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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 아줌마의 비밀...

배움을 함께 나누는 것은 서로를 존중한다는

가장 마음 깊은 표현이라 생각한다.

 

  '목욕탕 아줌마의 비밀' 등 

  〈전태일통신 17〉야학일기 

 

  저는 20여 년 전부터 야학을 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 초반에는 학교를 다니다가 못 다닌 젊은 친구들이 많았지만 요즘은 아주머니들과 할머니들이 많이 오십니다. 이상하게 아저씨들이나 할아버지는 별로 없습니다.

 

  수많은 사연들과 에피소드들이 매일 생겨나는 곳이 우리 야학입니다. 초등부에는 글을 몰라 여태 까막눈으로 살아 오시다가 며느리한테 글을 모른다는 것이 발각되면 며느리한테 무시당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집안에서 아무도 몰래 우리 야학에 오시는 70을 바라보는 할머니도 계십니다. 저희도 항상 며느리한테 안 들키도록 여러 가지 배려를 합니다. 이 할머니는 끝까지 며느리한테 들키지 않기 위해 애를 쓰셨습니다.

 

  가끔은 직장에서 돌아와서 피곤하지만 저를 기다리고 있는 이런 아줌마들을 생각하면 새롭게 힘을 내서 야학으로 가곤 합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먹고살만 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먹고만 살면 되는 게 아닌 듯 합니다. 문화적으로 소외되고 배움으로부터 격리되어 세월 속에 묻혀진 세대들에게 다시 배움의 길을 열어줄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진정 사람 사는 공동체가 아닌가 싶습니다.

 

  뜻밖에도 아직 우리나라에는 이처럼 적지 않은 문맹자와 배움에 목말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좀 더 이런 분들에게 배려가 있어야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 좀 더 따뜻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야학에서 글을 배우신 두 분 아주머니의 글을 소개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이렇게 훌륭하게 표현하실 수 있는 분들이 그동안 얼마나 답답했겠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을 것입니다. 충분히 이해하겠지만 글을 쓰신 분들의 이름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띄어쓰기와 맞춤법만 교정을 보았지 나머지는 대부분 다 아주머니들의 솜씨입니다.

 

  하나. 〈목욕탕 아줌마의 비밀〉

 

  나는 목욕탕에서 매점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목욕탕에 오는 아줌마들한테 이것저것 팔면서 가끔 맛사지를 해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맛사지도 해줍니다.

 

  5년 전 5월 어느날. 텔레비전에서 야학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보고 바로 그곳에 전화를 했습니다. 상록배움터라는 이름의 야학에서 바로 뒷날 와도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설레기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를 나오고 그 후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나로서는 오십이 다 된 이 나이에 다시 학교에 다닌다는 것이 오랜만에 가슴이 뛰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려고 하니 걸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직장에서 마감시간이 안 되었는데 나 혼자만 나간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미리미리 이것저것 정리를 해놓고 사장님께 이야기를 했더니 다행히 흔쾌히 허락해 주셨습니다. 비록 저녁에 다니는 야학이지만 시간에 맞춰 학교에 가는 기분은 정말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나이를 먹어도 학교에 다니면 철부지 학생이 되는가 봅니다.

 

  야학에 가보니 저와 비슷한 아줌마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분위기도 무척 좋고 선생님들도 훌륭하셨습니다. 하지만 막상 수업이 시작되니 애가 탔습니다. 왜냐하면 배우는 과목 모두가 생소하고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것들뿐이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수업시간을 빼지 않고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야말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무슨 일이 있어도 빼놓지 않고 다녔습니다. 세월이 가니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얼마간 알아들을 수가 있었읍니다만 아무리 다녀도 수학시간만 되면 머리가 아프고 앞이 캄캄했습니다. 수학시간이 겁나고 열심히 가르쳐주시는 선생님들한테 미안하고 좌우지간 그 시간에는 머리를 처들지 못하고 그저 열심히 쓰기만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어느날부터는 수학도 귀에 들어오기 시작하였습니다.

