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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내 밥 지으러 간다

2002년 03월 19일

 

민주당의 노무현 고문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를 앞서서 이 나라 대통령감으로 지목되고 있다고 한다.
좋은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분주한 모든 분께 진심어린 경의를 표한다.

그분들이 항상 이야기 했듯, 나 역시 이회창 대통령을 모시고 사는 것 보다는 노무현 대통령이 몇곱절 이상으로 좋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이회창이 되는것 보다는 노무현이 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허나 이렇게 노무현 고문의 지지율이 높아져 가면서 어쩔 수 없는 나의 염려병이 도진다.

'어허, 이러다가 진보진영 지지층까지 다 노무현으로 돌아서서 또 진보진영은 개죽쓰는 것 아닌가?'

그리고 여기에 또 노고문 지지자들이 쐐기를 박으려 들 것이다.

'다 된 밥에 코 빠뜨리지 말고 우리 함께, 될 사람을 밉시다.'

나 역시 현실 정치인 가운데서는 노무현 고문을 그래도 가장 맘에 들어 하는 사람으로서, 내 한표에 대한 적지 않은 고민을 가지고 있다.
혹시라도 나같은 사람들이 찍어주지 않아서 진짜 다된 밥에 코를 빠뜨리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또 이렇게 생각하며 나의 선택과 판단을 확신한다.

"진보진영과 그들을 지지하는 민중들의 존재야 말로 이 오욕의 땅에 제한적이나마 민주정부, 국민의 정부가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사실, 나는 이 사실을 나의 확신으로 삼고 있다.

같은 민주당의 대통령 수험생 이인제 후보가 노고문을 향해 오늘도 이렇게 떠들고 있다.

'파괴적 개혁주의자'

이걸 망국의 색깔론이라고 이야기하며, 노고문 지지자들은 분개하고 있다.
언제나 이 색깔론 때문에 이 사회가 제 빛깔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옳다. 지나친 반공이데올로기, 그것이 우리 사회를 더 빨리 민주화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

그래서, 노고문은 이렇게 응수한다.

'나는 김대중 정부의 정책을 이어갈 것입니다.'

김대중 정도만 개혁하지, 그보다 더 심하게는 하지 않겠다는 말로 들린다.(물론 극성스러운 김대중 팬들을 의식한 측면이 더 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의 민주화 의지를 번번히 꺽었고, 지금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도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으며, 앞으로 본선 경쟁에 들어가면 더 한층 기승을 부릴 색깔론은,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로 인해 피해를 본다고 생각하며 정면돌파를 하지 못한 사람들에 의해서 그 생명을 이어 왔다고 나는 생각한다.

빨간색이라고 욕하는 사람들 앞에서
'빨간색이 어때서! 그럼, 그림을 파란색으로만 그리니?!'라고 당당하게 되묻지 못하고, '아니야 난 빨간색이 아니야!!'라고 강변함으로써, 우리 사회는 아직도 빨간색을 두려워하는 사회로 남아있다.(사실 요즘 때아닌 반미열풍에 휩싸여 있다지만 그것이 제대로된 한미 관계로까지 진전되지 못하는 것도 모두 이 빨간색 공포 때문이다.)
물론 이들이 자신들을 진짜 빨간색이 아니라고 믿고 있다면 그건 또 그들 나름대로 이유있는 변명일 수 있겠다.

어쨌든 이들이 자신을 빨갛다고 믿건, 그렇지 않든 새깔론을 잠재우거나, 추방하는데 이들이 한 역할은 조금도 없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들이 자신들이 빨간색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이들 역시 빨간색을 경계하거나, 심지어 적대시 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결국 이들도 필요할때는 색깔론으로 상대를 제압하려 들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들이 그토록 염려하는 색깔론은, 자신의 실제 색과 무관하게 다양한 색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일부의 합리적인 사람들과 또 자신의 색을 당당하게 드러내 놓고 그 색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대다수 진보진영에 의해서 극복되어지고 있고, 결국엔 그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때문에 설사 다된 밥(생각해 보니 그 밥은 노고문과 그 지지자들의 밥이지 내 밥은 아니다)에 코를 빠뜨리는 한이 있어도, 내가 지금껏 지지해온 진보진영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 될 사람을 밀어주는 엄청난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지금 내 밥 지으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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