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마누라 김양희 방입니다.

9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7/26
    네모난 공간이 싫어(4)
    풀소리
  2. 2006/01/25
    오래도록 힘든 시간을 견뎌낼 수 있기를(3)
    풀소리
  3. 2005/09/05
    책임지지 않는 자유로움(4)
    풀소리

네모난 공간이 싫어

성연이가 어제부터 방학이다.

고로 나는 종일 근무이다.

오전에 배드민턴 치고 들어와 둘이 뒹굴거리며 놀 때 이야기..


-엄마, 학교는 좋기도 하지만 안 좋기도 하지?

-왜?

-왜냐면 학교는 친구 만나서 놀 때는 좋지만 네모난 공간에 우릴 가둬놓고 억지로 공부시키잖아...

_ 음...네모난 공간에 가둬놓고 공부시키는 게 싫은 거지? 그럼 동그란 공간이면 상관없는 거야?

- ..... 엄마, 왠지 기분 나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오래도록 힘든 시간을 견뎌낼 수 있기를

 

이번 지역위에서 출마한 중앙위원들과 중앙당. 도당 대의원 후보들의 출마의 변을 읽어보면서 내 마음을 끄는 구절이 있었다.

중앙당대의원에 출마한 이성수씨의 글 중 한 부분인데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노력하며 살아가야합니다’

이 당연한 얘기가 마음에 와 닿은 것은 우리가 겪을 시간들이 이전보다 더 고통스럽고 힘들거라는 것과  그리고 그 시간이 정말로 길거라는 예감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 내가 지지한 후보들은 아직 결선이 남은 조승수 후보만 빼고 다 떨어졌다.

나의 지지가 주관적이고 편파적임을 인정한다.

나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고 - 앗! 술처먹고 쓰는데도 단어가 생각이 안 난다. 돌겠네 - 자신할 수 없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두렵다. 하지만 그 두려움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비겁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구정물에 발을 담그고 지나가야 하는 시기라고 판단하기에 후보 지지글도 올리고 선거운동도 했다.

정책위의장으로 이용대 후보가 과반이 넘는 득표를 한게 가장 큰 충격이다.

허거덩... 그나마 중앙당 홈페이지에서 가보던 정책자료실도 이제 갈일 없겠다.

늘상 지는 투표만 해왔지만 그런다고 이 결과가 허탈하지 않을까?

실연의 상처야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기도 한다지만 당활동에서 시간이 과연 위로가 되어줄 수 있을까?


진실로 바라옵건대 나의 선택이 오류였기를, 그리고 그들의 선택이 옳았기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책임지지 않는 자유로움

이 글은 아내[ 결혼생활 8년 만에 드디어 내가 미쳐가는구나.] 에 관련된 글이며,
풀소리[아내의 분노와 그 정체는 뭘까?] 에 관련된 글이다.

-----------

▶◀ 고 류기혁 조합원의 명복을 빕니다.

 

-----------

또 한 명의 동지가 목숨을 바쳤다.

동지가 죽고, 투쟁의 불길을 옮겨야 할 자리에서

투쟁 이외의 글을 쓴다는 건 무안하기만 하다.

 

또한 난 개인 사이에 감정을 많이 드러내는 걸 좋아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와 감정을 다중 앞에 드러내는 것은 싫어한다.

괜히 칭얼대는 아이처럼 보인다고나 할까...

 

그래도 이 글은 올려야겠다.

아내가 '결혼생활 8년 만에..' 글을 올려달라고 했을 때에도

내가 거기에 대하여 답글을 올렸을 때에도

다른 어떤 것보다 아내와 나 사이의 소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최소한의 아내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이 글은 어찌보면 (지극히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3부작 완결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이글에 대하여 답글은 쓰지 않을 계획이다.

아내가 지적한 나의 문제점은 90% 정도는 수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으면 고쳐야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난 내가 수긍하는 100%를 고치지는 못 할 것이다. 못 고치는 부분은 나의 '욕심' 부분이 가장 클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하여 아내의 이해를 구한다.

 

그리고 그동안 마음 써준 분들께 고마운 말을 전한다.

다음은 아내의 글이다.



결혼하고 나서 2년째 즈음인가 “주말의 명화”에서였나 아님 일요일에 하는 “명화극장”에서였나 제목도 기억이 안 나는 (처음부터 본 것도 아니고 채널 여기저기 돌리다 본 영화다) 영화에서 갑자기 가슴이 맺힌 듯한 부분이 있었다.


대충 “000의 집짓기” 같은 제목의 영화인데 철없는 시절 만난 남자는 자식만 여섯 일곱 명을 남기고 어느 날 집을 나가버렸다. 배운 것도 없고 특출한 재능도 없는 이 여자는 대도시에서 박봉으로(비정규직의 처지가 그렇지. 흑흑) 애새끼들 데리고 사는 것에 넌덜머리를 내고선 커다란 트럭에다 얼마 안 되는 살림살이를 싣고 무작정 시골로 떠난다.