 

  1년 뒤 어렵게 중학교 과정 시험에 합격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중학교 검정고시만 붙으면 그만 두자 하던 것이 이번에는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아줌마가 고등학교 나왔다고 하면 하늘처럼 우러러 보였던 지난날이 생각났습니다. 나라고 못할 거 뭐 있나 싶어 고등학교 과정에 도전하기로 하였습니다.

 

  고등학교 과정은 중학교 과정보다 열 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하루도 빠짐없이 꾸준히 다녔습니다. 그저 이날 이때까지 남보다 부지런하고 남들한테 나쁜 일 안 하고 성실 하나로 아이들 키우면서 살아 온 저의 힘은, 알아듣든 모르든 그저 열심히 학교에 다니는 게 공부였습니다.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이 시험에 들어 하나둘 다 떠났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이까짓 꺼 때려치울까 생각을 하고 했지만 그러기에는 그동안 졸음을 참으며 공부했던 것이 너무나 아까웠습니다.

 

  9번이나 시험을 봤는데도 계속 떨어졌습니다. 야속하기도 하고 눈물도 나기도 하고 왜 이렇게 열심히 쫒아다니는 데도 공부를 못하고 시험에 붙질 못하는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긴 세월을 죽 다녔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땐가 갑자기 선생님들 말씀이 이해가 되고 머릿속에 조금씩 뭔가가 들어오기 시작하였습니다.

 

  10번째 시험보는 날, 왠지 이번에는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시험 보러 갈 때마다 옆사람들한테 저는 애 낳으러 간다고 합니다. 진짜 애 낳는 거하고 똑같은 고통이 옵니다 이것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를 겁니다. 시험 발표 날 드디어 저는 고등학교 졸업 합격증을 갖게 되었습니다.

 

  공부라는 것이 죽을 때까지 해도 못하는 것이라고 선생님들이 말씀을 하십니다. 이제 더 욕심이 나서 나도 다른 사람들한테 내가 배운 것을 가르쳐 주고 싶습니다. 저희 야학에는 초등부가 있어서 글을 모르는 아줌마들이 여러 명 다닙니다. 거기도 선생님들이 계시지만 저도 가끔 초등부 아줌마들의 글자 연습을 봐줍니다. 그러면서 항상 그 아줌마들한테 내 얘기를 해줍니다.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하라고.

 

  학교 못 다닌 것에 포원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상록배움터가 있어서 저는 정말 행복합니다.

 

  둘. 〈선생님들께〉

 

  존경스러운 선생님들 !

 

  전 두 아들을 둔 엄마입니다. 사실은 아이들에게 좀 더 열심히 공부하라는 뜻에서 엄마로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공부를 시작했던 것입니다. 물론 못 배운 것이 한이 되어 배우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큰아들 놈이 자기 친구들에게 우리 엄마가 이러이러한 공부를 하고 있다고 자랑을 하는 겁니다. 어디 자랑거리가 없어서 자기 엄마가 이제야 이런 공부를 하고 있다고 감히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자식 친구 놈이 "어머님 검정고시 공부하신다면서요. 대단하십니다!" 이러지 않겠습니까? 난 눈물이 나고 당황스러웠지만 창피한 것도 잊고 솔직히 얘기해 준 아들 놈이 고마워서라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는 않아 선생님들에게 미안한 생각으로 이를 악물고 나름대로는 열심히 했지요. 그런데 마음과 생각뿐 돌아서면 잊어버리곤 하니 머리를 쥐어뜯고 싶었습니다. 매일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하였습니다.

 

  나이 들어 늙어갈수록 배우고 읽어서 아름다운 할머니로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진정으로 남을 배려할 줄 알고 내 욕심만 채우지 않고 정직하고 정이 많은 늙은이로 남들한테 기억되고 싶습니다.

 

  이번에 십 년 만에 고등학교 과정까지 합격하게 되어 다시 한번 선생님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이런 고마운 생각들 오래오래 간직하시고 좋은 일 더더욱 많이 해주시길 바랍니다. 올해 저의 환갑 선물로 이보다 좋은 것은 없는 듯 합니다

 

  말재주도 글재주도 없는 제자가 감사의 뜻으로 이 편지를 드립니다.

