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된 깃발 아래 모여라

2007/07/05 11:33
주봉희] 파견된 깃발 아래 모여라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파견 노동자는 6월30일생/…/ 두 번의 겨울을 지나 여름이 오면/ 축 늘어진 버들가지 하늘거리고/ 살랑대는 바람결에 나를 묻는다/…/ 파견노동자 보호한다더니/…/ 오늘이 2년이니 나가달란다/…/ 반팔 입고 왔다가 반팔 입고 쫓겨가는 나/ 유월 노동자/ 30일이 생일이라네.”(주봉희 시집 <어느 파견 노동자의 편지> 중에서)

지난 1월 말 치러진 제5기 민주노총 임원선거 당선자 중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사람이 있다. 주봉희(55) 부위원장이다. 주씨는 부위원장 당선자 5명 중에서 유일한 비정규직 노동자다.


△ 사진/ 한겨레 박종식 기자

 

 

1994년 한국방송 방송차량 운전기사로 입사한 그는 파견법이 발효된 날인 1998년 6월30일 ‘파견직’ 방송차량 운전기사로 재입사했다. 그러나 2년을 채우기 하루 전날인 2000년 7월1일 해고됐다. 파견법에 따라 2년마다 잘리는 파견노동자였기 때문이다. 그 뒤 5년은 외로운 싸움의 연속이었다. 같이 싸우던 방송사 파견노동자 동료들은 2년마다 해고돼 뿔뿔이 떠났고, 조합원이 없어서 노조를 끌고 가기도 어려웠다. “깃발하고 같이 다니면서” 혼자 싸워야 하는 나날이 계속됐다. “어디 기댈 곳도 없이 혼자 시위하고 싸우면서” 낙서한 70여 편의 시들은 2005년에 시집 <어느…>로 묶여 출간됐다. 혹독한 날들에 끄적거린 시편들은 고독한 내면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주씨는 그동안 방송사의 운전직, 작가, 사무보조 등 비정규직을 모아 방송사비정규노조를 만들었다.

2004년 이후 비정규직 노동자 후보가 민주노총 부위원장 선거에 두 번 출마했으나 번번이 낙선하고 말았다. “이번 민주노총 임원 선거에서도 어느 위원장 후보도 비정규직 후보를 부위원장 러닝메이트로 끌어들이려고 하지 않았어요. 정규직 대의원들의 표가 깎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인지…. 아무튼 저 혼자 독자 후보로 출마했죠. 기대하지 않았던 제가 당선됐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가 울먹여 가슴이 뭉클하더군요.” 그는 2월23일, 화재 참사가 발생한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에 내려가 있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뿐만 아니라 이주노동자, 장애인 등 취약한 주변부 노동자들을 위한 여러 사업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공장 정규직 중심의 민주노총 안에서 그는 또다시 ‘고독한’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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