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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을 함께 나누는 것은 서로를 존중한다는
가장 마음 깊은 표현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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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날아온 편지,
혀...ㅇ
대학시절 양산리 지하방에서 쇠주한잔 기울이며 철학을 논하던 그때가 그립구료.
미국은 새벽2시, 잠이 안와 진한걸로 한잔마시고 들렀다 갑니다.
친구가 없소, 마흔줄을 바라보는데 세속에 찌들어만가고, 인생을 논할 친구가 없소.
언젠가 사건많고 말도 많은 그잘난 조국으로 돌아가야하는걸까?
나이가 먹을수록 돈이 아니라 내인생이 아깝단 생각이 드누만, 자식쌔끼들 먹여살리고 키우는맛에 내인생은 접혀져가오.
이게 인생인가?
내가 조국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돌아가고 싶건만, 형들과 후배들과 1년에 한번 인생을 논할수만 있더라도.....
이미 늦어버린것은 아닐런지.....
외로운 밤이오.
그리고 내가 보낸 답장,
삶은 누구에게나 소중하지.
나에게나, 너에게나, 그에게나...
삶은 언제라도 소중하지.
10대에도, 30대에도, 50대에도, 70대에도...
소중한 삶, 그 누구도 아닌 너의 행복을 찾길바래.
나도 너랑 소주 한 잔 하고 싶다.
진서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함부로 아이를 데리고 다닐 수 없다.
그러다 보니 한두 달에 한 번씩 만날 수 있던 인천 두 형님을 방학 때나 되야 겨우 찾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40대 중반에 다가가고 있는 동갑내기 두 형님.
'정현' 형은 나와는 한신대 신학과 동기이고,
'경서' 형은 그 학교, 그 과의 선배이다.
그리고 서로는 40대에 들어서며 절친한 친구가 되서
많은 일을 함께 하고 있다.
둘은 민중교회 목사이고
이주노동자를 위해 헌신하고 있고,
마을의 가난한 이들과 정겨운 이웃이 되려고 애쓰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착한 목사로 살기 위해 무지하게 발버둥치고 있다.
간혹 찾아가 한 수 배우기도 하고,
넋두리도 하고,
그렇게 하고 돌아오는 길엔 포만감,
이상하게도 포만감이 생긴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청년회전국연합회 사도학교
50년의 역사를 가지고 한 때는 기독교청년운동의 대명사였던 곳,
그리고 나 역시 한 때 잠깐씩,
안에서 활동하거나,
밖에서 지켜보며 지지 지원했던 단체.
물론 지금도 그 정신은 꼿꼿하게 지켜가고 있지만,
여러가지 시대의 변화 속에
그 활동이 많이 위축되었다.
이들이 기독교운동의 활동가들을 길러내고자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교육훈련 프로그램이 '사도학교'다.
그곳을 다녀왔다.
주제가 정해져 있고,
시간이 약속되어 있어서
내 궁금한 것들은 뒷전에 둘 수 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20대 초중반의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떠나고 있는 교회에 남아,
그것도 뭔가 의미있는 청년회를 꾸려보겠다고 기특한(?) 마음을 먹고 모인
10여명의 청년들.
그저 반갑기만 하다.
직장, 학교, 친구들...
요즘 가장 짬이 없다는 20대 청춘들이
영어를 배우는 학원도 아니고,
학점이나 고과점수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배움터에
시간을 내주고 있는 것 만으로도 반갑고 고맙다.
물론 이들이 진보, 사회운동, 변혁, 민중.......
이런 단어들에 익숙한 친구들은 아니다.
그런 것에 익숙하고, 그것에 자신을 바칠 마음이 있었다면
이 곳에서 나와 만날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자기 처지에 맞는 노동운동을 하고 있거나,
학생운동을 하고 있거나,
또 다른 사회운동의 현장에 있을 것이다.
아직 이들은 그 자리에 서있지 못하다.
아직 이 순수한 젊은이들은
선하고 공평하신 하나님을 믿고,
가난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섬기라고 한 예수를 따르고 싶은 신앙이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더 이들이 반갑다.
책을 통해 학습된 신념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가를 무수히 보아왔던 나에게,
생존의 요구만으로 모인 사람들이 결국 어떻게 흩어지는지를 잘 아는 나에게,
이들의 이 순수한 신앙이 그 어떤 신념이나 당위나 필요보다 더 큰 희망으로 보인다.
물론 터무니없는 희망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아편으로서의 종교를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헛소리 이거나 개꿈
아니면 반동의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과 똑같이
선하고 공평하신 하나님을 믿고,
가난한 이웃에게 보인 예수의 사랑을 닮고 싶은 나에게는 이들이
얼마나 큰 희망인지 모른다.
난 이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 가는 그 자리에 지금 있다.
NeoScrum님의 [평화를 위한 10가지] 에 관련된 글.
네오님의 글을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숨쉬는 평화,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숨쉬는 평화!
그래서 평화가 스스로 숨쉬게 하는 그런 평화!
꼭 평화 만이겠는가?
정의도 그렇고,
평등도 그렇고....
작은 행동 하나로부터 살아내는
그런 평화, 정의, 평등....
자기 삶이 자기를 배반하고 있을 때 사람들은
주눅 든다.
뭔가 모르게 주눅드는 자기의 감정을
솔직하게 대면하고 싶은 사람은 드물다.
탈출구를 찾는다.
가장 손쉽고 가까운 곳으로부터 찾는다.
그들의 선택은 '누군가'에게, 혹은 '어떤 일'에 도움을 주는 것이기 쉽다.
자기를 배반한 사람들의 이런 도움은
몸과 마음으로라기 보다는
자기 여윳시간과 여윳돈으로 대신한다.
그것만으로도 훌륭하다.
하지만 많은 경우 이들의 도움은
그 '누군가'와 그 '어떤 일'을 질곡에 빠뜨리게 된다.
어느덧 그렇게 '돕는 사람'이 착한-훌륭한 사람들의 표준이 되고
그들이 돕는 누군가나 어떤 일은
도움을 받아야지만 되는 '불쌍한 사람', '초라한 일'이 되고 만다.
자기를 배반할 수 없어서
그 누군가가 되고,
그 어떤 일의 주인이 되어 사는 사람들은
지나친, 혹은 철 없는 사람들이 되고 만다.
세상이 바뀌긴 바뀌었나보다.
이제 공권력이 국민을 죽여도 정권은 안전하다.
손문상[부산일보]
황우석 거짓말과 관련해서 우리가 더 관심가져야 할 것이 있다면 이 이야기가 아닌지....
“황 교수 외에도 한국의 생명과학 수준은 국제 학술지에 게재되는 논문이 매년 15% 이상 늘어날 정도로 탄탄하게 성장하고 있다”며 “현재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이거나 4대 보험도 들지 못하는 일용직 신분인 과학 연구자들에게 따뜻한 관심이 모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한겨레[브릭(BRIC), 한국 과학계 희망을 살렸다!] 중에서
황우석이 무언가 이룰 수 있었다면 그것은, 수많은 과학도들의 이러한 헌신과 노력 위에 그저 땀 한방울 더 얹은 것에 불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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