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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진 것은 없다!

2002-03-09

 

 

집에서는 텔레비전을 보는 것 외에 별다른 일을 하지 않는 내게 그럴듯한 다큐멘터리들은 그나마 단순해질 수 있는 나의 여가 시간을 조금이나마 의미있게 해준다.

어제(2/24)는 문화방송의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그 역할을 해주었다.

유언비어처럼 지하로만 돌던 북파공작원들의 증언들.........

 

이미 알 것은 다 안다고 생각했던 나에게도 50대에서 80대까지, 한국전 당시부터 70년대까지 북파공작원으로 혹독한(이 말은 이들의 훈련을 표현하기에 턱없이 약한 말이다)훈련과 생사를 넘나든 그들의 삶은 충격이었다. 아니 충격이라기 보단 분노였다.

 

국가가 스파이를 양성하고, 그 스파이로 하여금 적국의 정보를 수집하거나, 그 국가를 혼란스럽게 하기 위해 각종 공작을 펴는 것은, 내가 그것을 옳다고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어쩌면 이미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다. (우리는 모두 헐리우드의 '007' 씨리즈에 열광하고 있거나, 혹은 열광했던 기억들이 있으니까............)

하지만 북파공작원들에 대한 국가의 범죄 행위는 어떤 말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 찬란한 미래를 약속하는 국가의 사기에 넘어가 '인간병기'로서 냉혹한 훈련을 감내하고, 임무 수행 도중 죽거나 부상당한 이들은 그저 그렇게 역사의 어둠 속에 묻혀지고 말았다. 지난 수십년 동안 어떤 언론도 이들의 비참한 삶과 죽음을 보여주거나 들려주지 않았다.

 

혹은 정신병자 수용소에서, 혹은 두메산골 외딴집에서 청춘 이후의 모든 삶을 감춰두고 한달에 20일을 눈물로 보내야 했던 그들의 고통은 그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소복을 입고 차가운 아스팔트에 엎드려 20년 혹은 30년 전 사라진 아들의 생사를 묻고, 남편의 명예회복을 호소하는 우리 어머니들의 손을 누구도 잡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텔레비전을 함께 보며 나의 아내가 이렇게 말한다.

'세상이 좋아지긴 했나봐. 예전 같으면 어떻게 텔레비전을 통해 저런 진실이 세상에 알려질 수 있겠어.'

 

그렇다.

나도 국사독재에서 문민정부로, 그리고 다시 50년 만에 첫 정권교체로, 거듭 바뀌어온 정치적 환경이 세상을 조금씩이나마 나아지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다.

우리가 저들의 증언을 오늘에라도 들을 수 있는 것은 이제 저들의 삶과 죽음에 대해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더는 이 세상에 없거나, 그 자리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 북파공작원들이 훈련을 받고, 임무를 수행하고, 비참하게 죽어가거나, 죽지 못해 참혹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동안 우리가 전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듯이, 우리가 다시 30년 후에나 알게 될 또 다른 공작과 억압이 우리의 등 위에서, 발 밑에서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80년 광주를 시작으로 90년를 거치며 우리 민중들이 어렵게 일구어낸 많은 성과들이, 우리가 몇 몇 열매에 스스로 만족해하고 있는 지금, 여전히 이 땅의 유일한 주인이기를 고집하는 자들의 더 새로워지고, 더 치밀해진 전략에 의해 그 가치를 잃어가고 있다.

이 땅의 노동자들이 진정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해 줄 민주 노조를 갖기 시작한 게 얼마나 되었는가? 아무리 길게 봐도 10년 안팎이다.

그럼 그 노조가 제대로 힘을 발휘하고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변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 '아직'이거나, '이제 막'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노동자들은 적어도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으로 내몰려, 그 노동조합의 영향 밖으로 쫓겨나고 있다.

 

무엇이 나아졌는가?

 

다 같이 잘 살기 위해선 농업 정도는 포기해야 된다는 주장이 넘쳐나고, 그래서 이제 죽어가는 우리 농촌과 농업은 더 이상 국민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현실이, 그래도 군부독재 시절보다 나아진 것인가?

 

생산적 복지를 이야기하며,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노인들을 방치해 두고, 돈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부모를 쾌적하게 버려두기에 좋은 '실버타운' 만들기에만 힘을 쏟는 현실이, 그래도 조금은 나아진 것인가?

 

여성의 정치 참여가 늘고, 직장내 남녀 평등이 실현되어 가고 있다는 평등사회(?)에서 아직도 우리의 누이들이 거짓 빚에 팔려 다니다가, 갇힌 채 붙타 죽는 현실이, 그래도 많이 나아진 것인가?

 

노동조건, 작업환경을 개선하기는커녕 더 이상은 비안간적인 노동을 거부하겠다는 우리 노동자들을 탓하며, 외국인 노동자들을 음성적으로 들여와 싼값에 부려먹다, 짐승처럼 내쫓거나 패죽이는 현실이, 그래도 옛날에 비하면 나아진 것인가?

가정도, 건강도 다 포기하고, 동료마저 포기한 채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몇 안되는 사람들만이 떳떳한 국민으로 존중되는 그런 우리의 현실이, 그래도 행복해진 것인가?

 

더러워진 환경으로 자라는 아이들이 온갖 질병에 노출되어있고, 잘 먹어야할 청소년들이 없어서 굶거나 혹 있어도 못먹고, 늘어가는 대학 졸업자의 숫자만큼 실업자가 늘어가고, 이북의 우리 형제는 굶어도 소용에도 닿지 않는 무기는 사들여야 하는, 지금 우리의 현실이 내 아버지가 겪은 현실보다 그래도 나아진 것인가?

 

비참하다. 나아진 것은 하나도 없다.

 

그래도 군사독재보다 나아지려면, 어제 나를 고통스럽게 한 북파공작원들이 이제는 울지 말고, 정겨운 우리의 이웃으로 돌아와야 한다. 영하의 추위에 차가운 아스팔트에 엎드려 우는 우리 어머니에게 그 아들을 돌려주어야 한다.

 

아직 우리에게 나아진 것은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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