본 메일은 전태일기념사업회 회원으로 가입하실 때 기재하셨던 이메일로 발송한 메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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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l : 02-3672-4138 / Fax : 02-3672-4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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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웅 - 나

미국에서 날아온 편지,

 

혀...ㅇ
대학시절 양산리 지하방에서 쇠주한잔 기울이며 철학을 논하던 그때가 그립구료.
미국은 새벽2시, 잠이 안와 진한걸로 한잔마시고 들렀다 갑니다.
친구가 없소, 마흔줄을 바라보는데 세속에 찌들어만가고, 인생을 논할 친구가 없소.
언젠가 사건많고 말도 많은 그잘난 조국으로 돌아가야하는걸까?
나이가 먹을수록 돈이 아니라 내인생이 아깝단 생각이 드누만, 자식쌔끼들 먹여살리고 키우는맛에 내인생은 접혀져가오.
이게 인생인가?
내가 조국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돌아가고 싶건만, 형들과 후배들과 1년에 한번 인생을 논할수만 있더라도.....
이미 늦어버린것은 아닐런지.....
외로운 밤이오.

 

 

그리고 내가 보낸 답장,

 

삶은 누구에게나 소중하지.
나에게나, 너에게나, 그에게나...

삶은 언제라도 소중하지.
10대에도, 30대에도, 50대에도, 70대에도...

소중한 삶, 그 누구도 아닌 너의 행복을 찾길바래.

 

나도 너랑 소주 한 잔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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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용기

수영을 해보지 않고는 수영을 잘할 수 없다.

정체가 분명하지 않은 두려움 때문에 무능해지지 말라.

                                             - 파울로 프레이리

 

두렵다고 말하자.

두려움을 인정하자.

두려움을 넘어서는 용기는

두려움의 정체를 분명하게 알고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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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두 형님.

진서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함부로 아이를 데리고 다닐 수 없다.

그러다 보니 한두 달에 한 번씩 만날 수 있던 인천 두 형님을 방학 때나 되야 겨우 찾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40대 중반에 다가가고 있는 동갑내기 두 형님.

 

'정현' 형은 나와는 한신대 신학과 동기이고,

'경서' 형은 그 학교, 그 과의 선배이다.

그리고 서로는 40대에 들어서며 절친한 친구가 되서

많은 일을 함께 하고 있다.

 

둘은 민중교회 목사이고

이주노동자를 위해 헌신하고 있고,

마을의 가난한 이들과 정겨운 이웃이 되려고 애쓰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착한 목사로 살기 위해 무지하게 발버둥치고 있다.

 

간혹 찾아가 한 수 배우기도 하고,

넋두리도 하고,

그렇게 하고 돌아오는 길엔 포만감,

이상하게도 포만감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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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청 사도학교..2006.1.6

한국기독교장로회 청년회전국연합회 사도학교

 

50년의 역사를 가지고 한 때는 기독교청년운동의 대명사였던 곳,

그리고 나 역시 한 때 잠깐씩,

안에서 활동하거나,

밖에서 지켜보며 지지 지원했던 단체.

 

물론 지금도 그 정신은 꼿꼿하게 지켜가고 있지만,

여러가지 시대의 변화 속에

그 활동이 많이 위축되었다.

 

이들이 기독교운동의 활동가들을 길러내고자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교육훈련 프로그램이 '사도학교'다.

 

그곳을 다녀왔다.

 

주제가 정해져 있고,

시간이 약속되어 있어서

내 궁금한 것들은 뒷전에 둘 수 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20대 초중반의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떠나고 있는 교회에 남아,

그것도 뭔가 의미있는 청년회를 꾸려보겠다고 기특한(?) 마음을 먹고 모인

10여명의 청년들.

그저 반갑기만 하다.

 

직장, 학교, 친구들...

요즘 가장 짬이 없다는 20대 청춘들이

영어를 배우는 학원도 아니고,

학점이나 고과점수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배움터에

시간을 내주고 있는 것 만으로도 반갑고 고맙다.

