중심이기도 했다.

그때 이곳 주지였던 효림스님을 중심으로

연고가 없는 장기수, 빨치산 선생들의 묘소를 조성한 적이 있다.

 

몇 해 전 요즘 서울광장에서 설치는 군복을 입고, 붉은 모자를 쓰고, 썬그라스를 착용한 자들이

이곳에 쌍맹이를 메고 이 절에 난입한 적이 있다.

이곳에 묻힌 연고가 없는 장기수, 빨치산 선생들의 묘소를 부수기 위해서였다.

결국 선생들의 묘소는 다른 곳으로 이장하게 되었다...

 

연고가 없는 장기수, 빨치산 출신 선생들의 묘역이 있던 곳/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장해서 빈터만 남았고, 군데군데 호박을 심었더라.

 

연우지석(戀友之石) / 벗을 그리워하는 비석이랄 수도 있고, 사랑하는 벗을 위한 비석이랄 수도 있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에 세워진 비석이다.

 

 

청화스님은 연고가 없는 장기수와 빨치산 선생님들을 이곳에 묻으면서

/호르록 날아간 산새여/라는 노랠 불렀다.

저 연우지석 비석 밑돌에 새겨져 있다.

 

 

호르록 날아간 산새여

                           - 청화

 

남쪽 향로에

반쯤 타던 향

홀연히 쓰러져 꺼진 날

 

북쪽 빈 법당

가득히 남은

향내음을 어찌 하리

 

아침이슬에게도

저녁바람에게도

이제는 물을 수 없는

 

일홀불견의

안타깝고 안타까운

오오 그대의 행방

 

어디갔느뇨

오월 신록이

목 놓아 부르도록

 

한 점 지리산을

깃처럼 떨구고

호르록 날아간 산새여

 

오늘 목탁소리

뿌리까지 울려

단풍이 드는 나무

 

그 아래 한가인의

여섯 줄 끊어진

현금을 또 어찌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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