이 여자의 꿈은 자기 힘으로 집을 짓는 것이다. 그에 온 식구가 일을 해야 한다. 큰 아들은 인근 농장에서 아르바이트로 농사일을 도와주고 학교에 등교해야하고 엄마는 좀 더 멀리 떨어진 볼링장에서 근무를 하고. 자기의 노동력을 팔 수 없을 만큼의 아이들은 동네 고물상을 돌아다니며 집에 쓸만한 것들을 주워 온다. 엄마는 자신의 꿈을 빨리 이루고 싶은 만큼 아이들의 놀고 싶고 이것저것 사고 싶은 욕구들을 눌러간다. 보험사 영업사원처럼 지금까지 모은 돈을 그래프로 그려놓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뜻대로 쉽게 될 일이 없고 문제는 갈수록 꼬여간다. 아이가 놀다 지붕에서 떨어져 척추가 마비되는 장애인이 되고 때맞춰 아이를 돌볼 수 없기에 어린애들은 자주 아프고...


어느 날 엄마는 온 식구가 잠든 시간에 일어나 술을 마시다 펑펑 운다. 큰 딸이 일어나 엄마에게 묻는다. 왜 그러냐고. 엄마가 울다 대답한다. “애야, 이 엄마는 너무 힘들구나. 나는 너희들을 가득 실은 수레를 끌고 가야하는데, 수레를 끌 사람은 나 밖에 없는데 너희는 그것도 모르고 수레위에서 껑충껑충 뛰고 있구나.”

딸이 대답한다. “ 아녜요, 엄마. 우리가 수레위에서 놀 때도 있지만 우린 내려서 엄마 수레를 함께 밀고 있어요.”


수레를 혼자 끌고 있다고 생각할 만큼 여유 없는 엄마의 마음과 처지가, 그리고 그 수레를 함께 밀어주는 딸의 마음이 가슴에 참 따뜻하게 다가왔다.


난 가족이란 것도 같이 수레를 끌어가는 거라 생각한다.

앞에서 끌기도 하고 뒤에서 미는 사람도 있고 옆에서 신나게 노래를 불러 주는 사람도 있고... 담당하는 부분이 다를 순 있지만 같이 수레를 한 방향으로 나가게 하는 부분에서는 일치한다고. 적어도 나는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 야, 넌 왜 안 밀어!”라는 말이 나와야만 수레를 미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서론이 지나치게 길었나?

최경순은 내 불만의 정체를 모르겠다고 한다.

- 매일 술 먹고 늦게 들어오는 것 (내가 이런 직업가진 것 모르고 결혼했냐?)

- 돈 별로 못 벌어 오는 것 (이 직업이 그렇지. 돈은 너도 벌 수 있잖아. 돈은 왜 남자만 벌어야 된다는 생각 하냐?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살아야지.)

- 초청장에서 이름 빠진 것 (거꾸로 니네집 행사에서 내 이름 빠졌다고 난 성질내지 않는다.)


나는 당신에게서 책임지는 사람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집안일을 도와달라고 말해야, 또는 아주 심하게 어질러 있어야만 하는 게 아니라...

나는 집안일을 할 만큼의 시간을 빼고 다른 활동의 시간을 잡고 당신은 다른 활동 다 하고 시간과 체력이 남으면 그제 서야 애랑 놀아주거나 집안일을 거들어 준다.

이건 내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지?


돈 적게 벌어 오는 것 정말 짜증난다. 사회에서 돈은 시간이니까.

돈이 없으니 하고 싶은 것도, 다르게 살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해보는 것도 많이 차단된다.

나나 당신이나 힘들어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사소하게는 술 먹고 종점까지 가는 바람에 택시비 달라고 한 햇수 ( 매번 미안해하지만 말 그대로 미안해하기만 한다.) 매월 술값으로 지불하는 돈. 땅 살 형편은 안 되지만 시어머니는 화장이 죽어도 안 되니까 묘를 써야하고. 이를 배려하는 마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들어 주고 싶다. 하지만 그것을 들어 줄 수 있는 어떤 방법도 안하는 그 태도. ( 장성한 3형제끼리 매월 돈을 걷자는 제의도 부결하지 않았나. 당신의 그 변론의 진의를 의심해서가 아니라 정말 그런지 궁금해. 신용불량자인 내 친정언니도 사무국장도 그 부분은 이해를 못해. ) 자신이 바라는 것, 들어주고 싶은 그 일에 왜 항상 당신보다 나의 노력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하는 것은 싫어.


마지막으로 이름 뺀 것 - 대체로 이 일은 내 글에 동감하는 사람들조차 이것은 우발적 해프닝이나 뇌관을 건드린 그 무엇으로 보는데 난 생각이 달라.

당신은 격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라는 것으로 답을 했는데. 그리고 대부분의 남자들이 이름은 넣을 수도 안 넣을 수도 있지 않느냐라는 반응인데.

격식은 그 사람과의 마음과는 정말로 별개의 것인가?

난 아니라고 생각해. 그동안 당 활동이나 노동운동하면서 시다바리 다하고 이름(개인이 아니라 당명이나 단체명) 한 줄 안 올라가는 것에 대해 우리는 열라 성질내잖아. 그건 정치적인 거고 이건 가족 일이라고 말한다면 내게 시댁은 보다 정치적인 공간이야.

결과적으로도 행사가 굴러가는 과정도 내 의지는 별 반영이 안 되잖아.


당신이 나이에 비해 사고나 행동이 안 막혀있고 자유롭다는 것.

나에게는 그것이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 자의 자세에서 나온 걸로 보여.

난 수레를 같이 끄는 사람이 필요한 거지 어쩌다 도와주는 마음 좋은 이웃이 필요한 게 아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