 

물론 이들이 진보, 사회운동, 변혁, 민중.......

이런 단어들에 익숙한 친구들은 아니다.

그런 것에 익숙하고, 그것에 자신을 바칠 마음이 있었다면

이 곳에서 나와 만날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자기 처지에 맞는 노동운동을 하고 있거나,

학생운동을 하고 있거나,

또 다른 사회운동의 현장에 있을 것이다.

 

아직 이들은 그 자리에 서있지 못하다.

아직 이 순수한 젊은이들은

선하고 공평하신 하나님을 믿고,

가난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섬기라고 한 예수를 따르고 싶은 신앙이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더  이들이 반갑다.

 

책을 통해 학습된 신념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가를 무수히 보아왔던 나에게,

생존의 요구만으로 모인 사람들이 결국 어떻게 흩어지는지를 잘 아는 나에게,

이들의 이 순수한 신앙이 그 어떤 신념이나 당위나 필요보다 더 큰 희망으로 보인다.

 

물론 터무니없는 희망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아편으로서의 종교를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헛소리 이거나 개꿈

아니면 반동의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과 똑같이

선하고 공평하신 하나님을 믿고,

가난한 이웃에게 보인 예수의 사랑을 닮고 싶은 나에게는 이들이

얼마나 큰 희망인지 모른다.

 

난 이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 가는 그 자리에 지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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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쉬는 평화

NeoScrum님의 [평화를 위한 10가지] 에 관련된 글.

네오님의 글을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숨쉬는 평화,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숨쉬는 평화!

그래서 평화가 스스로 숨쉬게 하는 그런 평화!

 

꼭 평화 만이겠는가?

정의도 그렇고,

평등도 그렇고....

 

작은 행동 하나로부터 살아내는

그런 평화, 정의, 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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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하기

행복을 나누는 성탄!

희망을 찾아가는 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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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배반

자기 삶이 자기를 배반하고 있을 때 사람들은
주눅 든다.

 

뭔가 모르게 주눅드는 자기의 감정을
솔직하게 대면하고 싶은 사람은 드물다.

 

탈출구를 찾는다.
가장 손쉽고 가까운 곳으로부터 찾는다.

 

그들의 선택은 '누군가'에게, 혹은 '어떤 일'에 도움을 주는 것이기 쉽다.

 

자기를 배반한 사람들의 이런 도움은
몸과 마음으로라기 보다는
자기 여윳시간과 여윳돈으로 대신한다.

 

그것만으로도 훌륭하다.
하지만 많은 경우 이들의 도움은
그 '누군가'와 그 '어떤 일'을 질곡에 빠뜨리게 된다.

 

어느덧 그렇게 '돕는 사람'이 착한-훌륭한 사람들의 표준이 되고
그들이 돕는 누군가나 어떤 일은
도움을 받아야지만 되는 '불쌍한 사람', '초라한 일'이 되고 만다.

 

자기를 배반할 수 없어서
그 누군가가 되고,
그 어떤 일의 주인이 되어 사는 사람들은
지나친, 혹은 철 없는 사람들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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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세상이 바뀌었나보다.

세상이 바뀌긴 바뀌었나보다.

이제 공권력이 국민을 죽여도 정권은 안전하다.


손문상[부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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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이거나 일용직 신분인 과학 연구자들...

황우석 거짓말과 관련해서 우리가 더 관심가져야 할 것이 있다면 이 이야기가 아닌지....

 

“황 교수 외에도 한국의 생명과학 수준은 국제 학술지에 게재되는 논문이 매년 15% 이상 늘어날 정도로 탄탄하게 성장하고 있다”며 “현재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이거나 4대 보험도 들지 못하는 일용직 신분인 과학 연구자들에게 따뜻한 관심이 모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한겨레[브릭(BRIC), 한국 과학계 희망을 살렸다!] 중에서

 

황우석이 무언가 이룰 수 있었다면 그것은, 수많은 과학도들의 이러한 헌신과 노력 위에 그저 땀 한방울 더 얹은 것에 불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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